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48화 (48/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48화

32. 선언하다

강남역 넥플 아레나 빌딩에 백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빌딩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아틀란시아 전기 유저 간담회!]

입구에는 캐릭터 티셔츠를 입은 남녀 직원 한 쌍이 안내를 담당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유저님이세요? 게임 아이디 불러주시면 확인 후 입장 도와드리겠습니다!”

“기념품도 받아가세요!”

설레는 마음으로 내부에 입장한 이들은 곧 탄성을 터뜨렸다.

“와우…….”

“무슨 실내 테마파크처럼 꾸며놨네.”

과거 아틀란시아 전기 전성기 시절.

그러니까 런칭 후 3년 동안은 유저 간담회를 비롯, 크고 작은 행사를 여럿 개최했었다. 그때 제작해 두었던 실물 사이즈 캐릭터 피규어와 다양한 장식품들이 사방에 배치되어 있었다.

“캬, 이거 추억이다!”

“이걸 여기서 보게 되네.”

“사진, 사진 찍어야지!”

간담회를 준비한 아트 디렉터와 개발팀은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실내 테마파크 컨셉 계획이 주효했던 것이다.

곳곳에 마련된 포토존은 간담회 참석자들로 하여금,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도록 예쁘고 멋지게 꾸며져 있었다.

상당한 돈을 들였고, 과거의 자산을 모두 쏟아부어 꾸민 결과였다.

‘피디님 덕분에 이런 것도 해보게 되네.’

곧 간담회장이 가득 찼다.

백여 명의 유저와 대다수의 개발팀원들!

간담회의 시작을 알리는 동영상이 전면 거대 디스플레이에서 재생된다.

무대를 제외한 객석의 실내 조명이 모두 꺼지며 집중력과 몰입감을 일으킨다.

런칭일부터 지금까지.

주요 이슈들을 나름 임팩트 있는 음악과 편집으로 정리한 영상이었다.

캬, 저랬었지.

그래. 그때는 그랬는데…….

벌써 십여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남들이 이제는 끝이라며, 지긋지긋하며 떠나도 끝끝내 버티고 플레이를 해온 유저들은 단숨에 추억에 잠겼다.

영상이 종료되고 한 남자가 무대에 오르자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도무지 게임 개발자 같지 않은 비주얼!

올 블랙 수트를 갖춰 입고 머리를 깔끔히 빗어넘긴 냉미남의 등장에 백여 명의 유저들은 자리까지 박차고 일어섰다.

“유태연! 유태연!”

어쩌면 아틀란시아 전기의 구원자가 되어 줄지도 모르는 사람.

이 순간만큼은 대통령이나 인기 걸그룹이 참석해도 그와 같은 환호를 이끌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태연은 굉장히 침착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게임 개발자 유태연입니다.”

굳이 전문 진행자를 초청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퀴즈쇼도 하고 새 직업, 스킬 발표회 같은 것을 해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도 좋겠지만 오늘 자리는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죠.”

간담회 본연의 목적에 집중하기 위해.

“그동안 게임에 대해 쌓인 불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 기회에 다 털어놔 보시죠. 총괄 프로듀서이자 본부장으로, 제가 모두 경청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이 신호탄이 되었다.

기다렸다는 듯 무서운 기세로 손을 치켜드는 백 명의 유저들.

태연은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말했다.

“어차피 모두 몇 번씩은 말씀하시게 될 겁니다. 제일 앞자리에 앉아 계신 분부터 말씀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하고 싶은 말을 잔뜩 적어왔다.

“에, 그리고…… 아! 이거! 이거 진짜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오죽하면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유저들이 적당히 좀 하고 마이크를 넘기라며 성화를 부릴 정도였다.

그래서 상황을 지켜보던 태연이 교통정리를 나섰다.

“한 사람당 용건 하나씩으로 제한하겠습니다. 그리고 처리된 질문은…….”

태연이 누군가에게 신호를 주자 무대 대형 스크린에 표가 비춰진다. 지금까지 진행된 문답, 혹은 제안 내용이 모두 실시간으로 정리되고 있었던 것이다.

“확인 후 표에 없는 내용만 골라서 질문 부탁드립니다.”

티끌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모습!

스태프와 유저들은 태연에게 감탄을 금치 못했다.

태연이 홀로 모든 문답을 완벽하게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플레이 경험이 있긴 하지만 담당하던 게임이 따로 있었기에 준비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프로그램 팀장님께 문의를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오 팀장님? 답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그 부분이 사실 어떻게 된 거냐면…….”

이 자리에는 개발팀 대다수…… 특히 장급 인력은 모두 참석한 상황이었다.

자신이 대답할 수 없는 내용은 담당자를 불러 대답하도록 했다.

이런 상황이니 간담회 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졌다.

시간을 체크한 태연이 잠시 질문을 끊고 말했다.

“슬슬 점심 식사 시간이군요. 여러분을 위해 도시락과 간식을 준비했으니 자유롭게 드시면서 휴식을 취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맞게 된 첫 휴식 시간이었다.

* * *

두 시간 동안의 간담회 내용, 사진, 짧은 영상 같은 것들이 아틀란시아 전기 커뮤니티에 업로드됐다.

휴식 시간을 틈타 현장의 유저들이 정보 공유를 한 것이다.

-두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떠들어서 목이 아픈데 그래도 모처럼 만에 진짜 간담회라는 걸 하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좋다.

└쓸데없이 웃고 떠드는 것보다 이렇게 건설적인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는 게 훨씬 좋음.

└간담회 같은 거 많이 해봤는데 이야기를 해도 그때뿐이고 시간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것들이 많았는데…… 왠지 이번에는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음.

└유 피디님 직접 보니 진짜 잘 생겼고 멋진 분임. 대답 같은 것도 빙빙 돌리거나 피하는 법이 없이 직설적임. 처음 겪어 보는 개발자 유형…….

└간담 시간은 길어져도 진행이 시원시원하니 재미있고 좋아. 진작 이런 사람이 피디를 했었어야 했는데…….

간담회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커뮤니티 유저들에게 단비와 같은 내용들이었다.

참석하지 않아도 현장 상황이 어떤지 잘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희망적이라는 것에 기쁨과 설렘도 느꼈다.

1부에서의 분위기는 2부에도 이어졌다.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고, 제안을 던진다.

태연은 프로듀서로서, 간담회 진행자로서 분위기를 조율했다.

최대한 만족할 답변을 주기 위해 노력했고 지적 내용 중 정말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반영을 약속했다.

그렇게 네 시간이 지났다.

‘슬슬 끝낼 때가 됐군.’

모두가 조금은 지친 모습이었다.

“오늘 간담회를 진행하며 한 가지 고민한 부분이 있습니다. 과연 이 모든 내용을 지금 게임의 흐름 속에 반영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인가?”

고개를 젓는다.

“이대로는 힘들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일단 게임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시나리오부터 여러 기획자를 거쳐오며 꼬이고,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개발자와 유저 모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틀란시아 전기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시점에 제가 내릴 수 있는 판단은 단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순간 태연의 목소리에 강한 힘이 실렸다.

“대격변!”

“……!”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의도를 파악하기도 전에 알 수 없는 전율이 밀려온다. 태연은 기대감으로 벅찬 유저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자세한 이야기는 차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슥, 좌중을 한 번 훑은 태연이 말했다.

“이것으로 유저 간담회를 마치겠습니다.”

* * *

다음 날.

간담회 풀 영상이 공식 홈페이지에 업로드됐다.

유저들도 내용을 모두 알 수 있도록 태연이 사내 방송팀과의 사전 협의로 조치한 것이다.

그날은 아틀란시아 전기 커뮤니티가 하루 종일 들썩거렸다.

-마지막 멘트가 굉장히 의미심장한데…… 대격변. 이게 뭘 말하는 것 같음?

└싹 뒤엎어 버린다는 이야기는 맞는 것 같은데…… 그 형태가 어느 정도 수준일지 궁금함.

└설마 리메이크는 아니겠지?

└에이…… 그건 아닐 듯.

간담회 다음 날.

태연은 개발팀을 모아 놓고 말했다.

“오늘부로 아틀란시아 전기는 대격변 프로젝트에 돌입합니다. 각 파트 인력을 추가 증원하고 필요하면 외주까지 진행하도록 합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한 가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프로그램 팀장이 입을 열었다.

“대격변 프로젝트가 뭘 말하는 겁니까? 범위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죠? 설마 리메이크를 말하는 건가요?“

개발팀을 빤히 바라보던 태연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오늘날 아틀란시아 전기가 끝도 없이 추락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한때 이 게임의 위용은 굉장했다.

중국에서만 1조가 넘는 수익을 벌어들였을 정도로.

그러나 그것은 이제 옛이야기.

중국 수출은 대부분 무너졌고, 그들이 그토록 무시하던 한국, 소수의 고래 유저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넥플에서는 매출이 상위권에 유지될 만큼 여전히 굉장했지만…….

“어느 순간, 게임에 대한 몰입이 끊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동접. 매출…… 전성기 시절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였다.

“사업가는 매출을 보고 돈을 많이 써주는…… 소위 말하는 고래 유저들만을 살피지만 개발자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라이트 유저들입니다.”

왜냐면…….

“라이트 유저야말로 대중성 지표 그 자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틀란시아 전기 개발팀은 그것을 외면했다.

돈 안 쓰고 공짜로만 게임 즐기는 유저들은 신경도 쓰지 마!

우리는 돈 써주는 사람들의 욕구만 충족시켜 주면 돼!

“그런데 이걸 알아야 합니다. 헤비 유저들이 돈을 그렇게 많이 썼던 이유가 무엇인지.”

다름 아닌 수많은 유저들 속에 자신이 최고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고, 그 기분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끊겨진 몰입감을 어떻게 해서든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 이번 대격변의 포인트입니다.”

“그러니까 피디님 말씀은…….”

한 기획자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시나리오 진행 과정에 대격변을 일으키겠다는 뜻이군요.”

“바로 그겁니다. 목적을 상실한 전개와 의미 없는 퀘스트에 긴박감을 불어넣도록 하겠습니다.”

* * *

지금까지 태연은 본인이 직접 개발 일선에서 모든 작업을 주도해 왔다.

프로그램 회의에 참석하게 기반이 될 시스템을 함께 구축했다.

게임의 베이스가 될 모든 기획은 사실상 혼자 짰다.

그림을 그리며 콘티를 짜고, 캐릭터를 디자인했으며 게임 전반적인 아트의 방향성을 동등한 눈높이에서 함께 구상했다.

이것이 바로 태연의 작업 방식.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둬야겠군.’

우선, 그런 식으로 관여할 정도의 여력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

왜냐면, 누가 뭐래도 아틀란시아 전기는 넥플이 자랑하는 최고의 히트 게임! 오죽하면 3대장이라 불렀겠나?

대한민국에서 MMORPG를 좀 만들 줄 안다 하는 이들은 아틀란시아 전기 개발팀에서 대부분 흡수해 왔다.

‘난 지시만 내린다.’

그들만으로도 개편 작업은 충분하다.

‘다른 할 일도 많고 무엇보다도 내게 우선순위는 판테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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