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73화 (73/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73화

49. 갑작스러운 주목

게임 엔진을 교체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개발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모두가 동의한 것은 그 결과물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태연이 혼자 개발 중인 ‘배틀 프론티어’ 테스트 빌드는 굉장히 좋은 예시였다.

“글로벌 리얼타임 일루미네이션 기능 진짜 좋네. 그런데 여기서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게 안 믿긴다.”

“여기 봐. 차 표면에 스페큘러 구현되는 거. 끝내주는데?”

태연은 하루, 길면 이틀에 한 번꼴로 새 빌드 버전을 만들어와 공개했다.

“엔진도 엔진인데 피디님 개발력도 굉장하다.”

“이미 엄청 많은 일을 하고 계시면서 따로 이런 걸 만들 여력이 있다는 게 참…….”

아무튼 눈으로 보고 경험해 봤으니 그래픽 엔진 교체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했다.

게임이 더 좋아질 수 있다는데.

* * *

한편 에픽 엔진 본사에서는 새 이슈로 떠들썩했다.

“기존 유니크 엔진으로 AAA급 게임을 개발하던 회사에서 에픽 엔진으로 개발을 진행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그래요? 어떤 회사죠?”

“넥플입니다.”

“아, 넥플! 한국 게임 대기업 말하는 거죠? 온라인 전문…….”

“네. 그곳에 판테온이라는 게임을 만드는 팀인데…… 일단 해당 회사에서 보내온 영상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언론을 통해 공개됐던 것을 포함, 실제 플레이 화면이 포함된 비공개 영상이 재생된다.

에픽 엔진 본사 임원과 기술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게 정말 온라인 게임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인가요?”

“정말 굉장하네요!”

놀랍도록 아름다운 그래픽과 창의적인 세계관!

에픽 엔진 임원들이 크게 흥분했다.

“한국에서 저런 게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니…… 그런데 저 게임을 우리 엔진으로 다시 개발하겠다는 거죠?”

“아시겠지만 저 정도 만들어진 상황에서 그래픽 엔진을 교체하겠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그만큼 버전업한 이번 엔진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단 회사에 방문해서 프로젝트 상황을 확인해 봅시다. 더 깊은 이야기는 그 후에 다시 진행하는 게 좋겠군요.”

에픽 엔진 본사는 지금까지 가벼운 게임, 미디어 콘텐츠 시장을 개척하며 나름의 입지를 개척해왔다.

하지만 업계 최강자 유니크 엔진의 기세가 워낙 강력했다. 여기에 더해 미국 거대 자본에 인수된 이후부터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자금력을 통해 에픽 엔진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에픽 엔진은 결단을 내렸다.

우리도 적극적으로 영역을 넓히고 마케팅에 나서야 한다!

블록버스터 무비와 AAA급 게임 시장 진입을 위해 사활을 걸고 이번 새 버전을 만들었다.

메이저 회사, 대규모 프로젝트에 먼저 연락해서 협업을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출혈이 발생했지만 가만히 있다가 유니크 엔진에 입지를 빼앗기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기존 회사들은 유니크 엔진과 이미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혹은 개발 진척도가 50% 이상을 넘긴 탓에 새 파트너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에픽 엔진은 가벼운 콘텐츠 제작에나 어울리는 엔진이다.

라는 선입견을 깨기가 쉽지 않았다.

고심이 많았던 상황에 이런 낭보가 날아온 것이다.

에픽 엔진 본사는 임원, 엔지니어로 구성된 파견팀을 넥플에 보냈다.

* * *

“와우.”

“어떻게 영상보다 실제 게임 화면이 훨씬 좋을 수가 있을까요?”

에픽 본사 파견팀이 할 수 있는 오로지 감탄뿐.

80인치 TV 화면에 구현된 ‘판테온’의 그래픽은 파견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시연이 끝나고 물었다.

“어떻습니까?”

“믿을 수가 없네요. 일단 가장 놀란 점은 그래픽과 세계관이 굉장히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거고 그 다음은…… 이걸 얼마 동안 만들었다고요?”

“일 년 안 됐네요.”

“……그 짧은 기간 동안 이런 엄청난 걸 만들어냈다는 게 더 놀라워요.”

또 다른 엔지니어가 물었다.

“이제 와서 그래픽 엔진 교체하는 게 정말 쉽지 않은데…… 어떤 이유로 결단을 내리신 거죠?”

“유니크 엔진보다 훨씬 가벼운데 기능이 강력하고 편의성도 좋기 때문이죠.”

“……!”

파견 팀의 표정이 밝아졌다.

누군가는 울컥하기도 했다.

이런 기술력을 가진 팀이 자신들의 노력과 결과물을 인정해 줬다는 사실 때문에.

협상은 수월한 분위기 속에 마무리됐다.

파견단이 돌아가고 태연은 이 사실을 넥플 엔터테인먼트 파트장, 팀장들과 공유했다.

“엔지니어 파견. 비용도 에픽 측에서 지불. 우선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비용인데 에셋 스토어 할인, 로열티 다운 등등.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유니크 버리고 에픽으로 갈아탄 보람이 있었네요.”

홍민석 AD의 말에 웃음이 터진다.

“교체 작업 기간은 한 달 정도로 잡겠습니다. 저 역시 적극 참여할 테니 열심히 해봅시다.”

* * *

판테온이 그래픽 엔진을 교체했다는 소식은 넥플을 넘어 업계 전체에 퍼져 나갔다.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았다.

-유니크도 곧 버전업할 텐데 굳이……?

-에픽 엔진…… 저렴하고 가벼워서 좋긴 한데 AAA급 게임에 사용하는 건 조금 그렇지 않나?

업계의 관심이 끓어올랐다.

넥플의 새로운 기대작!

이외에.

업계에 몇 안 되는 AAA급 게임이고, 개발진이 화려했으며 무엇보다도 스타 개발자 유태연이 프로듀싱한다.

-개발력으로는 누가 감히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그런 사람이 이 시점에 엔진 교체라는 그 결정을 내렸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에픽 엔진 본사는 굉장히 협조적이다.

수시로 파견 엔지니어로부터 작업 현황을 보고 받았는데 변화하는 과정이 굉장히 드라마틱했기 때문.

“유 PD는 이미 우리 이상으로 엔진을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와 그의 팀은 정말 경이로울 지경이에요!”

태연과 개발팀은 날마다 요구 사항을 정리해서 전달했는데 그 리스트가 적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요구만 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한다는 것이다. 본사 엔진 개발팀 대부분이 판테온과의 협업에 매달렸다.

보름 정도 지나자 교체 성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엔지니어가 조심스레 태연에게 물었다.

“본사에서 협업 과정과 결과물을 홍보 자료로 쓰고 싶다는데…… 영상과 스크린샷 좀 제공해 줄 수 있겠습니까?”

세계적인 엔진 회사에서 알아서 게임을 홍보해 준다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다.

“물론이죠. 그런 일은 얼마든지 협력해 드리겠습니다.”

태연의 허락을 받은 에픽 본사에서는 미국에서 열린 개발자 컨퍼런스를 시작으로, 판테온과의 협업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역시 엔진의 우수성과 실전성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판테온의 존재감을 부각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에픽하고 협업 중인 판테온이 어느 나라 게임 회사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거라고? 한국? 거기 모바일 전문 아니었어?

-판테온 컨퍼런스에서 개발 과정 소개해준 거 봤는데 그래픽이 굉장하더라고. 일단 상황 지켜보고 괜찮게 뽑히면 우리 차기작은 에픽 엔진을 써볼까 고민 중이야.

-판테온 협업 영상 에픽 본사 공식 계정에도 떴던데…… 그래픽이 정말 화려하고 멋지더라. 세계관도 흥미로워 보여. 재미있을 것 같아서 기대해보려고.

* * *

프로젝트 D 정식 출시일이 가까워졌다.

놀랍게도 전 세계 동시 출시였고 콘솔, PC 버전도 함께 출시될 예정이었다.

더할 것도, 더 뺄 것도 없이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어느 날.

넥플 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에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프로젝트 D가 SNS 미국 트렌드 전체 1위를 기록했어요!”

여성 원화가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전해 준 소식.

“어, 나 그쪽 계정 없는데…… 가입하는 거 어려워?”

“안 어려워. 몇 번 터치하면 쉽게 만들어져.”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결과는 더 놀라웠다.

“와…….”

“이것 때문이었구나.”

“아니, 잠깐만. 이렇게까지 해준다고?!”

현재 태연은 아침 회의로 자리를 비운 상황.

스튜디오 개발자들은 옹기종기 모여 함께 트렌드 전체 1위에 오른 이유를 확인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뭐야?”

“무슨 이슈라도 터졌나 봐.”

때마침 출근한 홍민석, 이영애 부부는 업무 시작 전부터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의아해했다.

홍민석이 물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래요?”

“아, AD님들 SNS 못 보셨어요?”

“무슨 SNS요?”

“파랑새요. 지금 거기 미국 실시간 전체 트렌드 1위 한 번 확인해 보세요.”

“…….?”

의아한 시선을 교환한 부부는 곧 SNS에 접속.

“어?”

“어머.”

눈이 휘둥그레졌다.

[Disney Fantastic World!]

“아니. 이게 왜…….?”

“트렌드 1위가 우리 게임이네요? 어떻게 된 거죠?”

AD 부부의 시선을 받은 개발자가 씩 웃으며 말했다.

“디즈니에서 디즈니파크와 LA 다운타운, 센프란시스코, 뉴욕 맨해튼 등등 대도시에 우리 게임을 체험할 수 있는 팝업 스토어를 열었어요!”

“팝업 스토어요?”

“뿐만 아니라…… 여기 봐요!”

개발자가 보여준 화면에는 놀랍게도 스토어에 모습을 드러낸 캐릭터 배우들이 있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저 배우들이 어째서…… 분명 풀 보이스 제안 건 거절하지 않았던가?”

수많은 이들이 팝업 스토어에 늘어서 있었는데, 바로 이런 이유로 미국 전체 트렌드 1위를 기록한 것이다.

외신들의 호평 사례도 이어졌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최고의 VR 게임!]

[내 아이에게 마음 놓고 권할 수 있는 게임.]

[Disney Fantastic World! 게임의 재미와 원작의 감동을 동시에 사로잡다!]

“…….”

“…….”

일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이래서야 무슨 디즈니 신작 히어로 무비, 혹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시사회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나?

“디즈니에서 캐릭터 오리지널 성우들까지 동원해서 풀 보이스로 성우 녹음을 끝마쳤던데, 이거 알고 계셨어요?”

“아, 아니요? 우리는 잘…….”

“E3 이후로는 우리도 일에만 전념하고 있어서…… 다들 잘 알잖아요. 같이 일했는데 이런 걸 논의할 틈이 어디 있었겠어요?”

이영애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개발자가 중얼거렸다.

“피디님 언제 오시려나?”

* * *

아침 회의를 마친 태연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어? 피디님이다!”

“피디님! 질문 있습니다!”

개발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거 어떻게 된 건가요?”

“지금 우리 게임이 미국 SNS 전체 트렌드 1위던데, 외신도 막 칭찬하고 난리 났던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우리에게 숨긴 거 있으시죠?! 빨리 말해주세요! 현기증 날 것 같단 말이에요!”

“…….”

태연은 당황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트렌드가 뭐 어쨌다고요?”

“…….”

순간 사람들은 알았다.

‘피디님 아직 모르시는구나!’

“이거 보세요!”

성태희가 열성적으로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태연은 그제야 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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