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86화 (86/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86화

58. 서비스 종료

“슬슬 결정을 내릴 때가 됐습니다.”

“존속 자체가 손해예요. 본사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면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사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던 게 신기했죠. 이제 같은 장르에 너무 좋은 게임들이 많이 나왔어요. 더 이상은 찾는 사람도 없는 구식 게임일 뿐이죠.”

회의를 마치고 박명훈과 함께 인근 카페로 향했다.

박명훈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번이 세 번째죠?”

“……?”

“드림 소프트 시절 한 번, 블레스 시절 한 번, 그리고 이번. 세 번 맞지 않나요?”

“아…….”

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맞아요. 이번이 세 번째네요.”

아직도 생생하다.

운영 문제로 수명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두 개의 게임.

“첫 번째 게임이 서바이벌 매직이었죠? 캐주얼 배틀 로얄 액션…….”

“맞아요. 귀엽고 치열한 생존 경쟁으로 당시에 인기가 굉장했었죠.”

다만 급변하는 온라인 시장에 적응하지 못했고, 기술력의 한계로 서비스 종료가 결정됐다.

그 마무리를 담당했던 것이 당시 제국의 검 기획팀장이었던 태연이었다.

“두 번째 게임은 회사 이름을 걸고 만들었던 논타겟 MMORPG ‘블레스’였고요.”

한계 돌파보다 더 큰 기대를 모았던 게임이고 실제 런칭 초반에는 그런대로 흥했던 게임이다.

그러나 운영 실패와 거듭되는 무리수 업데이트로 폭망하고 말았다.

역시 태연이 마무리를 담당했다.

태연이 말했다.

“에버월드가 세 번째 게임이 되었군요.”

“…….”

“이게 처음 겪는 일도 아니고 이번에는 제가 전담할 업무도 아닌데 기분이 참 우울합니다. 마치 어린 생명을 제 손으로 끊어내는 기분이에요.”

“공감합니다. 저도 사실 바로 전 직장에서 가장 우울했던 게 바로 그 경험이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지만 게임의 수명을 제 손으로 끊는다는 건 참…….”

두 개발자는 우울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랬다.

방금 임원회의에서 결정된 것은 넥플의 역사와 함께 출발한 캐주얼 MORPG. 에버 월드의 서비스 종료 결정이었다.

태연이 들어서자 에버월드 스튜디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자리에서 일어선 금테 안경의 중년 여성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태연의 방문 목적을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주목해 주세요.”

총 스물다섯 명의 개발자들이 태연을 바라본다.

‘마치 사망 선고를 기다리는 시한부 환자들 같군.’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환자의 가족을 보는 느낌이다.

그만큼 이 게임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뜻이리라.

“15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

그 한마디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온다.

“에버 월드의 서비스를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디렉터를 포함한 중년의 개발자들은 벌써부터 흐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디렉터, 김상희에게 말했다.

“이야기 좀 하시죠.”

* * *

“제 젊음을 다 바친 게임이었어요. 제가 정말 정말 사랑했거든요. 이 게임…….”

회의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김상희 디렉터는 하염없이 울었다.

태연은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이 게임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고, 아이들을 낳고 키워 초등학교에 보낼 수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에버월드는 제 인생의 전부였어요.”

태연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심정, 게임 개발자로서 십분 공감했다.

“저, 저기…….”

“말씀하시죠.”

“우리 게임…… 어떻게든 안 될까요?”

“…….”

“다시 살아날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피디님은 아틀란시아를 포함해 여러 게임을 되살려냈잖아요! 우리 게임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

“저 진짜 이대로 못 끝내요! 자식 같은 애들이란 말이에요. 엉엉엉!”

회의실 부근에 에버월드 개발자들이 모여 있었다.

울음소리가 크게 들리니 참지 못하고 모여든 것이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조심스레 열린다.

“들어…… 들어가도 될까요?”

비슷한 또래의 개발자들이었다.

태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우르르 들어온 이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달라붙는다.

“대표님. 정말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소수지만…… 아직도 에버월드를 사랑하고 즐기는 유저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봐서라도…….”

태연도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긴 했다.

엔진 교체히고 시스템과 그래픽을 업그레이드해서 리메이크 런칭하는 것.

‘하지만 그래서야 에버월드가 아니지.’

게이머들은 참 묘한 부분이 있다.

새로운 것보다는 자신이 알고 사랑하던 그 모습 그대로를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비록 그 형태가 낡고 초라하다고 해도.

‘아틀란시아, 배틀 월드하고는 이야기가 다르지.’

이 게임은 그동안 너무 혹독한 일들을 겪었다.

눈앞에 있는 김상희 디렉터는 5년 전에야 디렉터 자리를 맡게 된 인물이었다.

에버월드가 회생 불가 지경까지 내몰리게 된 것을 그녀의 탓으로 볼 수는 없었다.

스포츠 구기종목들이 그러하듯, 게임 역시 PD 놀음이니까.

‘더 나은 모습으로 바꿔봐야…… 그건 이미 유저들이 사랑하던 에버월드가 아니야.’

모바일 게임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대표로서 현명한 결단은 아니다.

그럴 만큼 화제성 있는 IP도 아니고, 게임의 중추가 되는 세계관을 비롯한 메인 시스템들이 너무 퀄리티가 떨어진다.

‘여기서 종료하는 게 맞아.’

이 게임은 수명이 다 됐다.

그것이 태연이 내린 결정이었다.

“…….”

하지만 태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담당 게임에 대한 애정이 이렇게까지 강렬했던 경우는 보지 못했다.

“일단 게임은 예정대로 이번 달 안에 종료합니다.”

“아…….”

변함없는 결정에 또다시 탄식과 울음이 터져 나온다.

태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떠나기 전.

“…….”

한없이 좌절해 있는 에버월드 개발자들을 돌아봤다.

‘마음이 편치 않아.’

무거운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 * *

오후, 강남 사옥에 돌아온 태연은 에버월드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서비스 종료 공지.]

‘공지가 올라왔군.’

김상희 피디가 눈물로 쓴 공지였다.

내용 곳곳에 서비스 종료를 알려야 하는 참담한 심정이 가득 드러나 있었다.

게시판의 상황은…….

-밀도 안 돼. 서비스 종료라니요ㅠ.ㅠ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은 했었는데……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속 쓰리네…….

-죽어도 못 보내!

유저들의 눈물로 가득했다.

글을 읽는 동안 클라이언트를 다운, 설치가 완료됐다.

‘접속해 볼까?’

한창 전성기 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즐겼던 게임인지라 아직 계정은 살아 있었다.

접속하니 어쩐 일인지 통합 서버에 혼잡 표시가 떠 있었다.

‘소문을 들고 유저들이 찾아온 모양이군.’

그래 봐야 서버 수용량이 워낙 적어 수가 얼마 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가까스로 접속에 성공했더니.

“……!”

광장에 생각보다 유저들이 많았다.

각종 아바타로 꾸민 2등신 캐릭터들이, 중세 시대 컨셉 광장에 잔뜩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섭종 소식 듣고 찾아왔습니다.

-내 인생 게임이었는데…… 아, 뭔가 납득이 안 되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인데……ㅠㅠㅠ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제 와서……?’

매일같이 이 인원이 접속해서 게임을 활성화시켜 줬다면…… 지금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 왔더라면…….

‘……그래도 섭종 결정을 내리긴 했겠군.’

일단, 에버월드 개발자 중 대다수가 넥플 초창기에 입사한 장기 근속자들이다.

연봉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인건비에 더해 각종 유지 등을 포함하면 지금 매출로는 유지가 손해인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개발자 수를 줄일 수도 없고.’

그래도 어떻게든 업데이트가 진행되긴 하겠지만…….

‘호흡기 교체 작업에 불과하지.’

아무 의미 없다는 뜻이다.

전투방에 접속하자 순식간에 정원인 열 명의 유저가 채워진다.

그리고 플레이 시작!

연녹빛 톤, 마법의 숲 배경에서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2등신 캐릭터들이 서바이벌에 돌입한다.

뒤치기! 그리고 또 뒤치기!

‘어찌 보면 배틀월드와 추구하는 게임성이 비슷하긴 한데…….’

피로감은 몇 배로 상승한다.

이 게임의 첫 번째 문제였다.

지나친 피로감.

열을 내서 할 때는 재미있는데, 다시 하려고 생각하면 거부감이 든다.

‘AOS 게임은 전략 전술이라도 구사할 수 있지, 이건 순 장비, 아이템 빨과 더해 운빨이 중요해.’

어차피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저들이라면 고일 대로 고인 유저라는 뜻.

무조건 최신 장비를 질러서 풀강을 맞춰야 하고, 아바타를 합성해서 레어, 유니크 풀셋을 장착해야 한다. 그리고 캐시 아이템으로…….

‘생각만으로도 피곤하군.’

그래도…….

‘집중해서 하다 보면 확실히 재미는 있어. 몰입도 잘되고.’

최신 게임 기준에서 보면 모든 것이 부족한 것투성이다.

타격감, 조작감, 밸런스…….

‘그래도 재미있어.’

무엇보다도 장점은 커뮤니케이션 기능이다.

하우징 시스템을 한국 온라인 게임 사상 거의 최초로 도입한 게임이었다.

길드원들이 돈과 아이디어를 모아 길드 하우스와 길드 영지를 최대한 멋지게 꾸미는 재미가 있다. 확장성도 좋아서 원하는 형태의 도시를 만드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사실 배틀 로얄 전투보다는 이 길드 시스템이야말로 존속의 비결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심즈 스타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영지 꾸미기, 침공 시스템은 온라인으로 즐기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다.

힘들게 꾸며놓은 내 영지, 길드 영지가 침공을 당하고 엉망이 되면 그 순간 게임 플레이에 대한 의욕이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많은 길드가 붕괴되고, 유저들이 게임을 접었다.

‘나름의 소소한 재미는 있지만…….’

역시나, 마땅한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

아예 세계관, 시나리오, 시스템 구성 등을 뜯어고친다면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야 의미가 없지.’

아니,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걸까?

온통 부정적인 생각뿐이었다.

‘팀 분위기와 단합력은 나쁘지 않은 듯하니, 김상희 디렉터를 중심으로 새 게임을 만들도록 해야겠군.’

원래 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할 일이 없어진 모든 인력을 ‘charge’로 보낸다.

사실상 대기 발령팀이었다.

타 스튜디오에서 뽑아갈 때까지 게임 분석하고 리뷰하는 일만 하게 되는 것이다.

기가 막힌 게임 프레젠테이션으로 피디와 임원들을 납득시켜 투자를 받아낼 수 있다면 최고지만, 그런 일이 누구에게나 가능할 리가 없다.

‘알아서 나가라는 거지.’

태연은 부임하자마자 이 팀을 없애 버렸다.

아무 짝에 쓸모없고, 개발자 자존심만 깎아 먹는 곳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자신에게는 상태창을 보는 능력과 숱한 개발 경력이 있으니 그것을 활용해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여기서 안타까운 점은, 그들이 가고 싶어 하는 팀에 무작정 넣어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 퇴사했다.

‘TF팀을 조직하도록 하고, 6개월 동안 세 번의 프레젠테이션을 할 기회를 준다.’

좋은 기획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팀은 해체.

이산가족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일단은 그렇게 하도록 하고…….’

태연은 게임을 바라봤다.

십수 년이 지난 옛날 게임이지만, 참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2D 도트 그래픽이었다.

순간 태연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 리소스를 내가 한 번 마음대로 주물러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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