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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57화 (57/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57화

40. 반전(1)

금요일 저녁.

아틀란시아 전기 개발자 회식이 진행됐다.

“어색하지만. 여러분이 요청하셨으니 한 번 해보겠습니다.”

모두 앞에 선 태연은 헛기침을 한 번 터트리고 외쳤다.

“아틀란시아 전기를…… 위하여!”

“위하여!”

왁자지껄 들뜬 분위기.

“피디님! 제가 한 잔 따라 드려도 되겠습니까?”

“저도……!”

다들 적극적으로 다가오니 태연도 거부하지 못하고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들 작정을 한 모양이군.’

자신이 술에 잔뜩 취해 흐트러지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오늘쯤은…….’

의도는 알지만 넘어가 주기로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회식 아닌가?

그런데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술에…… 안 취하는데?’

신체 컨디션을 항상 최고로 유지시켜 주는 이 마법의 팔찌의 영향으로 보인다.

배는 부르지만 정신이 흐트러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이런 기능이 있었군. 몰랐는데…….’

사정을 모르는 개발자들은 놀랄 뿐이었다.

“벌써 몇 병 드신 것 같은데…… 끄떡없어!”

“주량이 굉장한데?”

온갖 질문이 쏟아진다.

“이번에 매출 대박 나면 인센티브도 받을 수 있는 겁니까?”

사실 매출이 크게 하락세를 겪으며 일반 개발자들은 인센티브를 받지 못한 지가 꽤 오래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도 좋고 태연은 공평하게 인센티브를 배분해 주기로 정평이 나 있으니 기대감을 갖는 것이다.

모두의 시선 속에 태연은.

“당분간은 매출이 크게 내려갈 테니 인센티브는 받기 어려울 겁니다.”

예상외로 게임 매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박명훈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판매를 중지한 유료 아이템이 많잖아요.”

“아……!”

“제 생각에 아마 15%는 날아갈 거예요.”

“…….”

급격히 조용해진다.

거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기획자 한 명이 반문했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돌아왔으니 손실 부분은 충분히 메꿀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게?”

“최고 동접자 50만 명 찍었잖아?”

“오기 전에 확인해 봤는데 46만 명 수준이었어!”

PC게임 동접률이 이 정도라면 그야말로 굉장한 수치였다.

박명훈이 고개를 저었다.

“점프 이벤트로 유료 아이템을 많이 풀었잖아요. 결제율이 어느 정도 올라가긴 하겠지만 그걸로는 어림도 없어요. 대다수 복귀 유저들이 관망 태도를 취할 테니까요.”

“그, 그러면 안 좋은 거 아니에요?”

“매출이 그렇게 깎여 버리면…….”

분위기가 급격히 시들어간다.

조용히 지켜보던 태연이 나섰다.

“처음부터 예상했던 수순이었습니다. 우리 게임은 이제 막 시험대에 오른 것뿐이니까요.”

지금 당장은 정신 차린 듯 보이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어?

이런 의문에 대해 꾸준한 모습으로 증명해야 한다.

우리는 정말 달라졌고, 너희들이 다시 돈과 시간을 쓰며 몰입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아무리 그래도…… 매출이 떨어졌는데 피디님에게 불리한 거 아니에요?”

누군가의 걱정이 가득 담긴 말.

다들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내부에 태연을 싫어하고, 당장에라도 끌어내리고 싶어 안달하는 적이 많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당장이야 공격이 들어오긴 하겠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동접자가 꾸준히 유지되고 넷상에서 긍정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면 결국 매출을 올라갈 테니까요.”

그렇게 될 거라도 믿고 버티는 것 외에 당장 방법은 없다.

박명훈이 씩씩하게 말했다.

“정말 생각이 있는 인간이라면 동접자 수치 보고 알아서 입 다물겠죠. 나중에 매출 급상승하는 거 보고 개망신당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웃음이 터져 나온다.

태연은 언제나처럼 냉랭한 얼굴로, 그러나 굉장히 듬직하게 확언했다

“여러분은 아무 걱정 말고 다음 업데이트만 잘 준비하시면 됩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 아마 다음 분기 업데이트부터 인센티브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예정대로 태연은 아틀란시아 전기 임시 PD 자리에서 물러섰다. 그 자리를 박명훈이 대체했다.

“1년 동안의 활약이 중요합니다. 업데이트, 유지 보수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말고 맡기십쇼!”

“어느 정도 업무가 익숙해질 때쯤 다른 라이브 게임 서포트 업무를 배당해 드리겠습니다.”

PD 자리에서 물러섰다고 책임까지 회피한 것은 아니다.

이번 업데이트를 태연이 진행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리고 PD 자리에서 물러섰지만 태연은 여전히 라이브 본부장이었다.

* * *

첫달.

[아틀란시아 전기, 동접률은 오르고 매출은 12% 감소!]

예상대로, 첫 달 매출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유진성 회장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선전한 거 아닌가 싶은데.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해?”

집무실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손영상 이사가 먼저 대답했다.

“선방한 거 맞습니다. 이 정도면 대단한 거예요.”

“사업팀에서는 사실 17%까지 예상했었습니다만…… 이 정도면 진짜 굉장한 수치군요.”

이태영 이사는 씩 웃었다.

“지금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다음 분기 업데이트 직후부터는 매출이 수직 상승 할 겁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래.”

유진성 회장은 아틀란시아 커뮤니티에 접속해 유저 반응을 모니터링 중이었다.

“하도 욕밖에 없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의도적으로 관심을 끊고 살았는데…… 이거 참 재미있어.”

비서실에서 커뮤니티 반응을 모아 정리해 준 게 있었지만 유진성 회장은 직접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생생한 반응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체 개발 게임의 반응을 직접 확인하는 건 본래 유진성 회장의 취미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돈플이니 뭐니, 온통 욕 천지라 정신건강을 위해 자제했지만.

“……그쪽 반응은 어때?”

“짐작하시지 않습니까? 벌써부터 엉덩이가 들썩들썩…… 꼬투리 잡았다고 아주 난리 났습니다.”

“우리 사업팀장도 유 피디가 돈 그렇게 썼으면서 매출은 오히려 떨어졌다고,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며 열을 내더군요.

유진성 회장이 찡그린 얼굴로 물었다.

“그런 놈 왜 데리고 있어?”

“이놈이 굉장한 마당발이라 이곳저곳 걸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근래에는 송재희와 자주 어울리는데 아주 재미있는 정보를 많이 알려주더군요.”

“송재희 PD? 그 돈 잡아먹는 귀신?”

두 사람의 시선이 손영상에게 향했다.

느긋하게 차 향을 즐기던 손영상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저를 보십니까?”

“손 이사 네가 데려왔잖아! 아끼고 일 잘하는 후배라며…….”

“아…….”

“아? 어디서 이제야 떠오른 척이야? 5년 동안 그놈이 쓴 돈이 얼만지 알아?”

“얼맙니까?”

유진성이 이태영을 바라본다.

“무려 500억입니다.”

“오호…….”

흥미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손영상.

그리고 빙긋 웃으며 말한다.

“제 잘못이군요. 사죄의 의미로 사퇴를…….”

“시끄러워 인마! 어딜 이때다 싶어서 도망치려고…… 넌 인마 내가 100살 넘을 때까지 일 시킬 거야!”

“…….”

시무룩한 손영상의 얼굴에 이태영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아무튼 송재희, 이 친구가 사내 디렉터들을 규합 중인데 나름 손영상 라인이라고, 힘깨나 쓰는 모양입니다.”

“그놈의 파벌…… 알면서 놔두는 이유가 뭐야?”

“일단, 500억 건에 대해서는 애초 그 정도 지원해 주는 조건으로 데려왔던 겁니다. 네로 소프트, 신화 온라인의 주역이니까요.”

“신화…… 아, 그랬지. 맞아. 기획팀장이었던가?”

“개발 당시에는 기획팀장이었고, 런칭 후 2년 만에 디렉터 자리에 올라 매출을 끌어올렸던 유능한 친구입니다.”

대한민국 게임사에서 가장 흥행한 게임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대부분은 ‘신화 온라인’을 예로 들 것이다.

핵앤 슬러시의 MMORPG로, 네로 소프트를 MMORPG 게임 명가이자, 넥플 최대 라이벌 회사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지금이야 그 무시무시한 상업성 때문에 대한민국 게임계의 병폐 취급을 하지만 어쨌든 대박 게임인 것은 분명하다. 그걸 만든 주역이었으니 큰 조건을 걸고 데려왔던 것.

“대체 5년 동안 뭐하고 있는 거야? 게임 왜 안 내?”

“게임은 계속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퀄리티에 대한 집착이 심해서 외국 AAA급 콘솔 타이틀 수준으로 만들겠다며 이를 갈고 있더군요. 실력은 확실한 친구입니다.”

“오호, 그래?”

“문제는 정치질인데…… 이 부분은 사실 제 영향이 큽니다.”

“무슨 영향?”

“카이스트 컴퓨터 공학과 직속 후배라 대학 시절부터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실력과 리더십, 야망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죠. 기반만 마련되면 큰일을 할 수 있는 친구라 여겼습니다.”

“뭘 그렇게 빙빙 돌려? 그냥 차기 개발 총괄 이사 감으로 여기고 있었다고 말하면 되지.”“

“어허…….”

손영상은 이태영을 노려보고, 유진성 회장은 어처구니없어 손영상에게 한마디 했다.

“미친 거 아니냐? 누구 마음대로 차기 개발 총괄이야?”

“그럴 깜냥은 충분히 있는 놈입니다.”

“태연이보다도?”

“…….”

“개도 라이브 본부 총괄하며 신규 프로젝트도 두세 개 동시에 개발하고, K월드 그룹과 디즈니 같은 거대 회사 중역들에게 일 잘한다고 인정받고…… 그럴 수 있어?”

“아니, 솔직히…… 태연이 그 녀석이 이상한 겁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무슨 직장의 신도 아니고…….”

“아무튼 그 정도는 아니라는 거잖아. 송재희가.”

“뭐, 그렇죠?”

유진성 회장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참고로 난 태연이 아니면 싫다. 개발 총괄이든, 사업 총괄이든…….”

눈이 가늘어진다.

“넥플 대표이사든.”

“……!”

“으음.”

침음성을 흘리는 두 이사.

손영상이 한숨 쉬며 말했다.

“송재희에게도 기회 한 번 주시면 안 됩니까? 그 녀석이 뭐를 위해 이곳에 와서 지금까지 달렸는데…….”

“보여준 건 없잖아?”

“곧 보여줄 겁니다. 게임이 이번 크리스마스에 출시될 테니까요.”

“엘크로스 말이지?”

“네!”

“…….”

“제 얼굴을 봐서라도 부탁합니다.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엘크로스가 역대급 매출을 낼지도…….”

“넌 그렇게 보고 있다는 거지?”

“네!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

고심하던 유진성 회장이 흔쾌히 수락했다.

“좋아. 어차피 태연이 그 녀석은 시킨다고 순순히 말을 들을 것 같지도 않아. 네 말대로 그만큼 개발 역량과 리더십이 있다면…… 그걸 증명해낸다면 못 할 것도 없지.”

“제가 말하고 싶은 것도 그겁니다. 무엇보다도 태연이는 아내가 자기 인생에 최우선인 녀석입니다. 지금 본부장 일도 얼마나 하기 싫어하는데…… 개발 총괄이니 넥플 대표니, 그런 거 맡기면 퇴사하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이태영 이사도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성 회장도 동의했다.

“그게 문제란 말이야. 뭐…… 그러면 좋아. 기회는 한 번 주겠어. 단, 네 말대로 확실히 능력을 증명해야 할 거야.”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대신 전처럼 이상한 짓 좀 못 하게 해. 쓸데없이 사내 테스트 주도했던 일 같은 거 말이야.”

“아…… 그렇게 하겠습니다.”

“게임 개발자면 게임으로 보여주라고. 알았어?”

“네!”

두 이사가 나가고 홀로 남은 유진성 회장이 중얼거렸다.

“하, 태연이 그 녀석. 야심만 더 컸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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