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45화
29. 저승사자의 탄생
결국 외주비 횡령 건은 넥플 전체에 알려졌고 큰 파문을 일으켰다.
-와, 충격적이네. 개발비 횡령이라고? 회삿돈을 막 자기들 마음대로 가져다 쓴다는 거여?
└이해가 잘 안 가서…… 대체 어떤 식으로 횡령할 수 있는 거임?
└실력 좀 있고 연봉 적당히 받는 지인에게 의뢰하고 뒤에서 나눠 먹는 방식이지. 그게 아니면 법인 차원에서 서로에게 외주를 주고 돌려 먹는 방법도 있고…… 방식은 많아.
└우리 PD와 AD도 외주비 횡령 건으로 조사받았는데…… 본인은 끝까지 아니라고, 모함이라고 부정했지만 결국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음.
수많은 넥플 직원들이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은 커뮤니티 앱을 통해 업계 전체에 퍼져 나갔다.
더불어 유태연이 잡아낸 범행 방식까지도.
넥플에서 시작된 파문은 업계 전체를 뒤흔들었다.
-이번에 넥플 외주비 횡령 사태 때문에 우리 회사에서도 자체 감사 들어갔는데 몇 명 붙잡혔음. 심지어 퇴사한 사람도 혐의가 밝혀져서 고발 들어가고 난리 났다;;
└우리 회사에서도 유태연 PD 방식 그대로 했고 두 명이 붙잡혔음;;
└충격적이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도둑놈이 정부에만 있는 게 아니었어!
여기저기서 횡령 의심 건이 터지고, 실제로 혐의도 드러났다. 결국 언론에 보도되며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알려졌다.
[넥플에서 시작된 게임 업계 외주비 파문!]
[회사에 도둑놈이 너무나도 많다?!]
* * *
월요일 임원 회의.
유진성 회장의 표정은 굉장히 험악했다.
“유 피디가 본격적으로 일 시작한 지 며칠 만에 밝혀낸 걸 너희는 그동안 뭐하느라고 방치하고 있었던 거야?”
쩌렁쩌렁한 호통 소리에 임원들이 움찔한다.
“야, 손 이사!”
“네. 회장님.”
“너한테 실망했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맡고 있는 업무가 많았다지만 손영상은 그룹의 개발 총책이자 라이브 본부장을 오래 했던 사람이었다.
“네가 했어야 할 일을 제대로 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유 피디가 다 까발렸어. 이게 말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냐?”
“…….”
“너 혹시 뒤에서 돈 받아먹고 눈감아주고 있었던 거 아니야?”
손영상 이사는 굳은 안색으로 부정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아니면 뭐야?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그러면 더 문젠데?”
“…….”
“아무리 나이가 들고 일이 버거워졌어도 그렇지. 네 책무잖아. 그러면 끝까지 책임을 졌어야지.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야?”
“…….”
손영상 이사가 공식 석상에서 무참히 두들겨 맞고 있었다. 지켜보던 다른 임원들 입장에서는 온몸이 떨릴 일이었다.
“너희 놈들도 다 똑같아!”
마침내 자신들에게 화살이 날아오자 다들 이를 악물었다.
“명색이 게임 회사에서 일한다는 놈들이 게임 개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
본격적으로 일침을 가하려던 유진성 회장이 말을 하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 다 내 잘못이지. 회장이라며 가장 많은 특혜를 가져가는 놈이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 에효.”
십 년은 늙은 듯한 얼굴.
사건이 터진 지난 한 주 동안, 그는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체감했다.
태연이 살짝 원망스러울 뻔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 덕분에, 그룹이 뿌리까지 썩기 전에 정화 조치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탓할 게 아니라 칭찬해야 하는 일이었다.
곧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번 달은 청소에 집중하자.”
“……!”
“탈탈 털어서 각자 책임 구역 깨끗이 청소해. 너희들에게도 그런 능력 있잖아?”
임원들의 표정에 결연함과 독기 같은 감정들이 떠올랐다.
“나도 그렇고, 너희들에게도 망신살 뻗친 일이야.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어휴. 말을 말자.”
그는 손을 내저었다.
“가봐. 태연이만 남고.”
잠시 후, 커다란 회의실에 홀로 남은 태연에게 유진성 회장이 말했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
“그런데 그걸 대체 어떻게 안 거야?”
“사실…….”
성추행 사실을 고발해 온 어메이징 레이싱 팀의 원화가 김혜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성추행? 그런 일도 있었어?”
“…….”
“하, 이거 정말……!
태연 앞에서는 항상 유쾌하고 능글맞은 모습을 보여왔던 유진성 회장이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구만 그래.”
이를 뿌드득 갈던 그가 애써 분노를 갈무리하고 물었다.
“혹시 비슷한 일이 또 있어?”
“네. 그런데 김혜원 씨는 본인이 증거를 수집한 상황이었기에 신속한 처리가 가능했지만 다른 건은 시간적 여유가 더 필요합니다.”
“확실히 처리는 할 수 있고.”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이런 건 팀 개별 면담으로 여론을 모아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 문제니까요.”
유진성 회장의 얼굴이 분노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확실히 처리하고 경과 보고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봐주지 마. 우리 회사에 그런 놈들 필요 없어. 알겠어?”
“네.”
“논공행상은 일이 마무리되고 난 후에 하자.”
* * *
성희롱, 성추행, 극심한 가스라이팅으로, 부당한 지시 강요.
투서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메이징 레이싱 팀 김혜원이 회사 홈페이지와 갈대나무 숲 앱에 올린 감사의 글이 화제가 된 덕분이다.
-유태원 피디님이 제 도움 요청을 외면하지 않고 응답해 주신 덕분에 모든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절 응원해 준 정기원 사우, 그리고 유태연 피디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유태연 피디라면 믿고 부탁할 수 있다!
그런 인식이 피해를 입었던 이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투서가 쏟아지는 이유였다.
‘날 믿어주는 건 고맙지만…….’
일이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렇다고 질질 끌어서도 안 된다.
한참 고민하던 태연이 생각했다.
‘믿을 수 있고, 경력도 충분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임시 감찰팀을 편성해야겠군.’
이 문제에 대해 제일 먼저 인사총무팀장과 논의했다.
“믿을 수 있고 경력도 충분한 사람이라…….”
그가 태연을 보고 물었다.
“본부장님이 염두에 둔 사람부터 듣고 싶습니다.”
“홍민석, 이영애. 두 분께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리더십도 훌륭하고 본인 파트뿐만 아니라 업무 전반에 대해 능통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경험이 풍부하고 직관력도 뛰어나죠.”
무엇보다도 믿을 수 있는 내 사람들이다.
인사총무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도 제가 믿고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부하 직원 두 명을 추천하겠습니다.”
그렇게 총 여섯 명의 임시 감찰팀이 조직됐다.
태연은 이들을 데리고 가서 유진성 회장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원래 감찰 팀이 있긴 했는데…… 왜 갑자기 사라졌더라?”
즉각 손영상 이사를 호출한 유진성 회장이 이 부분을 물었다. 대답이 놀라웠다.
“그 감찰팀이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몇 번이나.”
“아…….”
“그래서 회장님께서 이럴 거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며…….”
“…….”
한마디로 본인이 해체시켜 버렸다는 뜻이다. 민망함에 헛기침을 터뜨리는 그에게 손영상 이사는 묵묵히 말을 이어나갔다.
“무엇보다 적임자가 부족했습니다. 지금 유 팀장 같은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개발 프로세스를 누구보다도 훤히 꿰뚫고 있고, 빼어난 직관력과 경험으로 업계 사정에 능통한 사람. 그러면서 담력과 카리스마가 뛰어나서 말빨 좋은 베테랑 개발자와 관리직들을 단번에 굴복시킬 수 있는 사람.”
“음…….”
“그런 사람이 아니고서야 진정한 의미의 감찰은…… 사실상 무리였지요. 그게 바로 감찰팀이 있으나 마나 했던 이유였습니다.”
“너도 그랬어?”
“저는 신규 게임 개발과 테크니컬 아트 기술 개발 쪽에 매진했던 터라……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지 않았습니다. 유 피디 같은 제너럴리스트에 비할 바가 아니에요.”
그는 담담히 고백한다.
“저는 진작 밀려났어야 했던 앞물결이었습니다.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자신의 한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남자.
손영상 이사가 이 기회를 빌어 말했다.
“이 기회에 개발 총괄직도 유 피디에게 넘기시는 게…….”
“그건 안 돼.”
유진성 회장이 단호하게 거부했다.
“아직 일러. 라이브 본부장으로서, 그리고 신규 개발팀 피디로서 증명하고 난 뒤에 가는 게 맞아. 사실 지금도 파격 승진이라 반발하는 사람이 적잖거든.”
“음…….”
“모든 일을 능력 하나만 보고 처리할 수는 없는 법이야. 자네도 잘 알잖아?”
“그건…… 그렇죠.”
“그러니까 조금만 더 버티고 있어 봐. 어쨌든 이전보다는 낫잖아. 좋은 후계자가 생겼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손영상 이사를 다시 한번 설득하는 데 성공한 유진성 회장이 말했다.
“들었지? 그러니까 네가 잘해줘야 해. 나 진짜 너만 믿는다.”
태연은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
임시 감찰팀 첫 회의.
태연이 말했다.
“오늘 아침까지 날아온 투서를 모두 중요도 순으로 분류하고 대략적인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차례대로 투서자와 면담 후 처리를 진행하도록 합니다. 일주일에 각자 한 나씩. 총 여섯 개의 업무를 처리하면 되겠군요. 업무를 분배하겠습니다.”
두툼한 파일첩을 하나씩 나눠줬다.
“증거 확보를 위해 내일 액션 캠을 하나씩 제공하겠습니다. 그것으로 면담, 증거 확보 및 처리 과정을 모두 기록해서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사전에 관계자들의 동의를 얻으셔야 합니다.”
이것은 감찰팀의 안위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증언자들이 뒤에서 말을 바꾸거나 혼동하는 경우가 워낙 많으니 이를 방지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그런 일이 생각보다 많긴 하죠.”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홍민석 AD에게 이목이 집중된다. 그는 씩 웃었다.
“비슷한 경험이 많아서요.”
“오늘 업무 파악하시고, 내일 아침에 액션 캠을 나눠드리면 그때부터 업무 시작합니다. 동영상 파일을 업로드할 클라우드 계정은 오늘 개설 후 메시지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당장 처리해야 할 사건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과 해결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회의가 끝날 무렵.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강조하겠습니다.”
눈이 매섭게 번뜩인다.
“감찰 팀은 기계적이어야 합니다. 자신을 그냥 판결을 위해 태어난 사이보그라고 생각하세요. 일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따져보고 잘잘못이 가려지면 가차 없이 징계를 내리십시오. 관용 따위 베풀지 마시고. 아시겠습니까?”
“네!”
“모든 일은 임시 감찰팀장인 제가 책임집니다. 공을 세우면 반드시 합당한 보상을 지불할 겁니다. 그러니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진행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그 얼굴은 마치 죄지은 자를 명부로 끌고 갈 저승사자처럼 으스스했다.
팀원들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