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84화
56. 스카우트(2)
요 근래 업계에 요상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넥플 엔터테인먼트 강남 사옥에 그렇게 미녀가 많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형님들, 제발 대답 좀 해주세요.
└어디서 이상한 소문을 들은 것 같은데…… 전혀 사실이다.
└???
└순간 착각했는데…… 맞다는 소리임? 정말 미녀가 많음?
└ㅇㅇ 겁나 많음.
└참고로 신데렐라 코스츔으로 이슈가 된 미녀 AD님이 거기서 근무하심.
└그분 말고도 예쁜 분 진짜 많음. 나 그 팀 가고 싶어서 몰래 전배 요청했는데 면접해서 탈락함.ㅠ_ㅠ
└야 너두……?
어디 회사에 미남 미녀가 많다더라.
사실 이런 소문은 어느 업계에든 존재했지만 실체가 확인된 적은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소문은 차원이 달랐다.
-회사 근처 지나가다가 찍은 건데…… 유 피디님하고 같이 있는 이 여자분들도 개발자들임?
└ㅇㅇ 이번에 새로 오신 분들임.
└헐, 난 연예인일 줄 알았는데…… 진짜 개발자임?
└대박…… 진짜 연예인 외모네. 두 분 포지션은 어떻게 되시나……?
└금발 머리 여성분은 판데모니움 AD님이시고, 흑단발 귀여운 여성분은 메인 원화가이심. 두 분도 일본 게임사에서 근무하다가 이직해 오심.
└일본? 일본 어디??
└교토 미나미구…… 이 이상은 생략한다.
└야이, 다 말해놓고 생략은 무슨……ㅋㅋㅋ
└거기에 있는 게임사 하나밖에 없지 않나?
└진짜 쩐다. 나 판데모니움 AD, 메인 원화가시라니…… 나도 그 회사 입사할래;;;
└나도;;;;
실체가 확실히 있었다.
누군가 사진을 촬영해 올린 것이다. 금방 지워지긴 했지만 이미 사진은 개발자 앱 커뮤니티를 넘어 인터넷 사이트에도 유포됐다.
[제목 : 흔한 게임 회사 직원 비주얼]
사진 속 두 여인의 외모가 워낙 빼어나고 매력이 있었기에 금방 퍼져 나갔다.
-내가 찾아봤는데 저 금발 머리 미녀, 전 직장이 교토에 있는 N사였고 간판 타이틀 아트 디렉터였음;; 미모뿐만 아니라 경력도 어마어마한 분이심;;;
└옆에 분도 같은 회사 출신인데, 저분은 굉장히 유명한 인플루언서더라. 뮤튜브, SNS 모두 팔로워 백만 명 넘음; 그리고 도쿄예술대학 미대 출신임;;
└도쿄 예술대 유명함?
└우리나라로 비교하면 서울대 미대 정도의 위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초 엘리트네;;;
심지어 신상 내역까지.
이 사실은 태연의 귀에도 들어왔다.
“어떻게 할까요?”
태연은 자주 가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업로드된, 무시무시한 조회, 댓글 수를 자랑하는 게시물을 보고 있었다.
잔뜩 들뜬 채 활짝 웃고 있는 한설아, 시이나 미나미의 사진이 큼직하게 걸려 있었다.
“…….”
태연은 한숨 쉬며 말했다.
“당사자들의 의사가 중요하겠죠. 직접 물어보겠습니다.”
* * *
“상관없어요.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저는 알려지는 걸 좋아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두 여인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시이나 미나미야 백만 구독자의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설아 씨도 이런 일이 많았습니까?”
“과거 한국 근무 때도 그랬고 특히 일본에서 근무했을 때도……. 얘 방송에서도 종종 출연해 주고 그랬어요.”
“……원래 주목받는 거 싫어하지 않았습니까?”
과거에는 그랬다.
빼어난 외모로 이런 저런 말썽에 휘말렸던 적이 워낙 많았기에.
“예전에야 그랬죠. 조금만 말 걸어주고 웃어줘도 자기를 좋아하는 줄 착각해서 고백하고, 거절당하면 혼자 상처받아서 별 생쑈를 다 하거나 퇴사하고 자해도 하고……. 그런 사건이 워낙 많았으니까요.”
태연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신인이었던 그녀를 뽑아 게임 개발을 가르친 것이 바로 본인이었기에.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나서서 중재하거나 사건을 해결했던 것도 태연이었다.
“그래서 한때 별명이 얼음 공주였었죠.”
“아, 진짜! 유치하게…….”
그녀는 부끄러움에 몸서리를 쳤지만 시이나 미나미의 반응은 남달랐다.
“디렉터님 별명이 얼음 공주였어요? 신기해요!”
“일본에서는 달랐나 보죠?”
“네! 차갑고 뚱하긴 했지만 아이스크림 좋아하고 고양이, 곰돌이, 디즈니 인형…… 이런 걸 저보다도 더 사랑하고 또…….”
“야! 야!”
태연하게 비밀을 까발려 버리는 부하 직원의 만행에 한설아가 기겁했다. 그러나 시이나 미나미의 입놀림을 막지는 못했다.
‘서로를 많이 의지하는군.’
한설아가 시이나 미나미를 데려온 이유.
시이나 미나미가 그녀를 따라온 이유.
둘은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자매 같은 관계였다.
그리고 같이 있을 때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흠.’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판데모니움 원화를 바라보며 태연은 깊은 고심에 잠겼다.
‘퀄리티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아.’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굉장해.’
그래서 고민이 된다.
‘이 퀄리티를 그대로 살려서 게임에 적용하려면…….?’
판테온 수준의 예산이 필요할 것 같다.
‘애시당초 상정했던 수준을 뛰어넘는 건데…….’
아무리 거대 회사 대표가 되었다고 하지만.
수십억 정도로 끝낼 수 있었던 작업을 수백억 규모로 확대하는 일이, 결코 쉬운 결정일 리가 없었다.
‘그래도 해야겠지?’
어느 덧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티격태격하고 있던 한설아와 시이나 미나미가 숨죽인 채 태연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태연이 결정을 내렸다.
“개발비가 정확히 어느 정도 들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 퀄리티 최대한 살려서 제작해 봅시다.”
“그냥 바로 제작하는 거예요? 원래 1, 2분짜리 실 플레이 영상 만들어서 간부터 보고 제작을 할지 안 할지 결정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태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최종결정권자가 바로 접니다.”
“아! 맞다. 피디님이 이 회사 대표 이사였지.”
“이것이 바로 보스의 위엄?!”
두 여자가 반짝 반짝 눈동자를 빛낸다.
잠시 잊었지만…… 눈앞의 남자가 바로 대한민국 재계 서열 15위 대기업의 대표였던 것이다.
“멋있어요!”
“잘생겼어요!”
“안 그래도 지원은 충분히 할 생각입니다. 제 드림 프로젝트 중 하나였고, 제가 만들고 있던 게임이니까요.”
“아니, 그것과 상관없는 진심인데요.”
“여자의 진심을 곡해하다니…… 보스 너무해요!”
회의를 끝내니 쪼르르 바깥으로 달려 나가는 두 사람.
곧.
태연이 따라 나가 하는 모양새를 지켜봤다.
“자, 판데모니움 팀 모두 주목!”
개발자들의 이목을 끌어모은 한설아가 힘차게 외친다.
“우리 프로젝트 지금 방금 정식 프로젝트로 승인됐습니다! TF는 오늘부로 끝났다는 거죠!”
-오오오!
“제가 최대한의 지원을 타냈으니 우리 프로젝트, 트리플 A급 캐주얼 MMORPG로 열심히 만들어 봅시다!”
-와아아아!
“우리 대표님 스타일 알죠? 열심히 만들고 대박 터뜨려서 다 같이 부자 됩시다! 서울에 아파트 한 채씩 가져봅시다!”
극도로 끌어올려진 사기.
‘확실히 N사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군.’
일전에 시이나 미나미가 그랬다.
‘회사에서 우리 디렉터님 엄청 붙잡았어요. 연봉 두 배로 올려줄 테니 가지 말라며…….’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저렇게 팀 전체를 사로잡아버리는 능력이 있고 개발자로서 역량도 특출나다면 당연히 보내기 싫지.’
그녀가 태연을 보며 묻는다.
“대표님! 정규 프로젝트 전환 기념으로…….”
술을 홀짝거리는 제스처를 취하며 눈을 찡긋한다.
“콜?”
“부어라!”
“마셔라!”
“이모! 항정살 3인분 추가요! 아, 꽃등심도 5인분 추가!”
넥플 엔터테인먼트 전체 회식이었다.
누구만 회식 시켜주고 누구는 일 끝내고 퇴근하면 굉장히 섭섭하지 않겠나?
‘이런 걸 좋아하는군.’
요즘 세대는 강제 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설아의 제안을 승낙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과연 얼마나 참석할까, 비관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다들 기다렸다는 듯 참석해서 즐기지 않나?
사방을 누비며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던 한설아가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직도 좀 얼떨떨하신가 봐요?”
“네? 네. 뭐…….”
“우리 회사가 미남미녀 많은 회사로 그렇게 유명하다면서요? 그리고 죄다 신규 개발팀뿐이라 공감대 형성도 잘된다고……. 그래서 질러봤는데 예상대로 반응이 좋네요.”
“이미 회사 분위기에 완전히 적응했군요.”
“원래 분위기 파악이라는 게 그거 때문이잖아. 이건 건드리면 안 되고, 이건 해서는 안 되고, 저 사람은 어떻게 대해줘야 뒤탈이 없고.”
“아…….”
“여긴 그런 부조리 같은 게 없더라고요. 아니,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있긴 있다는 겁니까?”
“뭐…… 다들 스스로의 커리어에 대해 굉장히 자부심이 강하다는 것 정도?”
“아…….”
“나쁜 건 아니에요. 그게 변질되면 이상해지는 거지만 여기는 리더급들이 워낙 압도적인 사람들이 포진해 있어서 그런지 시너지 효과로 작용되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건 다행이군요.”
“아무튼…… 그 시절, 강건 대표 때와 비교하면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훌륭한 조직이에요.”
“N사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분위기 진짜 좋죠.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문제가…….”
“문제요?”
최고의 리더를 중심으로 ‘게임의 장인들’이 모이는 회사. 그런 곳에서 문제점이 있단 말인가?
그녀는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퍼스트 파티 간판급 타이틀을 담당했었잖아요? 계속 같은 캐릭터, 같은 아트만 손대다 보니…….”
“아…….”
“그놈의 정통성, 인지도 때문에 지나친 변화를 유저부터가 싫어했어요. 내부에서는 그래도 좀 새롭게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 하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어서…….”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여기 오면 메인급으로 제가 하고 싶은 거 마음껏 시켜준다고 해서 온 거예요. 사실 제가 원했던 게 바로 그런 거였어요. 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믿음! 신뢰! 이런 거요.”
“설아 씨에게 그런 걸 제대로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저뿐이죠.”
“그래서 온 거라니까요? 자, 한잔?”
“좋죠.”
한잔 들이켜고, 그녀는 살 것 같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 이 회사 정말 마음에 들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
“이곳을 제가 책임지고 제 전 회사 같은 곳으로 만들 거예요.”
그녀가 슥 묻는다.
“그러면 저도 한 자리 주실 거죠?”
그녀의 시선 끝에 이영애가 닿아 있다.
넥플 엔터테인먼트의 이사이자 콘텐츠 플랫폼 ‘밀키웨이’의 총괄 디렉터.
태연은 담담하게 물론이죠.
“물론이죠. 다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역시, 그렇죠? 믿고 있었어요!”
싱글 벙글 웃으며 자리를 떠나는 그녀.
‘뭘 시켜주지?’
사실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태연은 심각한 얼굴로 끙끙댔다.
‘대표님 기분 안 좋으신가봐. 오늘은 더 차가워 보이시네.’
‘말 붙이기 무섭다.’
직원들이 자신을 오해하는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