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65화 (65/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65화

44. 화재 진압 전문가

태연의 등장에 엘크로스 스튜디오의 이목이 집중됐다.

태연은 언제나처럼 냉랭하게 말했다.

“지금 즉시 모든 개발 인력은 세미나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그 한마디만 남긴 채 자리를 떠난 태연.

개발자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본부장님 집합은 처음 아니야?”

“혹시……?”

넓은 세미나실이 엘크로스 개발 인력으로 가득 찼다.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마친 강단에 올라가 마이크를 들고 멘트를 시작했다.

“제가 오늘부터 엘 크로스 디렉팅을 맡게 되었습니다.”

“……?”

굉장히 단도직입적인 발표였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던 이들은.

“우와아!”

곧 함성을 터뜨렸다.

그들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태연의 별명을.

소방관.

응급구조사 등등.

작정하고 나서면 어떤 게임이든 수명을 연장시켜 준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들을 지휘해 준다는 것이다.

“1년 동안 버그 및 부족한 부분들을 최대한 보완할 계획입니다. 올해 여러분이 어떤 것을 목표로 작업을 진행하게 될 것인지, 로드맵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프레젠테이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인해 트랜드가 된 진영 컨셉을 안고 갈 생각은 없습니다.”

“대서사시를 만들고 유저는 그 라인을 따라가며 자신만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흐름을 전개시켜 나갑시다.”

“지금은 파티 사냥과 신화 온라인 식 무작위 PVP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있는데, 이 부분도 손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솔로 플레이로 얼마든지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화려한 그래픽과 연출이 최고 장점이니 이 부분을 최대한 살려 봅시다.”

거침없이 새로운 로드맵을 그려나가는 태연의 모습에 개발자들은 전율을 느꼈다.

송재희와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우선 게임 개발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그 동안 송재희의 지시는 탁상공론적이고 뜬구름잡는 내용이 많았다. 실무에 대해 태연만큼 자세히 알지 못하고, 결정적으로 최신 개발 트랜드 같은 것들에 무지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반면 태연은 개발자로서만큼이나 게이머로서 안목이 깊고 사고가 넓었다.

이를 바탕으로 단숨에 큰 그림을 그려 그것을 모두에게 이해시키니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팀별, 파트별 업무 지시 사항이 정리된 문서를 공유했다.

여기서 태연이 한 가지 공지했다.

“시나리오 퀘스트, 연출, 시네마틱, 세 파트를 새로 구성하겠습니다.”

현재 엘 크로스는 크게 시스템, 레벨 파트로 나뉘어져 있고 이 카테고리 안에 다양한 직군의 기획자들이 포지션된 형식이었다.

이 부분을 자신의 작업 스타일에 맞게 손을 보려는 것이다.

“실력 있는 개발자들을 추가 채용할 예정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로드맵 제작에 부합하는 좋은 인재를 알고 있으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채용 시 소정의 혜택도 드립니다.”

* * *

이번 로드맵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판타지 대서사시!

쉽게 말해 게임을 통해 반지의 제왕과 왕좌의 게임 같은 대작 미디어의 감동과 체험을 선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팀 구조를 개편하고 신규 고급 인력을 대폭 영입할 계획까지 밝혔다.

이는 추가 개발비를 대폭 투입하겠다는 뜻이었다. 단순히 버그 정도를 수정하고 끝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대적인 개편을 통해 게임을 더 나은 방향으로 설계, 서비스하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위기의 500억 대작 엘 크로스. 새 총괄 디렉터에 유태연 본부장 임명.]

[스타 개발자 유태연. 과연 엘 크로스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며 비난 여론이 잦아들고 기대감이 치솟았다.

-오오…… 유태연 피디님 등판인가?

└이분 화재 진압 전문가임. 다 죽어가던 게임 살려낸 게 한두 개가 아님! 믿어도 됨.

└아무리 그래도 무작정 믿으면 안 되지. 전임 피디가 싸질러놓은 X이 워낙 푸짐해서 기대보다는 걱정이 많이 되는데…….

기대감만큼이나 걱정도 많다.

그만큼 현재 엘 크로스 상황이 총체적 난국이라는 뜻.

그런데 이후의 조치가 많은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엘 크로스 서비스 중지. 전액 환불 결정!]

이 정도면 작정을 하고 뜯어고치겠다는 소리였다. 또한 넥플 상부에서 태연을 얼마나 신뢰하며 지지하는지 보여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이어 구인 구직 사이트에 대대적인 채용 공지가 업데이트됐다.

이로 인해 게임 업계도 시끄러워졌다.

-유태연 피디하고 한번 일해보고 싶었는데…… 지원해 볼까?

└일이 빡세긴 하지만 정시 출퇴근 보장에 배우는 것도 많고 인센도 잘 준다고 들었음. 난 이미 지원함.

└그래? 그러면 나도 지원해 봐야겠다.

└나도.

* * *

지금이야 꼴이 우습게 되었다지만 엘 크로스 스튜디오는 송재희 피디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곳이다. 무려 500억이나 투자해서!

스펙, 경력…… 업계에서 최고 수준의 개발자들만 끌어모았다는 것이다.

‘그런 것치고는…….’

상태창 수치가 애매하다.

‘특히 관리자급들은 죄다 자격 미달이야.’

스펙과 경력은 역량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지표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맹신하면 크게 다친다.

‘정말 좋은 인력이었다면 게임이 이 지경으로 망가지도록 놔두지 않았겠지.’

고민이다.

어쨌든 열정은 있는 사람이다. 엘크로스에 대해 애정도 있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그랬다. 그런 이들을, 큰 잘못도 안 했는데 자신의 기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방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을 시켜보면서 결정을 내리는 수밖에.’

* * *

김윤아의 올스타 갈라쇼 월드 투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프로그램을 짜고 합동 훈련을 거친 뒤 진행하는 공연이었다.

문제는 돈이었고 김윤아도 내심 걱정하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꽤나 간단히 해결됐다.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의 거대 자본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온 것이다. 투어 도시가 그렇게 결정됐고, 어떤 곳에서는 지상파 방송이 결정될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월드 투어 첫 장소는 도쿄.

아내의 역사적인 공연이니만큼 태연 역시 빠질 수 없는 일이었다.

공연 하루 전.

태연은 연차를 쓰고 도쿄로 넘어갔다.

* * *

“유 상!”

“타키자와 상!”

몬스터 이터의 프로듀서, 타키자와 사토시가 나리타 공항에 마중 나왔다.

휴대폰으로 연락은 자주 주고받았지만 직접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굳게 잡으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여러모로 바쁠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고맙죠! 이번 올스타 갈라쇼 티켓 구매가 굉장히 치열했다던데, 저는 유상 덕분에 VIP 초대권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갈라쇼 멤버 중에는 일본 국민 여동생으로 불렸던 국가대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에서 그녀의 위상이 워낙 굉장했기에 높았기에 공여 티켓은 판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되어 버렸다.

이는 일본에서도 큰 이슈가 되는 중이었다.

“…….”

한창 고속도로를 달리던 그가 슥 물었다.

“유상이 제일가고 싶어 하는 곳은…… 아무래도 그곳이죠?”

“그렇죠. 그곳이죠.”

마주 보며 미소 짓는 두 사람.

잠시 후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성지.

아키하바라였다.

* * *

쇼핑, 저녁 식사와 커피까지 함께 한 뒤 다음 공연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태연은 공연장 근처로 향했다.

밤하늘이 어두웠지만 공연장은 불이 가득하다.

“태연 씨! 여기예요!”

잠시 후, 윤아의 매니저가 마중 나와줬다. 그와 함께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니 최종 리허설 중인 수많은 스태프들과 무대 위의 체조 선수들이 보인다.

그 중심에 김윤아가 있었다.

올스타 전원이 각자의 국가에서 스포츠 영웅, 스타로 대접받는 이들이고 때문에 비주얼이 모두 훌륭하다. 그러나 그 많은 이들 중에서도 김윤아는 홀로 오롯이 빛나고 있었다.

실제 많은 이들이, 스태프뿐만 아니라 보안 요원, 그리고 같은 올스타 멤버들조차 윤아를 대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국가대표 시절에는 언론지와 팬 선정, 가장 아름다운 여자 선수로 꼽힌 전적도 있을 정도였다. 괜히 은퇴 후 CF퀸이 된 것이 아니다.

태연은 한편에 조용히 서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녀의 미모 이상으로 보기 좋은 것은 바로 미소.

위풍당당하게 현장을 지휘하는 그녀의 모습은 평상시에는 보기 힘든 종류의 것이다.

‘내 생각이 맞았어. 이곳이 바로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이야.’

그녀는 무대에 있어야 한다.

단순히 체조의 틀을 벗어나 인간으로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이런 훌륭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그동안 집순이로 지낸다고 얼마나 몸이 근질근질했을까?

“오빠!”

뒤늦게야 태연을 발견한 윤아가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태연은 빙긋 웃어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후로 윤아는 더 기운차게 최종 리허설 현장을 지휘한다.

태연은 그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흠, 이런 구성이로군.’

어느 순간, 손목의 문신이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태연 본인조차도.

* * *

객석이 가득 찬 것도 모자라 방송국과 언론 촬영팀까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마침내 갈라쇼가 시작됐다.

주제는 화합과 평화.

시나리오의 흐름으로 체조의 모든 구성을 이용하여 일종의 극을 펼치는 것이다.

여기에 실제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사용되는 최신 장비들까지 동원됐는데 일본 현지 스폰서 기업들 덕분에 제공받을 수 있었던 물건이다.

“정말 멋진 공연이에요! 제가 생각했던 체조 갈라쇼를 초월한…… 정말 예술적인 극입니다!”

타키자와 사토시는 공연 내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강렬한 영감을 받은 듯 모양인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태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의 갈라쇼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구성을 지켜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조금 더 규모를 키우면 더 멋진 이벤트를 연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갈라쇼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김윤아와 올스타는 보다 새로운 형태의 체조 갈라쇼를 선보였다.

“흑, 정말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타키자와 사토시는 감동에 못 이겨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태연 역시 아내의 열연에 기립 박수를 보내며 한편으로 생각했다.

‘나였다면 온갖 최신 무대 장치를 동원하고, 체조의 틀까지 깨서 새로운 영역으로의 진출을 시도했겠지만…….’

이건 자신의 할 일이 아니다.

체조의 대중화는 김윤아가 평생을 걸고 이루려는 목표였다.

‘윤아라면 분명 내 상상을 넘어선 결과를 이루겠지.’

그녀는 체조 여신이니까.

그날 저녁.

김윤아와 올스타 멤버들, 타키자와 사토시와 함께 공연 뒤풀이를 즐겼다.

“나 없어도 밥 잘 챙겨 먹고 전화 하루에 세 번은 하고 문자는…….”

김윤아는 북미를 기점으로 유럽 등을 순회할 예정이었다. 집을 오래 떠나 있으려니 꽤나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그녀가 특히 강조한 건 바로 이 부분이었다.

“한눈팔지 마!”

다음 날, 태연은 아침 일찍 한국으로 넘어갔고 김윤아와 올스타는 북미로 향했다.

비행기 안에서 태연은 김윤아의 공연 장면을 돌려보며 생각했다.

“체조 플레이어블 캐릭터 각성 퀘스트로 갈라쇼의 성공적인 개최, 이런 걸 넣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어디 기획이라도 한 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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