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70화
46. 예상을 뛰어넘다(4)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어.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해.’
관객의 이목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모아야 한다.
홍민석과 방법을 구상하는데 곁에 있던 디즈니 임원이 와서 묻는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아, 그게…….”
이영애의 설명에 디즈니 임원이 예상을 벗어난 해결책을 내놓았다.
“발표하실 때 코스츔을 입고 올라가는 게 어떻습니까?”
“코스츔이요?”
“직원들에게 들은 게 있습니다. 아트 디렉터님의 디즈니 재직 시절 별명이 ‘프린세스’였다고.”
“아…….”
갑자기 튀어나온 민망한 별명에 이영애의 하얀 얼굴이 붉어졌다.
“여기서 직접 보고 그 별명이 결코 과장되거나, 장난으로 붙여진 별명 같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리, 이런 말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당신은 놀랍도록 아름답습니다.”
“……!”
“그 아름다움에 기품이 깃들어 있어요. 그래서 제가 프린세스 코스츔을 제안한 겁니다.”
제안한 디즈니 임원이 홍민석을 바라본다.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당연히.
-짝! 짝!
“아주 제대로 보셨습니다. 제 아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미모와 기품은 정말 타고났죠. 배우를 했어도 성공했을 겁니다. 실제로 헐리우드에서 그런 제안을 많이 받았어요!”
두 남자의 주접에 이영애는 몸둘 바를 몰라 했다.
목소리가 커서 주위 이목을 모두 끌고 있었던 것이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해요!”
디즈니 랜드와 본사는 컨벤션 센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전화 한통에 메이크 업, 스타일리스트 전문가들이 금방 나타났다.
“여기 이분이 바로 이번 출품작의 아트 디렉터분이십니다. 무대 위에 올라가서 게임을 소개할 예정인데 이목을 사로잡을 무기가 필요해요.”
그 설명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들은 이영애를 어디론가로 데려갔다.
잠시 후 전화가 걸려왔다.
디즈니 임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준비가 거의 끝났다는군요. 같이 가보실까요?”
잠시 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두 남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슬슬 시작할 때가 됐군.’
잠시 고민하던 태연이 말했다.
“멀티미디어실에서 E3 라이브 방송 시청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희망자는 누구든 와서 감상하세요.”
그 말에 넥플 엔터테인먼트 직원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 광경을 보고 태연이 중얼거렸다.
‘카페테리아에 가서 뭔가 마실 거라도 좀 사와야겠군.’
태연이 몇몇 사람들과 카페테리아를 털어왔을 때, 멀티미디어실은 자리가 없을 만큼 사람으로 가득했다.
“태연아! 나도 왔어!”
“저도 왔습니다!”
유진성 회장, 두 명의 이사, 각 라이브 팀 피디들…… 정말 온갖 사람들이 있었다.
태연은 황당한 듯 물었다.
“어떻게 알고 이곳에 오신 겁니까?”
“누가 인트라넷에 올렸더라. 치사하게 너희끼리만 모여서 E3 방송 시청한다고.”
유진성 회장의 대답.
“왜, 우리가 온 게 싫으냐? 나갈까?”
“……싫다고 하면 가시겠습니까?”
“그건 아니지. 야! 난 아이스티에 에스프레소 샷 추가한 거 마실래!”
“그건 또 무슨 조합입니까?”
“하, 손 이사 너 아샷추 모르냐? 요즘 애들 이렇게 먹는 게 유행이래! 우리 딸년이 사줬는데 맛있더라고!”
“그렇습니까? 그러면 나도 그걸로 한 잔……!”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정신이 하나도 없군.’
마침내 신작 쇼케이스가 시작되었을 때쯤에는 출입문 너머에까지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불편한데 굳이 저기서……?’
이곳 아니어도 시청할 수 있는 곳도 많았을 텐데?
그러나 이런 생각은 첫 번째 신작 소개에 바로 지워졌다.
“워, 갤럭시 오딧세이 2편이다!”
“뭐? 시작부터 갤럭시 오딧세이야?!”
들썩거리는 분위기.
태연 역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갤럭시 오딧세이.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세계적인 게임 명가, <크리에이티브 포스>라는 개발사에서 만든 오픈월드 기반 액션 롤 플레잉 게임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던 배경은 드넓은 우주와 신비한 외계 행성!
다양한 세계를 돌아다니며 정복 전쟁을 펼치는 것이 게임의 주된 내용이다.
5년 전에 발매된 1편은 1,100만 장이 팔려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쇼케이스 오프닝을 엄청난 타이틀이 장식한 것이다
이번 2편 역시 행성이 주 무대였다.
차세대 콘솔 타이틀에 걸맞는 최고의 그래픽을 선보였는데 10분 남짓의 영상 속에 플레이 방향이 확실히 드러나 있었다.
“역시 크리에이티브 포스. 대단한 곳이네요.”
“괜히 명가라 불리는 게 아니지.”
“내가 보니까 저것도 나오면 무조건 천만 장 돌파하겠네.”
십수 년에 걸쳐 쌓아올려진 개발사에 대한 믿음.
이 같은 개발자들의 대화에 유진성 회장은 내심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세계적인 개발자들이 펼쳐낸 신비한 외계 행성과 거대한 스케일의 우주 전쟁!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기술과 노하우가 집약된 게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연조차 마음이 들썩거릴 정도였으니 다른 개발자들은 오죽하겠나?
이후 소개된 게임들 역시 게임 팬이라면 눈이 뒤집어질 만큼 화려한 신작들이었다.
“올해는 정말 엄청나네?”
“거의 역대 최고 수준인데?”
겜돌이들 아니랄까 봐. 개발자 대부분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유진성 회장이 귓속말로 물었다.
“우리 차례는 언제야?”
“아마도 곧…… 아, 나오네요.”
누군가 소리쳤다.
“우리 게임이다!”
무대 거대 전광판에 뜨는 넥플 & 디즈니 로고.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반면 현장의 객석은 굉장히 소란스러웠다.
그들로서는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조합이기 때문이었다.
이어 무대에 오르는 한 여성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태연은…….
“……어?”
당혹감에 눈만 끔뻑거렸다.
신데렐라가…… 아니, 신데렐라 코스츔을 한 아름다운 미녀의 정체는 분명히.
“이영애 AD님?”
믿을 수 없게도 그녀였다.
그녀의 모습이 카메라를 통해 무대 전광판에 큼직하게 비춰졌다. 현장 관객들의 반응을 번갈아 보여줬는데 다들 감탄하며 급히 휴대폰을 꺼내 촬영하기 바빴다.
그 아름다움과 코스츔 퀄리티는 신데렐라가 마치 브라운관을 찢고 현실에 나온 듯했다.
“우리 팀장님 아름다운 분이시란 건 알고 있었는데…….”
“저 정도였다고?”
“아니, 어째서 평소에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다니셨던 거지?”
“화장 따위 안 해도 예쁘니까? 그리고 보기와 달리 털털한 면이 워낙 강한 분이라…….”
특히 이영애와 함께 일하던 판테온 원화팀. 프로젝트 D 아트팀 전체가 들떠 있었다.
직후 그녀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많이 당황스럽죠? 사실 저도 마찬가지예요. 디즈니 재직 시절에도 안 해본 코스츔을 여기까지 와서 하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떨림 하나 없이, 평상시 이상으로 우아하고 기품 있는 음성이 들려온다.
한 여성 원화가가 중얼거린다.
“이제 보니 영어 할 때 목소리가 굉장히 좋으셨구나.”
“앞으로 우리 팀은 영어만 하는 것으로……?”
원화가들이 타 팀에서 기겁할 소리를 태연하게 나누는 동안에도 이영애 AD의 멘트는 계속 이어졌다.
-제가 무슨 공주병에 걸려서 이러고 나온 건 아니고, 대작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더 관심 좀 받아보겠다고 발악하는 거니 귀엽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분위기를 풀어주는 멘트는 여기까지.
그녀는 당찬 목소리로 외친다.
-넥플과 디즈니의 협업으로 탄생한 콘솔 어드벤처, 디즈니 판타스틱 월드를 지금 공개합니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울려 퍼지고, 흑인 소년 잭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밤하늘을 향해 물기가 가득한 음성을 내뱉는 흑인 소년, 잭의 간절함이 현장에 있던 이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넥플의 사람들도, 그 영상에 한없이 몰입했다.
* * *
“휴우…….”
“고생했어! 정말 잘했어!”
무대에서 내려오는 아내를, 홍민석은 열과 성을 다해 격려했다.
이영애는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
“아니야. 이제 시작인데 뭐. 시연에서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할 텐데…… 그건 그렇고 이것 좀 벗어야겠어.”
“뭘 벗어?”
“발 아파 죽겠어. 구두가 너무 작아서…… 어?”
그러나 그녀는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저기 사인 좀…….”
“사진 촬영도 좀 부탁해도 될까요?”
그녀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이들이 몰려든 것이다.
당혹스러웠지만 어쨌든 게임 홍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질서를 지켜주세요. 저 어디 도망 안 가요!”
홍민석은 그런 아내를 안쓰러우면서도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넥플과 디즈니의 부스 규모는 꽤나 작았다.
가장 시선이 가는 곳은 일렉트로닉 아츠.
“항상 느끼지만…… 저기는 정말 E3에 목숨을 건 것 같아.”
“오면서 봤잖아. 대형 빌딩 전체에 본인들 게임 현수막을 걸어버리는 거. 이 근처 눈에 띄는 광고 포인트를 본인들이 독점하다시피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도 굉장히 많았다.
그에 비하면 바로 근처에 있는 디즈니 넥플 연합 부스는 초라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실시간 방문 상황도 그러냐 하면…….
“줄 서세요! 질서를 지켜주세요!”
……기대 이상의 호황을 누리는 중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게임을 체험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영애는 그 모습에 고생을 보상받은 기분이 들어 들뜬 얼굴로 말했다.
“사람들이 우리 게임에 대해 생각보다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 다행이야!”
“코스츔을 한 보람이 있네.”
“그것도 그렇고, 게임이 워낙 잘 만들어진 덕분이 아닐까 싶어. 저기 봐. 플레이하는 사람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잖아!”
바로 저 모습을 보기 위해 굳이 좋은 직장 나와서 게임 회사에 입사했던 것이다.
홍민석, 이영애 부부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프로젝트 D를 재미있게 즐겨주는 사람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이럴 게 아니라 현장 사진하고 영상을 찍어서 회사 사람들에게 보여줘야지!”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 반응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적극적인 가이드가 없어도 다양한 연령대의 방문객들이 쉽게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방문객이 몰려오고 있었다.
엄청난 폭발력이 없고 그것을 감당할 만큼 큰 부스도 아니지만, 분위기는 남부럽지 않게 좋았다.
홍민석을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만약 판테온이 공개됐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줬을까?’
과연 우리도 <갤럭시 오딧세이> 같은 대작 타이틀과 같은 환호를 끌어낼 수 있었을까?
처음 게임 로고가 떴을 때 엄청난 환호성을 터뜨리던…… 놀랍도록 뜨거운 당시 현장 분위기를 떠올리며.
꾸욱.
홍민석은 주먹을 꽉 쥐었다.
‘우리 게임도 반드시……!’
어느 순간, 가슴 속에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