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53화
36. 나 혼자만 레벨 업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타탁. 타타탁!
‘이 고양감은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군.’
잠시 동작을 멈춘 태연은 팔목의 눈동자 마크를 확인했다.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신기한 표식.
보도교에서 산 팔찌가 사라지고 남긴 것이다.
‘이 눈동자 표식이 주는 신비한 힘의 영향이겠지.’
근래에 태연은 가죽 팔찌가 남긴 능력이 어떤 것인지 점점 파악해 가고 있었다.
상태창을 보여주는 것 외에도.
‘내 능력치를 올려준다.’
물론 그냥 올려주는 건 아니다.
조건이 있다.
‘특정 시간 이상 무언가에 몰입할 것.’
집중을 하면 집중력을.
운동을 하면 그에 걸맞은 체력, 근력, 순발력 등을.
게임 기획, 프로그램, 아트 작업을 하면 그에 걸맞은 능력치를.
‘활용 중인 스테이터스와 스킬 경험치를 조금씩 올려주다가 맥스치를 채우게 되면 스킬 업을 시켜준다는 개념으로 보면 되겠군.’
경험치가 오를 때는 지금 느껴지는 묘한 고양감이 느껴지고 그것이 지속된다.
그러다가 경험치가 충족되고 스테이터스나 스킬 레벨업이 시작되면.
움찔!
‘왔다!’
쾌감이 온몸을 휩쓸며 소모된 체력과 정신력이 채워진다.
‘레벨 업!’
이때의 황홀감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내 상태창을 확인할 수 있다면 더 좋겠는데…….’
무슨 실험을 해봐도 그것만은 안 되더라.
‘일부러 막아 놓은 것 같군. 혹은 특별한 트리거가 있는데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나.’
아무튼,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내 삶이 바뀌기 시작했어.’
그 후 시간이 날 때마다 팔찌를 구매했던 보도교에 가서 기다리곤 했다. 그러나 노점상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보답을 하고 싶은데 아쉽군.’
다른 마음은 없다.
좋은 물건을 팔아 긍정적 변화의 계기를 제공해 준 것이 고마웠을 뿐.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분명히 오겠지.’
단순한 예감이었다.
분명 언젠가, 어떤 계기로 인해 또 그 노인과 만나게 될 날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
‘그동안 내 일에 충실해야지.’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어쩌면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 경험치 두 배 이벤트인데, 최대한 활용해 줘야겠지.’
지난 밤.
윤아의 말을 떠올리며 태연은 미소 지었다.
* * *
팔찌의 효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윤아와 함께 아침, 저녁 운동을 꾸준히 하게 됐다.
사실 그 시작은 효능 확인 따위가 아닌 윤아의 권유 때문이었다.
“오빠,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많잖아. 집에 있을 때만이라도 운동 열심히 하자!”
부인으로서 당연한 권유였다.
‘운동은 자신 없는데…….’
하지만 윤아의 말인데 어찌 거부할 수 있겠나?
“그, 그래. 해보자.”
죽든 살든, 한 번 해보자!
바로 그 다음 날 이른 새벽부터 운동을 함께했다.
스트레칭과 조깅, 가벼운 근지구력 운동까지.
국가대표이자, 세계 최고의 여자 체조 선수였던 그녀였다. 온갖 운동 트레이닝 기법은 물론, 심지어 운동용 식단 구성에도 능했다.
“이왕 하는 거 근육질 몸매와 태평양 어깨를 목표로 노력해 보자. 오빠는 뼈대가 좋아서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태가 날 거야!”
무려 세계적인 체조 여신이 전담 트레이너를 자처하는 순간!
이게 바로 남편의 특권이다. 영광스럽게 여겨도 좋다는 건 알지만 그보다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 힘든 운동을 아침저녁으로 하자는 것도 모자라 식단 관리까지 하라니……!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
운동을 하면 정말 죽을 듯이 힘들고 아프고 그런데…… 한계 구간을 넘어서는 순간 체력이 회복되는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운동 신경이 조금씩 좋아진다.
체력, 근력, 순발력…… 모든 부분에서.
‘이게 이제 보니 엄청난 버프 기능을 갖춘 성장 아이템이었군.’
자신이 일할 때 침착함, 집중력 등. 여러 면에서 상승효과를 준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지.
설마 이런 식으로도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그 이후로부터 태연은 운동에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열심히 하면 할수록, 태연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했다.
“오빠 이제 보니 운동에 재능이 있어! 대단한데? 어떻게 하면 할수록 늘지?”
사소한 문제라면 윤아가 욕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
“체조 할 때 내가 자주 했던 운동 루틴 가르쳐 줄게.”
“나 사실 로망이 하나 있었거든? 같이 다양한 커플 운동 하는 건데…… 오빠 운동 신경 보니 같이 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
태연도 거부하지 않았다.
마치 현실에서 게임을 하는 느낌.
‘내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확인해 보고 싶군.’
지금까지 운동과 연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팔찌의 효능이겠지만…… 막상 해보니 실력이 늘고 몸에 긍정적 변화가 오는 것이 굉장히 즐거웠다.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운동 중독자들이 왜 생겨나는 알 수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오빠, 같이 운동 하니까 정말 좋다!”
윤아가 좋아한다.
사실 이게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다.
팔찌가 아니라도 윤아가 좋아했다면 어떻게든 했을 것이다.
“커플 테니스? 그래. 네가 원한다면 같이 한 번 해보자.”
“정말? 정말 같이 해줄거야?”
“물론이지.”
“와아!”
단지 그녀가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 * *
“퇴근하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일하면서 상념에 잠겨 있던 태연은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퇴근 시간이군.’
일어서서 손뼉을 치며 말했다.
“정말 중요한 일 없으면 다들 빨리 퇴근하세요. 가서 푹 쉬어야 내일 다시 열심히 일하죠.”
“……!”
그 말에 몇몇 개발자들이 움찔하는 모습이 보인다.
태연은 내심 웃으며 퇴근을 독려한 뒤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확인했다.
[오빠. 오늘 커플 테니스 하러 가는 날인 거 알지? 차 몰고 오빠 데리러 가는 중이니 빨리 나와!]
그녀가 들떠 있는 모습이 훤히 그려진다.
오죽하면 특유의 긴장감이 싫다고 운전을 기피하던 그녀가 직접 차를 몰고 데리러 오려고 할까?
컴퓨터를 종료하고, 간단히 가방을 챙겨 회사 건물 앞, 대로변으로 나갔다.
잠시 후 익숙한 차량과 번호판이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온다.
최종학의 도움을 받아 중고차 시장에서 구매한 독일제 SUV 차량이었다.
태연은 운전석으로 가서 문을 열고 말했다.
“오느라 고생했어. 이제부터는 내가 운전할게.”
“응! 그런데 오빠. 나 빨리 왔지? 앞으로도 내가 데리러 올까? 그러면 같이 운동하러 가기 편하잖아!”
“그러다 사고 나면 어쩌려고…….”
“사고 안 나. 난 느리게 가더라도 무조건 안전 운전하자는 주의거든!”
“그래도 안 돼. 내가 불안해. 너 운전 아직 미숙하잖아. 그냥 집에서 기다려. 내가 데리러 갈게.”
윤아의 입이 삐죽 나온다.
“그래도…… 오빠 불편하잖아.”
불편하다고?”
그녀를 데리러 가는 일이?
태연은 피식 웃었다.
“절대 안 불편해. 그러니까 앞으로도 어설픈 솜씨로 직접 운전할 생각은 하지 마.”
“치…….”
실망한 얼굴.
내심은 조금 달랐다.
그녀를 데리러 가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가는 동안의 설렘.
그 기분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다.
태연은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 * *
알고 보니 윤아는 꽤 오래전부터 테니스를 훈련해 왔단다.
“윤아 씨 굉장히 잘 하시네요. 준 프로급 실력인데요?”
얼마나 실력이 좋은지, 강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정도였다.
그에 비하면…….
터엉!
“아, 자세가 많이 흐트러지셨어요. 제가 다시 보여드릴게요. 서브를 넣을 때는…….”
태연은 초보 중의 초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테니스는 게임에서만 접해봤으니…….’
테니스 게임이라면 누구보다도 잘할 자신이 있는데……!
그래도 태연은 열심히 훈련했다.
‘집중해서 배우고, 노력하면 조금씩 나아질 거야.’
팔찌가 부여해 준 성장의 가능성을 신뢰한다.
그게 아니라도 당장 잘 하지 못한다고, 좌절하며 포기하는 건 성격과 맞지 않았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태연이 좋아하는 속담이자 좌우명과도 같은 말이었다.
게임이 특히 그렇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망망대해 속에 던져진 기분이지만, 아이디어를 모으고, 그중 쓸만한 것을 추려 조금씩 살을 붙이다 보면 갈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급하게 마음 먹으면 안 돼. 그럴 필요도 없고.’
이게 무슨 프로젝트도 아니고, 아내와 취미 생활로 시작한 운동 아닌가?
“자, 어디 한 번 해보세요. 일단 자세부터…… 그렇죠!”
태연은 뭔가 보여주겠다는 생각 따위는 없다.
그저 기본기를 착실하게 익히는 것에만 집중할 뿐.
그리고 그런 태연을, 윤아는 여러가지 감정이 혼합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늦은 밤, 집으로 향하는 길.
“내 생각인데, 오빠는 게임 개발이 아니라 뭘 했어도 성공했을 것 같아.”
“어떤 점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어?”
“집중력이 굉장히 좋아. 그리고 급하지 않게, 착실하게 단계를 밟아 나가는 법을 아는 것 같아.”
“그렇게 보였어?”
“응. 오늘처럼 꾸준히 하다 보면 자유롭게 랠리 하며 즐길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언제쯤?”
“음…… 대략 2~3년 정도?”
“오래 걸리는 구나.”
“워낙 어려운 스포츠니까. 그래도 운동 배우는 거 재미있지 않아?”
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보통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겠지?’
정말 꾸준히 훈련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버프와 경험치 상승효과가 포함된다면…… 얼마나 단축시킬 수 있을까?’
서두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예상 보다 빠른 성장에 그녀가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
또한 스스로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 지 체크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취미 생활을 많이 만들어봐야겠군.’
이렇게 태연은 새로운 재미에 눈을 떠가고 있었다.
* * *
“오늘이죠?”
“네. 오늘이에요.”
아틀란시아 전기 개발팀은 모처럼 기대감과 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이유가 곧 드러났다.
“패치 완료됐습니다.”
프로그램 팀에서 들려온 외침.
태연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말했다.
“어제 공지한 대로 오늘 위상변화를 비롯, 다양한 작업물들이 내부 서버에 업데이트됐습니다. 처음부터 플레이하면 테스트가 오래 걸리니 명령어로 특정 퀘스트 받고 테스트 해주세요.”
100%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모두가 함께 개발한 결과물의 일부를 직접 플레이하며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
특히 이번에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적용되었던 위상변화 시스템을 경험해 볼 수 있는 날이라 기대감이 컸다.
모델링이, 애니메이션이, 이팩트가, 사운드가, 시스템이, 레벨이…….
‘내가 한 작업이 어떻게 반영됐을까?’
기대감과 불안감.
상반되는 감정이 가슴 속에 휘몰아친다.
곧 패치가 완료되고, 개발자들은 재빨리 개발자 전용 테스트 서버에 로그인을 한다.
곧, 스튜디오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감 가득한 적막에 휩싸였다.
태연 역시 개발자들과 함께 테스트를 진행했다.
‘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