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38화
24. 뉴욕! 뉴욕!
뉴욕행 비행기 티켓을 끊는 자리에서 소소한 말싸움이 벌어졌다
“자리를 따로 마련해서 따로 출발하는 게 좋지 않을까?”
“…….”
방금 전까지 생글생글, 기운이 넘치던 윤아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오빠. 혹시 나랑 같이 다니는 게 싫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각오 다 됐다며?”
“됐지. 됐는데…….”
더 이상의 변명은 화를 부를 뿐!
태연은 즉각 태세를 전환했다.
“같이 가자.”
그리고 나름 큰마음을 먹고 프레스티지석으로 끊으려는데…….
“오빠. 잠깐 기다려 봐.”
윤아가 제지한다.
그리고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더니.
“오빠. 퍼스트 클레스로 두 장 끊어주고 차도 좀 렌트해 줘.”
그렇게 일 처리를 아주 간단하게 끝내 버린다.
“퍼스트 클래스라니…… 그거 비싸지 않아?”
“비싸지만 우리의 첫 해외여행이잖아. 최대한 편하게 가야지.”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빠 뉴욕 가본 적 없구나? 잠깐 기다려 봐. 그 호텔 말고 내가 아는 호텔이 있는데…….”
센트럴 파크 바로 근처, 가장 비싼 최고 호텔의 최고 객실을 예약하지 않나.
“거기 말고 더 맛있고 경치도 좋은 곳 내가 알아.”
맛집도 줄줄 꿰고 있었다.
이쯤 되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뉴욕 여행 많이 가봤어?”
“여행보다는 초청을 많이 받았지. 대회 참여 목적도 있었고. 특히 뉴욕은 내 코치님 집과 훈련장이 있는 곳이라서 자주 갔던 곳이야.”
“그렇군.”
일이 쉽게 풀려서 편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뭔가 계획이 초반부터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신이 나서 여행 계획을 짜던 윤아는 그제야 자신이 지나치게 나섰다는 것을 자각하곤 조심스레 물었다.
“오빠, 미안. 내가 너무 나섰지?”
“아, 아니야.”
“혹시 기분 나빴어?”
“그런 거 아니야. 다만…….”
“……?”
“놀랐을 뿐이지. 윤아의 재력에.”
가끔 잊곤 한다.
그녀는 엄청난 재력의 소유자로, 마음만 먹으면 대기업 임원급의 연봉을 일주일 안에 벌 수도 있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는 사실.
체조 여신, 국민적 영웅.
이 타이틀이 이렇게 거대한 것이다.
태연은 반성했다.
“내가 너무 내 위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윤아가 평상시에는 내 말을 굉장히 존중해 주면서 잘 따라주니 이번에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한 거지.”
“그건 오빠 잘못이 아니라 내가 너무 들떠서…….”
“잘잘못 따지려는 게 아니니 서로 미안해하지 말자. 알았지?”
“응!”
진심과 애정이 가득한 그 말에 미안하던 윤아의 표정도 밝아졌다.
“나는 솔직히 뉴욕을 잘 모르니 이번에는 윤아의 리드를 따르는 게 좋겠다. 그래도 혼자서 돈을 다 부담하려고는 하지 마. 같이 써야 의미 있지.”
“알았어!”
그렇게 두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뉴욕 여행 계획을 짰다.
* * *
출발 당일 두 사람은 함께 아파트를 나섰다.
잔뜩 긴장해 있는 태연에게 조수석에 앉은 윤아가 물었다.
“오빠, 마음의 준비 다 된 거지?”
“으, 으응.”
“별일 없을 테니 필요 이상으로 긴장할 필요 없어.”
‘별일 없었으면 좋겠지만…….’
공항에 이미 많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역시 탑승 정보가 유출됐군.’
피할 방법 따위는 없어 보였다.
주차를 마치고 심각한 얼굴로 걸어 나오는 태연에게 윤아가 다가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표정 좀 풀어. 누가 보면 싸우러 가는 줄 알겠네.”
그렇게 말하는 윤아의 얼굴은 매우 밝아 보였다.
“윤아는 긴장되지 않아?”
“오히려 재미있는데?”
“어째서?”
“나 더 이상 솔로 아니라고, 이렇게 잘생기고 멋진 남자 친구 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 날이니까!”
“……!”
심쿵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단어일 것이다.
꽃처럼 화사한 윤아의 얼굴을 보며 태연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게 웃으니까 좋네.”
“왔다!”
“찍어! 찍어!”
“옆에 남자 누구야? 아는 사람 있어?”
태연과 윤아가 다정히 팔짱을 끼고 등장하는 순간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우르르 몰려들려는 순간.
“더 이상 접근하지 마십시오.”
“지나친 접근은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공항 경비대가 등장했다.
태연이 이 같은 상황을 직감하고 사전에 충분히 설명해서 신변 보호를 요청한 것이다.
어지간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테지만 상대가 아무래도 국민적 영웅이자 여신인 김윤아였다.
미리 상황을 예측하고 대처해 놓은 것이 주효했다.
그럼에도 감수해야 할 것은 있었다.
“한마디만 해주세요!”
“김윤아 씨! 딱 한마디만요!”
처절한 외침.
이걸 외면했을 때 직후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명약관화!
태연이 멈춰 서서 손을 치켜들자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탑승 시간에 맞춰 와서 여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5분 정도만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그리고 공항 경비대에게 사과한다.
“멋대로 굴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들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인다.
직후 한 명씩 지목해서 문답 시간을 가졌다.
“자기소개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넥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자 넥플 라이브 본부장 유태연입니다.”
“……!”
흠칫하는 사람들.
생각 이상으로 거물이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물었다.
“넥플 엔터테인먼트라면, 이번에 K월드 그룹이 주도한 컨소시엄에 참여해서 한국 디즈니랜드 콘텐츠 개발에 참여한다는 그곳 맞습니까?”
“맞습니다.”
“오오……!”
터져 나오는 탄성.
그때 젊은 남성 기자가 외쳤다.
“몬스터 이터 총괄 디렉터인 유태연 피디님 본인 맞으시죠?”
남자를 쳐다본 유태연이 물었다.
“몬스터 이터 유저십니까?”
“월드 챔피언십에도 참여했었습니다. 그때 피디님께 사인도 받았는데 사진 촬영도 했고…….”
그랬던 사람이 워낙 많아서 기억이 잘 안 난다.
한 기자가 옆구리를 툭 치며 묻는다.
“김 기자. 잘 아는 모양이네?”
“멀리서 보고 혹시나 했는데 가까이서 보고 알았어요.”
그는 유태연을 선망의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저분이 바로 우리나라에 정말 몇 없는 스타개발자세요!”
5분.
그 시간 동안 모든 이목을 독차지한 것은 윤아가 아닌 태연이었다.
“어떻게 사귀게 된 거죠?”
“김종학 부회장님께 소개받았습니다.”
“소개받은 과정이 궁금합니다!”
“한국 디즈니랜드 콘텐츠 개발 문제로 대화를 나누다가 친분이 깊어졌는데 제가 윤아 씨 팬이라는 것을 알고 소개해 주셨습니다.”
“누가 사귀자고 한 건가요?”
“소개받은 직후 제가 계속 대시했습니다.”
윤아와의 관계에 대해 딱히 숨길 것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대담하면서도 솔직하게 문답을 주도하는 모습에 현장에 있던 이들이 감탄하며 호감을 가졌다.
‘슬슬…….’
속으로 시간을 체크하던 태연이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시늉을 하자 기자들이 다급해졌다.
“자, 잠깐만……!”
“약속했던 5분이 지났으니 여기까지 합시다.”
단호하게 끊어낸 태연은 윤아의 어깨를 감싼 채 앞으로 나아갔다.
좌석에 탑승하고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앉아서 휴대폰을 보던 김윤아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빠. 지금 인터넷 난리 났어!”
“어디…….”
[체조 여신의 연인 유태연은 누구?]
[김윤아. 공개 연애 시작!]
포탈사이트 기사란이 자신들의 열애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윤아 인지도가 정말 굉장하구나.’
아무리 그래도 여파가 이 정도로 큰 줄은 몰랐다.
-우우웅!
-우우우우웅!
휴대폰이 미친 듯이 진동한다.
메시지와 전화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는 유진성 회장도 있었다.
그에게만 전화를 걸었다.
-야! 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최소한 나한테는 귀띔이라도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기사 보고 네 연애 사실을 알아야겠냐?!
“그래야 비밀이 유지되죠. 회장님이 술김에 여기저기서 소문 흘리고 다닐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장난으로 티격태격.
곧 유진성 회장이 진지해진 어조로 말했다.
-우리 체조 여신님 잘 모셔 인마.
“안 그래도 정말 여신처럼 떠받들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잘 다녀오고.
통화를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가 이륙했다.
‘돌아와서가 조금 걱정이군.’
온갖 곳에서 들들 볶을 텐데……
그때 김윤아가 툭 옆구리를 치며 물었다.
“날 여신처럼 떠받들고 있었어?”
“……아니야?”
“여신은 무슨, 허구한 날 옆집 빵순이 취급하잖아!”
“너 빵에 환장하는 건 사실이잖아.”
“거봐! 여신에게 환장이라니, 단어 선택이 너무 불경스럽잖아!”
* * *
뉴욕에 도착했다.
“여기는 조용하네?”
“뉴욕이니까.”
그 단어로 충분했다.
가장 유명하고 화려한 도시.
위명에 걸맞은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생활 양식으로 살아가는 도시.
헐리우드 스타가 길거리를 지나가도 시선 한 번 줄 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도시였다.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서 아쉬워?”
“천만에.”
윤아가 터프하게 태연의 오른팔을 가로챈다.
그리고 꼭 끌어안고 말했다.
“신경 쓸 사람 없어서 너무 좋아!”
도착한 곳은 센트럴 파크 바로 앞에 위치한 최고급 호텔이었다.
“직접 보게 되니 더 으리으리하네.”
멍하니 높은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실감이 된다.
‘내가 뉴욕에 왔구나.’
그것도 여자 친구하고!
안내받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호화스러웠다. 가구를 비롯해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온통 최고급 명품으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다.
“오빠! 전경 봐! 센트럴 파크하고 맨해튼이 다 보여!”
테라스도 잘 꾸며져 있었는데, 유리 가드로 보호되어 있는 난간 너머, 맨해튼에 그림처럼 펼쳐졌다.
가슴을 뛰게 만들 정도로 멋진 풍경이었다.
김윤아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도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
그 말을 들은 순간 태연의 마음에 부담감이 차올랐다.
‘내 연봉으로…… 가능할까?’
맨해튼에서 살고 싶다는 뜻은 아닐 테고.
‘한국으로 치면 시티뷰가 보이는 강남 고급 아파트를 말하는 것일 텐데.’
고심 중인 태연을 보고 윤아가 픽 웃으며 옆구리를 친다.
“갑자기 왜 그렇게 진지해졌어?”
“별거 아니야. 그나저나…… 배 안 고파?”
“딱히? 기내식 많이 먹었더니…….”
“그러면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야?”
“그야 당연히…….”
윤아의 시선이 테라스 너머로 향했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다.
태연이 미소 지었다.
“가자.”
* * *
태연은 항상 입고 다니던 정장 대신 간편한 청바지와 티셔츠를 걸쳤다.
윤아 역시 의상을 맞춰 입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모자를 꾹 눌러쓰고 있다는 것.
“불편하지 않아?”
“사람들이 알아보고 수군거리거나 다가와서 쉴 새 없이 말 거는 상황이 더 불편해.”
다 이유가 있었다.
“팬들은 고마운 분들이지만, 나도 때로는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가 있단 말이야.”
바로 지금처럼.
윤아는 그 말을 숨긴 채 태연의 오른팔을 꼭 끌어안았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태연이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노점상에서 파는 모자를 발견하고 다가가더니.
“이걸로 하나 주세요.”
윤아가 착용하고 있던 것과 최대한 비슷한 디자인, 색상의 모자를 골라 착용했다.
“어때? 어울려?”
‘오빠는 모자 안 쓰는 게 좋은데…….’
왜냐면 그래야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으니까.
또 한 번 목구멍까지 튀어나온 말을 삼킨 채 조금 의미가 다른 말을 내뱉는다.
“오빠는 모자가 안 어울려.”
“그, 그래? 그러면 다른 모자로…….”
“모자 사면서 시간 다 보낼 거야? 빨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