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71화 (71/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71화

47. 방향 제시

[가장 드라마틱한 게임!]

[예상치 못한 선전! E3를 뜨겁게 화제의 게임은 누가 만들었나?]

디즈니 판타스틱 월드에 대한 이야기였다.

쏟아지는 기사에 국내 유저들이 열광했다.

-저거 그거 아님? 넥플 사내 테스트에서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던…….

└그거 맞음. 프로젝트 D. E3에 나타난 거 보고 깜짝 놀랐는데 영상 보고 더 놀랐음. 퀄리티가 생각보다 좋던데…….

└놀라운 사실 알려줄까? 그거 실 개발 기간 1년도 안 된 거임. 제작비 20억도 안 썼음.

└헐…… 정말임? 님이 그걸 어떻게 암?

└내 친구가 그 회사 근무 중이라서 들었음.

CG 범벅 시네마틱 영상만 공개된 게 아니라 무려 10여 분 동안 실제 플레이 화면이 공개됐다.

기대 이상의 게임 퀄리티에 열광하는 건 당연했는데 실제 플레이 후기가 올라오며 기대감은 더욱 커진다.

-어찌어찌 초대권을 얻어서 현장에 가서 직관했다. 처음 게임 공개됐을 때 반응이 진짜 좋았고 시연 역시도 호평이었음.

└게임 직접 해봤냐? 플레이 후기 좀 공유해 줘!

└해보고 놀란 게…… 카툰 렌더링을 정말 절묘하게 잘 썼다는 생각이 들더라. 디즈니 애니메이션만의 질감을 잘 구현했음. 그리고 보통 트리플 A급 콘솔 게임에서 할 수 있는 요소들 모두 구현해 놨다. 그것도 잘!

-나도 지금 방금 플레이하고 나오는 길인데…… 사람 개많더라. 플레이 후기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했으니 난 딴 걸 말할게. 이영애 AD님 가까이에서 보고 사인받고 사진도 촬영했음. 진짜 고우시더라…….

또 하나 화제가 된 것은 바로 AD 이영애.

신데렐라 코스츔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 순간,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고 사람들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영상 클립이 인기를 끌었다.

게임 커뮤니티는 물론 일반적인 대형 커뮤니티에서도 크게 이슈가 된 부분이었다.

-K 아트 디렉터의 위엄!

-이것으로 미적 기준이 전 세계가 똑같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됨.

-와, 그런데 진짜 공주님처럼 기품 있게 예쁘시네. 정말 AD 맞음? 결혼은 하셨나?

└남편이 같은 스튜디오의 판테온 AD님이심.

└아……;

파급력이 태연의 예상을 벗어났다.

미녀 게임 개발자의 E3 데뷔는 국내외에서 크게 이슈가 됐다.

오죽하면 포털 사이트 ‘연예’란에 관련 기사가 랭크될 정도였으니…….

* * *

상황이 이렇게 되자 태연은 온갖 곳에서 쏟아지는 문의에 몸살을 앓을 지경이 되었다.

-유태연 대표님! 좋은 조건이 있는데……!

-제가 이번에 기가 막힌 IP를 얻어왔는데 같이 한 번……!

‘갑자기 피디, 본부장에서 대표로 격상됐군.’

오후 세 시.

태연은 깊은 피로감에 눈두덩이를 꾹 눌렀다.

‘이 시간에 이런 피로감을 느끼기는 오랜만이야.’

웅웅웅!

문자가 왔다.

[내 집무실로 와라.]

유진성 회장이었다.

태연이 일어서며 말했다.

“잠시 회장님 좀 뵙고 오겠습니다.”

집무실에 그레이 정장과 안경을 착용한 칼날 같은 남자가 있었다.

“인사해라. 중국 청룡그룹에서 오신 분이시다.”

“……!”

태연의 눈가가 미미하게 치켜 떠졌다.

놀란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표정에 아무 변화가 없었다.

“게임 개발을 하는 유태연입니다.”

“청룡의 하오란입니다. 호연으로 불러주셔도 됩니다.”

굉장히 능숙한 한국어!

눈감고 듣는다면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인사를 나누고 소파에 앉았다.

유진성 회장이 물었다.

“너 청룡그룹 알지?”

“물론 알고 있습니다. 5년 전 블랙 서유기라는 게임을 발매한 청룡 게임즈의 모회사죠.”

그 사실 외에 딱히 염두에 둘 회사는 아니다.

태연을 어느 정도 아는 유진성 회장으로서는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크흐흐. 그래. 너라면 그런 식으로 대답할 줄 알았다.”

중국 재계 1위 기업 청룡!

그들은 한국 게임, IT 업계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수많은 기업이 그들의 투자와 간섭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업계에서 청룡의 돈에서 자유로운 곳은 오로지 넥플뿐.

넥플의 라이벌이라는 네로 소프트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곳의 핵심 인사가 우리 회사에는 무슨 일일까?’

짐작 가는 게 없었다.

자신을 불렀으니 개발과 관련된 업무, 혹은 그에 상응하는 비즈니스로 보이는데…….

미소를 지운 유진성 회장이 하오란에게 말했다.

“그 이야기는 제가 아닌 이 녀석이랑 하는 게 맞는 것 같군요. 제가 시킨다고 얌전히 따를 녀석이 아니고 이 회사에 딱히 아쉬울 것도 없는지라.”

그 순간 하오란의 칼날 같은 시선이 태연을 훑는다.

“현재 청룡그룹을 통해 중국에 서비스되는 넥플 게임들에 대한 수익 배분 조정을 하려고 합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러나 곧 태연은 현재 두 이사가 예전부터 굉장히 골치 아파하던 사안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문제였군.’

* * *

청룡그룹은 수많은 한국 게임의 중국 서비스를 담당한다.

처음에는 넥플과 네로 소프트 같은 회사에 굽신거리는 입장이었지만 기업 규모와 영향력이 역전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일방적인 갑질이 심해졌다고 했지.’

가장 유명한 것은 까다로운 조건을 걸고 한국 게임 회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거나 아니면 해당 게임 서비스에 대한 지원을 크게 줄이는 것이다.

넥플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현재 청룡을 통하지 않고서는 순조로운 중국 서비스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부분을 이용해 꾸준히 계약 갱신을 요청해왔는데 대부분은 수익 배분을 다시 조정하자는 내용이었다.

* * *

“그동안 우리 청룡그룹에서는 넥플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해 왔습니다. 넥플과 우리 청룡은 온라인 게임 초창기 시절부터 이어져 온 혈맹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더 이상은 마냥 기다려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미 한국의 다른 모든 회사는 조정이 끝났는데 아무리 관계가 깊다고 하지만 넥플 게임들에 대해서는 갱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 입장이 난처해집니다.”

“…….”

“이번에 확실히 입장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숫제 협박이었고 갑질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청룡그룹의 위상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한국 게임계의 해외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은 청룡그룹이 사실상 독주 중이다. 뿐만 아니라 해외 거대 게임사의 지분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거나 아예 M&A를 함으로 전 세계에도 그 손길을 뻗치고 있다.

작년 기준으로 청룡그룹의 시가 총액이 IT업계의 강자, 페스트북을 제쳤다.

‘그래서 회장님이 두 분 이사님이 아니라 나를 찾으셨군.’

왜냐면 라이브 본부장이 바로 자신이었으니.

그 최종 결정 권한 역시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수익 배분을 원하시는지 일단 그 부분부터 듣고 싶군요.”

“그러니까…….”

“결론만 간단히.”

“……!”

하오란이 흠칫했다.

태연의 표정과 어조에 인간적인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

그는 애써 침착하게 자신의 요구 조건을 말했다.

자신을 향한 태연의 냉담한 시선을 무의식적으로 피하면서.

* * *

미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차창 밖을 바라보는 하오란의 얼굴은 멍한 표정이었다.

‘거절합니다.’

‘……그렇게 속단한 일이 아닙니다. 저는 며칠 더 머무를 생각이니 그동안…….’

‘제 입장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침 라이브 팀 구조 개편을 감행하면서 향후, 게임의 서비스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기를 제공해 주신다면 모든 게임에 대한 서비스를 철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청룡에 서비스하는 모든 게임을 내리겠다는 뜻이다.

‘직후 우리 게임은 중국을 제외한 세계 진출을 목표로 재무장을 시도하겠죠.’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은 그쪽입니다.’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엄청난, 그야말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이 이어졌다.

‘딱 하루 드릴 테니 입장을 분명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도 빨리 조치를 할 수 있겠죠.’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아무리 그래도 자신들과 등을 지는 최악의 선택을 하겠다고?

분명 이 이야기를 들었을 유진성 회장은 먼 산만 쳐다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저 유진성 회장이 이 남자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있어.’

대체 넥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당혹스럽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허세겠지.’

시간이 지나며 충격에 놀란 마음이 가라앉았다.

‘우리하고 척을 질 수가 없어. 지금 넥플 매출 상당수가 우리 청룡그룹의 퍼블리싱으로부터 나오고 있으니까.’

기업이 매출을 포기하겠다고?

생각해 보니 웃음만 나올 일이다.

‘좋아. 어디 한번 해봐라.’

“우리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어디 반응해 봐라.

하오란은 태연이 반응을 상상하며 내심 미소 지었다.

절대 서비스를 철회하지 못한다.

자신의 수가 먹히지 않았으니 당황하며 다른 소리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넥플은 오늘부로 청룡그룹에서 서비스 중인 모든 게임을 철수하도록 하겠습니다.”

“……!”

“계약을 어기고 갱신을 요청한 것은 그쪽입니다. 위약금은 충분히 준비해 두시기 바랍니다.”

하오란은 또다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겠지? 설마…….’

결국 또다시 유진성 회장을 바라본다.

아주 태연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태연은 곧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와주시죠.”

곧 훤칠한 키에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등장했다.

“사업팀장님. 오늘부로 넥플은 청룡그룹과의 모든 관계를 마무리 짓습니다. 이유는 청룡그룹의 계약 위반, 수익 재분배를 요청하며 들어주지 않으면 서비스를 내리겠다는 협박, 갑질을 한 것이 그 이유입니다. 어제 준비한 보도 자료 그대로 발표해주십시오. 홈페이지에 공지 올려 주시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표정 변화 없이 몸을 돌리던 사업팀장이 물었다.

“자, 잠깐만……!”

무의식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신의 실책을 인식한 순간, 하오란은 이미 진 게임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십시오.”

* * *

유진성 회장이 물었다.

“너 정말 서비스 철수할 생각이었어? 나 내색만 안 했지, 조마조마해서 죽는 줄 알았다.”

하오란은 도망치듯 중국으로 돌아갔다.

끝내 사과하지는 않았지만 태연도 굳이 붙잡지 않았다.

“그저 시간을 벌었을 뿐입니다.”

“……?”

“언제고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 겁니다. 우리가 만약 넥플이 아니었다면 정말 시장에서 철수시키고 아예 진입도 못 하게 손을 썼을 겁니다.”

“그래.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지.”

유진성 회장도 인정했다.

업계에 피해 사례가 꽤나 많았다.

어떤 회사에서는 중국 전담팀까지 만들어 오랜 공을 들였는데 청룡그룹은 자기들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철수 당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가야 할 곳은 중국이 아닌 그보다 더 넓은 세계입니다. 지금부터 조금씩 중국 서비스 의존도를 줄여야 합니다. 지금까지처럼 안일하게 있다가는 결국 크게 뒤통수를 얻어맞게 될 겁니다.”

“…….”

한참 후 유진성 회장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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