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80화
54. 성장의 시작(3)
그날, 태연이 전해준 소식에 윤아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와! 우리 오빠가 대기업 대표이사님이 되는 거야?”
“대기업…… 인가?”
“맞지 않나?”
“……?”
문득 떠오른 의문에 위키에서 넥플을 검색했다.
명칭 : 주식회사 넥플
대표 : 공석
시가 총액 : 32조. 6700억원.
기업 규모 : 대기업.
윤아가 보란 듯 말했다.
“봐! 대기업 맞잖아. 재계 서열도 무려 15위네!”
“음.”
태연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보니 넥플이 꽤 대단한 기업이었구나.”
“꽤가 아니라 엄청 대단한 기업이지! 그리고 그걸 이제 와서 새삼 깨달았다는 듯한 반응은 뭐야?”
“지금까지는 기업 규모 같은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니까.”
“…….”
순간 윤아의 표정에 ‘이런 사람을 대표이사 시켜도 괜찮은 건가?’라는 의구심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러면 이제 연봉도 오르는 거야?”
“그렇겠지?”
“주식도 받고?”
“아무래도……?”
“나 이제 어디 가서 대기업 대표이사 사모님 됐다고 말하고 다녀도 괜찮은 건가? 나 출세했다!”
태연은 피식 웃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축적한 재산 규모, 그리고 이 순간에도 통장에 쌓이고 있을 돈을 생각하면 넥플 대표이사 자리도 당장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결국 내가 하기에 달린 거지.’
잘하면 그만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못하면 개발자 인생은 여기서 끝나겠지.
‘각오를 다져야겠군.’
“나 지인들에게 자랑해도 되려나?”
윤아가 들뜬 얼굴로 물었다.
휴대폰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당장에라도 사방팔방 소식을 뿌려댈 기세였다.
태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니 조금만 기다려 봐. 뭐…… 갑자기 회장님 마음이 바뀔 수도 있는 일이잖아.”
* * *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스타 개발자 유태연. 넥플 대표이사 취임!]
[그동안 공석이었던 넥플 대표이사, 마침내 주인을 찾았다! 체조 여신의 남편이자 스타 개발자 유태연!]
처음 기사가 나간 날은 하루 종일 인터넷이 떠들썩했다.
무려 재계 서열 15위 대기업의 대표이사가 정해진 순간이었다.
심지어 그 대표가 최근 게임 업계에 엄청난 존재감을 드려내고 있는 스타 개발자였다.
메이저 언론사와 진행한 인터뷰를 시작으로, 유태연은 거대 기업의 대표이사로서의 포부를 드러냈다.
[넥플 신임 대표이사 유태연. 넥플을 아시아의 디즈니로 만들 것.]
[넥플, 새 리더와 함께 세계적인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의 성장을 꿈꾼다!]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
이 말은 게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 개발을 통해 사업 영역을 최대한 확장시키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면서 현재 태연이 직접 관여하고 리드 중인 프로젝트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AAA급 게임 판테온과 판데모니움 개발 중!]
[문 라이트 스토리, 배틀 시티. 엘크로스 등 서비스 중인 게임 전면 보수 및 업그레이드 작업 리드 중!]
[멀티 콘텐츠 플랫폼 밀키웨이 론칭 준비!]
[과천 디즈니랜드 콘텐츠 개발 착수!]
[600만 장의 판매고를 달성한 VR RPG. Disney Fantastic World! 영화화 협업 준비 중!]
또한 넥플 사내 소식을 재미있고 빠르게 전달해 주는 ‘넥플 미디어’ 콘텐츠를 런칭. 첫 타이틀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인터뷰 영상을 공개했다.
또한.
[넥플의 새 대표 유태연. 국민 MC 박성현의 ‘뉴 스트리트 퀴즈’에 출연한다!]
지상파 TV 출연 예정 사실을 공개했다.
사실상 넥플 사내 방송 성향이 짙은 ‘넥플 미디어’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으니, 많은 이들이 보는 지상파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회사의 새로운 비전을 공유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뭐가 이렇게 정신없이 돌아가냐?;;
-유태연 PD가 넥플 전체 대표이사가 됐다는 것도 놀라운데…… 이미 그렇게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니…… 사람이 아닌 듯;;;
└남들은 프로젝트 하나 감당하는 것도 버거워하는데 대체 일을 얼마나 하고 있는 건지…….’
그런데 내부 관계자들을 통해 업계에 새로운 사실이 공개됐다.
-놀라운 사실 알려줄까? 판테온이랑 판데모니움. 출발 지점은 각자 다르지만 알고 보면 크로스 플랫폼 게임임.
└이게 무슨 말이야? 출발을 다르지만 크로스 플랫폼이라니……?
└쉽게, 세계관이 같다는 거임. 판테온은 만신전, 판데모니움은 만마전이고 두 세력이 서로 대척하는 관계잖아. 그걸 점차적으로 보여주겠다는 거겠지.
└아…….
└와, 이런 식으로도 게임을 기획할 수 있구나……;;
-더 놀라운 사실 알려줄까?
-판데모니움. 이미 내부 몇몇 스튜디오 한정으로 비공개 테스트 진행 중임.
-블레스 스튜디오 시절 어느 정도 만들고 나온 걸 유태연 피디가 그동안 몰래 혼자서 다듬고 있었다더라.
-완성도가 굉장함. 아기자기한 게 내 취향.
-내가 그분 밑에서 일하면서 수십 번도 넘게 느낀 게 하나 있음.
-유태연 피디님은 보통 사람의 범주에서 벗어난 분이심;;
-심지어 문 라이트 스토리, 배틀 시티 최고 책임자들 목을 쳐버리고 혼자서 보안 이슈 처리 중이심.
-보안 전문가 모아서 보안 전담팀 설립한다더라.
내부 정보 유출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추가적으로 밝혔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회사 비전과 관련해 내부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래도 한 가지는 공감하더라.
-아시아의 디즈니. 유태연 피디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넥플은 이미 환골탈태 중이다.
-총알 있는 사람 지금이라도 빨리 넥플 주식 최대한 확보해 놔라. 그게 돈 버는 길이다.
충격적인 정보가 마구 쏟아지니 업계 관계자들조차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를 주목하던 언론은 각자의 정보망을 이용해 하나씩 진위를 파악해보고 기사를 써서 올리기 시작했다.
넥플의 주가가 서서히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 * *
“하하하!”
모처럼 회의실에 유진성 회장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한 함께 자리한 임원들의 표정도 환했다.
최근 감행한 몇 가지 결단들이 긍정적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회사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제일 기분이 좋은 건 혼자서만 품어왔던 망상을 마침내 회사 비전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됐다는 거야. 비로소 그걸 현실화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는 거지!”
태연을 바라보는 시선에 애정이 가득했다.
반면 태연은 이 모든 상황들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다들 너무 크게 들떠 있는 것 같은데…….’
대표이사 취임 후 인터뷰 몇 번, 방송 촬영 두 번 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넥플이 벌써부터 아시아의 디즈니. 세계적인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아져서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내도 정당한 평가를 받기 어려워진다.
무엇보다도…….
‘무거워.’
어깨의 짐이 점점 무거워진다.
각오했던 것 이상으로.
* * *
‘우선 다른 일은 크게 손을 대지 말자. 개발에 집중해야 해.’
가장 시급한 일은 엘크로스 리뉴얼.
이것을 시장 상황에 맞는 퀄리티로 재가공해서 다시 서비스를 하는 일이 중요했다.
‘문 라이트 스토리는 크게 손댈 게 없어. 그저 엉뚱한 길로 엇나가지 않도록 잘 감시하고 쳐낼 때 쳐내면 돼.’
전임 디렉터들이 크고 작은 사고는 많이 쳐도 게임 방향성만큼은 확실히 유지를 해온 덕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체리피커 사건을 계기로 잘려나간 정종철 피디도 나름 유능한 개발자였다.
‘배틀 시티 보안 이슈와 새 콘텐츠 개발이 시급하지.’
배틀 시티.
제목 그대로 다양한 컨셉의 도시에서 다수의 유저가 밀리터리 서바이벌을 벌이는 게임이다.
초창기에는 국제 대회까지 개최할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핵 이슈를 수습하지 못해 빠른 속도로 유저가 감소했고, 더 개량된, 혹은 차별화된 배틀 로얄 컨셉의 게임들이 흥행하며 점유율이 낮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넥플 3대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은 게임이었다.
‘보안 이슈야 사실상 노가다에 가까운 지속적인 방어 대책 수립이 필요한 일이라지만…….’
변화, 혹은 발전이 없어서 지겨워지고, 그로 인해 유저가 떠나 버리는 문제는 꽤나 난감한 이슈였다.
“…….”
잠시 고민하던 태연은 배틀 시티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어? 유태연 피디님이다.”
“언제까지 피디님이야? 이제 대표님이시잖아!”
“아, 맞다.”
태연의 등장에 배틀 시티 스튜디오가 술렁였다.
그들에게도 태연은 어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최원목 피디 어디 있죠?”
“여, 여기 있습니다!”
벌떡 일어서는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
그가 바로 새로운 배틀 시티 총괄 디렉터로, 본래 시스템 파트장이었던 남자였다.
본래 프로그래머였던 사람으로, 기획과 코딩이 모두 가능해서 스튜디오 내에서 온갖 일을 도맡고 있던 숨은 인재였다.
그랬던 그를 태연이 상태창 능력으로 발굴, 피디 자리에 앉힌 것이다.
최원목 피디가 냉큼 달려와 긴장한 표정으로 금테 안경을 고쳐 쓴다.
“PC랑 인터넷 설치된 회의실 있나요?”
“네? 네!”
“어디죠?”
“모든 회의실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태연은 가장 큰 회의실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장급 회의 좀 합시다.”
* * *
“현재 배틀 시티의 최우선 과제는 세 가지죠. 최적화, 보안, 그리고 콘텐츠.”
태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이 세 가지보다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입문 장벽이 지나치게 높다는 겁니다. 굉장히 불친절하죠.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걸 지금까지 개발사에서 외면해 왔다는 겁니다.”
숨 쉬는 소리, 필기 소리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진다.
“튜토리얼과 싱글 플레이를 만듭시다. 그래서 유저가 충분히 룰과 게임 분위기를 숙지하고, 재미를 붙일 시간을 줍시다.”
태연이 최원목 피디를 보며 말했다.
“가능하겠죠?”
“네! 피디님께서 프로젝트 D 때 하셨던 것처럼 기존 리소스를 최대한 재활용하고, 실력 있는 개발직군을 추가 모집하면 1년 안에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바로 태연이 원하던 답변이었다.
“보안 이슈는 제가 계속 작업해서 확인 중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고…….”
쉴 새 없이 작업 지시를 내리는 태연을, 개발자들은 조금은 질린 기색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최적화…….”
사락.
태연은 자신 앞에 놓은 서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제가 없어도 되는 오브젝트, 화질을 낮춰도 될 만한 텍스쳐…… 여러 가지 내용을 항목별로 분류해서 정리했습니다.”
문서를 최원목 피디에게 넘겼다.
그것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던 최원목 피디가 놀란 얼굴로 바라본다.
“너무 맹신하지는 마시고, 체크해 보고 합당하다 싶은 항목에 대해서만 조절하시죠. 그리고, 스튜디오에 리스트 공유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며 관리하도록 합시다.”
태연이 모두를 보고 말했다.
“모두 아시겠지만, 최적화란 공들여 탑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을 쏟아야 하죠.”
모두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앞으로 모든 개발은 최적화를 미리 염두에 두고 작업하도록 합시다. 무턱대고 폴리곤 때려박지 말고 오브젝트 이것저것 생각 없이 고품질로 막 만들지 말고……. 미리 고민을 해둬야 나중에 그나마 일이 좀 줄어들 테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잠시 시간을 확인한 태연이 말했다.
“전성기 시절을 회복할 수는 없겠지만, 진입 장벽을 낮추고 게임의 안정성을 높이며 콘텐츠를 강화하면 신규 유저 유입이 수월해집니다. 우선은 그것을 목표로 1년 동안 열심히 개발해 봅시다.”
“네!”
거기서 회의가 끝난 줄 알았다.
“마지막으로 게임 하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큰 화면에 펼쳐지기 시작한 풍경에 개발자들은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 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