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66화 (66/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66화

45. 해결 불가능한 골칫거리

모든 사고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터지는 법이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아침부터 면담을 요청하더니 돌발 선언을 해버린 이 남자는 판테온의 클라이언트 파트장이었다.

검은 뿔테 안경 속에 감춰진 희고 반듯한 얼굴.

카이스트 출신이라는 빼어난 학력과 이후의 눈부신 경력! 그리고 스튜디오 내에서도 호평이 자자한 부드럽고 자상한 성격의 소유자!

그런 그가 세상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퇴사 사유를 알 수 있을까요?”

혹시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걸까?

아니면 다른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성태희 씨 때문입니다.”

“…….”

“분명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고, 인간적으로 충분히 신뢰가 쌓였다고 판단을 내리고 고백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더 이상 그녀와 마주치며 일을 계속해 나갈 자신이 없습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게 대체 몇 번째야?’

판테온 팀 내부에서는 물론, 외부에서도 그녀에게 고백했다가 차여서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실제 그중 몇 명은 실의를 견디다 못해 퇴사해 버렸다.

지금 말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별거 아닌 듯 보이지만 이게 생각보다 크지.’

과거에도 이런 전적이 몇 번 있었기에 심각성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 순간 태연은 고민했다.

‘원화팀을 아예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릴까?’

태연은 퇴사를 강력히 만류했다.

당연했다.

지금 클라이언트 파트장 같은 인재는 국내에서 찾을 수도 없고, 그가 퇴사한다면 프로젝트 자체가 크게 흔들리니까.

면담을 마친 즉시 이영애, 홍민석 부부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하고 점심 식사 좀 같이하시죠.]

“어쩐지 요즘 심상치 않더라니…….”

“태희 씨로 인한 피해자가 또 발생했군요.”

홍민석은 흥미로워했고 이영애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태연은 조심스레 제안했다.

“원화팀을 아예 분리시켜 버리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팀 규모가 워낙 크기도 하고 추가 인원 편성도 예정되어 있으니…….”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모두들 지금 스튜디오 분위기를 굉장히 좋아하고 있어요. 이유 없이 업무 공간을 분리해 버리면 다들 크게 당황스러워할 거예요. 이유를 알게 되면 성태희 씨에게 안 좋은 감정이 쏟아질 우려가 있고요.”

“역시 그렇군요.”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때 홍민석이 슬며시 엉뚱한 제안을 한다.

“그러지 말고, 새로운 사람을 소개해주는 게 어때요?”

쏟아지는 시선.

“사랑에 의한 상처는 새로운 사랑으로만 치료할 수 있는 법이죠.”

“나쁜 생각은 아닌데…… 과연 성태희 같은 여자를 지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빼어난 미모와 학력, 활달하고 사랑스러운 성격.

성태희 같은 여자는 흔치 않다.

태연의 비관적인 말에 홍민석이 씩 웃었다.

“체조 여신님 주변이라면 성태희 씨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뛰어난 미모의 재원이 넘쳐날 것 같은데요?”

이영애가 흥분했다.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사실 남자 중에도 최석규 클라이언트 파트장님 같은 사람 찾기 드물잖아요. 성격 좋지, 카이스트 출신이라 학력도 뛰어나 거기에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이 정도면 소개팅 대상으로는 최고 아닐까요?”

“그렇군요.”

좋은 생각이다.

심지어 최석규 파트장은 연봉도 판테온 스튜디오 내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높다.

무려 억대 연봉자니까!

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 * *

그날 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윤아와 영상 통화를 하다가 최석규 파트장과 성태희에게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나에게 소개팅을 부탁하고 싶다는 거야?

“응. 나는 너 말고 사적으로 연락하는 여자가 없으니까.”

그 말에 윤아가 배시시 웃었다.

-오빠가 사람 기분 좋게 만드는 법을 아네.

“……?”

-일단 사진 좀 보내주고,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도 자세히 알려줘.

태연은 얌전히 시킨 대로 했다.

언제나 그랬지만 특히 이 순간은 더더욱 그녀가 갑이었다.

잠시 후.

-마침 내 주위에 적당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연락해 보고 알려줄게.

통화를 마친 태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이런 일로 시간 보내고 싶지는 않군.’

* * *

이영애는 자연스럽게 성태희와 둘만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카페테리아에서.

사소한 이야기를 즐겁게 주고받던 중 지나가듯 묻는다.

“태희 씨는 왜 애인 안 사귀나요? 예쁘고 성격도 좋아서 인기도 많은데요.”

“아…….”

머뭇거리는 그녀는 모습이 왠지 수상쩍다.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바짝 다가가 흥미가 가득한 얼굴로 던지는 질문.

그래도 머뭇거리는 그녀에게 이영애가 채근한다.

“설마 저 못 믿어요? 제가 팀원 비밀을 어디 가서 함부로 떠벌릴 사람 같나요?”

“아니, 그건 아닌데…….”

성태희가 결심한 듯 말했다.

“절대. 그 누구에게도 말씀하시면 안 돼요. AD님한테도요!”

“물론이죠. 여자끼리의 비밀은 하늘이 무너져도 지켜야 하는 법 아니겠어요?”

믿고 의지하는 상사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사실 이런 질문 날아올 때마다 얼버무리는 것도 답답했어.’

그녀는 꽤나 오랫동안 묵혀둔 비밀을 시원하게 꺼내 들었다.

“저 사실…….”

스튜디오로 돌아오던 길.

이영애와 성태희는 유태연과 마주쳤다.

“카페테리아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네. 피디님은 카페테리아 가시는 거예요? 지금 사람 많아서 자리 없을 텐데…….”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1층으로 가야겠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위에 타부서 팀장급 인력들이 가득했다. 하나같이 이 회사의 젊고 유능한 리더급들이었는데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이 냉랭한 표정의 남자, 유태연이다.

‘과연…….’

흘끔 보니 성태희는 유태연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꽃보다 아름다워 수많은 남성들을 뒤흔들었던 그 얼굴에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알고 보면 우리 회사 최고 골칫거리가 바로 피디님이라니까.’

이것으로 희생자가 몇 명이더라?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소문으로 들은 것까지 합하면……?’

이영애는 숫자 세기를 포기하고 한숨만 푹 내쉬었다.

* * *

“피디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디 갈 생각 하지 않고 피디님 옆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윤아가 결국 해냈다!

한동안 어두운 표정이던 최석규 클라이언트 파트장의 얼굴이 세상을 다 얻은 듯 밝아졌다.

아내 덕분에 주요 인력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태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실을 아이디어 제안자인 홍민석, 이영애 부부에게도 전달했다.

“안 그래도 석규 파트장님 얼굴이 굉장히 환해졌더군요. 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어요.”

“정말 잘됐어요! 사실 최석규 파트장님 나가면 우리 팀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잖아요!”

그러나 태연의 표정은 마냥 밝지 않았다.

“매력적인 이성의 존재는 조직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지만, 그 매력이 정도가 지나치면 혼란과 고뇌 역시 동반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또 발생할 텐데 걱정이네요.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으니…….”

홍민석이 진지하게 말했다.

“태희 씨에게 앞으로 너무 예쁘게 꾸미고 다니지 말라고 한마디 해볼까요?”

“……확!”

이영애가 검지와 중지로 남편의 눈을 찌르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태연에게 말했다

“그런데 회사는 더 커질 텐데, 죄다 유부 직원만 채용할 수 없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제 경험상…… 남녀 간의 일은 어떤 수단으로도 막을 수가 없어요. 대처하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죠. 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그 말이 정답이었다.

태연은 자포자기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홍민석은 시원하게 웃었다.

“아무튼 사태가 여기서 마무리 되서 참 다행이네요!”

그러나 정작 사건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 * *

두 명이 각각 면담을 요청해 왔다.

“피디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시스템 기획자 정명주.

“저, 피디님. 아무래도 퇴사해야 할 것 같아서…….”

여성 프로그래머 김현아.

알고 보니 둘이 비밀연애한 지 몇 개월이 됐는데, 어떤 연유로 심하게 싸우고 헤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시스템을 공동 개발하고 회의와 커피 타임을 자주 갖다 보니 관계가 발전했다고 했다.

‘쓰읍…….’

태연은 골치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 모두 태연이 가려 뽑은 각 파트 최고의 인재였다.

평균적인 능력치가 굉장히 높았고 심지어 본인의 파트에서 잠재력이 개방되어 있기도 했다. 당연히 일도 잘한다.

그런데 사귀다가 헤어졌고, 얼굴 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퇴사하겠다니…….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느 한쪽도 놓치고 싶지 않은 인재였다.

그래서 각 팀장들까지 동원해 최대한 붙잡아두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쉽지 않았다.

‘정말 원수처럼 싸웠던 모양이군.’

남녀 관계는 좋을 때는 한없이 좋지만, 나빠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어째 내가 담당하는 팀은 매번 이 같은 일이 한두 번씩 반드시 발생하는군.’

어디선가 사실을 알게 된 시스템 기획자, 정명석이 다가와 말했다.

“현아도 퇴사하겠다고 했다면서요? 제가 빨리 나갈 테니 처리 부탁드립니다.”

“이유가 뭐죠? 상대를 향한 배려인가요?”

“그것보다는 이 팀을 위한 배려죠. 시스템 기획자보다 프로그래머가 훨씬 가치 있지 않습니까?”

씁쓸한 미소.

“그리고 피디님 입장에서도 그편이 훨씬 좋을 텐데요.”

태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부분은 딱히 잘 공감이 안 가네요. 프로그래머든 기획자든 제 입장에서는 비중이 똑같아서요.”

“아…….”

순간 할 말을 잃었던 정명석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제가 깜빡했네요. 피디님은 모든 업무를 굉장히 잘하셨죠.”

“꼭 그런 것 때문은 아닙니다만…….”

그의 얼굴을 보고 태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심을 굳힌 것 같으니 더는 만류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우리 스튜디오의 문은 명석 씨에게는 언제든 열려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

태연은 담담히 말했다.

“명석 씨는 굉장히 좋은 사람이에요. 유능한 개발자고.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 * *

이 같은 문제는 결국 한 명이 퇴사해야 수습이 된다.

정명석이 먼저 퇴사하자 프로그래머 김현아는 퇴사에 대해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후 그녀는 몇 가지 부분에서 바뀐 모습을 보였다.

얼핏, 평상시 모습처럼 보이는 듯했지만 말수가 줄었고, 가급적 남자 개발자들과 많은 대화를 섞지 않으려 했다.

이는 사내 연애로 큰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는 개발자들의 특징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정명석의 자리는 금방 대체됐다.

정명석 못지않은, 프로젝트 완료 경험은 오히려 더 많은 베테랑 시스템 기획자로.

‘역시, 세상에 대체 되지 않은 자리란 없군.’

* * *

시간은 빠르게 지났다.

마침내 넥플 엔터테인먼트의 첫 번째 게임.

프로젝트 D의 출시일이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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