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62화
41. 상반되는 분위기
[판테온과 프로젝트 D의 실체가 드러나다!]
[판테온은 3년 후, 프로젝트 D는 내년 출시 예정!]
[K-Game에 전 세계 개발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립 박수를 보낸 사연은……?!]
“굉장하죠? 지금 우리나라 게임 커뮤니티가 난리예요!”
이른 아침 카페테리아.
홍민석 AD가 보여준 기사에 태연은 당혹감을 느꼈다.
“기립 박수를 받긴 했지만 눈물을 흘린 사람은 없었던 것 같은데……?”
“중요한 건 기자분들이 피디님에게 굉장히 큰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에 반해…….”
홍민석 AD가 또 다른 기사를 내밀었다.
[넥플 500억 기대작 ‘엘크로스’의 실체. 반전 그 자체?!]
[엘크로스 테스트 결과는 명작으로 시작해 졸작으로 끝난 게임?!]
[넥플. 상상 이하의 테스트 결과에 당혹감을 느끼다?]
[우려를 드러내는 넥플 직원들. 개발비 500억은 정말 회식비에 쓴 걸까?]
“으음……!”
엘크로스와 송재희 피디에 대한 내용은 전반적으로 심각했다. 테스트 내용 유출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넥플 차원에서 경고를 했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테스트에 참여했던 많은 개발자들이 너도나도 익명을 통해 유출글을 올리고 있었고 기자들은 옳다구나 싶어 받아쓰는 중이다.
엘크로스를 기대하던 유저들은 크게 흔들리는 중이었고.
“송재희 피디와 개발팀이 상처받겠네요.”
아무 상관 없는 태연마저 우려가 될 정도로 현재 상황이 심각했다.
홍민석 AD가 어깨를 으쓱했다.
“본인들이 감당해야 할 문제죠. 솔직히 그 친구들 많이 으스대고 다니잖아요. 자기네들이 무슨 넥플의 적자인 양, 귀족, 엘리트 집단인 양.”
“…….”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분명 그런 분위기가 있긴 했었잖아요. 저조차도 얼마나 많은 불평불만을 들었는데요.”
“저는 못 들어봤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피디님한테 그러겠어요? 당장 송재희 피디도 피디님에게 탈탈 털려서 열심히 피해 다니고 있다는 소문이 가득하던데.”
“그런 소문은 또 어디서 퍼진 겁니까?”
“몇 번이나 집무실 방문했고 찾아다니기까지 했는데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왔다면서요?”
“…….”
“심지어 어떤 날은 집무실 안에 있었는데도 문 잠가놓고 없는 척, 돌아가도록 유도하기도 했다고…….”
“……?!”
기가 막혔다.
대체 이런 소문은 어디서 돌아다니는 건지…….
의기양양하게 웃는 송민석을 대신해 이영애가 대답했다.
“이 사람, 이곳에 오고 여기저기 사람 많이 만나고 있어서 뒷소문에 밝은 편이에요.”
“그냥 만나러 다니는 게 아니라 정보 수집, 그리고 인재 발굴 차원에서…….”
송재희가 찾아왔다.
태연은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그와 함께 일식집으로 향했다.
‘기가 많이 죽었군.’
이전의 당당하다 못해 오만하게까지 느껴졌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태연은 말없이 파일첩을 건넸다.
“테스트하고 제 나름대로 정리한 문서입니다.”
“……?”
어리둥절해하며 문서를 확인해 보는 송재희.
그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프로듀서 관점에서 정확히 어떤 부분을 어떤 식으로 수정하는 게 좋을지. 아주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딱히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피디님에게 아무 감정이 없어요.”
더 무서운 말이다.
그러나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송재희였다.
“그러면 어째서 이런 것을……?”
“게임이 아까워서요.”
“네?”
“초반 부분은 분명 잘 만든 게임이었습니다. 아마 초창기 주요 인력 퇴사 이슈 때문에 밸런스가 깨지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그건 1년 정도만 고생하면 바로 잡을 수 있는 문제예요.”
“…….”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묻지 않겠습니다.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고요. 단지 엘크로스…… 제가 보기에 출시 일정을 1년 미루고 그동안 죽어라 뜯어고치면 되살아날 여지가 있습니다.”
태연은 담담하게 고백했다.
“그저 게이머로서,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에 조언 드리는 겁니다.”
멍한 표정의 송재희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뭐…… 이조차도 자존심이 상해 받아들일 수 없다면 저로서도 어쩔 수 없는 문제겠지만요.”
* * *
12월이 시작됐다.
넥플 라이브 본부는 어느 때보다도 바빴다.
대부분 스튜디오가 올해 마지막 대규모 업데이트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틀란시아 전기 역시 마찬가지. 태연은 주기적으로 스튜디오를 방문하여 업무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때로는 회의를 주관하며 테스트 피드백을 전달했다.
그리고 당부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번 업데이트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틀란시아 전기라는, 꽤 오래된 게임의 새로운 부흥기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매출이니 뭐니.
이런 걸로 부담 주고 싶지 않았다.
‘그 부담은 최고 책임자인 나만 안고 있으면 되는 거지.’
개발자들은 내 요구 상황을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 주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잘못되면 선장인 자신에게 있는 거다.
“12월 21일 깔끔하게 업데이트하고 연말은 풍족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합시다.”
의미심장한 발언에 모두가 힘차게 대답했다.
12월 10일.
엘크로스 오픈 베타 테스트가 시작됐다.
-개판이네. 서버 목록도 안 보이고 어찌어찌 들어가도 빵빵 터지고…….
-대기열도 어마어마함. 이거 오늘 안에 들어갈 수 있긴 한 건가?
-아, 서버 또 터짐;
시작부터 사건 사고가 많았는데 이는 주목받는 대형 온라인 게임이라면 대부분 겪는 문제점이다.
아직까지는 유저들도 이해해 줄 수 있는 상황이다.
서버 렉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판테온 내부에서도 이런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지금 문제를 못 잡아서 헤매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라도 가서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그쪽 서버 팀 일주일 째 퇴근도 못 하고 철야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는 사람 있어서 찾아가 봤더니 아주 죽으려고 하던데…….”
서버 프로그래머는 그 중요성이 굉장히 높은 것에 비해 존재감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직군이다.
그런데 사실 그게 좋은 거다.
존재감이 드러났다면 이유는 하나, 서버 렉이나 다운이 발생했다는 뜻이니까.
바로 지금처럼.
-서버 뭐냐. 왜 계속 터지는 거냐?
-이럴 거면 좀 나중에 하지. 서버 최적화도 아직 못한 것 같은데…….
-인던만 들어가면 튕기는 이유가 뭐야?
태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좀 다녀오겠습니다.”
엘크로스 스튜디오에 개발 총괄 손영상 이사가 이미 와 있었다.
개발자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정신없는 모습을 연출 중이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니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태연이 옆에 서자 손영상이 죽어가는 얼굴로 말했다.
“아주 총체적 난국이다. 크래시 해결하면 곧바로 무응답 문제 터지고 바로 서버 렉으로 이어지고…….”
“흠.”
송재희는 서버 팀 자리에서 진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다. 프로그래머들의 얼굴은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계속 서버가 뻗는 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태연은 성큼성큼 다가가 말했다.
“제가 좀 보겠습니다.”
“어?”
“보, 본부장님?”
다들 놀라는 상황 속에서, 태연은 정장 상의를 벗어 한쪽에 걸쳐두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서버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
송재희를 포함, 모두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가운데 손영상이 다가가 물었다.
“너 프로그램 좀 아냐?”
“판테온과 프로젝트 D 포함, 지금까지 만들어 런칭한 모든 게임 기반을 제가 혼자 설계하고 구성한 겁니다.”
어린 시절부터 일인 개발을 해오던 태연이었다.
개발 트렌드에 대한 공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팔찌의 힘을 얻은 시점부터는 빠른 속도로 그 역량이 증가하고 있었다.
몰입력이 최대치에 도달한 순간, 손목의 문신이 빛을 발했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태연을 포함해서.
-타닥, 타다닥……!
이것저것, 의심 가는 부분을 위주로 상황을 확인하던 태연이 문제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금 어떤 이유로 던전 생성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빠르게 이뤄져서 과부하가 발생하고 있는 것 같은데…….”
태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혹시나 했는데 서버 아키텍처 설계가 옛날 신화 온라인 1 초창기 때와 비슷하군요. 한 번 실험해 보죠.”
태연은 개발자들은 처음 보는 사이트에 접속해서 로그인을 하더니 신화 온라인의 핵을 구매, 설치해서 내부 개발자 서버로 실행했다.
그리고 인던에 진입해서 핵을 이용해 플레이를 하는데 놀랍게도 1분 만에 클리어, 재진입 후 방생성이 반복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어……?!”
과부하로 인한 서버 다운!
“아…….”
정적이 흘렀다.
태연이 인상 쓰며 말했다.
“제가 알기로 초창기 신화 온라인 1 때 인던 핵 문제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해서 고생 좀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모두의 시선이 송재희 피디에게 쏟아졌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런 건 단순히 서버 증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아키텍처를 수정해야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우선은 인던 생성에 시간제한, 특정 퀘스트 수락 등 다양한 진입 조건을 걸어 두는 게 좋겠습니다.”
이 외에도 태연은 몇 가지 문제를 빠르게 찾아내서 이슈 해결 방안을 내놓았다.
어느새 모든 개발자들이 모여 내용을 경청하고 있었다.
“이제 문제를 알았으니 빨리 문제점을 해결하도록 합시다.”
손뼉을 한 번 치자 와르르 개발자들이 흩어진다.
의자에서 일어선 태연은 송재희 피디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자리를 떠났다.
엘크로스 OBT 5일째.
서버 렉, 다운 현상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미칠 듯한 대기열은 여전했는데, 이 문제에 대해 유저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막상 게임 내 돌아다니는 유저는 그렇게 많지도 않은 것 같은데 대기열이 왜 이렇게 많아?
└내가 보기에도 그럼. 인던 파티 신청창 인원 보면 그리 많지도 않음.
└내가 보기에 서버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일단 유입 인원 통제하며 처리 중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단순 조작일 확률이 높음.
└대기열 조작을 왜 함?
└게임 엄청 흥행 중인 것처럼 보이려고. 그게 아니면 서버 자체 수용 인원이 애초부터 많지 않았을 수도 있는 거고…… 개발자만 알겠지!
더불어 또 다른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반전 게임이라더니, 진짜 틀린 말 하나도 없네. 시작은 연출도 좋고 디테일도 뛰어나서 명작 향기를 풍기더니 갈수록 졸작임.ㅋㅋㅋㅋ
└NPC 성격도 계속 바뀌도 시나리오 개연성 오류도 심각하고…… 제일 큰 문제가 전투가 재미없어!
└법사 광역 스킬 사용 시 드레인은 왜 집어넣는 거냐? 안 그래도 물몸인데 스킬 쓸 때마다 몹들이 공격 상태로 딸려 와서 발동하기도 전에 죽어버림;;
└게임 하면서 순간적으로 신화 온라인 3편 하는 줄 알았다.; 아무리 신화 온라인 개발자들이 만든 게임이라도…… 그래픽 빼고 다 비슷하네 그냥;;;
게임 후기만 보면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다.
초반 분위기만 보면 결과는 명확했다.
“엘크로스 망할 것 같은데……?”
“망겜의 향기가 벌써부터 진하게 풍기네. 시작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사내 테스트 당시에 지적했던 거, 고쳐진 게 거의 없어. 수정한 것도 이상하게 해놨고…….”
주위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태연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