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40화
26. 반전
반박을 준비하는 내내 태연은 두통에 시달렸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내가 왜 이 시기에 이런 일에 신경 써야 하는 거지?’
강건이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짜증.
그리고 그런 인간을 존경하며 청춘을 바쳤던 과거의 어리석음에 환멸이 일 지경이었다.
그런데 태연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강건 대표에게는 적이 굉장히 많다는 것.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든든한 아군이 되어줄 옛 동료들이 가득하다는 것.
당사자들이 예상치 못했던 반전의 시작은 직장인 커뮤니티 갈대나무 숲에서 시작됐다.
* * *
-강건 대표. 자살하려고 작정을 했구나. 감히 누구를……. 판 깔렸으니 어디 한번 붙어보자. 넌 뒤졌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강건의 회사 자금 횡령 증거 올림.
└강건 개새끼.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서 나한테 추파 부리던 거 유 피디님이 구해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때 녹취록 다 가지고 있다. 상처뿐인 기억이라 어지간하면 묻어두려고 했는데 더 이상 못 참겠다.
직장인 커뮤니티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과거 드림 소프트와 블레스 스튜디오에서 재직하며 강건과 유태연. 두 사람을 모두 경험한 전적이 있던 이들이 고발을 시작한 것이다.
-강건이 자기가 성공시켰다며 으스대던 게임 대부분이 사실은 유태연 PD의 공이었음. 본인은 아무것도 안 하다가 막판에 숟가락만 슬쩍 얹고 자기의 공으로 포장하는 못된 인간임.
└그 행각에 질려서 나간 인간이 한둘이 아니지. 사실 개발 실력이라는 것도 별거 없음. 정치질로 자기 능력과 공을 과대 포장하는 데 타고난 인간이라 그거 하나로 스타 개발자 소리 들었을 뿐임.
└그에 비하면 유태연 PD는 정말 성인이지. 사람도 굉장히 착하고, 어려운 일은 자기가 다 하고 본인은 야근 밥 먹듯이 하면서 부하 직원들은 칼퇴 보장해 주려고 하고…….
└강건 따위를 유 PD와 비교하려는 시도 자체가 실례임. 강건은 걍 쓰레기. 이 새키는 블레스 시절 법인 카드를 무슨 자기 개인 신용카드마냥 사용하던 인간임. 진짜 말도 안 되는 거 비용 처리로 바꾼다고 고생하던 거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드림 소프트와 블레스.
두 회사 재직 시절의 상황을 꿰뚫고 있던 이들이 속출한다.
당시에는 업계 초보라 아무것도 몰라 당했지만, 지금은 경력이 쌓일 대로 쌓여 베테랑으로 성장한 이들이었다.
특히 유태연과 동고동락을 함께했던 이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유명 회사의 중추 인력으로 근무하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유태연을 보호하고자 나선 것이다.
강건 대표에 대한 원한에 칼까지 날카롭게 갈고서.
‘일이 이런 식으로 전개되다니…….’
이 같은 상황에 태연도 당황하고 있었다.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같이 커피를 마시던 홍민석 AD가 슥 말한다.
“우리 피디님. 그동안 회사 생활 정말 잘 하셨나 봐요.”
“네?”
“아무리 친한 관계라도 남을 위해 총대 메고 나서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피디님을 변호해주고 있잖아요.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홍민석 AD가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이게 바로 업계에서 피디님의 위상을 증명해 주는 거죠. 게임 만드는 실력만 좋은 게 아니라 인망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이니까요.”
원래 태연이 나서서 해명했어야 할 일은 각기 다른 회사로 퍼진 수많은 직원들이 나서서 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조차도,.
-한계돌파 때 잠깐 유 피디님 밑에서 시스템 기획 했던 사람인데, 유 피디님이 욕먹을 일이 하나도 없음. 다 강건 대표가 문제임. 그 자식 순 사기꾼에 도둑놈에…… 전형적인 간신배 스타일임.
-피디님 응원합니다! 블레스 판데모니움 개발 초창기 때 피디님에게 시나리오 기획 배웠던 팀원이에요! 저 피디님 TF 때 자료 아직도 다 가지고 있어요. 함께 일해 본 사람들은 강건 대표가 헛소리하고 있다는 거 다 알고 있어요!
“이렇게 되면 누가 결백한지 상황이 뻔히 드러나게 되죠.
홍민석이 보여준 게시글을 보며 태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참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기도 하네요. 저 같은 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나서서…….”
“그런데 나서주는 사람들 회사가 다 하나같이 어마어마하네요. 유비, 캡콤, 닌텐도…… 심지어 헐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네요.”
“…….”
“아무래도 유 피디님은 게임 말고 인재 만드는 일에도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태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제가 운이 좋아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분들이 저하고 있어준 거라고 봐야죠.”
그 시선은 홍민석에게 향했다.
“홍 AD처럼요.”
“거 참. 사람 민망하게…… 하하.”
* * *
자신의 인터뷰로 유태연에 대한 여론이 반전되었을 때까지는 속이 시원했다.
‘너도 당해봐야지.’
최근 들어 안 좋은 일이 가득했다.
바로 저 유태연 때문에!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놈!’
똥물을 거하게 뿌리고 나간 덕분에 투자고 일이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심지어 내 등에 비수를 찌르기까지 했지.’
넥플의 투자는 성사 직전이었다.
그런데 막판에 갑자기 뒤집혔다.
그리고 갑자기 유태연이 튀어나가더니 본래 자신의 것이었어야 할 것들은 모두 집어삼켜 버렸다.
그러니 이제는 스타 개발자란다.
‘그 자식이 무슨…… 당치도 않은 소리야.’
그 이후 모든 일이 안 됐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인지 투자가 성사 직전에서 엎어져 버렸다.
‘그것도 유태연 저 녀석이 뒤에서 손을 쓴 게 분명해.’
넥플의 핵심이라지 않나?
손영상, 이태영 이사도 모자라 유진성 회장까지 구워삶은 게 분명했다.
‘스타개발자는 무슨, 스타 정치가라고 해야지.’
당하고는 못 산다.
기회만 노렸는데 복수의 때가 왔다.
인터뷰 한 방으로 잘 차려지고 있던 밥상을 엎어버렸다.
의도는 성공적이었다.
‘어차피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은 없었어. 내가 당한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 첫 번째. 그리고…….’
모니터 너머, 방대한 필드를 뛰어다니는 캐릭터들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 기회에 내 게임의 존재를 알려야지.’
실제로 자신의 인터뷰가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기폭제로 작용하며, 회사와 게임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유태연 피디 그런 사람일 줄 생각도 못 했는데…… 힘내세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응원합니다!
지인들도 SNS에 응원을 쏟아냈고 그중에는 투자사 관계자들도 있었다.
‘어차피 시간이 좀 지나면 흐지부지될 거야. 그동안 빠르게 챙길 것만 챙기면 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일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강건 대. 지금 누가 누굴 뭐라고 하는지…… 지금까지 타고 다니던 페라리, 벤츠, 아우디…… 죄다 법인 리스였지? 투자받은 돈, 개발에는 안 쓰고 지 편한 곳에만 이상한 명목 붙여서 쓰고…….
-오죽하면 유 피디 없었으면 강건 대표 진작 망하거나 아니면 사기죄로 잡혀갔을 거라는 이야기가 많았음. 회사 공금을 지 X대로 운용해서…… 그동안 걸리지 않았던 게 유 피디 개발 역량 덕분이었거든. 쥐꼬리만 한 개발비로 그 이상을 뽑아줬으니까.
-그거 암? 블레스 창립 멤버들, 그렇게 게임 잘 만들고 회사 키워놓고도 돈 10원 한 장 못 받고 쫓겨나다시피 함. 유 피디 나간 시점에서 공신들 전멸……ㅋㅋ
고발이 속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들이 생사람을 잡네? 누구야? 어떤 놈들이야!”
혹시나 싶어서 직장인 커뮤니티 앱, 갈대나무 숲에 접속했다.
‘게임’ 분야 라운지의 게시물들이 온통 자신에 대한 욕설뿐이었다.
“이이익……!”
처음에는 혈압이 올랐지만, 온갖 증거 자료가 제시된 게시글이 무더기로 속출하니 점점 표정이 심각해졌다.
처음 보는 내용이 굉장히 많았던 것이다.
“이게 다 뭐야?”
모함이라고, 거짓이라고 부정하고 싶은데…….
‘이건 누가 봐도…….’
갑자기 온몸이 떨려온다.
심장이 급격히 뛴다.
두려움과 함께 진노가 동시에 몰려온다.
‘내 편…… 내 편은 있겠지?’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자신을 옹호하는 글이 없다.
이번에는 국내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를 돌아다녀 봤다.
제목 : 유태연 Vs 강건 현재 진행 상황.
현재 게임 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유태연 피디님 편만 들어주고 강건을 욕하는 상황.
강건 대표의 개발자로서 능력에 다들 부정적인 반응이고 더러운 정치질로 돈과 명성을 얻은 사람이 뿐이라는 게 관계자들 증언.
심지어 지금 블레스 스튜디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온통 강건 대표 욕뿐임.
갈대나무 숲 게임 라운지 게시글 캡처해서 올릴 테니 직접 보고 판단해보기를.
ps : 그런데 이 정도면 사실상 대세는 기울었고 강건 대표는 괜히 자살골을 넣은 게 아닌가 싶은데……;;
-나도 지금 갈대나무 숲 보고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강건 대표만 욕할 수 있는 걸까? 신기할 정도로 욕을 먹고 있네.;;;
└심지어 유태연이 처음부터 기획 다 하고 사람 모아 만들어서 성공시킨 게임, 본인이 숟가락만 올려놓고 모든 공을 다 빼앗았다는 고발글도 굉장히 많음.
└인센티브도 하나도 안 줬고 그렇다고 연봉이 높은 것도 아니라고……. 오히려 업계 평균 이하라는데?
└하…… 한계돌파 그 띵작을 만들어서 성공시키고 받은 인센이 하나도 없다니…… 이 정도면 사실상 착취 아니냐?;;;
└횡령, 성추행…… 온갖 범죄 증거가 다 쏟아지네. 대체 뭐야? 이 강건이라는 사람은…….
“끄으윽……!”
끊는 신음이 절로 흘러나온다.
마지막으로 뉴스 기사를 확인했다.
[유태연 PD 사기꾼이다! 세상은 모두 그의 가식에 속고 있다! 충격적인 폭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강건 대표. 고발글 속출!]
[스타개발자 ‘강건’ 대표. 공금 횡령에 직원 성추행…… 끝도 없이 터져 나오는 추악한 실태에 업계가 경악하다!]
포털 사이트 뉴스 시사의 랭킹 페이지가 온통 자신 관련 내용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끄아아아!”
결국 이성을 잃은 그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집어 던지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쌓은 모든 것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 * *
[강건 대표. 투자금 수십억 횡령 혐의로 경찰 고발.]
[인터넷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성추행 등 미투 고발에 대한 조사도 추가로 이뤄진다.]
“축하합니다! 역시 진실은 밝혀지는군요!”
“정의는 승리하는 법이죠!”
넥플 플러스와 엔터테인먼트 등, 회사 직원들이 찾아와 축하 인사를 건넨다.
유태연은 기쁘면서도 얼떨떨한 심정이었다.
‘설마 이번 일이 이런 식으로 끝나다니…….’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는데 완승을 거뒀다.
강건 대표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니 이미 수십억을 투자한 중국 거대 게임사, 투자사들이 자체 조사 후 고발을 진행했다는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강건 대표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던 과거 직원들이 증거 자료를 제출해서 고소를 진행했고.
유진성 회장이 집무실로 태연을 불러 말했다.
“야, 나 살다 살다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너 진짜 회사 생활 잘한 모양이다? 과거의 동료들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변론해 주며 대신 화까지 내주다니…….”
“제가 지금까지 일하면서 얻은 유일한 재산이 바로 이 인맥이었습니다.”
태연은 빙긋 웃었다.
“제가 돈복은 없어도 인복은 있었나 봅니다.”
“인마.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 돈 많이 안 주고 부려 먹는 것 같잖아. 이제부터 돈을 갈퀴로 쓸어담게 될 놈이…….”
“제가요?”
“그래 너 인마! 너 이제 넥플 엔터테인먼트 대표야! 그냥 많고 많은 자회사 중 하나가 아니라, 우리 그룹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중추! 자식아!”
“그렇게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요.”
태연한 태연을 빤히 바라보던 유진성 회장이 말을 툭 던졌다.
“이제 보니 넌 돈복이 없는 게 아니라 본인의 복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게 습관이 되어서 없어 보이는 것뿐이야.”
“그렇습니까?”
“몬스터 이터 성공으로 네가 가져갔을 몫이 상당했는데 그거 다 팀원들에게 분배했잖아.”
“그게 맞으니까요.”
“보나 마나 라이브 본부장 인센티브도 그렇게 뿌릴 게 뻔하고…….”
“다 같이 고생했으니 기쁨도 함께 나눠야죠.”
유진성 회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알았다. 아무튼 가봐. 마음고생 많았을 텐데 오늘은 조금 쉬엄쉬엄해.”
“네.”
태연이 자리를 떠나자 유진성 회장이 혼잣말을 했다.
“강건 이 병신 같은 놈. 저런 보물단지를 가지고 있었으면서 그 가치도 알아보지 못하고……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