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58화
40. 반전(2)
최근 김윤아는 갈라쇼를 준비 중이었다.
그것도 전 세계 체조 레전드들을 초청하는 올스타 갈라쇼를!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했던 체조 퀸이 기지개를 켜니 온갖 관심이 쏟아진다. 마치 유명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였다.
태연은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그냥 그렇구나. 수긍했다. 그리고 내조를 시작했다.
식단부터 생활 리듬까지.
모든 것을 그녀를 위해 맞췄다.
매니저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그 같은 반응에 오히려 김윤아가 물을 정도였다.
“오빠는 궁금하지도 않아? 내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태연은 담담히 대답했다.
“체조하던 사람이 다시 체조를 하겠다는데 이상하게 여길 일은 아니지.”
그런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하니 자연스레 납득할 뻔했던 윤아였다.
“그래도 이유 정도는 물어봐 주면 안 돼?”
“이유가 뭐야?”
“…….”
“왜?”
“유태연 씨 아니랄까 봐 너무 태연하게 반응하니까 맥이 빠져서 그렇지.”
윤아는 한숨을 풋 내쉬며 말했다.
“이유를 말해주자면…… 오빠한테 자극받아서 그래.”
“나한테?”
“오빠는 회사와 집안일 두 가지 모두를 잘하잖아. 굉장히 열정적이고.”
그랬던가?
당연하게 생각해 왔기에 특별하게 여겨본 적이 없던 일들이었다.
그런데 윤아는 조금 특별하게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은퇴했다고 아무 목표도 없이 놀고 있는 내 자신이 배부른 돼지처럼 느껴지더라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일단 태연은 말을 경청하기로 했다.
“이대로는 오빠 보기 민망하다는 생각에 뭔가 하기로 했고, 자연히 이번 갈라쇼 개최로 결론이 나게 된 거지.”
“좋은 생각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응. 확실히 너 요즘 활기가 생겼어. 인터넷 반응 찾아보니 팬들도 기뻐하더군. 덕분에 나도 기분이 좋아지고.”
“오빠는 성가시지 않아? 나 신경 쓴다고 이래저래 피곤할 일 많아졌을 거 아니야.?
“천만에. 오히려 재미있어.”
“재미있다고?”
“응. 즐거워하는 너를 지켜보는 것도, 그런 너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는 것도.”
태연은 작게 미소 지었다.
“그 모든 것이 즐겁고 행복해.”
“…….”
“그러니까 나한테 미안해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해. 갈라쇼든, 방송 활동이든, 후임 양성이든.”
“저, 정말?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돼?”
“당연하지.”
“오빠가 도와줄 거야?”
“그래. 그러니까 걱정 말고 무엇이든 도전해 봐. 참고로 나는 배부른 돼지도 귀여워서 좋지만 활기차게 움직이는 돼지도 사랑스럽더라.”
화사하던 김윤아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뭐야, 결국 나는 돼지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화난 돼지도 매력 있군.”
“이이…… 야! 유태연!”
* * *
태연은 다시 판테온 스튜디오에 복귀했다.
모두 함께 대회의실에 모였다.
그동안 작업한 맵과 오브젝트들을 엔진에 띄워 확인해 보려는 것이다.
홍민석 AD가 씩 웃으며 말했다.
“소개합니다. 첫 번째 판테온입니다.”
빔 프로젝트를 통해 결과물이 비춰진다.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신들의 도시!
대지는 세계수, 이그드라실의 뿌리와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앙에는 메인 관제탑, 기계의 신이 통제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우뚝 서 있다.
“판테온은 여타 게임에서 도시 역할을 하는 곳의 명칭이기도 합니다. 오픈 베타 스펙은 총 다섯 개의 판테온이 업데이트될 예정이고, 크기는 15X15㎞로 통일되며 각각 다섯 개로 나뉘는 섹터는 신화 민족의 특성을 담게 됩니다.”
쭉 이어지는 프레젠테이션.
실제 엔진 위에 얹혀진 모습을 처음 보는 이들도 있었기에 모두가 신기한 듯 화면을 주시한다.
“첫 번째 필드, 아니, 판테온의 작업 진척도는 80%로, 아직 외주 작업 중인 그래픽 리소스가 도착하면 곧장 폴리싱 작업을 통해 다음 달 말까지 100% 완성할 예정입니다.”
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아주 훌륭합니다!”
“와아아아!”
그것을 시작으로 개발자 전원이 힘껏 박수를 치고 함성을 터뜨린다.
프로젝트 판테온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6개월 조금 넘었는데 벌써 거대한 필드 하나가 완성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퀘스트는 중앙 통제 센터,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서 오더를 내리는 방식입니다. 때문에 UI 역시 SF 디자인 형식으로 제작했습니다. 퀘스트 보상 역시 이를 통합니다.”
그 말에 유명한 명대사 하나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클라크의 그 말을 다양한 형태로 응용해 볼 생각입니다.”
“아주 멋진 생각이군요. 누구 아이디어죠?”
시나리오 기획자 백영훈이 슬며시 손을 치켜들었다.
“제가 SF 매니아거든요.”
“멋진 아이디어입니다. 그걸 최대한 살려보도록 하시죠.”
“넵! 감사합니다!”
퀘스트를 비롯한 다양한 시스템도 이미 적용된 상태였다.
채팅, 상점, 경매, 등등.
“필드 간 이동 시에는 차원 이동 기술, 비프로스트를 통해 우주와 행성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과정을 빠르게 보여줄 예정입니다. 이 부분은 아이디어가 최근에 나와서 현재 작업 진행 중이니 영애 팀장님의 원화로 대신하겠습니다.”
화면이 바뀌자 탄성이 터져 나온다.
“와.”
“끝내준다.”
“이건 그냥 예술이네.”
무지갯빛이 아름다운 은하를 가로지르는 장면이었다.
누구의 감탄사처럼…….
‘예술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영애는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극찬에 민망한 듯 웃고 있었다.
“그러면 계속해서…….”
이어 프로젝트 D 회의를 진행했다.
판테온에서는 원화 팀장이었던 이영애가 이번에는 아트 디렉터로서 프레젠테이션을 주도했다.
“현재 60% 정도 완성됐어요.”
“첫 번째 필드를 말하는 건가요?”
“아니요. 전체 완성도요.”
“……!”
태연은 깜짝 놀랐다.
“아니, 벌써 그 정도까지……?”
“기존 리소스를 최대한 재활용하고, 꼭 필요한 것만 리터칭하는 방식으로 ‘조합’ 중이잖아요. 피디님 덕분에 디즈니에서 각종 리소스들을 충분히 제공받고 있어서 작업이 수월해요.”
거기에 40명으로 늘어난 전문 인력이 매진하고 있으니 일 진행 속도가 빠른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나머지 40% 작업이 조금 오래 걸릴 거예요.”
“디테일 작업인가요?”
“네. 각기 다른 곳에서 제작된 리소스를 프로젝트 D에 맞게 통일시키는 작업도 필요하고…….”
사업팀, 라이브 본부 프로듀서 회의까지 연이어 마치고 나니 어느새 점심 시간이었다.
‘오전에는 회의만 하다가 끝났군.’
항상 이런 건 아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오늘은 그나마 이 정도에서 그쳤지, 재수 없으면 하루 종일 내부, 외부 회의와 미팅만 다니다가 하루가 다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날은 무조건 야근 확정이었다.
못다 한 개발 작업을 쳐내야 하니까.
‘오늘은 조금 바쁘게 움직인다면…… 일찍 퇴근할 수 있겠군.’
잠시 행복한 꿈을 꿨다.
[안녕하세요. 유태연 본부장님. 잠시 지나가던 길인데…… 잠깐 뵙고 인사드려도 될까요?]
오늘따라 옛 지인들은 또 왜 이렇게 방문 요청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인연이 있고 종종 소통도 하는 사람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혹여 어떤 고민을 안고 왔을지도 모르니…….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대화를 잠깐 나눴을 뿐인데 오후 시간이 휙 지나가 버렸다.
‘퇴근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두 시간.’
일반 직원과 달리 태연은 하루에 꼭 쳐내야 할 업무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프로듀서니까. 본부장이니까. 대표니까.
‘그래도 나쁜 시간은 아니었어.’
이제 보니 다들 걱정이 돼서 찾아온 거였다.
-피디님. 요즘 괜찮으신 거죠? 요즘 아틀란시아 전기 매출 감소 관련 안 좋은 소리들이 너무 많아서…….
사실 신경도 못 쓰고 있던 사실이었다.
한가하게 여론을 신경 쓸 시간이 없었으니까.
-아틀란시아 전기 매출 감소…… 이대로 괜찮은 거냐?
-게임은 안 해봤지만 매출 12% 감소…… 이거 심각한 거 아님??
-유태연 스타 개발자니 뭐니 잘난 척 잔뜩 하더만…… 게임 말아먹네.
악의적인 여론이 굉장히 많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개중에는…….
-지금 비난하는 사람들은 진짜 게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임. 계속 문제가 제기되던 유료 아이템 판매를 한두 개도 아니고, 대거 중지시켰으니 당장은 감소하는 게 당연한 거임. 이번 패치가 워낙 갓 패치라 다음 업데이트 이후부터는 상황이 변할 거다.
흐름을 정확히 읽고 태연을 대변해 주는 이들이 많았다.
바로 아틀란시아 전기의 오랜 유저들.
하락세가 심화되고, 게임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었을 때도 꿋꿋하게 활동을 했던 이들이었다.
툭하면 게임 운영팀과 개발팀을 비난하던 그들이 지금은 앞장서서 변호하는 것이다.
‘외부의 여론 따위는 신경 쓸 필요 없어. 정말 중요한 건 우리 게임을 진심으로 즐겨주는 유저들의 의견이지.’
그래서 태연도, 아틀란시아 전기 개발팀과 운영진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의 지지가 있기에.
유저들의 의견과 반응이야말로 무엇보다도 확실한 지표였다.
‘다음 주 월요일이 윤아의 갈라쇼니 그날 작업 분량까지 미리 끝내야겠어.’
타이핑 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 * *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다.
“안녕하세요. 유태연 본부장님. 송재희입니다.”
목요일 이른 아침.
갑자기 송재희가 찾아왔다.
손영상 이사가 자신의 후임으로 생각하고 스카우트해 온 카이스트 후배이자 신화 온라인의 주역!
‘이 사람이 바로 스타 개발자 송재희 PD.’
지금은 5년째 500억을 들여 초대형 MMORPG 엘크로스를 개발 중인 프로듀서이기도 했다.
“오늘이나 내일 저녁. 식사 같이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정중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일단 보는 눈도 있고…….’
태연은 정중하게…….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가 당분간은 계속 바쁠 예정이라서요.”
“……네?”
거절당할 걸 예상하지 못했던지 당황한 얼굴로 눈을 끔뻑거리는 송재희.
내심 긴장하며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태연은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말했다.
“제 안 사람이 다음 주 월요일에 갈라쇼를 합니다.”
“아…….”
“그래서 화요일까지는 바쁩니다.”
아니, 갈라쇼 월요일에 끝나는 거 아닌가?
왜 화요일까지……?
이런 시선을 눈치챈 듯 태연이 부연 설명했다.
“집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손님들을 초청했는데 그들을 위한 파티가 화요일에 열릴 예정입니다.”
“…….”
“다음 주 목요일도 안 되고, 금요일…… 음, 저녁은 이미 선약이 있으니 점심 식사 같이 하도록 하죠.”
송재희는 하마터면 큰 소리로 항의할 뻔했다.
아니, 뭐가 이렇게 바빠?
뭐 다 안 된대?!
“그러면 다음 주 금요일 점심 식사라도…….”
“네. 그러면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일정을 기록하는 태연의 모습에 송재희는 웃지도, 화내지도 못했다.
그렇게 어설픈 얼굴로 도망치듯 떠나는 뒷모습에……
“으흐흐…….”
“크큭.”
주변 사람들은 애써 소리 죽여 웃었다.
태연은 그들이 웃는 이유를 알지 못해 고개를 갸웃하고는 언제나처럼 업무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