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31화
19. 정식 서비스(2)
이른 아침.
회사로 출근하며 태연은 생각했다.
‘원래 신작 같았다면 최소 1년 동안은 비상근무 체제를 시작했겠지만…….’
아무리 테스트와 수정을 했어도 막상 서비스를 시작하면 버그가 무더기로 발견된다. 플레이 환경과 게임 방식 같은 것들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몬스터 이터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첫 번째 업데이트까지는 신경을 써줘야지.
더불어 자신이 계속 맡아서 운영할 것이 아니니 미리 후임 피디를 정해서 적절한 시기에 물려주고 빠져야 한다.
‘이건 내 게임이 아니야. 내가 지금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한 둘도 아니고…….’
매출 대박이 난다고 특별히 뭔가 떨어지는 것도 없다. 계속 쥐고 있어봐야 체력만 소진될 뿐이다.
‘이번 달까지 업무 프로세스와 작업 가이드라인 완성해야지.’
3개월.
한국 서비스 이후 첫 번째 업데이트가 마무리되는 시기.
태연은 바로 그 지점을 자신이 물러설 때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본인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아직 태연은 모르고 있었다.
* * *
[몬스터 이터. 오픈 첫날 매출 100억 돌파!]
[기록적인 매출과 쏟아지는 평판에 넥플 기세등등!]
[타키자와 사토시 PD. 한국 유저들의 폭발적인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최선을 다해서 유태연 PD와 함께 멋진 경험을 선사할 것을 약속하겠다.]
넥플 사내 인트라넷과 직장인 커뮤니티가 불이 났다.
-헐. 첫날 매출이 100억? 부분 유료화도 아니고 정액제 게임인데?
└세계적인 인기 게임이라 그런지 역시 다르네.
└원작이 워낙 유명했던 것도 있지만 게임 현지화가 정말 잘되어 있어. 번역 좋고, 최적화 문제도 많이 해결됐음!
└IP 빨 + 유태연 피
업계가 경악했다.
그만큼 놀라운 기록이었던 것이다.
타 회사에서 이런 분위기니…….
“유태연 피디님! 매출 대박 축하합니다!”
“전 피디님이 해낼 줄 알았어요. 사내 테스트 때부터 게임 플레이 했는데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마주치는 사람마다 축하 인사를 건넸다.
[도착했으면 내 집무실로 좀 와 봐.]
유진성 회장이 보낸 채팅 메시지였다.
인트라넷에서 출석 체크를 마친 뒤 곧바로 회장실로 이동했다.
“기사 봤지? 첫날 매출 100억!”
“네. 아침에 봤습니다.”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인다.
“그 이후에도 매출이 크게 떨어지지 않고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이거 정액제 게임이잖아?”
“입소문이 좋으니 유저들이 계속 몰려오는 것 같습니다.”
입술이 씰룩.
“칭찬도 자자하더라.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비결 좀 알려주라!”
“세 가지만 신경 썼을 뿐입니다.”
“세 가지? 그게 뭔데?”
“현지화. 최적화. 피드백에 대한 신속한 대응!”
또 한 번 씰룩.
“그거 말은 쉽지, 굉장히 어려운 거 아니냐?”
“어렵죠. 하지만 해내야 합니다. 거기까지가 바로 유저들이 지불한 게임 비용에 대한 서비스 범위니까요.”
“…….”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지던 유진성 회장은.
“푸하하하!”
끝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너 진짜 말하는 거 하나는 청산유수다. 내가 좋아할 소리만 골라서 하네. 혹시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거야?”
“제가 그 정도로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이 워낙 많으니까요.”
“딱딱한 자식. 어디 보자, 지금 넥플 플러스 직원 수가 몇 명이냐?
“원래 70명이었는데 최근 인력을 추가 보충해서 75명으로 늘었습니다.”
“어? 그래? 난 왜 70명으로 알고 있었지? 잠깐만…….”
책상에서 열심히 뭔가를 하던 회장이 손짓을 한다.
“와서 이거 가져가라.”
하얀 봉투가 가득했다.
“설마…… 금일봉입니까?”
“네 성격에 너만 챙겨주는 거 좋아하지도 않을 것 같고, 공평하게 분배했으니까 팀원들에게 나눠 줘. 너하고 명욱이도 하나씩 가져가고.”
자신과 김명욱 대표의 것도 챙겼다는 뜻이다.
공평하게.
그제야 태연은 슥 웃었다.
“감사합니다.”
“자식, 이제야 반응을 보이네. 바쁠 테니까 오래 붙잡지 않을게. 가봐.”
* * *
아직 업무 시간이 되려면 멀었는데 넥플 스튜디오가 빈자리 없이 가득 차 있었다. 서비스 분위기가 좋으니 직원들의 사기도 덩달아 오른 덕분이다.
태연은 크게 외쳤다.
“자, 모두 잠시 주목!”
“……?”
모두의 이목이 쏟아진다.
“회장님께서 넥플 플러스 전 직원에게 금일봉을 주셨습니다. 참고로 직급 관계없이 모두 공평하게 넣었어요.”
“…….”
잠시 후.
“우와아아!”
“금일봉!”
“만세!”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직원들부터 나눠주고, 김명욱 대표에게도 챙겨준 뒤 마지막 남은 하나를 자신의 품에 넣었다.
‘이건 윤아 선물 사는 데 써야지.’
몬스터 이터 정식 서비스 시즌이 되며 윤아와의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녀는 괜찮다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지만 태연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태연은 문자를 보냈다,
[오늘 저녁 여섯 시에 판교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식사 같이 하자.]
답변은 신속했다.
[괜찮겠어?]
[그 정도 여유는 있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휴대폰 하나로 얼마든지 조치할 수 있었다.
‘일보다 윤아가 더 중요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윤아였다.
약속을 잡은 뒤 미친 듯이 업무에 몰입했다.
이슈를 확인해서 대처하고, 그러면서 크라잉 소프트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첫 업데이트 작업을 공동 진행하고.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일본, 글로벌 서버와 한국 서버의 업데이트 시기를 맞추기 위함이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태연 역시 서둘러서 퇴근했다.
지하층에 주차된 차를 끌고 이동한 곳은 윤아의 집.
[도착했어.]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스크와 후드 티로 얼굴을 가린 여성이 불쑥, 조수석에 탑승한다.
“정식 서비스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면서 이렇게 여유 부려도 되는 거야?”
“나한테는 일보다는 윤아가 우선이야.”
대답이 없었다. 슬쩍 옆을 바라보며 묻는다.
“감동받았어?”
“아니, 닭살…….”
“뭐?”
“나 오글거리는 것에 아직 면역력이 없나 봐.”
“…….”
판교 백화점에 입성한 순간부터 시선이 쏟아진다.
‘아무리 얼굴을 가려도 체조로 단련된 비율은 감출 수 없구나.’
심지어 모델처럼 키도 커서 존재 자체가 돋보인다.
‘아직은 드러낼 때가 아니지. 최대한 조용히 물건만 사고 나오자.’
“여기야.”
도착한 곳은 블루라임이라는 스포츠웨어 전문점.
“요 근래 운동 좋아하는 여자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야. 레깅스계의 샤넬이라고 하더라.”
“오빠는 그런 걸 어떻게 알았어?”
“식사 시간에 회사 여직원들이 말하는 거 들었어. 물어봤더니 운동하는 여자들은 이거 기본적으로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게 국룰이라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듣고 이거다 싶어서 선물을 결심했다.
“운동 때문에 레깅스 자주 입잖아. 여기서 설아 형수님 것까지 두 세트 구매하자.”
“설아 언니도 챙겨주는 거야?”
“우리 연결해 준 고마운 분이잖아.”
“…….”
“아, 형님 운동복도 한 벌 사야겠군.”
식사가 끝날 무렵 넥플 플러스 스튜디오로부터 연락이 왔다.
-PD님. 일부 사용자 PC에서 게임이 종료되는 문제가 발생했어요.
“원인 파악 됐나요?”
-확실한 것은 모르겠는데 제 생각에는…….
태연은 통화를 마치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렵게 입을 열려는데.
“회사 가야 되지? 빨리 가봐.”
“……미안하다.”
“괜찮아. 그래도 식사 다 했잖아. 좋은 선물도 받았고.”
윤아의 조용한 미소가 무언가, 치유를 해주는 느낌이다.
“오늘 아주 즐거웠어.”
“……그래도 집까지는 데려다줄게.”
윤아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려는데.
“오빠.”
“응?”
윤아의 음성이 태연을 붙잡는다.
받은 선물을 흔들며 말했다.
“이거 잘 입을게. 신경 써 줘서 고마워.”
“…….”
무언가, 벅차오르는 느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미소를 지을 뿐.
저택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가는데 곧 문자가 도착했다. 착용 샷을 보낸 것이다.
[딱 맞아. 정말 좋다!]
정말 잘 어울린다.
이번에 받은 금일봉에 더해 사비까지 함께 쏟아부은 보람이 있었다.
* * *
이슈를 해결하고 나오니 어느덧 새벽 두 시.
이제 퇴근한다고, 문자라도 보낼까 하다 잠든 그녀를 깨우고 싶지 않아 그만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예상하지 못한 광경과 조우했다.
“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포츠브랜드 매장!
“윤아네?”
그 외벽에 김윤아가 주황색 탑과 검은색 레깅스를 입은 채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광고 사진이 굉장히 크게 걸려 있었다.
“잠깐만…….”
잠시 차를 세우고 황급히 브랜드 네임과 김윤아의 이름을 검색해 본다.
[나x키. 우먼스 라인 모델에 체조 여왕 ‘김윤아’ 발탁!]
[체조 여왕의 우먼스 라인. 매출 수직 상승!]
“…….”
태연은 할 말을 잃었다.
‘타 브랜드와 광고 계약을 맺었구나!’
그 밑에 이런 기사도 있었다.
[1년에 100억 이상! 편당 10억. 은퇴 후에도 수년째 CF퀸 자리 수성 중인 김윤아!]
“……!”
위키를 검색해 보니 지금까지 촬영한 광고 개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난 이것도 모르고 타 브랜드 스포츠 웨어 선물을……!’
얼굴이 화끈거린다.
명색이 남자 친구라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 않나?
“이런 바보…….”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온다.
심지어 언론이 말하는 그녀의 추정 자산은 ‘최소’ 1,000억 원 이상!
그런 그녀 앞에서 회사에서 금일봉을 받았다고 자랑하며 으스대기까지 했다. 아무리 장난이었다고는 하지만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은 모양새가 아닌가?
‘난 정말 그녀를 모르고 있구나.’
앞으로는 선물을 사거나 어디를 데려갈 때 생각 좀 많이 한 뒤에 일을 진행해야 할 것 같다.
* * *
잠 못 이루는 밤이 지났다.
회사에 출근해서 전날 처리한 이슈를 확인한 뒤 패치 진행 상황을 체크한다. 더불어 지난 밤 쌓인 이슈들을 운영팀으로부터 넘겨받아 각 팀에 일감을 넘겼다.
‘새삼, 타키자와 사토시 사단이 얼마나 굉장한 팀인지 느껴지는구나.’
아무리 원래 서비스되고 있던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한국에는 신작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발생하는 이슈가 적을 수가 있나 싶다.
‘그만큼 프로듀서와 개발팀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거지.’
회의를 마치고 이슈 진행 사항을 정리해서 화상으로 크라잉 소프트 팀과 회의를 진행한다. 한국에 이제 막 서비스된 게임이니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것이다.
어떤 이슈가 있었고, 어떻게 처리할 예정이며 오늘은 어디까지 작업을 쳐낼 예정인지. 크라잉 소프트 본사에서는 어떤 일을 해줘야 하고 우리는 어떤 일을 처리할 것인지.
그렇게 떠들다 보니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났다.
점심 식사 전 김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대뜸 사과했다.
“미안해. 이미 타 브랜드와 계약이 되어 있는 것도 모르고 그런 선물을 해서…….”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윤아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서 내가 어제 말했지? 오늘 아주 즐거웠다고.
“그게 그 의미였어?”
김윤아의 웃음소리와 비례해 민망함 역시 커진다.
한편으로, 어지간해서는 소리 내서 웃지 않는 그녀가 이 정도로 폭소를 터뜨리는 광경을 상상하니 괜히 뿌듯해지기도 했다.
태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선물은 실패했지만 즐거움은 줬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