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56화
39. 업데이트 완료
아틀란시아 전기 업그레이드 당일.
이른 아침부터 관련 커뮤니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몇 시간 남았지?
└10시 오픈이니까…… 딱 한 시간 남았네.
└한 시간은 무슨…… 두고 봐라. 분명 4대 명검 들어갈 거다.
└라떼는 3대였는데…… 어느새 하나가 더 늘었어??
└임시 점검, 긴급 점검, 정기 점검…… 그리고 또 하나는 뭐임?
└연장 점검.
└아……;
└이번에도 예외는 없을 거다. 왜냐면 넥플 게임들은 늘 그래왔으니까!
서버를 24시간 운영해야 하는 온라인 게임 특성상 주기적은 점검은 필수적인 일이다. 이 부분은 유저들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예정에도 없는 잦은 점검과 계속되는 연장 공지로 짜증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틀란시아 전기가 특히 이런 것이 심한 게임이었다.
MMORPG 특성상 새로 적용되는 리소스 양이 워낙 많다 보니 나름 충분한 준비를 했음에도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업데이트 직후, 스트레스 없이 게임 즐기고 싶다면 최소 일주일은 접속하지 말고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농담도 돌았다.
그런데.
-서버 오픈. ㄱㄱㄱ!
└헐, 정말? 정말 정시에 오픈했어? 연장 안 하고???
└일단은 그렇긴 한데…… 두고 봐야지.
└꼭 이러고 무슨 일이 생겨서 긴급 점검 들어가던데…….
놀랍게도 정시에 오픈했다!
놀랍긴 하지만 유저들은 이 정도로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제때에 오픈하는 척, 갑자기 이슈가 터져서 긴급 점검, 이어 연장 점검 순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굉장히 자주 목격했기에!
하지만 놀랍게도 이후로는 점검이 없었다.
심지어 평소 동접 인원보다 배는 많은 유저들이 동시 접속했음에도 서버가 아무 이상이 없었다.
버그도 발생하지 않았고…….
-뭐임? 게임이 이상한데? 내가 아는 아틀란시아 전기가 아님.;;
└새로 업데이트 맵 돌아다니고 있는데…… 일단 그래픽 퀄리티부터가 확실히 다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정말 내가 알던 그 게임이 아닌데……?;;
이런 일들에 놀라는 것도 잠시, 곧 유저들의 관심은 뭔가가 많이 바뀐 새 업데이트 콘텐츠로 향했다.
* * *
“업데이트 아무 이상 없이 완료했습니다!”
서버 팀장의 외침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와, 아틀란시아 전기 개발자 된 이후 업데이트 순조롭게 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아무 이상 없다니 오히려 기분이 이상하네. 그동안 업데이트 때마다 꼭 무슨 사고가 터지곤 했었잖아.”
“아직 몰라. 긴장하지 말고 지켜봐야 해. 언제 어디서 예상치 못한 이슈가 터질 수도 있어.”
확실히 아직은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태연과 박명훈 디렉터 역시 진지한 얼굴로 상황을 주시 중이었다.
서버 팀장이 다가와 태연에게 말했다.
“지금 동접자가 평상시 세 배예요.”
“……!”
휘둥그레지는 태연의 눈동자.
옆자리의 박명훈도 관심을 갖고 바라본다.
“정확히 145,667명. 굉장하죠?”
“…….”
“제 생각인데, 오늘 하루 서버 상태가 이대로 유지되고, 업데이트 내용에 대해 좋은 소문이 퍼지면 이 수치에서 몇 배로 더 증가할 거예요.”
태연은 그 말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는 MMORPG의 특징 때문이다.
이 장르에 한 번 깊고 진하게 빠져 본 유저들은 이후 다른 게임을 즐기더라도 관심은 항상 신규 MMORPG에 쏠려 있다.
그들의 허기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이 장르뿐이라는 것이다.
아틀란시아 전기는 굉장히 많은 유저 수를 보유했던 한국 최고의 MMORPG 게임.
이후 네로 소프트 신화 온라인 비즈니스 모델을 따라가며 수많은 유저들이 실망하고 떠났지만 계정까지 지운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시 좋은 게임이 된다면 언제든 돌아올 준비가 되어 있는 과거의 플레이어들!
그들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태연은 떨리는 내심은 애써 숨기며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정말 그렇게 됐으면 좋겠군요.”
옆에서 박명훈이 심정을 다 안다는 듯 미소 짓고 있었다.
늦은 오후.
그러니까 정확히 오후 여덟 시를 기점으로 동접자가 20만 명을 돌파했다.
태연은 퇴근을 지시했지만 개발자 전원이 자진해서 남아 일을 하며 상황을 체크했다.
‘제발 이 상황이 내일 오전까지 이어져야 할 텐데.’
* * *
-미쳤다. 차원 침공이라니…… 이렇게 되면 공공의 적에 맞서 두 세력이 연합해서 대적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가?
└회사 퇴근하자마자 바로 PC방으로 와서 플레이 중인데 몰입감 진짜 오진다. 시네마틱에 연출에…… 진짜 정신없이 게임 하는 중.;
└난 다른 것보다 위상변화랑 몹 AI 알고리즘 변경이 신기하네. 중간에 공성전 이벤트 이후 멀쩡하던 영지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 몬스터 소굴 인던으로 바뀌는 과정이 정말 신기하더라. 딴 게임에서야 많이 했는데 이게 우리나라 게임에 적용되니 느낌이 참……;;;
가장 극찬받은 것은 바로 레이드 콘텐츠!
페이즈 1 때까지는 패턴이 다채롭긴 해도 어쨌든 정해진 틀을 못 벗어난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페이즈 2부터는 유저의 행동 패턴을 학습한 뒤 그에 걸맞은 대응을 하여 패턴을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정말 살아 있는 생명체와 싸우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번에 적용된 유저의 스킬과 마법 아이템을 복사, 그 기능을 학습해 활용하는 기능은 정말이지…….
-이러면 세팅에 따라 행동 패턴 자체도 바뀌게 되는 거잖아?;;;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길드원들끼리 모여서 저거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잡을 수 있는지 연구 중;;
└레이드 이렇게 박 터지게 해본 건 오랜만인데…….
└아니, 개발팀……안 그랬잖아?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디렉터가 유태연으로 바뀌었음. 그리고 그 사람이 외부에서 유능한 개발자들을 대거 영입해 왔다고 하더라.
└그 말 들으니 납득이 되는군. 몬스터 이터 때 익힌 노하우를 이번에 적용시켰나 보네;;;
유저들을 열광케 만들었다.
그 다음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부분은 지적이 많았던 부분은 일부 유료 아이템의 삭제.
유료 버프니 강화 주문서니 하는 것들.
-진짜 어이가 없지. 아니, 사냥했으면 골드나 일반 아이템이라도 얻을 수 있는 게 정상 아니냐? 그런데 그런 걸 얻고 싶으면 현금으로 캐시 주문서를 사라는 게 말이 됨?
-유료 버프도 정말…… 이거 없으면 파티 사냥이나 레이드도 못하고…… 내가 이거 보고 어이없어서 접었었지.
한편으로 아쉬움을 산 것도 있었다.
-레어 아바타는 못 없애나 보네. 사실 게임 하면서 돈 은근히 많이 들어가는 게 아바타 합성해서 레어 아바타 파츠 완성하는 거였는데……
└이거 없애면 이미 큰돈 들여 능력옵까지 다 맞춘 사람들은 뭐가 됐냐?
└바라는 것도 많다 정말…….
└뭐가 바라는 게 많아? 이런 거 없어도 돈 잘만 벌고 있는 게임 많음. 진짜 MMORPG로 되돌리겠다면 유료 아이템 싹 다 없어고 정액제로 전환시켜야지. 와우처럼 특정 레벨까지는 무료로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이래저래 많은 많았지만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태연과 개발자들은 뜬 눈으로 업데이트 첫날을 보냈다.
밤샘 대기를 한 것이다.
시간은 오전 아홉 시.
잠시 고민하던 태연이 말했다.
“전 인원, 교대로 오전과 오후, 두 시간 동안 각각 교대로 수면을 취하도록 하죠. 회사 샤워실과 수면실을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팀장들이 각 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밤샘을 했다지만 평일이었기에 다음 근무도 이어가야 했다.
그것이 직장인들의 비애.
‘나도 샤워 좀 하고 와야겠군.’
태연 역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서버 팀장의 예언이 적중했다.
서버가 아무 이상 없이 유지되고, 업데이트에 대해 긍정적 입소문이 퍼지면 동접자가 몇 배로 늘어날 거라고 했던 것.
“45만 명. 아무래도 오늘 밤 안으로 50만 명 찍을 것 같아요!”
서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오침조차도 거부한 채 대기했던 서버 팀장이었다. 그런 그의 얼굴이 피로 속에서도 매우 밝아 보였다.
“우와, 50만 명……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이런 수치는 우리 게임 전성기 때나 가능했던 거 아니었어?”
모두들 놀라워하는 가운데 콘텐츠 파트장이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과거 이탈 유저들이 소문 듣고 온 것도 있지만 경쟁작이 근래에 제대로 삽질을 해서 해당 게임 유저들이 보이콧 한 영향도 커요.”
“그게 무슨 소리죠?”
“직접 보세요.”
최대 경쟁사이자 MMORPG 명가인 네로 소프트.
이 회사는 게임사 최대 매출 기록을 보유한 신화 온라인 외에도 다양한 게임을 서비스 중이다.
그 중 ‘붉은 대지’라는 MMORPG 게임이 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파이널 판타지 온라인을 잡아보겠다고 만든 게임으로, 중세 판타지 컨셉의 부분 유료화 게임이었다.
초창기에는 빼어난 그래픽에 연출, 타격감 등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개발자가 몇 번 바뀌고, 크고 작은 이슈들을 회사가 수습하지 못하며 하락세가 시작됐다.
여기까지는 온라인 게임이라면 대부분 겪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막장 운영, 3개월 간격으로 업데이트된 새 캐릭터를 오버 파워로 만들어 매출을 유도한 뒤 다음 캐릭터가 나올 때쯤 대뜸 너프를 시켜버리는 행태를 이어가며 유저 이탈을 가속화시켰다.
결정적으로 신화 온라인으로 대표되는 네로 소프트 특유의 악질 비즈니스 모델 도입 이슈가 최근에 발생, 이에 유저들이 성을 내며 보이콧 선언을 시작했다.
“아틀란시아 전기가 했던 실수를 그대로 했군요.”
“이 외에도 기간제 캐시 아이템인 ‘애완동물’의 의존도를 대폭 올려 한두 마리 달고 다니는 것만으로는 게임 진행이 어렵게 만들고…… 여러 가지 막장 이슈가 있습니다.”
태연은 열을 내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 물었다.
“혹시 붉은 대지의 유저입니까?”
“네. 뭐…….”
“아무튼 잘 알았습니다.”
붉은 대지 커뮤니티를 가보니 실제 관련 내용으로 게시판 상태가 어지러웠다.
-붉은 대지 보이콧!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복귀는 없다!
-차라리 아틀란시아 전기를 하자! 그쪽은 새로 온 피디가 간담회를 열어 유저 요구 반영도 잘 해주고 게임 콘텐츠도 제대로 만들고 있는 중!
-여러분! 아틀란시아 전기 찍먹해보세요! 유저 요구 개무시하는 이딴 망겜보다 훨씬 나음!
“대략적인 상황은 잘 알겠습니다. 이런 이슈도 있었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태연에게 기획팀장이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우리 게임도 그렇고 저 동네도…… 잘나가다가 갑자기 게임 운영을 저렇게 하는 이유가 뭘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를 따지면 현상 유지로는 나날이 떨어지는 동접자 수와 매출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아…….”
“MMORPG에서 중요한 건 세계관 그 자체에 대한 몰입 유지입니다. 이건 모든 개발자들의 영원한 숙제와 같은 거죠.”
그러나 메인 개발자들의 퇴사와 잦은 개발진 변경 등등. 여러 이유로 콘텐츠의 질이 계속 떨어지고, 이로 인해 몰입감이 깨진 유저들은 게임을 이탈한다.
“재미를 유지하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론은 간단하다.
계속 재미있게 잘 만들면 매출도 동접도 계속 유지가 된다.
하지만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게임의 신이라도 가장 강렬했던 임팩트를 계속 유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매출을 어떻게든 끌어올리기 위한 자구책들이 결국에는 악수가 되고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바로 그거죠.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기획이 필요합니다만…… 이것도 참 어려운 문제죠. 난이도가 너무 높아요.”
그 말을 듣고 있던 스튜디오 내 개발자들은 공감을 하면서도 또 다른 의문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게임을 이렇게까지 다시 회복시키는 건 난이도가 어느 정도일까?’
‘재미를 유지시키는 것보다 꼬일 대로 꼬여서 망해가던 다시 살리는 게 더 어려운 거 아닌가?’
새삼 태연이 얼마나 대단한 개발자인지 깨달았다.
그들이 보기에 지금 펼쳐지고 있는 일들은 거의 기적에 버금가는 상황이었다.
동접이 정말 좋아야 6, 7만을 찍던 게임을 50만에 가까운 수치로 올려놓지 않았나?
한편 태연은 이런 우러름을 뒤로 하고, 박명훈과 팀장급들을 회의실로 모았다.
“당장 상황이 좋아 보이니 어느 정도 긴장감은 좀 풀어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눈앞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맙시다. 대격변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요.”
앞으로도 많은 이벤트가 남았다.
차원침공이 가속화되며 메인 아틀란시아 대륙이 쑥대밭이 되고, 양 진영은 엄청난 피해와 함께 큰 비운에 처하게 된다.
서로 동맹을 맺기까지의 과정을 치열하게 전개시켜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동맹이 성사된다고 해도 원수지간이었던 그들이 손발을 맞추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전개를 질질 끌면 안 됩니다. 기존에 없던 종족 같은 게 갑자기 튀어나와서도 안 됩니다. 시나리오상 전개는 무조건 백영훈 씨 주관으로 진행되도록 하세요. 그리고 다음 업데이트부터 이 게임의 총괄은 박명훈 디렉터가 담당하도록 합니다.”
프로듀서직에 임명하는 것이다.
사전에 논의가 된 부분이니 새삼스레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저는 지금처럼 상황을 주시하다가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조용히 물러서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저…… 회식은 언제 하실 계획인가요?”
동글동글 안경을 쓴 귀여운 인상의 여성이 조심스레 묻는다.
캐릭터 모델링 파트장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태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주 금요일에 합시다. 그때 마지막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임시 프로듀서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