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75화
51. 후속작에 대한 고민
프로젝트 D 개발자 채팅창에 수시로 게임에 대한 반응이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태연으로서는 굳이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유명 해외 게임 뮤튜버 ‘스마일건’의 평가. 영화와 게임의 장점을 절묘하게 합쳐놓은 훌륭한 가정용 게임!]
[일본 유명 게임 사이트 아오이 재팬 리뷰 타이틀. 디즈니보다 더 디즈니스러운 게임의 등장!]
본인들이 좋다고 올리는데 그만하라고 할 수도 없다.
어찌 보면 이 역시 힘든 게임 개발에 대한 대가라고 할 수 있으니까.
돈도 돈이지만…… 게임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의 게임을 부디 재미있게 즐겨줬으면 하는 바람이 아닌가?
더욱이 태연이 모은 이들이 역량만큼이나, 게임에 대한 순수성과 열정도 큰 이들이다.
‘이런 반응은 당연한 거지.’
어쨌든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은 좋지만, 그와는 별개로 답답할 뿐이었다.
디즈니와 넥플이 각각 타임스 스퀘어 광장과 강남, 도쿄 신주쿠 전광판 광고를 시작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저게 대체 돈이 다 얼마야?’
디즈니와 넥플이 본격적으로 폭주를 시작했다.
시연, 그리고 정식 출시 반응이 상당히…… 아니,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걸 확인했기 때문에.
하지만 태연 입장에서는 시기상조라고 말하고 싶었다.
‘진짜 반응을 보려면 일주일 정도는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가 되어야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즐겨본 이들이 각자의 커뮤니티, SNS 등으로 정식 후기를 올릴 터였다.
통상적으로는 그랬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건지…….’
* * *
해외 반응과 별개로, 프로젝트 D 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원래는 판데모니움 개발팀으로 편입하려고 했지만…….’
판테온과 대척점에 있는 세계관의 게임.
원래 강건 대표의 블레스 스튜디오에서 개발을 준비하던 게임이었다.
강건 대표는 너무 무난해서 넥플 퍼블리싱 테스트를 통과하기도 힘들 거라며 비난했었다.
정작 넥플은 게임을 보고 태연을 스카우트해서 엄청난 지원을 퍼부어주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태연은 모처럼 판데모니움을 실행시켜 게임을 플레이했다.
당시에는 최대한 빨리 승부를 봐야 한다는 생각에 개발 폼이 작은 캐주얼 스타일로 만들었다.
심지어 넥플에서 테스트도 했었고.
개발 진척도가 상당했지만 아쉽게도 그때의 리소스는 사용할 수 없다.
저작권이 블레스 스튜디오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소자본으로 급히 진행한 탓에 아쉬움이 많았던 버전을 그대로 이어갈 생각은 없다.
‘판테온이 저렇게 화려하고 멋지게 잘 나오고 있는데, 이것도 AAA급 규모로 가는 게 맞지.’
판테온을 진행하면서 확신이 생겼다.
지금 개발팀과 함께라면 내가 상상했던 모든 것을 구현할 수 있다고.
“오, 이게 그 판데모니움이에요?”
“우와, 귀엽다! 이게 전 회사에서 만들다 말았던 그 게임이죠? 판테온과 대척점에 있다는……?”
홍민석, 이영애 부부를 시작으로 개발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와, 이게 판데모니움이구나! 나 이거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오, 캐주얼 MMORPG네? 귀엽고 예쁘다! 이거 잘만하면 성공할 것 같은데?”
“넥플 퍼블리싱 본부 주관 테스트도 했었다는데…… 평가가 굉장히 좋았다고 들었어.”
웅성웅성.
개발자들이 보이는 큰 관심에 태연이 내심 당황했다.
한 개발자가 물었다.
“피디님. 우리도 그거 해보면 안 돼요? 귀엽고 재미있어 보여서 끌리는데…….”
고민하던 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잠시 시간 내서 다 함께 테스트를 해볼까요?”
판데모니움 테스트가 진행됐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캐릭터가 뿜어내는 화려한 스킬 이펙트!
“와, 재미있다!”
“이거 진짜 잘 만들었는데?”
다른 스튜디오에 놀러 왔던 개발자들이 게임을 보고 자신들도 접속할 수 있게 해달라며 떼를 쓴다.
‘뭐, 못 할 건 없지?’
대신 한 가지는 당부해야 했다.
“이거 절대 유출되면 안 돼요. 일단 음악과 그래픽 리소스가 블레스 법인에 귀속된 거라서…….”
“아, 그 강건 대표…… 알겠습니다. 우리가 철저히 관리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시작된 판데모니움 테스트!
넥플 엔터테인먼트 개발자들을 포함, 라이브 본부 상당수 인원이 동참한 통에 규모가 무척 커졌다.
이미 오픈베타 테스트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분량과 완성도를 자랑하던 게임이었다.
개발자들은 본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퀄리티에 놀라는 한편, 게임에 흠뻑 빠져들었다.
태연을 일식집으로 불러낸 유진성 회장이 타박했다.
“야 인마! 너 이럴 수가 있냐?”
“……?”
“뭘 모르는 척이야! 판데모니움 테스트 서버 열었다며? 네놈 회사와 라이브 본부 사람들만 즐길 수 있도록.”
“……아니, 그 사람들만 즐기라고 한 게 아니라.”
“시끄러워! 어쨌든 지금 게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다 네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뿐이잖아! 그것 때문에 다른 곳에서 말이 나오고 있어요! 본부장이 사람 차별한다고!”
“그런 소리가 회장님 귀에까지 들어갑니까?”
“네가 내 정보망을 우습게 보는구나. 아무튼…….”
유진성 회장의 표정이 변한다.
“우리 회사 입사 이후 한동안 묵혀 두었던 그 게임, 다시 활성화시킨 이유가 뭐야?”
“뭐, 프로젝트 D팀 때문이죠. 슬슬 다른 프로젝트를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판데모니움 맡기려고?”
“원래 그럴까 했는데 다른 곳에서 워낙 좋은 제안이 와서 고민 중입니다.”
“이를테면?”
“디즈니에서 자사 IP 중 원하는 거 얼마든지 제공해 줄 수 있으니 AAA급 게임 한 번 만들어 보지 않겠느냐고 그러더라고요.”
“아, 그 이야기…… 너 오케이하려고? 아직 계약서 사인은 안 했잖아.”
“그렇긴 한데 최근 들어 다시 제안을 빙자한 요청이 들어오고 있는데 이게 나쁜 내용이 아니라 고민 중입니다. 프로젝트 D 팀은 그런 원작 콘텐츠 게임화 쪽에 특화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흠, 그것도 그러네.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좀 고민이 된다. 어쨌든 프로젝트 D로 모집한 사람들이고, 그쪽으로 호흡이 다 맞춰져 있는데 이제 와서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게임 제작을 맡기는 것도 고민이 될 것 같아.”
“바로 그겁니다. 제가 고민하는 포인트가요.”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던 유진성 회장이 물었다.
“그런 거 말고, 다른 거 원작으로 게임 한 번 만들어 볼 생각은 없냐?”
“……?”
유진성 회장의 표정이 의미심장해졌다.
“내가 대단한 사람 한 명을 알고 있거든. 누구냐면…….”
* * *
[국내 주간 인기. 판매 순위 1위!]
[북미 주간 인기. 판매 순위 1위!]
[국산 콘솔 게임의 고무적인 성적에 유저들도 주목!]
[국산 게임의 전성시대가 시작되나?]
[게임 전문가 10인이 분석하는 인기 요인!]
사방에서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
매체 정확한 수량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백만 장은 거뜬히 넘겼을 거라고 대부분 예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얼마라고요?”
“초동이 200만 장입니다!”
“…….”
“그것도 스팀에서만 이 정도에요!”
사업팀장이 전해 준 소식에 태연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또 뭐가 있는 거죠?”
“2주차 접어든 현시점 판매량 추이가 초동 때를 능가하고 있거든요. 이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아세요?”
“……글쎄요?”
“입소문이요! 입소문이 퍼지고 있는 거예요! 이 게임이 전 연령이 편하게 즐길 수 있고 VR을 기기를 사용하면 훨씬 놀라운 체험도 가능하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라고요!”
사업팀장은 굉장히 격양되어 있었다.
“전 세대가 감동받을 수 있는 디즈니 스타일 시나리오 연출의 완벽한 구현! 거기에 게임을 하면서 뮤지컬을 감상할 수도 있죠. 그것도 게임만의 새로운 해석이 곁들여진 버전으로요! 이것도 좋은 평가를 받는 요인이에요. 뮤지컬 게임이라니, 신박하잖아요!”
쉴 틈 없이 말을 쏟아내던 그가 씩 웃었다.
“대박이라고요. 그것도 초대박!”
* * *
-게임을 소재로 3D 애니메이션 영화와 실사화 영화를 제작하려고 합니다. 아,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도 포함해서요!
디즈니 본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우리 게임의 판매량이 어느 지점까지 치솟을지 모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중입니다. 지금으로써도 충분히 대성공이지만, 제가 보기에 그 이상의 성적도 가능할 것 같거든요. 하하하!
태연은 생각을 포기하기로 했다.
‘개발은 다 끝났고 딱히 수정할 사항도 없는 듯하니…….’
더 이상 신경 쓰면 머리가 이상해져 버릴 것만 같았다.
‘회장님의 제안을 고민해 보자.’
디즈니와의 후속 연계 제안도 좋지만, 유진성 회장의 제안을 무시할 수가 없다.
얼마 전 구매한 두터운 양장본을 펴서 읽어본다.
[달의 나라라고, 들어봤냐?]
물론 들어는 봤다.
워낙 유명하고 팬덤도 많으니까.
2000년대 중반에 발매된 장르 소설.
가상의 왕국 ‘월국月國’이 배경으로, ‘도깨비’를 비롯한 ‘어둑시니’ ‘성성’ 등, 흔히 ‘요괴’라 알려진 이들의 왕국이다.
인간들은 알지 못하는 깊은 지하 세계에 있고, 그곳의 하늘에는 오로지 달만 뜨며, ‘구미호’가 통치하고 용이 수호한다.
독창적 세계관과 치밀한 구성. 빼어난 문체, 매력 있는 캐릭터 등등.
최고의 한국형 판타지라 평가받으며, 여섯 권 완결 총합 백만 부가 판매됐다.
작가는 김국환.
동양 철학을 전공했고 등단 후 수준 높은 시, 문학을 선보여 온 거장이다.
‘확실히 수준이 높군.’
성공한 작품이니만큼 미디어믹스 제작도 활발했었다.
코믹북, 게임, 오디오북 등등.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특히 게임은 PC와 모바일을 합쳐 총 다섯 작품이 출시되었는데 혹평 속에 망해 버렸다.
어느 것 하나 좋은 평가를 받은 게 없는데, 놀랍게도 게임 자체는 무난했다.
팬덤이 악평을 퍼부었는데 이유는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태연은 팬과 개발사, 양쪽의 입장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가 묘사에 충실한 타입이 아니라서…… 이미지화 작업이 꽤나 어려워.’
차라리 일반 판타지 소설 같았으면 작업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물과 캐릭터, 심지어 대사 하나에조차 여러 의미가 담겨 있고 곱씹을수록 다양한 맛이 우러나도록 구성됐다.
장르 소설 형태를 빌린 문학 작품이라는 뜻.
이런 걸 어떻게 게임으로 만들라는 건가?
-너라면 제대로 된 게임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
유진성 회장이 이 작품의 열렬한 팬으로, 글을 읽고 크게 감명받은 나머지 직접 작가를 찾아가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말만 하면 언제든 IP를 따올 수 있다고.
-네가 좀 제대로 게임으로 만들어봐라. 이거 성공하면 진짜 대박이다. 안 그러냐?
프로젝트 D 차기작으로 진지하게 고민해 달라며…… 회장이 간절히 부탁할 정도의 작품이었다.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태연은 결론을 내렸다.
‘하지 말자.’
이유는 간단했다.
‘훌륭한 작품이라는 건 알겠는데 딱히 재미있는 건 모르겠어. 내 취향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