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74화 (74/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74화

50. 크게 긴장하다

-아무래도 아쉬워서…… 돈도 우리가 대고 성우 녹음 작업도 알아서 해줄 테니 풀 보이스 지원합시다!

출시 전, 디즈니 측에 풀 패키지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걸려온 전화였다.

-다들 만장일치로 찬성한 안건이에요. 유 피디, 당신만 승낙하면 됩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 * *

“……그렇게 된 겁니다.”

“아하.”

태연의 설명을 듣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 양반들, 우리 게임이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네.”

“그러게.”

“뭐, 자기들이 알아서 다 해주겠다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그때 누군가 던진 말이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디즈니가 이렇게까지 나설 정도면…… 우리 게임의 흥행에 큰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뜻 아닌가요?”

“……?”

“어, 어쩌면 우리 게임도 10억 불을 돌파한 디즈니 흥행작들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일지도……?”

잠깐이지만.

태연조차도 그 말에 가슴이 설레고 말았다.

* * *

북미 SNS 전체 트렌드 1위.

그리고 팝업 스토어 이벤트!

-뭔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북미 팝업 스토어?

한국 커뮤니티는 당혹감에 빠졌다.

갑자기 전해진 북미 트렌드 이슈!

그런데 그 주인공이 한국의 게임이라지 않는가?

-협업이라는데?

-리소스 제공받은 것 때문에 그런 거지, 실제 게임은 넥플에서 다 만든 거임.

-저거 그 게임 아니냐? E3에서 신데렐라 코스츔을 입은 미녀 개발자가 소개했던……?

자세한 정보가 전해질수록 당혹감은 더 커졌다.

원작 캐릭터 풀 보이스에 미국 대도시에서의 동시다발적인 대규모 마케팅이라니……?

-그래서 저게 대체 무슨 게임인데?

-플레이 영상 없음?

E3에서 공개됐던 영상이 다시 퍼져 나갔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북미 SNS 유저들, 대형 게임 관련 커뮤니티와 유명 평론가들이 긍정적 평가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 명확한 이유가 궁금한 것이다.

-야, 우리나라 게임인데 왜 우리가 이런 식으로 뒤늦게 소식을 접해야 하는 거냐?

-넥플 개념 없네. 그리고 저런 마케팅을 왜 북미에서만 하는 거임? 한국 유저 무시하냐?

결국 한국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지자 넥플이 신속하게 입장을 발표했다.

이번 마케팅은 철저히 디즈니 주도하에 벌어지는 이벤트라는 사실을.

-그러면 니들도 해! 손가락 빨며 지켜보고만 있지 말고!

-그걸 누가 몰라서 이러는 줄 알아? 우리도 좀 하자고 그러는 거 아냐!

-넥플 그 정도 능력도 없음? 저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

-이건 행사 내용이 문제가 아님. 쟤네는 하는데 우리는 안 하는 게 자존심이 좀 상한다. 협업이라고 해도 사실 넥플, 우리나라 개발자들이 다 만든 게임이잖아.

넥플 긴급 수뇌부 회의가 열렸다.

유진성 회장은 자존심이 상한 얼굴로 말했다.

“야, 들었어? 디즈니는 하는데 넥플은 뭐하냐고, 그 정도 능력도 안 되냐고 비꼬잖아!”

“…….”

“우리도 해! 내가 자존심이 상해서 정말……!”

현금 보유력으로는 국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유진성 회장의 일갈이었다.

“우리는 더 크고 화려하게 해!”

* * *

대한민국 콘솔 게임 사상 전례 없는 마케팅이었다.

국내 캐릭터 성우들이 총출동했고, 삼성 코엑스를 시작으로 판교 넥플 사옥, 대전, 대구, 부산까지.

여러 개의 도시에서 일제히 팝업 스토어가 열렸다.

게임을 다양하게 플레이해 볼 수 있고 디즈니에서 특별히 만들어 한정 판매한 굿즈도 구매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많은 인파가 북적였는데 개중에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도 굉장히 많았다.

방문객들은 VR기기를 착용한 채 정신없이 게임에 몰입했다.

“결국 이런 식으로 일이 커지는군.”

“뭐…… 어쩌겠어요? 돈 대준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싶다는데.”

삼성 코엑스 시연회장을 방문한 태연과 홍민석 AD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이 게임이 이렇게까지 판을 벌일 게임은 아니었는데…….”

“그러게요. 이렇게 되면 타이틀을 백만 장 이하로 팔아서 수지가 안 나올 것 같은데요.”

“수지 이전에 체면 문제죠. 넥플과 디즈니라면 한국과 미국 최고의 콘텐츠 기업 아닙니까? 그런 곳에서 이렇게 대대적으로 마케팅을 한 게임이 만족스러운 판매량을 올리지 못한다면…….”

“음……!”

프로젝트 D 직원들이 팝업 스토어에 파견되어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교육을 받은 현장 직원들이 있었지만 만에 하나 이슈가 발생하면 즉각 조치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 * *

국내 게임 커뮤니티와 뮤튜브가 활기를 띠었다.

-화제의 Disney Fantastic World 플레이 후기!

-그냥 해도 재미있지만 VR을 착용하면 훨씬 더 재미있는 게임!

-잔인하지 않고 야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아도 재미있을 수 있다!

그야말로 극찬 세례!

그러나 이 같은 반응이 오히려 태연은 당혹스럽게 느껴졌다.

‘그 정도로 굉장한 게임은 아니었을 텐데.’

그냥 흔한 어드벤처 게임이다.

스토리를 따라가는…….

‘조금 욕심을 부려서 다른 게임에 있는 기능들을 우리 게임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적당히 변형해서 추가하긴 했지만…….’

퍼즐, 미로, 함정 돌파 등등!

그조차도 상당히 난이도 조절을 했다.

왜냐면 플레이어 모두가 이 게임의 엔딩을 온전히 봐줬으면 하는 마음에.

‘우리 게임의 최고 장점은 시나리오 연출이니까.’

동화 작가 출신의 배수현과 아트 디렉터 이영애를 주축으로 만든 이야기.

환상과 감동이 있었고, 그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온갖 감정이 들게 된다.

‘이 이야기 연출만큼은 일품이지.’

아무리 그렇다지만…….

‘AAA급 게임에나 써먹을 마케팅을 제작비 20억 원 게임에 써먹다니…….’

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금까지 가성비를 중심으로 게임을 제작해 왔던 태연이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이 상황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적응도 되지 않았고.

‘어쨌든 이렇게 된 이상, 최소 백만 장은 넘겨야 하는데…….’

태연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무거웠다.

* * *

태연의 마음과 별개로, 사방에서는 사실상 축제 분위기였다.

인터넷 커뮤니티.

-기사 뜨자마자 코엑스 가서 시연해봤는데…… 이 게임 성공할 것 같음. 재미가 어쩌고 감동이 어쩌고…… 설레발이 아니었다!

└그 정도임?

└ㅇㅇ 그 정도임.

└ㅇㅋ 당장 가서 시연해 본다.

└행사 끝났을걸?

└……!

넥플.

“야, 지금 분위기 봐서는 백만 장도 너끈히 판매할 수 있을 것 같던데…… 미리 이벤트라도 준비 좀 해둬야 하는 거 아니냐? 어떻게 생각하냐, 태연아?”

디즈니.

-판매 성적이 좋으면 게임 시나리오와 주인공을 가지고 영화 제작을 해보면 어떠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

태연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막상 판매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모두 이렇게 설레발을 치는 이유를 모르겠다.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건 유저 반응이다.

국산 게임에 대해 냉정하다 못해 싸늘하기까지 했던 기조를 지켜오던 사람들이 갑자기 왜 이러는지…….

‘이러다가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그 이상으로 욕을 먹게 될 거야.’

본래 태연이 생각한 최대 판매량은 50만 장.

실은 이조차도 태연 생각에는 살짝 현실감이 없는 수치였다.

그런데 지금 분위기는 백만 장…… 아니, 그 이상을 팔아도 부족할 것 같다.

이에 대해 김윤아는 초연은 태도를 보였다.

“그게 원래 ‘스타’ 칭호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의 숙명과도 같은 거야. 나도 그랬어. 무조건 금메달! 세계 선수권 우승은 따놓은 당상! 그 이하의 성적은 절대 금지!”

“음.”

“실패했을 때 상황 생각하면 벌써부터 심장이 벌렁벌렁하지? 그런데 막상 그런 거 경험해 보면 아무렇지 않아.”

태연은 고민하다가 물었다.

“이 상황에 도움이 될 팁 같은 거 알려주면 안 될까?”

“팁? 팁이라…….”

진지하게 고민하던 김윤아의 대답은…….

“그런 거 없는 것 같은데?”

“없다고?”

“평상시 나에게 욕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던 사람들을 뭐 어떻게 해? 그냥 무시해야지. 선 넘는 발언 나오면 고소하고. 그 후에는 알아서 조용해지던데.”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단편이나마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평소에 잘해야지. 필요한 순간에 스스로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깨달음을 안겨준 말이었다.

* * *

결국 그 날이 다가왔다.

아침 회의.

유진성 회장이 씩 웃으며 물었다.

“태연아. 기분이 좀 어때?”

“…….?”

의아해하는 몇몇 사람들.

“게임, 오늘부터 판매 시작하는 거 맞지?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아닙니다. 오늘부터 온, 오프라인으로 전 세계 동시 판매되는 거 맞습니다.”

사업총괄 이태영 이사의 말에 모두가 탄성을 터뜨렸다.

이어 기대감 가득한 시선이 쏟아진다.

태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동안 한숨도 못 잤습니다.”

“야, 너도 긴장이라는 걸 하는구나?”

“저도 사람입니다.”

새삼스럽다는 시선 속에 태연은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손영상 이사의 한마디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희한하네. 태연이 쟤는 긴장 같은 거 안 할 줄 알았는데…….”

“그러게요.”

회사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니 스튜디오, 특히 프로젝트 D 팀은 축제 분위기였다.

“저 조금 있다가 옆에 일렉트론 매장 가서 타이틀 사오려고요!”

“최대 기대작을 당일 날 가서 사겠다니…… 이 무슨 자신감인가요? 예약을 했어야지요!”

“어? 그래야 하는 거였어요?”

“당연하죠! 원래 인기작은 며칠 전부터 예약 걸어야 겨우 살 수 있는 거 몰라요?”

“아…… 그러면 김 대리님은 예약하셨어요?”

“물론이죠! 저 점심시간에 나갔다가 오려고요!”

“같이 가요! 콘솔 게임 발매는 처음이라 매장에 패키지로 비치되어 있는 거 구경하러 갈래요!”

“저도요!”

“…….”

조용히 자리에 앉는 태연에게 이영애, 홍민석 AD가 다가와 툭툭 어깨를 쳐 보인다.

커피 한 잔 하러 가자는 뜻이다.

“기분이 어때요? 일단 표정은 심히 안 좋아 보이네요! 하하하!”

“전 어제부터 잠이 안 오던데…… 피디님은 좀 주무셨어요?”

자신의 마음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태연은 표정을 숨기지 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아내는 저녁에 밥 먹다가 갑자기 헛구역질까지 했어요.”

태연이 놀란 얼굴로 바라보자 이영애가 어색하게 웃었다.

“분명 점심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저녁이 되니까 갑자기 긴장감이 밀려와서…….”

아무래도 그 분위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세 사람 모두 기껏 주문한 커피를 입에 대지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태연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당분간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생활하기는 그른 듯하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