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34화 (34/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34화

20. 제1회 월드 챔피언십(3)

규모가 크다지만 이미 사내 대회로 예행연습까지 완벽히 끝마친 상황이다.

자잘한 실수나 사고는 존재했지만 대회는 차질 없이 수월하게 진행됐다.

월드 챔피언십이라고 대회만 하는 게 아니었다. 이날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굿즈 한정판 판매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크게 환호를 받았던 이벤트는 바로…….

-내 모든 것을 다해 너를 죽여 버리고 말겠다!

-제 이름은 프린이에요. 세계 최고의 강화사…… 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귀여운 신입이죠!

성우 쇼!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온라인 게임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각국의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었지만 역시 오리지널인 일본판 성우들이 제일 유명했다.

그들이 단체로 한국에 건너와 훌륭한 쇼를 보여주니 현장에 모인 몬스터 이터 유저들이 크게 열광했다.

타키자와 사토시가 굉장히 흡족해하며 태연에게 말했다.

“유저들이 굉장히 좋아해하는군요. 공연을 준비한 보람이 있습니다.”

이 공연을 추진한 사람은 당연히 행사 총괄인 유태연이었다.

처음에는 유명 가수나 배우의 축하 무대 안건에 올라왔지만 태연은 이를 거부, 성우 쇼를 제안했다.

-게임과 별로 상관도 없는 가수들이 나와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을 겁니다.

예언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벡스코를 가득 메운 유저들은 몬스터 이터 명대사, 명장면을 열연하는 성우들에게 목이 터져라 환호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니 성우들 역시 신이 나서 목을 아끼지 않고 연기를 펼친다.

성우 쇼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가 이어지는 동안, 또 다른 장소에서는 경기가 진행되려 하고 있었다.

수많은 대전용 PC 세트 앞에 2인 1조의 참가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크라잉 소프트, 넥플 플러스 직원들이 한 명씩 서 있었다.

잠시 후.

-지금부터, 제1회 몬스터 이터 월드 챔피언십 첫 번째 예선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자의 선언과 함께 경기가 진행됐다.

* * *

예선은 관람보다는 신속한 운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참가팀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경기를 마친 이들은 사방에 설치되어 있는 기록판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곳에 스피디 레이싱 순위와 기록이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중이었다.

“아……!”

“떨어졌다!”

아슬아슬하게 본선 커트라인에 걸쳐 있다가 끝내 밀려난 이들이 탄식한다. 본선 진출을 두고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경기는 쉴 틈 없이 진행됐다.

‘오늘 안으로 끝낼 수 있겠지?’

계산에 따르면 문제없지만, 그래도 막상 현장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초조하다.

예정된 시간 내에 경기가 끝나야 다음 행사를 진행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PD님. 지금 저쪽에서 관객들끼리 싸움이 벌어졌는데…….”

“불친절에 대한 클레임이…….”

“한정판 물량이 예상보다 일찍 동이 나서…….”

신경 써야 할 게 경기 운영 말고도 굉장히 많았다. 태연은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 나다니며 현장을 지휘했다.

“이럴 때를 위해 곳곳에 CCTV를 설치한 거잖아요.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진행위원회로 넘겨서 CCTV 확인하고 매뉴얼대로 조치하세요.”

“한정판 물량이 동났으면 빨리 상황을 공지하고 할인 판매 물량을 풀도록 하세요.”

늦은 밤.

자정이 넘어서야 가까스로 숙소에 돌아온 태연은 그대로 쓰러졌다.

‘힘이 하나도 없어.’

이런 짓을 앞으로 이틀을 추가로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막막했다.

‘오늘 하루, 정말 미친 듯이 불태웠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이 전혀 기억에 남지 않았다. 중간쯤 가서는 본능만 남아서 움직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힘겹게 팔을 움직여 품속에서 휴대 전화를 꺼낸다.

‘마지막으로 확인할 건 해야지.’

부재중 메시지가 쌓여 있다.

‘그 와중에도 용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들은 한 모양이군.’

기억에는 없지만, 전화, 문자, 이메일 업무를 처리하긴 한 것 같다. 이렇게 자신이 보낸 내용까지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을 보자니 어쩐지 이질감이 들었다.

“끄응……!”

힘겹게 몸을 일으켜 미처 처리하지 못한…… 그러니까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메시지들을 처리한다. 그중에는 몬스터 이터뿐만 아니라 판테온, 프로젝트 D 업무 내용도 가득하다.

“끄응! 이러다 정말 죽겠다!”

중요한 것들을 모두 처리하고 시간을 확인하니 또 한 시간이 지났다.

‘마지막으로…….’

김윤아의 메시지를 확인해 본다.

정신없던 와중에도 흐릿하게나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윤아와의 영상 통화, 채팅이었다.

‘마음이 급해서 실수한 건 없는지…….’

원래 이럴 때 무신경하게, 혹은 건성으로 내놓은 대답이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법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인에게 그런 짓을 했다면……?

‘……다행히 그런 건 보이지 않네.’

대체로, 윤아가 보낸 메시지는 응원 문구로 가득하고 배려가 곳곳에 담겨 있다.

[사람이 굉장히 많네. 나도 직접 가서 오빠가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 보고 싶은데…… 가봐야 방해만 되겠다.]

[오빠. 힘내! 계속 응원할게!]

[바쁠 텐데 이제 답변하지 않아도 돼. ^^]

“이제 보니 내가 참 복이 많아.”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못 벌고, 나보고 늦게 시작한 동료들은 벌써 성공하거나 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보내고 있는 것 같고…….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분명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보니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어.’

이렇게 착하고 배려심 가득한 여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 사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돌아오는 것 같다.

[나 이제 호텔에 돌아왔어. 잘 자고…… 내일 또 전화할게.]

메시지를 전송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연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다음 날에는 더 정신이 없었다.

두 번째 예선과 본선을 이어서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막간을 이용한 크라잉 소프트의 신작 게임 공개 행사와 Q&A 시간 같은……. 사이즈가 크고 중요한 이벤트도 가득했다.

그것을 모두 총괄하며 동시에 참가까지 하려니…….

‘이러다 쓰러지겠군.’

어쩌면 완벽주의 성향 탓에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을 좋아해서 굉장히 먼 길까지 힘들게 찾아와준 유저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열심히 해야지.’

절대 실망시킬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한 몸을 불태워 작은 추억이라도 안겨 줄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그저 그것을 위해서 죽을힘을 다하는 것이다.

“피디님. 좀 쉬면서 하세요. 그러다 죽겠어요.”

“지금 행사 총괄하면서 스튜디오 업무까지 보고 계시죠?”

“누가 보면 학대하는 줄 알겠네요.”

안색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심지어 크라잉 소프트 일본 직원들까지 찾아와 음료수와 함께 걱정이 담긴 말을 건넨다.

타키자와 사토시도 한마디 했다.

“어디 가서 한 시간 만이라도 쉬고 오시죠. 그러다 정말 큰일 나겠습니다.”

떠밀리듯 조용한 카페로 가서 시원한 커피 한잔을 마셨다.

그리고 늘어졌다.

“피곤하다.”

잠이 밀려온다.

‘아무래도 신경이 지나칠 정도로 곤두서 있었던 모양이야.’

휴대폰 카메라로 얼굴을 확인하니 혈색이 상당히 안 좋아 보인다.

‘그래. 좀 릴렉스를 해보자.’

뭘 해야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까?

‘게임?’

좋아하긴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오히려 해가 될 것 같았다.

‘머리를 비우고 스트레스를 덜어낼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해.’

답이 왔다.

[바빠?]

‘윤아다!’

즉시 전화를 걸었다.

-어…… 지, 지금 전화해도 돼? 바쁜 거 아니야?

당황한 얼굴.

그런데…….

‘화장했네?’

“혹시 지금 일하는 중이야?”

-응. CF 촬영 중 잠깐 시간이 남아서 전화한 건데…….

역시 CF퀸!

주위를 둘러보고 영상 통화로 전환.

“나 지금 잠깐 쉬러 카페에 나왔어.”

그리고 얼굴을 보며 통화한다.

놀라울 정도로 긴장감과 함께 피로가 풀린다.

-나 이제 끊어야 돼. 미안.

“또 전화하자.”

전화를 끊고 힘껏 기지개를 켜본다.

개운한 기분마저 들었다.

“…….”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태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충분히 쉬었어. 이제 가서 일하자.”

아무리 믿고 맡겨달라고 했다지만, 자신이 있어야 처리할 수 있는 일이 꽤나 많다.

‘지금쯤 꽤나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을 거야.’

짐작이 맞았다.

“아, 그 문제는 그러니까…….”

“저기 피디님 오셨어요! 피디님!”

그새 쌓인 문제에 운영위원회, 스태프 모두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가 문제죠?”

구원자처럼 등장한 태연은 순식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나중에 타키자와 사토시가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이 현장은 유 상이 없으면 안 될 것 같군요.”

태연은 유쾌하게 웃었다.

* * *

어느새 본선도 끝나가고 있었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과 이를 지켜보며 환호하는 관객들.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었다.

태연은 이제야 조금 여유가 생겨나고 있음을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졌으면 곤란했을 거야.’

부가적인 행사는 모두 끝났고 이제 결승전과 시상식, 그리고 대회 폐회식 정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요? 지금까지 놀라운 컨트롤 실력과 전략을 보여주던 장진호 선수! 디버프 폭탄을 피하지 못했어요!

-상대 팀! 침착하게 기회를 살려 나갑니다. 디버프 장애물을 절묘하게 회피하면서 공략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아! 경기 끝납니다! 강력한 우승 경쟁자로 꼽혔던 장진호, 김진욱 선수. 팀 ‘블랙 타이거’가 패배합니다!

태연도 관심을 갖고 있던 한국 선수 팀이 경기에서 진 모양이다.

상념을 잠시 접고 중계 화면을 바라본다.

망연자실해 있던 두 청년이 주륵, 눈물을 흘리며 원통해하는 광경이 그대로 송출된다.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미국 팀과 비견된다.

본선이 끝나고 바로 결승 경기가 이어졌다.

미국 VS 프랑스.

게임 강국, 우승 후보로 꼽히던 한국, 일본 선수들이 모두 탈락하는 이변이 벌어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본선 진출 팀은 누가 우승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말 그대로 한 끗 차이의 불운으로 승패가 갈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레이드 성공 기록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결승전에 오른 양 팀. 침착하게 몬스터를 처치하며 골드를 수급하고 있습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가 이어진다.

선수도, 캐스터도, 그리고 관객들도 한껏 긴장한 채 경기에 몰입한다.

-아! 프랑스 팀! 디버프 장애물을 피하지 못했어요! 이대로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 있다면 좋겠는데…… 말씀드리는 순간 블루 드래곤 카르가라스의 꼬리 휘두르기에 얻어맞습니다!

탄식과 환호가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 승패는 갈렸다.

-미국 팀! 침착하게 레이드 마무리…… 네! 승리는 미국 팀이 가져갑니다!

2승을 먼저 가져간 미국 팀의 우승!

제1회 몬스터 이터 월드 챔피언십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끝났구나!’

태연은 그제야 모든 긴장감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서울에 가서 윤아를 만날 수 있어!’

현시점, 태연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