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44화 (44/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44화

28. 조직 개편(3)

어메이징 레이싱 팀 아트 디렉터 박유환.

올해 34세인 그는 이혼 경력이 있고, 예전부터 캐주얼 작화 분야에서 네임드 일러스트레이터였다고 한다.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업계에 오래 몸담고 있으면 종종 접하는 뻔한 이야기였다.

인재 채용 과정에서 예쁘고 자기 취향인 이성을 뽑아 업무를 가르쳐 준다는 명목으로 접근한다는 이야기.

‘거기까지는 이해해 줄 수 있다고 쳐도…….’

박유완 AD는 접근 과정에서 선을 넘고 있는 중이다.

결정적으로 신고자인 1년 차 원화가 김혜원은 남자 친구가 있다고 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박유환 AD의 선 넘은 행동 중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일화 몇 가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아트팀 회식이 꽤나 잦은 편인데, 그때마다 제 옆에 꼭 붙어 앉아서 술을 계속 권하고 취하는 걸 유도하면서 차마 듣기 힘든 농담을 던지곤 했어요.”

“그 듣기 힘든 농담이란 게 정확히 무엇이죠?”

“그, 그러니까…….”

“힘드시겠지만 정확히 말씀해주시지 않으면 제가 도울 수 없습니다.”

머뭇거리던 그녀는 대답 대신 휴대폰을 꺼내고 녹취 파일을 재생했다.

-밤이낮져 낮져밤이. 이거 뭔지 알아요? 요즘 유행하는 건데 이게 뭐냐면…….

-……그래서 혜원 씨는 어떤 타입이에요?

-혜원 씨는 골반하고 다리가 정말 예쁜 것 같아요! 참 신기해요. 얼굴은 그렇게 청순한데 몸매는…….

‘이거 미친놈인가?’

태연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혜원 씨. 회식 끝나면 우리 따로 좀 가요. 네? 에이, 저 못 믿어요? 혜원 씨 데려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 그래요.

-전 개인적으로 청순한데 내면에 요부 기질을 숨기고 있는 여자가 좋아요. 제 생각에는 혜원 씨가 그런 타입일 것 같은데…… 어때요?

차마 들어줄 수 없는 저질적인 농담도 있었다.

“이, 이런 것도 있어요.”

코코아톡 대화 내용이었다.

텍스트 분량이 상당했는데, 얼핏 보기에도 업무 외적인 내용으로 치근대는 수준이었다.

“사내에 이 사실을 알고 있고, 혜원 씨 편을 들어주는 친한 사람이 있습니까?”

“네! 정기원 씨라고…… 사실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던 저에게 피디님께 이야기를 해보라며 조언을 해주기도 했어요. 피디님은 평판이 굉장히 좋고 파이터 기질도 다분하니 이런 일을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라며…….”

파이터 기질이라니…….

어처구니없는 마음에 피식 웃으며 태연이 말했다.

“그분을 이곳으로 불러주시겠습니까?”

정기원.

같은 팀 3년 차 원화가였다.

“목격담을 모두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거침없이, 정말 낱낱이 까발렸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인간, 대체 무슨 깡인지 모르겠는데 본인 업무도 제대로 안 해요! 가만 보면 수상쩍은 부분이 많아요. 가끔씩 캐릭터 모델링을 외주 모델러에게 맡기던데 굳이 그럴 이유도 모르겠고…….”

“잠깐. 그 이야기 좀 자세히 해주시겠습니까?”

“네, 네? 어떤……?”

“모델링 외주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자세히 좀 듣고 싶군요.”

태연의 눈이 이글거리는 것을 본 정기원이 움찔했다.

기세에 짓눌린 그는 더듬더듬, 자신이 보고 들은 내용을 실토했다.

“그, 그러니까…….”

즉각 총무팀에 가서 어메이징 레이싱 팀 외주 지출 내역을 확인했다.

‘천만 원이라, 과한 액수야.’

어메이징 레이싱은 캐주얼 게임으로, 고퀄리티의 그래픽을 요구하는 게임이 아니다. 카드, 캐릭터, 아이템 디자인도 만화 같은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방향이라 외주 비용이 천만 원씩이나 들 게임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드림 소프트 시절 외주로 장난치는 사람이 꽤나 많았지.’

분기마다 외주 비용이 각기 다른 곳으로 지출됐는데 모두 천만 원.

혹시나 싶어 다른 라이브 스튜디오의 외주 지출 내역을 확인해 봤다.

‘아무리 리얼 그래픽이라도…… 외주 비용이 3,000만 원이라고?’

자신이 알고 있는 국내 최고 모델러의 외주 값이 2,000만 원 수준이었다. 그조차도 모든 외주에 그 정도 비용을 받지 않는다. 대부분 지인 찬스로 부탁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체적으로 할인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 번씩 확인해 봐야겠군.’

가급적이면 조용히 조직 개편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렇게 되기는 힘들 것 같군.’

* * *

“어? 아, 안녕하십니까!”

어메이징 레이싱 총괄 디렉터는 4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붉은색 뿔테 안경을 착용했고 덩치가 꽤나 컸다.

태연의 등장에 스튜디오 개발팀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태연은 무덤덤한 얼굴로 디렉터에게 물었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이번에 카드하고 캐릭터 모델링을 외주로 진행하셨죠?”

“네? 네! 그, 그런데요?”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린다.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왜, 왜요?”

“캐주얼 게임에 천만 원짜리 모델링 외주라니, 어느 정도 수준일지 궁금해서요.”

태연은 작게 미소 지어 보였다.

“보고 퀄리티가 좋으면 저도 다음 작품 때 그 사람에게 외주를 부탁해 보려고 합니다.”

“…….”

그녀가 눈에 띄게 새빨개진 얼굴로 덜덜 떨기 시작했다.

태연은 변함없는 미소로 물었다.

“왜 그러시죠?”

“그, 그…….”

태연은 고개를 돌렸다.

개발팀 전원 어리둥절한 얼굴로 태연과 디렉터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딱 한 명.

‘저 사람이군.’

비즈니스 캐주얼 스타일로, 옷을 깔끔히 차려입은 포마드 스타일의 미남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다.

“박유환 AD님?”

“네, 네!”

“두 분, 회의실로 저 좀 따라오시지요.”

두 사람은 죄를 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떨구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태연의 뒤를 따랐다.

“안 잡아먹습니다. 두 분 진정 좀 하시지요.”

소용없었다.

두 사람은 당장에라도 뒤로 넘어갈 듯,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애처롭게 떨고 있었다.

‘대체 내 이미지가 어떻게 박혀 있는 거지?’

저승사자라도 목도한 모습.

‘이왕 이렇게 된 거…….’

태연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외주비 횡령하셨죠?”

“……!”

“의뢰한 모델러는 아마도 회사에서 연봉 5,000만 원 수준을 받고 있을 테고, 두 분은 모델링 외주 비용으로 천만 원 중 3.3%를 뗀 967만 원을 입금하셨겠죠. 그리고 두 분이 각각 200만 원씩을 입금받으셨을 겁니다. 모델러는 567만 원을 먹었겠군요.”

휘둥그레지는 두 눈.

심장 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제가 든 예시에서 잘못된 곳이 있습니까?”

“…….”

“…….”

입술을 오물거리던 두 사람이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모든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박유환 씨.”

“네, 네……?”

“당신은 직장 내 성희롱으로 추가 징계와 처벌을 받을 예정이니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제, 제가 왜…… 저 그런 적 없습니다! 그건 모함……!”

박차고 일어서서 황급히 반박하던 박유환 AD.

곧 태연의 얼굴과 마주한 그는 뱀 앞의 개구리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안 그래도 냉랭하고 날카롭던 시선에 살기까지 담기니…….

‘꿀꺽.’

두려움이 밀려온다.

“증거가 너무나도 명확하니 반박 따위는 받지 않겠습니다. 만약,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부정하면 지금까지 모든 부정을 탈탈 털어 가중 처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안경 너머 눈빛이 번뜩인다.

“한 번 해보겠습니까?”

“……!”

다리가 풀린 그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송유정 디렉터.”

“네, 네에…….”

“이번 일에 순순히 협조하면 살길을 열어주겠습니다.”

“어, 어떻게……?”

“지금까지 빼돌린 돈을 모두 되돌려 놓고 과정을 숨김없이 자백하면 아무 말 없이 퇴사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회사에 취직해서 어떻게든 먹고살 길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태연이 열어준 마지막 기회의 문임을 자각한 송유정 디렉터는…….

“그, 그게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 * *

이후 태연은 인사총무팀장을 호출, 같이 외주비 횡령이 강력히 의심되는 스튜디오의 PD와 AD를 소환해 심문 아닌 심문을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이 학원비 때문에 눈이 멀어서 그만……!”

왜 심문 아닌 심문이었냐면, 태연의 냉담한 얼굴과 마주한 이들이 덜덜 떨며 먼저 사실을 실토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두가 순순히 협조한 건 아니었다.

“갑자기 사람을 불러내서 범죄자 취급이라니…… 사람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당신, 본부장 자리에 오르니 무서운 게 없어? 내가 이 회사에서 무려 십 년을 넘게 피디로 있었던 사람이. 손영상, 이태영 이사 사적으로 나하고 형 동생 하는 분들이라고! 알아들어?”

되려 큰소리를 치는 사람.

“전 정말 억울합니다. 외주비 횡령이라니요? 그런 적 없습니다!”

끝까지 억울하다는 듯 잡아떼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 대한 대응은 간단했다.

“조사하면 다 나옵니다. 어디 끝까지 가봅시다.”

* * *

결국 퇴근 전까지 모든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다.

태연의 확신을 가지고 비리 내역을 정확히 짚어버리니 모두가 두 손을 들어버린 것이다.

인사총무팀장은 신기한 얼굴로 말했다.

“역시 본부장님. 듣던 대로 굉장하신 분이세요!”

“……대체 사내에 제 소문이 어떻게 퍼진 겁니까?”

“개발 머신! 철혈의 남자! 몰살의 유 PD!”

“다른 건 다 몰라도 마지막 그 별명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제가 누구를 어떤 식으로 몰살했다는 거죠?”

“감히 모함하고 대드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고 가차 없이 목을 쳐 날린다고 붙은 별명입니다!”

헛웃음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관계가 많이 좀 뒤틀려서 알려진 느낌이네요.”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 유일하게 회장님과 이사님들의 결정을 엎어버릴 수 있는 분이시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건…….”

“아닙니까?”

“그분들이 뻘소리를 해서 몇 번 엎은 적이 있긴 한데 그렇다고 무슨 막강한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역시……!”

태연을 향해 눈빛을 반짝이는 인사총무팀장!

‘하버드 출신에 아버지가 한국은행 부총재님이라고 하셨던가?’

사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강력한 힘과 인맥을 지닌 사람이라고 들었다.

유진성 회장과 손영상, 이태영 두 원투펀치가 굉장히 총애하는 인재이기도 하다.

“존경합니다! 본부장님!”

“……부담스럽군요.”

“아니, 아부 떨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 추진력, 어마어마한 게임 개발 내공과 어떤 외부 알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추구해 나가는 모습. 피디님은 제 영웅이십니다!”

진짜로, 심히 부담스럽다.

태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슈를 돌렸다.

“모든 과정을 함께하셨을 테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잘 아시겠죠?”

“네! 물론입니다!”

“공백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고민해보고 다시 팀장님께 상의해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본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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