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72화
48. 세계를 향한 첫걸음
말을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실천하는 것이 어렵지.’
하지만 해야 한다.
이미 대놓고 지르지 않았나?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세계로 나아가겠다고.
‘모든 게임을 성공시킬 수는 없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간이다.
‘커피라도 한 잔 하면서 고민 좀 해봐야겠군,’
잠깐 자리로 돌아와서 노트북을 챙겨 카페테리아로 향했…….
‘헉! 본부장님이다!’
‘이, 일어설까?’
……발길을 돌려 외부 카페로 향했다.
조용한 카페에 도착한 태연은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넥플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현재 서비스 중인 수많은 게임 목록이 펼쳐진다.
‘전 세계에 먹힐 수 있는 타이틀이 필요해.’
판테온을 포함, 현재 신규 제작 중인 게임들은 미래의 동력으로 남겨 놓자.
‘세계 진출 가능성이 있는 게임을 찾아 재가공해서 수출을 타진한다.’
MMORPG와 FPS를 위주로 찾아볼까?
다른 이유는 없었다.
MMORPG는 자신의 주 종목이었고, FPS는 예나 지금이나 전 세계적으로 크게 인기 있는 장르였다.
‘너무 오래된 게임은 제외하고…….’
추린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FPS 1개.
MMORPG는 세 개.
‘FPS는 마땅한 게 없군.’
그래픽, 시스템, 과금…… 모든 것이 철저히 국내 시장에 최적화되어 있다.
‘배틀 시티라…….’
넥플 3대장이라 불리는 게임이다.
그만큼 높은 매출을 자랑하지만 정작 매출은 해마다 감소 중이다.
중국에서의 인기가 급속히 식고 있기 때문.
이는 개발사 자체 헛발질 영향도 있지만 청룡 그룹의 영향도 적지 않다. 배틀 시티를 그대로 모방한 모바일 PC. 모바일 게임을 출시하여 그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영미권 진출을 시도했지만 크게 실패해서 철수한 전적이 있지.’
어디까지나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만 먹힐 게임이라는 거다.
‘현 시점에서 세계화는 무리지만…… 그래도 잘만 다듬는다면 국내 매출 추이를 높일 수 있어.’
아무튼 FPS 게임 <배틀 시티>는 제외.
MMORPG 세 타이틀이 남는다.
‘아틀란시아 전기, 엘크로스, 그리고 턴제 MMORPG 게임인 히어로즈 킹덤.’
히어로즈 킹덤.
본래 중소 규모 독립 회사였던 엔플러스에서 만든 게임이다.
당시 150억을 들였다고 하며, 당대 유명했던 1세대 스타 개발자, 진갑수가 본인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 흥행시켰다.
‘그 후 회사를 넥플이 인수했고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연 매출이 50억대로 떨어지긴 했지만 개발 인원수가 스무 명을 겨우 넘는 상황이고 개발자 연봉대도 높지 않다. 그래서 팀이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장점이라면…….’
MMORPG와 턴제의 결합이라는 특수성.
용병 운영을 통한 전략 전술 극대화.
하우징, 무역 시스템 틈 당시 유명했던 온갖 콘텐츠를 게임에 도입해 다양한 재미를 주려고 노력했던 점.
방대한 시나리오 퀘스트.
‘단점이라면…….’
초창기 구조 설계 부실에서 비롯된 온갖 문제점들.
이를 테면 강화, 복사 버그라던가 잦은 해킹 피해라던가.
‘밸런스를 고려하지 않고 마구 찍어댄 용병 캐릭터들의 밸런스 에러 문제도 있지.’
이 외에도 치명적인 이슈가 너무 많이 터져서 일일이 나열할 수조차 없다.
“……이 게임은 제외하는 게 좋겠군.”
참고로 원래 라이브 본부장이엇던 손영상 이사는 이 게임의 서비스 종료를 고려했었다고 한다.
‘내가 두 팔을 걷고 나서서 고친다면 분명 더 나아지긴 하겠지만…….’
대부분 문제가 근본적인 설계에서 비롯된 것들이라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금이 필요하다.
‘……이건 제외하는 게 좋겠군.’
결국 그렇게 해서 남은 것은 아틀란시아와 엘크로스.’
하나는 자신이 이미 손을 댔고, 나머지 하나는 이제부터 손을 대야 한다.
‘애초부터 해답은 정해져 있었지.’
다시 생각해 봐도 넥플의 미래를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건 두 게임뿐이다.
‘FPS는…….’
이 역시 일찍부터 생각해 두던 것이 있다.
‘배틀 시티 원본 리소스를 분해, 조합해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봐야겠군.’
* * *
라이브 본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명훈을 호출해 이 같은 사안들을 공유했다.
“아틀란시아 전기는 최신 트렌드를 결합하지만 본 바탕은 정통 MMORPG. 그러면 엘크로스는 어떤 느낌으로 수정을 진행할 생각이에요?”
“음.”
“설마 그것도 정통 MMORPG로?”
“그래야죠.”
“같은 장르로 해외 진출이라…… 괜찮을까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아파트로 비유하면 이미 입주 단계까지 왔는데 큰 이슈가 발견 되서 사람들을 다시 내보내고 보수 공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온 거니까요.”
회의를 마친 뒤 배틀 시티 스튜디오에 방문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해당 게임의 세 번째 프로듀서 김용환.
그는 초창기 시스템 파트장이었고, 그 다음 기획팀장이 되었다가 지금은 배틀 시티를 총괄 디렉팅하고 있다.
한마디로 배틀 시티의 성골 개발자라는 것이다. 갑자기 꽂힌 외부 사람이 아니라.
“김용환 피디님과 회의실에서 대화 좀 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불러주시지요. 바로 달려갔을 텐데.”
“용건이 있는 사람이 찾아오는 게 맞죠.”
세상에 욕을 먹지 않는 인기 온라인 게임 디렉터는 없다. 벌써 4년이 넘도록 게임을 디렉팅 해온 김용환 피디 역시 온갖 패치, 운영 이슈로 욕을 먹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외에 인간적인 부분에서 흠이 될 만한 일은 한 적이 없다.
그리고 그는 배틀 시티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김용환 피디를 대우하는 이유였다.
회의실에서, 태연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꺼냈다.
“배틀 시티 IP를 이용해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용건은 간단했다.
“제가 소스를 이용해 이것저것 스케치를 해보려고 합니다.”
한마디로 원본 소스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할 권한을 달라는 것이다.
권한, 필요한 정보를 얻은 뒤 돌아와 노트북에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설치하고 자료를 내려받았다.
‘보안이 중요하지.’
언제 어떤 의도치 않은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2중, 3중으로 대처까지 완벽히 해놓은 뒤 태연이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안심이지.’
근래에 업무와 가정일 때문에 못 하고 있었지만, 태연은 게임을 기획하고 뼈대를 만들어 보는 것을 좋아했다.
‘최근 공개된 최신형 에픽 엔진의 파티클, 조명 시스템이 그렇게 발전되었다지? 연구를 해볼 겸 만져봐야겠어.’
에픽 엔진.
수많은 게임, 미디어 관계자가 많이 사용하는 유니크 엔진의 라이벌 격인 엔진이다.
본래 캐주얼, 모바일 같은 가벼운 게임에 특화되어 있었다. 업계 최강 유니크 엔진이 묵직하면서도 디테일한 그래픽 묘사에 강점을 둔 것과 대조적이다.
그런데 이번에 버전업을 하면서 기능을 대폭 강화했단다.
‘특히 환경 변화를 실시간을 처리할 수 있는 기능이 그렇게 좋다니, 이 부분을 활용한 FPS 게임을 만들면 그것도 재미있겠지?’
* * *
미국에 갔던 홍민석, 이영애 AD 부부가 돌아왔다.
“공주마마 납시오!”
“아니, 우리 스튜디오에 신데렐라 공주님께서 방문해 주셨다!”
그야말로 스타가 따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적인 게임쇼 생중계에서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변신을 보여줬으니…….
“그러지 좀 마세요. 민망해요.”
민망했던 이영애는 빨개진 얼굴로 손을 내저었지만 사람들은 그 모습에 일부러 더 난리를 피웠다.
원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였다.
태연 역시 이번만큼은 부드러운 얼굴로 말했다.
“잠깐 휴식 좀 취할 겸, 회의실에서 맛있는 거라도 먹으면서 출장기라도 들어 봅시다.”
이영애는 사진, 영상 자료까지 공개하며 현장 반응을 상세히 전달했다.
“업계 관계자들이 말해준 사실인데, 부스 방문객 평균 연령대가 가장 다양하고 만족도도 골고루 높았던 곳이 우리 부스였다고 해요!
잔뜩 신이 난 그녀와 덩달아 들뜬 개발자들.
“제가 이번에 다녀와서 깨달은 사실이 뭐냐면요.”
“…….”
“우리 게임…… 진짜 잘 만들어진 게임이에요. 홍보만 잘 되면 틀림없이 좋은 반응이 있을 거예요!”
아무래도 뭔가 있었던 모양이다.
점심 시간, 태연은 부부와의 대화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디즈니 측도 우리 게임의 현장 반응에 크게 고무된 모양이에요. 돌아가는 즉시 마케팅 예산 추가 편성 안을 검토하고 그룹 인프라까지 풀로 가동해서 게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거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현지 관계자들은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밀어주면 실망하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
“그리고 프로젝트 D에 적용된 VR 기술에 큰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에요. 괜찮으면 리뉴얼 준비 중인 다크라이드 어트렉션 중 몇 개의 작업을 부탁하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순간 태연의 눈이 번뜩였다.
“그런 제안은 무조건 받아야죠. 뭐라고 대답하셨어요?”
순간 이영애와 홍민석 부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교환했다.
이영애가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하실 것 같아서 냉큼 알겠다고 했죠. 피디님도 아시겠지만, 사실 이 제안이 우리 챙겨주겠다는 거거든요. 덧붙여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더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뜻이기도 하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디어계의 거물이 우리 기술을 좋게 보고 손을 내밀어주는데, 굉장히 큰 일을 하고 오셨습니다.”
프로젝트 D에 사용된 기술은 미디어, 테마파크 분야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세계적인 미디어 업체의 주요 프로젝트를 하나씩 수주받아 좋은 결과로 보여주는 건 넥플 엔터테인먼트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이영애는 상큼하게 웃었다.
“입장 정리 끝내는 대로 연락 주겠다고 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면 될 것 같아요.”
이어 그래픽 엔진 교체 건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최근 에픽 엔진이 버전업한 거 아시죠?”
“아, 뭐 듣긴 했는데…….”
“그 엔진으로 혼자 게임을 하나 만들어보고 있는데…….”
“네? 혼자서 뭘 하고 계시다고요?”
이번에는 이영애, 홍민석 부부가 놀랄 차례였다.
“일단 확인해 보시죠. 지금은 맵과 캐릭터를 띄우고 몇 가지 기능만 구현한 기초 단계 수준입니다.”
태연이 노트북으로 보여준 것은 파괴된 도시 맵과 모자를 쓴 캐릭터였다.
FPS 마니아인 홍민석 AD가 단숨에 알아봤다.
“어? 이거 배틀 시티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 소스를 이용해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그보다는 이것 좀 봐주시지요.”
화면에 비치는 것은 맑은 하늘이었다.
두 AD의 예민한 눈썰미는 벌써부터 한 가지 특징을 파악했다.
“어? 구름……?”
“구름이 흘러가네요!”
태연은 슥 웃었다.
“이제 슬슬 변화가 시작됩니다.”
먹구름이 밀려오더니 추적추적, 비가 떨어진다.
음푹 파인 바닥 지형에 빗물이 고인다.
“비가 더 많이 내릴 겁니다.”
소나기.
“천둥이 칠 거고요.”
쿠르릉!
“한참 쏟아지다가 비가 멈추고 점점 맑게 갭니다.”
햇살이 쏟아지며 고였던 빗물이 바닥에 스며든다.
“장소를 변경해 보죠.”
멍하니 화면을 보는 AD 부부.
“어?”
“눈이다!”
잠시 후 눈이 내린다.
천천히.
그러다 눈보라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사방이 눈으로 덮이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가 낀다. 부서진 자동차 오브젝트에 눈과 서리가 내린 게 보였다.
“우선은 여기까지.”
“저기, 이 기상 변화 피디님이 직접 코딩하신 겁니까?”
“조금 어설프죠?”
“그게 아니라…… 끄응!”
모든 업무를 다 잘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 만에, 그것도 막 공개한 신규 엔진으로 이런 일을 해낼 줄은 몰랐다.
그것도 며칠 만에!
“제가 사용해 보니 지금 유니크 엔진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훨씬 좋더군요. 가상화된 지오메트리, 파티클, 글로벌 리얼타임 일루미네이션…….”
태연의 음성이 점점 격양된다.
“영화 수준의 에셋을 편하게 불러와서 활용 가능하고. 특히 광원 효과가 굉장히 아름답고 리얼하게 적용되더군요. 메탈 표면 스페큘러 구현도 잘되어 있습니다.”
“……아니, 뭘 그렇게 세세하게 잘 아세요?”
“아무튼, 어떻습니까? 판테온을 이 엔진으로 교체하는 것은.”
“음, 그래도 이게 첫 버전업이고 너무 많은 기능이 업데이트된 거라 불안정한 부분이 꽤나 많을 텐데요.”
“에픽 엔진 본사에 연락하면 기술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유니크 엔진의 지분을 먹어치울 작정으로 이번 버전업에 굉장히 공을 들인 것 같으니까요.”
“제가 보기에도 그러네요. 아니 그런데 이걸 이렇게까지…… 허, 참!”
한참 동안 기능들을 다시 살펴보고 엔진을 확인해 보던 홍민석 AD는 마침내 결심을 내렸다.
“좋습니다. 해보죠, 뭐!”
판테온 개발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