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78화 (78/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78화

54. 성장의 시작(1)

아틀란시아의 새로운 시나리오. ‘차원침공’ 업데이트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위상변화를 비롯해 다양한 시스템과 콘텐츠의 도입으로 플레이가 재미있어졌고 특히 메인 퀘스트에 몰입도가 생겼다.

태연의 뒤를 이어 아틀란시아 전기를 총괄하는 박명훈 디렉터는 유저들 사이에서 ‘빛’ 또는 ‘갓’이라는 호칭으로 추앙받았다.

매출도 오르고 동접자도 증가하고.

모든 것이 순탄했던 어느 날.

“응? 이게 뭐야?”

이해할 수 없는 공문이 날아왔다.

“협조 요청이라고요?”

“네. 현재 경찰의 추적망을 피해 도주 중인 연쇄살인범이 아틀란시아 골수 유저라고 합니다.”

“접속 위치를 파악해서 알려달라는 거군요?”

“바로 그겁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확인해 보도록 하죠.”

대구에서 교복 입은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이 2년 전부터 수사망을 펴고 용의자를 쫓고 있었는데 최근, 이 게임의 마니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걸 어떻게 알게 된 건가요?”

“용의자가 온라인 게임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가족으로부터 입수하고, 주민번호, 포털 사이트나 카페에서 사용하는 아이디, 닉네임 등을 리스트화하며 모든 게임 사이트를 감시 중이었습니다.”

경찰의 열정에 태연과 아틀란시아 팀장급 인력들이 모두 혀를 내둘렀다.

태연이 물었다.

“용의자의 접속 아이디가 뭐죠?”

“그게 뭐냐면…….”

접속 기록을 확인했다.

닉네임은 [귀천마제]

“본부장님. 그 용의자 지금도 접속해 있는데요?”

“접속 위치 조회 좀 해보시죠.”

괜찮겠냐는 얼굴.

태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잘되건 안 되건 제가 책임집니다.”

그 말에 경찰들을 포함한 모두가 태연을 바라본다.

잠시 후.

“위치 확인했습니다.”

“어디…… 아!”

접속 위치는 강릉 외곽 지역의 PC방.

“지금 즉시 관할지 경찰들에게 수사 협조를 부탁하겠습니다.”

* * *

[대구 여학생 연쇄살인범. 강릉 PC방에서 긴급 체포!]

[경찰과 게임사의 공동 작전으로 연쇄살인범…….]

연쇄살인범 용의자가 체포됐다.

취조 결과 살인범이 맞다는 것이 밝혀졌다.

넥플에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고객의 개인 정보를 유출시켜 수사에 협력했는데 알고 보니 애먼 사람을 잡는 꼴이었다면 얼마나 일이 복잡해졌겠나?

경찰 측에서는 넥플을 배려해 수사 공조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은 아무 의미 없던 배려.

-강릉 PC방에서 잡혔다는 연쇄살인마. 내 친구가 그러는데 아틀란시아 하고 있었다더라.

└카더라 통신까지 갈 필요도 없음. 이번에 잡힌 놈. 김정식이 유출된 정보로 구글링 조금 해보니 금방 답 나오더라. 이 새끼 아틀란시아 유저 맞음. 최근에도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 많이 올렸던데…….

└방금 보고 왔는데 진짜네. 그런데 글만 보면 그냥 착하고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데……?

유저들이 알아냈다.

-기특하네 아틀란시아 전기. 작년부터 디렉터 바뀌고 환골탈태하더니 좋은 일도 하네.

└망설이지 않고 굉장히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해 줬다던데……

칭찬도 있었지만…….

-이거 개인 정보 유출 아님?

-아무리 좋은 일이라지만…… 이래도 되는 건가?

비난도 쏟아졌다.

즉각 논쟁이 발생했다.

뭐가 문제냐?

게임사에서 개인 정보 유출했는데 이게 아무 문제 아니라고?

그럼 경찰에서 범죄자 잡아야 한다며 수사협조 요청하는데 개무시하라고?

아무리 그래도 고객 개인 정보는 사수했어야지!

논쟁이 커질 기미를 보이자 태연이 직접 나서서 수습했다.

[이번 수사 공조는 철저히 내 판단과 지시로 이루어진 일이다. 굳이 책임을 물자면 나에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라이브 본부를 담당하는 동안은 범죄와 관련한 경찰 측의 수사 협조 요청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협조할 것이다. 단, 그 외적인 일에 대해서는 철저히 유저의 개인 정보를 보호할 것이다.

넥플 공식 계정에 공개된 이 영상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경찰 공식 계정이 해당 영상을 링크했고 지상파 저녁 뉴스에 소개되었다. 유명 인사들이 본인의 SNS 계정에 영상을 링크하거나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보던 유진성 회장이 한마디 했다.

“이 자식. 아닌 척 해도 쇼맨십을 갖추고 있단 말이지.”

* * *

사업팀장이 달려와 극찬을 쏟아냈다.

“정말 엄청난 일을 해내셨습니다. 본부장님 덕분에 넥플이 범죄와 타협하지 않는 회사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입혀졌어요! 특히 아틀란시아의 경우 엄청난 광고 효과를 얻었습니다!”

“딱히 그런 걸 계산한 건 아니었는데…….”

“역시 가장 큰 이득이라면 피디님이 바로 우리 회사의 간판 개발자이고 라이브 총책임자라는 것이겠죠! 피디님이 계시는 한, 우리 회사 게임은 점진적으로 좋아질 거라는 유저들의 신뢰도도 생겨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온몸이 간지러워서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허튼소리 좀 그만하고 일해야 하니 비켜주시죠. 팀장님도 바쁘실 텐데요?”

“쑥쓰러워하시기는…… 후후.”

때릴까?

“그러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본부장님 파이팅!”

눈치 빠른 사업팀장은 시기적절하게 물러섰다.

‘광고 효과라…….’

회사를 이끄는 경영자 입장이 되었기 때문일까?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을 이용해 이득을 챙길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이.

‘게임과 콘텐츠를 잘 만들어서 돈 벌 생각을 해야지. 무슨…….’

시간을 확인한 태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후, 태연이 주관하는 라이브 본부 주간 업무 보고 회의가 열릴 참이었다.

* * *

라이브 본부의 피디급들이 참석하는 회의는 일주일에 한 번, 넥플 본사 대 회의실에서 열린다.

그동안 형식상일 뿐이고, 그나마도 바쁘다는 이유 이메일 보고로 끝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존 라이브 본부장이기도 했던 손영상 이사는 그런 부분에 대해 너그러운 편이었다.

하지만 태연이 부임한 직후 회의의 성격부터가 달라졌다.

라이브 본부의 가장 중요한 행사가 되었고, 많은 것이 논의되고 결정되는 자리가 되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를 말하자면 바로 다음과 같은 상황일 것이다.

“최근 컬러 피플 게임즈에서 서비스하는 MMORPG 판타지아 온라인에서 확률 조작 관련 이슈 있었는데,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는 분 계십니까?”

그러자 대부분 PD들은 알고 있다. 혹은 숙지하고 있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피디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원 두 명은 눈치를 보기 바빴다.

그것도 모르고 뭐하고 있었냐는 시선이 쏟아지자 두 신임 피디는 급격히 위축됐다.

태연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최소한 업계에서 벌어지는 큰 이슈는 즉각 파악한 뒤 우리 스튜디오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는지 확인 후 보고를 올리도록 합니다. 알겠습니까?”

“네, 네!”

“명심하겠습니다!”

군대 신입 병사마냥 긴장해서 대답하는 두 피디.

“제가 오늘 확실히 말씀드렸으니 다음 주 업무 보고 직전까지 제 이메일로 보고하도록 합니다. 라이브 본부 프로듀서라면 꼭 지켜야 할 기본 업무 중 하나입니다.”

업계 이슈 공유 및 점검.

기존에는 자신들의 게임만 신경 쓰면 되었다. 하지만 태연은 라이브 본부장이 되자마자 모든 피디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운영 이슈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이외에도 태연은 넥플 라이브 본부 내부의 크고 작은 운영 이슈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어떤 부분에서는 담당 피디들보다도 더 상세히 알고 있을 때도 많았다.

그럴 때는 여지없이 호통이 날아온다.

“지금 이 이슈 때문에 커뮤니티에서 어떤 말이 나오고 있는데 담당 피디가 아직까지 모르고 있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죄, 죄송합니다!”

회의 분위기가 가장 싸늘해지는 순간이다.

“파악해서 대처 상황, 유저 반응 모두 확인하고 직통 전화로 보고 올리도록 하세요. 알겠습니까?”

“네!”

“사실 타 게임 이슈는 모를 수도 있고, 그거 가지고 크게 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공유하고 예방하자는 취지니까.”

“…….”

“하지만 본인이 담당하는 게임에서의 이슈는 사소한 거라도 모두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북풍한설보다 더 무섭게 휘몰아치는 분노 앞에서는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왜냐면…….

“그리고 문 라이트 스토리, 배틀 시티…….”

‘진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기 때문에.

“운영 실책 문제가 계속 불거지는군요. 다른 게임들도 그렇지만 특히 이 두 게임…….”

“…….”

“…….”

태연의 얼굴과 음성에 눈보라가 본격적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하자 두 프로듀서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손영상 이사 체제까지만 해도 넥플 간판 게임 PD로서 어깨에 힘깨나 주고 다녔던 그들이었다. 솔직히 타 스튜디오를 은연중 얕잡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입장이 완전히 달라졌다.

인기만큼이나 사건 사고가 많은 두 스튜디오 PD들을 태연이 수시로 쥐 잡듯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문 라이트 스토리 정종철 피디님.”

“네, 네!”

“이번에 저렙 구간 유저들을 위한 ‘특별 점핑 보상’이라는 콘텐츠 업데이트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그 특정 NPC가 요구하는 간단한 퀘스트를 수행하면 일일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하셨던데…….”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한 달 동안 열심히 퀘스트를 수행해서 특별 점핑 보상을 모두 받은 사람들은 '열정적인 체리피커'라는 업적을 받을 수 있도록 해놓으셨더군요.”

“……!”

해당 피디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다른 피디들은 경악했다. 일부,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 상황 파악을 못 하는 피디들도 있었다.

이들을 위해 태연이 간단히 설명해줬다.

“케이크 위의 체리만 쏙 빼먹는 얌체 같은 사람들을 체리피커라고 합니다.”

그리고 차가운 눈으로 정종철 피디를 바라본다.

“이번 일의 경우, 부분 유료화를 적용한 게임에서 캐시 아이템을 사지 않고 무료로 게임하는 유저들을 멸시하는 칭호로 쓰였군요.”

그제야 모든 정황을 파악한 피디들이 헛숨을 들이킨다. 그들은 눈으로 정종철 피디를 욕하고 있었다.

당신 지금 미쳤냐고.

태연은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정종철 피디.”

“네.”

“미쳤어요?”

“……”

“알면서 묵인했죠?”

“그, 그건 아니…….”

“아니라면, 컨펌을 엉망으로 했다는 뜻이군요. 맞습니까?”

“…….”

“작업한 사람이 누굽니까? 시나리오 기획자입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여기서 태연의 눈매가 다시 한번 날카로워졌다.

그는 황급히 대답을 정정했다.

“업적 작업은 시나리오 파트장이 직접 합니다!”

“파트장, 팀장. 모두 데려오세요.”

“……네?”

“지금 데려오란 말입니다. 이 자리로.”

“아, 알겠습니다. 그, 그러면 잠시만…….”

그가 연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덩치 큰 남자 기획자, 두 명이 등장했다.

“시, 시나리오 파트장 김종명입니다.”

“기획팀장 하성운입니다.”

“제가 왜 불렀는지 짐작하죠?”

대답 없이 고개를 떨구는 두 사람.

“재작년쯤에도 한 번 비슷한 논란이 있었는데…… 그때도 시나리오 파트장, 당신이 담당이었죠?”

“……!”

무의식적으로 놀란 표정을 짓는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워낙 어이없는 사건이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뭐, 중요한 건 이게 아니죠.”

태연은 회의실의 모든 이들을 향해 말했다.

“어떤 경우에도 유저를 조롱하고, 비하하고, 욕하는 건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다들 아시겠습니까?”

“네!”

“세 분은 사과문 작성을 마지막 업무로 퇴사하도록 하시죠.”

“……!”

“그동안 수고했습니다. 나가 보세요.”

현장에 있던 모두가 헛숨을 들이켰다.

특히 관계자 세 사람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태연은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용무는 끝이니 빨리 나가라는 뜻이었다.

“저, 저기…… 본부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세 사람이 미친 듯 매달렸다. 그러나 태연은 흔들리지 않았다.

“본부장님! 본부장님!!”

결국 그들은 주위 피디들에 의해 바깥에 끌려 나갔다.

“…….”

회의실 분위기는 마치 얼어붙은 듯했다.

태연은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다음, 배틀 시틀 시티 서종혁 피디.”

“네, 네!”

바짝 군기가 잡힌 모습으로 대답하는 40대 남성.

눈앞에서 대형 참사를 목격한 그의 얼굴은 이미 핼쑥하게 질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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