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47화
31. 뒤집어엎다
-내가 허락한다. 싹 다 엎어버리고 판 새로 짜!
유진성 회장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아틀란시아 전기 PD님. 저 좀 봅시다.”
태연은 즉각 넥플 3대장 게임 중 하나의 총괄 책임자를 호출했다.
“…….”
김유현 피디는 지금까지 만났던 다른 이들과는 달랐다.
태연과 마주한 그는 두려움이나 긴장감 대신 불편한 감정을 대놓고 표출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신 것 같은데,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말씀해 보시죠.”
“혹시 절 호출한 이유가 어메이징 레이싱이나 다른 팀에 그랬던 것처럼 저와 제 팀 역시 뒤짚어 엎으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네. 정확히 보셨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흉흉한 분위기에도 태연은 가차 없었다.
“김유현 피디. 당신은 게임 피디를 맡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김유현은 당황했다.
‘아니, 이렇게 직설적으로…….?’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시작일 뿐이었다.
“당신은 MMORPG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낮습니다. 벌써 몇 차례 잘못된 패치로 경제 인플레를 일으켰거나 일으킬 뻔했죠. 그 이야기만 해도 내일까지 당신을 비난할 수 있습니다.”
“아, 아니 그건……!”
“하지만 당신은 절대 본인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을 수습하느라 고생을 했던, 정말 실력 있고 아틀란시아 전기에 애정이 큰 개발자들을 제풀에 지쳐 나가도록 만들었죠. 핵심 인력 유출죄!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지탄을 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
“으으……!”
눈빛에 서린 냉기에 김유현 피디는 주춤했다.
“스스로의 입으로 말해보시지요. 지금까지 인플레를 일으켰던 모든 결정적 요인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 그게……!”
“단 하나도 빼놓지 말고, 정확한 분석을 내놓으셔야 할 겁니다.”
“…….”
그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김유현 피디와 기획팀장이 동시에 해고됐다.
해고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법!
태연은 두 기획 총괄이 저지른 지난 실수들을 빼곡히 적어 상신했고, 또한 그것을 게시판에 직접적으로 공유해 버렸다.
이와 같은 충격적이고 놀라운 사건에 넥플 직원 모두가 경악하고 전율했다.
일반 개발자들의 경우.
“역시 진짜배기 스타개발자는 다르네. 내가 예전부터 아틀란시아 전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거든! 그걸 속 시원하게 질러주다니…… 역시 유태연 피디님이야!”
“와, 3대장 중 하나를 곧바로 탈탈 털어 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김유현 피디랑 오정환 기획팀장 꼴 좋게 됐네. 실력도 별거 없는 것들이 인맥 따위로 고인물 놀이나 하더니…….”
누구 하나 박수를 보내지 않는 이가 없었다.
비록 아틀란시아 전기의 개발팀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플레이어로서 개발자에 꿈을 키워 입사까지 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흡족한 처사였던 것이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미쳤어? 네가 뭔데 김유현 피디를 건드려?”
하지만 이 처사에 불을 뿜는 이가 있었다.
넥플 창업 공신이자 그룹 이사이며, 자회사인 넥플 네트웍스의 대표인 김유훈이었다.
또한 아틀란시아 전기의 메인 PD였고 친동생인 김유현을 기획팀장에 이어 PD에 앉힌 장본인이었다.
불을 뿜어내는 중년인을 가만히 바라보던 태연이 물었다.
“제가 뭔데 김유현 피디를 건드렸냐고 물으셨습니까?”
“그래, 인마!”
“넥플 엔터테인먼트 대표입니다.”
“뭐, 뭐?”
“넥플 네트웍스보다 훨씬 많은 자금을 운영하는 그룹 자회사의 대표로, 전 당신의 아래 사람이 아닙니다.”
순간 태연의 눈에 묵직한 카리스마가 뿜어졌다.
“그러니 말조심하시오. 김유훈 대표. 나와 여론에 동시에 처맞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으면.”
그러면서 한곳을 가리킨다.
상황을 지켜보던 회사 직원들이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 중이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열심히 톡톡 문자를 두드리고 있었는데 뭐하고 있는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비로소 머리가 차가워진 김유훈은 당황해서 주춤 물러났다.
“제가 공유한 공지사항 보지 못했습니까? 전 김유현 피디의 실각 이유를 분명히 명시했습니다.”
“헛소리지, 인마! 그게 왜 유현이 잘못이야! 다 아랫사람들이…….”
“부하 직원의 실수는 대표의 책임입니다.”
“뭐, 뭐라고?”
“그리고 그 일들을 마냥 아랫사람 책임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수가 많은 일들입니다. 제가 만약 여론에…… 특히 아틀란시아 전기 팬 커뮤니티에 이 사실을 공유하고 누구 책임이냐고 묻는다고 쳐보죠. 유저들은 뭐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까?”
“윽……!”
“그리고…….”
태연은 김유훈 대표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건 표면적인 이유일 뿐.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
“여기서 말해도 되겠습니까?”
심상치 않은 어조.
입술을 꽉 깨물던 김유훈 대표는…….
“자리 이동하지.”
회의실에서 엄청난 사실을 전해 듣게 됐다.
“김유현 피디와 관련된 제보가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내부는 물론 심지어 이미 퇴사한 이들까지도 온갖 제보를 퍼부어댔다.
이를 갈고 있던 이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죄질이 다양합니다. 성희롱은 기본이고 개발비 횡령, 자격도 없는 입사 지원자를 사심만으로 채용하거나 뒤에서 대가를 받고 요직에 앉혔던 일 등등.
“…….”
“회사에서 주는 인센티브도 불평등하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만큼 대다수를 혼자 먹었더군요. 아무리 PD 재량이라고는 하지만…….”
“…….”
“덧붙여 업데이트 실수로 게임 내 여론이 크게 들썩이는 일이 생갈 때마다 책임 회피, 애꿎은 사람들에게 누명을 씌워 징계를 준 일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태연은 묵직한 출력물 묶음을 툭 던져주며 말했다.
“증거 자료들입니다. 참고로 대표님도 비슷한 혐의가 있으니 변명 잘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그는 크게 놀랐다.
“혀, 혐의라고? 내가?!”
“김유훈 대표가 우습게 여겨질 만큼 별일을 다 해오셨더군요. 심지어 모 게임 학원으로부터 뒷돈을 받고 해당 학원생들을 위주로 채용한 일의 정황도 입수됐습니다.”
“……!”
“그 학원과 지금도 좋은 관계를 꾸준히 이어오고 계시다던데……?”
“너, 계속 그런 식으로 근거 없는 말로 몰아세울 거야? 그러다 내가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순간 태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왜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시죠?”
“……!”
순간 기세에 눌린 김유훈 대표는 입을 열지 못한 채 입술만 꽉 깨물었다. 결국 자리를 박차고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태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직원 채용 방식에도 칼을 대야 할 것 같군.”
* * *
[제목 : 아틀란시아 전기 유저들의 소원 중 하나가 이루어졌다!]
게임 커뮤니티에 올라와 크게 주목 받은 게시물이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김유현 피디하고 오정환 기획팀장 해고됨.
정황이 굉장히 세부적으로 공개됐다.
심지어 친형이자 원래 프로듀서였던 넥플 넥트웍스의 김유훈 대표까지 등판한 일까지.
게임 커뮤니티가 순식간에 끓어올랐다.
-계속되는 하락세에 마음이 아팠는데…… 유태연 피디가 이렇게까지 나서준다면 아틀란시아 전기도 원래 모습을 회복할 수 있게 될지도……?
└그건 무리지.
└솔직히 넥플 3대장이니 뭐니…… 그것도 옛날이야기지. 무능한 피디와 거듭되는 삽질…… 누더기 수준이라 회생 불가 수준임.
└모르는 모양인데, 유 피디 오래전 별명이 인공호흡기였음. 일단 손댄 게임은 어떻게든 살려낸다고……;;;
유태연이라는 개발자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그것은 아틀란시아 전기 개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앓던 이를 시원하게 뽑아준 장본인이 아닌가?
개발자 라운지 역시 뜨겁게 끊어 올라 있었다.
-유 피디님. 설마 이대로 나몰라라 떠나실 건 아니죠? 충치 치료 했으면 최소한 브릿지라도 해주고 가셔야지!
└ㄴㄴ 브릿지로는 안 됨. 신경 치료하고 임플란트까지 깔끔하게 해줘야 됨.
태연은 아틀란시아 전기 후속 처리 문제로 잠시 고민했다.
‘내가 어디까지 관여하는 게 좋을까?’
일단, 여론은 적극적인 수술을 원하고 있었다.
이왕 관여했으니, 끝까지 파고들어 게임을 원래의 멀쩡했던 상태로 되돌려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유저뿐만 아니라 개발자들까지도.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유저와 개발자들의 아틀란시아 전기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크게 남아 있군.’
심지어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유태연 피디가 적극적으로 리뉴얼에 관여해 준다면 다시 게임에 복귀할 의향도 있다고.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안 그래도 해야 할 게 많은데…….’
하지만 들쑤셔놓은 건 자신이 아닌가?
갈 땐 가더라도, 끝맺음은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며칠 후 아틀란시아 전기 스튜디오.
개발팀 전원을 대회의실에 모아 놓고, 태연은 말했다.
“오늘부터 제가 임시 프로듀서로서 아틀란시아 전기 개발을 진두지휘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탄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태연은 표정 변화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끼리 문제점을 최대한 많이 도출해보고, 그 직후 유저 간담회를 열어 의견을 들어본 뒤 문제점을 총정리 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찌푸려지는 미간.
그 모습이 굉장히 심각해 보여 개발자들은 어리둥절해했다.
“…….”
곧, 사람들은 심각함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제 추측일 뿐이지만, 그저 가벼운 개선 약속 정도로는 유저들이 납득하지 않을 겁니다. 상상도 못 했던 내용들이 터져 나오겠죠.”
“아무래도…….”
“그렇겠죠?”
“충분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전성기 시절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약속도 부족합니다.”
태연은 강하게 말했다.
“전면 개편까지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어쩌면 아예 제로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개발자들의 가슴이 묵직하게 울리는 순간이었다.
“미친 듯이 달릴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미리 퇴사하는 게 좋을 겁니다.”
* * *
[아틀란시아 전기 유저 간담회 개최!]
[드디어 소통을 시작하는 아틀란시아 전기…… 과연 유저들의 반응은?]
수많은 아틀란시아 전기 유저들이 관심을 가질 기사가 연달아 터져 나온다.
-어…… 간담회?!
└뭔가 익숙하지 않아! 아틀란시아 전기가 간담회라니…… 이게 대체 얼마 만이지?
└유태연 피디가 작정하고 변화를 주려나 본데?
총 백 명의 참석자를 뽑는 간담회에 무려 수만 명의 유저들이 참석 의사를 밝혔다.
간담회 장소는 강남역 부근에 위치한 넥플 아레나!
넥플이 소유한 E-SPORT 전용 공간이었다.
유저들이 당황할 정도로 진행이 쾌속하게 이뤄졌다.
-뭐냐, 이 속도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몬스터 이터 유저로서 조언하는 건데…… 꽉 잡아. 유 피디 겁나 빨라!
“간담회에 참석할 의향이 있는 분들은 미리 신청 부탁드립니다. 기념품, 음식 수량 등을 미리 맞춰놔야 합니다.”
더불어 간담회 준비 인력으로 부려 먹어야 하니 참석 현황을 미리 파악해둬야 효율적으로 부려먹을 수 있었다.
“현장 진행은 AD님이 맡아서 처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해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어, 잠깐만…… 그러면 혹시 간담회 당일 참석 못 하시는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닙니다. 참석은 하겠지만 제가 준비 과정까지 일일이 관여할 수 없는 입장이라 부탁드리는 겁니다.”
“아, 그렇다면 안심이네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아틀란시아 전기 아트 디렉터와 개발자들을 보고 태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벌인 일인데 설마 참석하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준비 철저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