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82화 (82/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82화

55. 약속하다

“……어떻게 할까요?”

태연은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이번에 개발자 커뮤니티를 통해 생각보다 많은 내용들이 유출됐다. 내부에서 유출자를 색출해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었다.

“이번 일을 눈감아주면 앞으로 유출 강도가 더 높아질 겁니다.”

사업팀장의 말은 분명 일리 있었다.

‘그렇다고 색출해서 단죄하기에는 조금 애매해.’

회사 직원들의 여론이 악화될 것도 고려해야 한다.

‘아니, 뭐 이 정도가지고…….’

‘무슨 대단한 기밀을 유출한 것도 아닌데……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자신 역시 밑바닥 개발자였고 커뮤니티를 자주 애용하는 사람이었다. 회사와 직원, 양쪽 입장이 모두 공감이 된다.

‘색출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과정이 너무 복잡하다.

고민 끝에 태연이 말했다.

“이번 일은 저에게 맡겨주시죠.”

* * *

인트라넷과 직원들 이메일로 공지가 하나 발송됐다.

[안녕하십니까. 게임 개발자 유태연입니다.]

이와 같은 특유의 인사말로 시작되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내일 오전 10시 정각.

본인이 직접 넥플 미디어를 통해 라이브 방송을 진행할 예정.

“무슨 일이지? 최근 이슈라면…… 내부 정보 유출 건인가?”

“그게 가장 큰 것 같고…… 뭐, 요즘 워낙 일이 많으니 겸사겸사 다른 일도 거론하실 것 같고…….”

그 날은 하루 종일 회사 전체가 소란스러웠다.

“피디님! 내일 라이브 방송 하신다는 거 인터넷에 유출됐어요!”

“…….”

다음 날. 10시 정각.

수많은 넥플 지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방송을 시청했다.

아기자기한 캐릭터로 잘 꾸며진 스튜디오에 태연 서 있었다.

“와, 이렇게 보니 대표님 진짜 멋있네.”

“키도 크고 몸도 좋고 얼굴도…….”

“체조여신이 반한 이유가 있다니까.”

무엇보다도 특유의 냉철한 분위기 속에 묻어나는 카리스마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태연은 떨림 하나 없이, 굉장히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게임 개발자 유태연입니다.

이제는 시그니처가 되어버린 인사.

흔한 인사말이지만, 그로 인해 유명해진 이후부터는 넥플의 많은 개발자들이 따라 하는 추세였다.

-다들 일이 많으실 테니 바로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내부 정보 유출 건과 관련해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역시.”

“그럴 것 같더라.”

“근래에 특히 좀 심하더라고. 무슨 엔진을 썼고 배틀 시티 2 개발 과정이 어떻게 된 건지까지 상세히 유출됐으니까.”

“판데모니움은 아예 플레이 영상을 상세히 촬영해서 유포하기도 했잖아. 레벨, 시스템 정보도 그렇고.”

태연을 대변하는 무시무시한 단어.

몰살, 저승사자. 머신 등등.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선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크게 긴장했다.

-사실 다른 부분들은 어떻게든 참고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판데모니움 플레이 영상 유출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건 심각한 범죄입니다.

“……!”

깜짝 놀라는 사람들.

-유출 당사자는 그냥 사람들이 관심 가질만한 내용을 올려 이슈화시켜 보자는 의도였겠지만……. 사실 그건 산업 스파이에 가까운 심각한 범죄 행위입니다. 비밀 유지 서약서를 작성하고, 이와 관련된 교육까지 충분히 받은 뒤 진행된 내부 비공개 테스트 자료를 ‘어떤 의도’를 가지고 유출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찔리는 구석이 있던 이들은 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하는 ‘어떤 의도’란 것에 대해 굳이 부연 설명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것 하나만큼은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회사 대표이자 개발자인 제가 이 일에 대해 크게 분노하고, 유출범을 색출해 작정하고 소송을 진행해 버린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태연의 눈빛이 번뜩였다.

-여러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겠죠.

“…….”

-이 사태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은 간단합니다. 내부 기밀 자료를 절대 외부로 유출하지 않는다.

태연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군사 기밀만 기밀이 아닙니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회사, 수많은 관계자들, 그리고 유출 당사자의 운명을 뒤흔들 수 있을 만한 중요한 내용입니다.

영상 속, 태연의 눈동자는 마치 유출범을 꿰뚫는 듯했다.

-순간적인 유희를 위해 스스로의 인생을 나락에 던질 수 있는 모험을 하지는 마세요.

꿀꺽.

무거운 공기가 가득하다.

카메라를 가만히 바라보던 태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말만 해서야 제대로 된 대처라 할 수 없겠죠.

태연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한마디를 남겼다.

-장급 개발 인력들은 지금 즉시 체육관으로 모이도록 하세요. 간단히 회의 좀 합시다.

라이브 방송은 그렇게 끝났다.

* * *

실내 체육관에 많은 개발자들이 들어찼다.

본사에서 근무하는 파트장, 팀장급 인력이 대부분 모인 것이다.

태연은 강단 위에 올라서서 휴대용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보안 이슈는 어느 누구 한 명이 노력해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모두가 책임의식, 주인의식을 느껴야 하죠. 자신의 프로젝트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담당 업무에 대해서만이라도요.”

이어진 말은 개발자 전원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제안하겠습니다. 앞으로 런칭을 앞둔 모든 게임은 프로듀서를 비롯한 팀장, 파트장들이 대중 앞에 나서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도록 하시죠. 여러분이 활약할 무대는 제가 책임지고 만들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개발자 중 한 명이 침을 꿀떡 삼키며 물었다.

“그러니까…… 애플 이벤트 같은 쇼를 주최하겠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매년 9월마다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건 무리겠죠?”

“음,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 회사에서 제작 중인 신규 프로젝트가 몇 개인데…….”

“에이, 개수랑은 관계없죠.”

“그래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중 앞에 나서서 자신의 게임을 직접 소개할 수 있는 기회.

“한마디로 누구나 스타 개발자가 될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군요. 피디님, 아니, 대표님과 같은…….”

또 다른 개발자의 말에 태연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런 거창한 칭호를 자처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렇게 설명하는 게 더 이해가 쉽겠군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 회사 게임에 대한 주목인데…… 블리즈컨 같은 쇼를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우리 인지도로……?”

“가능하도록 하는 게 제 몫이겠죠. 사실 어려서부터 제 회사의 이름으로 그와 같은 쇼를 개최해 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회사가 넥플이 되었군요.”

“아…….”

“사실 여기까지 도달한 것 자체가 제 의도에서 많이 벗어난 일이긴 하지만…… 그 꿈은 놀랍도록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준비 중인 신규 프로젝트들이 성공하고 동접자가 높게 유지된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죠.”

“확실히 판테온이라면 가능성이 있지.”

“판테온까지 갈 것 없이 판데모니움도 충분히…….”

들뜨는 분위기.

이 같은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약속을 하는 당사자가 흔한 기업의 CEO가 아닌, 모두의 인정을 받은 천재 개발자 유태연이기 때문이었다.

실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는 그의 말이니 강력한 신뢰가 형성된다.

“여러분은 성과에 합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게 될 겁니다.”

이어진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프로젝트 매출에서 인건비, 로열티 같은 직접적인 개발비용을 제외한 금액의 20%를 연 3회로 나눠 인센티브로 지급을 하겠습니다.”

“……!”

* * *

이번 이슈 역시 금방 퍼져 나갔다.

-장급만 모아서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

따로 체육관에 모아서 한 이야기까지.

아주 상세하게.

“아무 효과가 없었네요.”

사업팀장은 비관적이었지만 태연의 생각은 달랐다.

“지켜봐야죠.”

“따로 의도하신 바가 있으신 겁니까?”

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들에게 스스로가 보안을 지킴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알려줬습니다.”

“아! 장급들 스스로가 검열관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하셨군요. 하긴, 무작정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이익을 보여주고 필요성을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죠!”

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네? 어떤…….”

“넥플을 포함한 대한민국 모든 게임 개발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게임을 잘 만들어 성공하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고.”

“아…….”

“인디 게임을 비롯, 개발자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물론 무턱대고 돈만 쏟아붓는 일은 없습니다. 개발 역량과 게임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할 겁니다. 이번 일은 그 계획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눈치가 빠른 이들은 모두 알아들었을 겁니다.”

그 말을 곱씹던 사업팀장이 핵심을 찔렀다.

“지금 대표님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 반드시 성공시켜야겠군요. 그래야 성립이 되는 계획이니까요.”

“그렇죠. 정작 성과로 보여주지도 못하면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해봐야 아무 소용 없죠.”

* * *

대표가 되고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여러 가지 계획과 목표를 세우게 됐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게임이 성공해야 의미 있는 일이었다.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야 하고, 그것으로 많은 돈을 벌며 유저들을 끌어모아야 한다.

사실 그게 된다면 나머지 것들은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

‘현시점에서 우선순위에 둬야 할 가장 중요한 게임은 엘크로스다.’

무려 500억이 넘는 개발비가 투여됐지만 굉장히 시원찮은 결과물이 되어버린 게임.

그걸 회사에서는 자신의 말만 듣고 서비스 중지 및 환불 조치라는……정말 엄청난 결단을 내려줬다.

이걸 다시 제대로 만들어서 성공적으로 런칭해야 한다.

기한은 1년 남짓.

해당 스튜디오는 본래라면 판교 본사의 라이브 본부에 소속되어야 했지만 사실상 신규 프로젝트나 다름없게 된 상황이다. 그래서 강남 넥플 엔터테인먼트 사옥으로 스튜디오를 이동시켜버리고 직접 디렉팅을 하고 있었다.

요 근래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임이기도 했다.

‘인재가 부족해.’

개발자들의 평균 역량은 상당한 편이고, 자격 미달인 사람은 전환 배치를 통해 역량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현재도 계속 사람을 뽑고 있지만 주축에서 활약해 줄 수 있는 실력 있는 관리자들이 부족하다.

특히 아트.

‘메인 기획은 내가 하고 있고 프로그램도 실력자들이 충분하니…….’

홍민석, 이영애 수준의 아트 디렉터가 필요하다.

지금 그래픽에서 절반 분량을 다시 리터칭하고 폴리싱을 해서 퀄리티를 전반부 이상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또한 자신이 구상 중인 연출을 최고의 비주얼로 구현해 줄 수 있어야 했다.

‘다시 한번 부탁해 볼까?’

떠오르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지금까지 함께 일했던 사람 중에서도 실력과 인품으로는 손꼽히던 인재.

결국 그는 그 역량을 인정받아 세계 최고의 게임 회사로 이적.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슈퍼 타이틀 아트 디렉팅을 담당 중이다.

‘이 사람이 합류해 준다면 엘크로스에 이어 바로 판데모니움 아트 디렉팅까지 맡길 수 있어.’

다시 전화해 보자!

‘지난번에는 조건을 맞춰주기 힘들었지만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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