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42화
28. 조직 개편(1)
유태연이 라이브 본부장으로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다!
태연의 회사 복귀와 함께 퍼지기 시작한 이 소문이 라이브 팀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은 직장인 커뮤니티, 갈대나무 숲 넥플 라운지였다.
-넥플 라이브 팀 조직 개편한다는 이야기가 가득한데, 혹시 아는 거 있는 사람?
└유 PD님 업무 복귀 때문에 그러는 것 같은데…… 글쎄? 내가 경험한 유 PD님은 사람 쉽게 자르고 그럴 분은 아니었는데…….
└몬스터 이터 쪽은 처음부터 자신이 사람들을 뽑아서 채워놨으니 그랬던 거고, 이번 라이브 팀은 문제가 많아서 싸그리 정리 한 번 하고 간다는 이야기가 무성함.
└그런데 사실 지금 라이브 팀 문제 많은 거 맞지 않나? 당장 내 주위에도 일 열심히 안 하고 카페테리아나 주위 산책로에서 살다시피 하는 사람 많이 보이는데…….
“뜨끔하네.”
카페테리아가 아닌 외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김종욱 대리가 움찔했다.
마지막 댓글이 왠지 자신을 겨냥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나 그래도 일할 때는 열심히 하는데…….”
그리고 노트북으로 작업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방금 본 글이 신경 쓰여서 견딜 수 없었다.
‘나갈까?’
노트북을 챙기려는데.
‘헉……!’
방금 들어온 카페 손님의 얼굴을 확인하곤 식겁해 버렸다.
“어, 아, 아, 안녕하세요.”
“김종욱 씨 맞죠?”
“네! 마, 맞습니다.”
‘날 알고 있어?!’
난 그저 월 매출 20억 따리밖에 안 되는, 서비스 10년 차가 넘은 작은 게임의 시나리오 기획자일 뿐인데……!
단 한 명밖에 없는 직군이라지만 넥플 전체로 따지면 눈에 띄는 포지션이 아니다. 그렇게 튀는 사람도 아니고.
얼어붙은 김종욱 대리를 두고, 병 음료 한잔을 주문한 유태연 피디는…….
“앉아도 되겠죠?”
“네? 네! 무, 물론이죠!”
그의 앞자리에 앉는다.
병을 따서 음료를 한 모금 마신 유태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김종욱 대리를 바라본다.
“김종욱 대리님 인사 평가가 상당히 재미있더군요. 사무실에 있는 시간보다 없는 시간이 더 많고.”
움찔.
“시나리오 기획자라면 소통이 굉장히 중요한데 커뮤니케이션을 좀 회피하는 성향도 있고.”
움찔! 움찔!
“흐음.”
설마 날 찾아온 건가?
그렇다면……?
심장이 급격히 뛰기 시작한다.
‘설마…… 잘리나?’
그런데 이어진 말이 예상을 뒤엎는다.
“작업 중이었나요? 어디 봅시다.”
“네? 네. 여기…….”
자신의 노트북을 쭉 살피던 유태연이 피식 웃었다.
“김종욱 대리님 원래 소설 쓰던 분이군요. 아니면 지금도 쓰고 계시나요?”
“……!”
하얗게 질린 얼굴.
‘어, 어떻게 그걸…….’
비밀이었는데……!
회사는 겸직을 금한다.
어차피 잘나가는 작가도 아니고…… 글을 쓰고 연재를 해도 가족 명의로 하고 몰래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내 기획서만 보고 그걸 파악했어!’
확신이 담겨 있는 목소리로 눈빛으로 대답을 요구하는 태연에게.
“……사, 사실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제목이 뭐죠? 어디서 연재 중인가요?”
“그…….”
“겸직 문제로 탓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 거예요.”
“폭력명가 막내아들이라고, 카카오 페이지에서 연재 중인데…….”
“잠시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무거운 침묵.
잠시 후.
“불필요한 설명이 너무 많네요.”
“……!”
“개연성을 놓치지 않고 시나리오를 전개시키려는 건 좋은데 거기에 너무 매여 있어서 특정 이벤트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지루해요.”
“헉!”
“클리셰를 따오는 건 좋지만 본인만의 아이덴티티가 보이지 않는 게 많이 아쉽네요. 전반적인 구성을 본인의 창작이나 아이디어보다는 분석에 의한 결과에 의지하는 것 같은데…….”
“……!”
김종욱 대리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편집자. 그리고 친한 작가 동료들이 늘 해주던 지적을 설마 여기서 받게 될 줄이야!
“문제는 이런 단점이 게임 시나리오 작업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참 희한한 일이죠. 게임과 소설 작업은 완전히 다른 분야인데.”
“…….”
“이것이 뜻하는 건 간단합니다. 게임 작업을 소설 작업하듯이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캐릭터, 맵 설정에도 보면 군더더기가 너무 많이 보여요. 퀘스트 입력을 직접 해본 적 없죠?”
“…….”
눈치를 보는 김종욱 대리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퀘스트 테이블 작업 직접 안 하죠?”
“……네.”
급속도로 위축되는 김종욱.
‘쯧.’
태연은 속으로 혀를 찼다.
테이블 작업을 직접 하지 않는 시나리오 담당자라니.
이래서야 ‘기획자’라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이 아닌가?
“데이터 테이블 작업은 누가 해주나요?”
“기, 기획팀장님께서…….”
“왜 그분이 대신 해주는 거죠?”
“저보고 시나리오 구성 짜는 것에만 집중하시라며…….”
“김종욱 대리님은 할 줄 아십니까?”
“그야 어느 정도는…….”
“정확히 말씀해 주십시오. 혼자 퀘스트 구성해서 입력하고 테스트하는 것까지. 모두 할 줄 아십니까?”
“그, 그게 그러니까 완벽히 다 아는 건 아니고 대사 입력 수정 정도는 확실하게…….”
시원한 카페에서 진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하는 김종욱 대리.
빤히 쳐다보던 태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그의 심장도 덩달아 내려앉았다.
“저는 자기 일만 잘하면 어디서 어떻게 일하든 신경을 쓸 생각은 없었습니다. 네. 일만 잘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다시 노트북 화면을 살펴보며, 태연이 뼈를 때린다.
“그런데 김종욱 대리님은 그것도 아니에요. 업무 역량, 전반적인 이해도 같은 것들이 조금 아쉽습니다.”
“…….”
시무룩해지는 김종욱 대리.
미래를 직감한 것이다.
‘아, 난 여기까지구나.’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마 업무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군요.”
“……네?”
“김종욱 대리님은 조금만 끌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어…….”
“제가 도와줄 테니 한 번 제대로 배워볼 의향이 있습니까?”
“……!”
이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김종욱의 머릿속이 탈색됐다.
혼나고, 퇴사를 권유받을 줄 알았는데…….
“저…… 저 그러면 회사 계속 다녀도 되는 건가요?”
“대화 중 제가 퇴사 권유를 한 번이라도 했었던가요?”
“그건 아니지만…….”
“…….”
머뭇거리던 김종욱이 물었다.
“피, 피디님께서 절 끌어주시는 겁니까?”
얼굴에 담겨 있는 기대감을 읽고 태연이 정색했다.
“제 발언을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무슨 라인을 만들겠다는 소리가 아니라 대리님 작업물에 피드백을 해드리겠다는 말뜻이었으니까요.”
역시 아니었구나.
살짝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일단은 받아들이고…….’
많은 생각이 샘솟으려는 순간.
“이번 업데이트 때 그 성과가 확실히 드러나야 할 겁니다.”
“네?”
“시니리오 부분에서 유저들의 평가가 이전과 비교했을 때 나아진 게 없다면…….”
그러니까 이 순간을 모면할 생각으로 대답하지 말고 진지하게 고심해라.
“제 말뜻. 충분히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네.”
남은 음료를 모두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선 태연.
멍하니 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종욱은 그대로 늘어졌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살았다.‘
* * *
‘그저 근태가 안 좋다는 이유로 갑자기 사직을 권유할 수는 없지. 그래서도 안 되고.’
미국과 달리 한국은 어지간해서는 정규직을 해고하는 게 참 어려운 나라였다.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한 번의 기회 정도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태연이었다.
‘그래도 나아지는 모습이 안 보인다면…….’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투명한 카페 출입문 너머.
자리에서 늘어져 있는 김종욱이 보인다.
“그때는 가차 없이 쳐내야겠지.”
* * *
태연은 근태가 유난히도 안 좋거나, 업무 역량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면담을 진행했다.
자신이 파악한 단점과 장점을 충분히 설명한 뒤 피드백을 제안했다.
받아들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전 제가 제대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본부장님 말씀하시는 건 음해성 발언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저에 대해 완전 잘못 보신 것 같은데…… 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제가 그 정도밖에 못한 건 실력이 그게 다라서가 아니에요. 위에서 그런 걸 요구했으니까 맞춰 준 것뿐이라고요!”
오히려 화를 내며 반박, 부정하거나 심지어 태연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거 지금 저 협박하는 거죠? 좋게 말할 때 알아서 퇴사하라고 눈치 주는 거잖아요!”
지켜보던 손영상 이사가 걱정을 담아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냐? 너 그러다 또 한 인터넷에서 미투 당하는 수가 있어!”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응? 왜 그렇게 자신해?”
“본인이 근태 불량자로 찍혔다는 사실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셈이니까요.”
“아하.”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말로야 억울하다고 하지만 실은 팀에서 본인 입지를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괜히 이슈를 일으켰다가 도리어 역공을 받을 수도 있어요. 분란을 최대한 피한 채 지금 상황을 아무 탈 없이 조용히 넘기고 싶을 겁니다.”
“…….”
질린 듯 바라보던 손영상 이사가 진지하게 물었다.
“너 혹시 게임 개발하기 전에 의대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이라고 하고 왔냐?”
“그냥 비슷한 사람들을 대해본 경험이 많을 뿐입니다.”
* * *
태연의 추측은 절반 정도만 맞았다.
-형들. 나 얼마 전 유태연 피디랑 개인 면담했는데 너무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들어서……
한 직원이 갈대나무 숲 앱에 하소연성 글을 업로드한 것이다.
자기가 업무와 근태에서 불합리하게 평가 절하를 당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그런 식으로 찍혔다는 것도 황당하고 억울한데, 어디 무슨 그림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내 실력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너무 기가 막히잖아! 자기가 뭐라고 대체? 원화와 우리 스튜디오 업무 분위기 같은 거 아무것도 모르면서 대체…….
그런데 댓글 반응은 게시자의 기대를 철저히 무너뜨렸다.
-그러니까, 너 장단점을 충분히 설명해 준 뒤 이런 문제만 고치면 더 좋을 것 같으니까 같이 한 번 힘내서 다음 업데이트 때 좋은 평가를 받아보자고 제안했다는 거잖아? 굉장히 신사적이고 스윗한 대처 아닌가?
└그렇게까지 해주는 직장 상사가 있다는 소리는 업계에 들어와서 지금 처음 들어봄. 보통은 R&D 센터, 혹은 정체 모를 신규 개발팀으로 전배발령 내버린 뒤 알아서 나갈 때까지 무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유태연 피디는 아마추어 시절에 일인 개발자로 혼자 이것저것 다하면서 좋은 게임 만들던 사람이야. 너보다 아트팀 업무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어.
오히려 태연의 대처를 칭찬하며 비난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는 게 아닌가?
이에 당황한 게시자는 황급히 글을 지웠지만 이미 캡처본이 박제되어 인터넷 커뮤니티까지 퍼진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