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30화
19. 정식 서비스(1)
“피디님, 좋은 일 있었어요?”
“얼굴 좋아 보여요.”
마주친 사람들이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건넸다. 그래서 표정 관리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절로 웃음이 나오는 걸 어떻게 하라고?
기분이 좋으니 업무도 잘되고 회의 분위기도 산뜻하다.
‘항상 오늘만 같았으면.’
* * *
넥플의 마케팅 공세가 시작되었다.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할리우드 배우를 섭외해 CF를 만들었고, 이를 방송과 지하철, 스트리밍 사이트 등에 배포했다. 미디어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몬스터 이터의 광고를 볼 수밖에 없었다.
포털 사이트 메인 상단.
가장 비싼 공간에 이벤트 팝업창이 뜨는 특별한 배너도 달았다. 유명한 식품 회사 포장지에서도 몬스터 이터가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 유저들뿐 아니라 업계에서도 혀를 내둘렀다.
-와, 넥플 작정하고 돈지랄을 하는구나. 벌써 광고 비용만 오백억 가까이 책정했다더니, 아주 작정하고 밀어주네.
-그런데 몬스터 이터는 이미 게임성도 그렇고, 현지화 퀄리티도 보장되어 있어서 런칭하자마자 대박 날 듯.
-마케팅+개발비 한 달이면 뽑고도 남을 것 같네요. 당장 십만 명이 정액제 결제한다고 하면 그게 대체 얼마야? ㄷㄷㄷ
단순히 해외 인기 게임을 수입해 오는 것이 아니고, 개발에 적극 참여하는 게임이다.
OBT때 글로벌 버전 패치가 한국 버전을 참고하기 시작한 건 익히 알려진 일이다.
타키자와 사토시 프로듀서가 직접, 한국 정식 서비스를 통해 몬스터 이터에 빅뱅과 같은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으니.
게이머들뿐 아니라 개발자들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벌써부터 태연의 방식을 분석하여 이를 도입하려 노력하는 곳도 생겨났을 정도였다.
* * *
‘오늘도 제일 먼저 회사에 도착……!’
……인 줄 알았는데 다른 누군가 있다.
“태희 씨 일찍 왔네요.”
“아, PD님 오셨어요?”
사내 최고의 인기인인 아트 팀의 성태희였다.
그녀는 업무 준비를 시작하는 태연에게 다가와 말했다.
“PD님은 항상 제일 먼저 도착하시죠?”
“꼭 그런 건 아니에요.”
“AD님이나 다른 직원분들이 그러더라고요. PD님께 커피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는 시간은 이른 아침이 유일하다고.”
인트라넷에 접속해서 출근 체크를 마친 뒤, 태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페테리아 갈까요?”
“잘 마실게요!”
환하게 웃는 얼굴에 대학생 특유의 풋풋함이 남아 있다.
‘할 말이 있는 건가?’
그녀는 기다란 손으로 일회용 커피 컵을 조물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용건인 듯 보여서 태연이 먼저 물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편하게 해도 좋아요.”
그 말에 용기를 조금 얻었는지, 태희가 물었다.
“예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어요.”
“말해 봐요.”
“피디님은 제 어떤 점을 좋게 평가해서 채용해 주신 건가요?”
“가능성을 높게 본 거죠?”
“가능성이요?”
“아직 우리 스튜디오 방식 몰라요? 제가 뽑은 게 아니라 뽑힐 만해서 자연스럽게 뽑힌 거예요. 전 채용에 대해 어떤 관여도 안 했어요.”
“아…….”
“왜요, 누가 태희 씨 보고 낙하산이라고 손가락질이라도 해요?”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채용 우선순위가 다름 아닌 실력에 부합한 인성이었으니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
성태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제가 정말 이곳에 들어올 자격이 있었나 싶어서요. 뭔가 해보려고 의욕적으로 나서면 꼭 큰 실수를 저지르고.”
신입 사원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고민이었다.
경력자가 아닌 이상, 학원이나 학교에서 아무리 많이 배워도 정작 실무를 하게 되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
“원래 2년 차 때까지는 전부 다 어리바리해요. 태희 씨가 바보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게 정상이니 걱정 말아요.”
“하지만 모델러 최예지 씨는 정말 잘하던데…… 얼마 전에는 AD님께 크게 칭찬도 받았어요.”
최예진은 건대 게임 스쿨 출신으로, 두 명의 신입 중 한 명이었다.
학벌만 놓고 보면 성태희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열정과 재능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재였다.
‘내가 보기에는 둘 다 거기서 거기인데.’
아무래도 같은 신입이고, 아트 팀이고 성별, 연령도 비슷하니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모양이다.
“학교에서는 에이스 취급 받았었죠?”
“네? 그건 아닌데…….”
대놓고 부정하지 못하는 걸 보니 생각이 맞았던 모양이다.
“직장에서도 활약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으니 당황스럽고.”
“…….”
“원래 엘리트 출신 개발자들이 다들 그런 상황 속에서 혼란을 느껴요.”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
‘평소 열정이 좀 과해 보인다 싶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
남들보다 잘하고 싶다는 열정!
그래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그것이 성태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태희 씨는 꿈이 뭔데요?”
“저요? 저는…….”
그녀가 처음으로 배시시,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PD님처럼 되는 거요.”
“저처럼요?”
“네.”
“왜 저처럼 되고 싶어요?”
“피디님은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게임 프로듀서니까요!”
경험도 부족한 신입 초짜 주제에.
그냥 웃음만 나왔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신입 시절을 보는 것 같아 귀엽기도 했다.
‘그때 나도 강건 대표님처럼 되고 싶었지. 그분이 신처럼 위대하게 보였었고.’
하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꿈은 언젠가 깨지게 마련이다.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예요. 그냥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지, 전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도 전 PD님처럼 되고 싶어요. 피디님은 저에 대해 잘 알고 계시죠? 제가 지금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커다란 눈동자 담겨 있는 선망, 믿음 등의 감정이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태후가 입을 열었다.
“우선 지금 맡고 있는 팀, 파트 업무를 모두 이해해야겠죠.”
“팀 업무도요?”
“당연하죠. 저는 시스템 기획자 출신이지만 밸런스, 레벨, 퀘스트 등, 모든 기획 업무를 꿰고 있어요. 그리고 프로그램, 아트, 마케팅, 인사 등, 개발 외에 회사 업무 전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죠.”
태후는 강조했다.
“게임 프로듀서는 그런 거예요. 그래서 경험이 중요해요. 공부도 쉬지 않고 해야 하고. 태희 씨는 피디 이전에 파트장, 팀장, 그리고 AD를 목표로 잡는 게 좋아요. 프로듀서는 그 다음 생각할 일이고요.”
태연은 차근차근, 자신이 올라온 길을 알려줬다. 그러다 보니 수십 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 정도 말해줬으면 됐겠지?’
“이제 일하러 갑시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저, 자, 잠깐만요!”
“무슨 일이죠?”
“호, 호, 혹시…….”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심하게 더듬거리던 성태희.
“……혹시 만나는 여성분이 있으신가요?”
태연은 바보가 아니다.
“네. 좋은 여성분과 만나고 있고 결혼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
“질문은 이게 끝입니까?”
“네, 네에…….”
“그러면 가시죠.”
“네에에…….”
풀이 죽은 얼굴로 비척대며 일어서는 성태희.
“어, 태희 씨?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태희 씨! 같이 커피 한 잔 하면서 업무 이야기 좀……!”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성태희는 그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태연은 시선조차 주지 않고 업무에 집중했다.
* * *
‘음?’
원화 팀장이자 D 프로젝트의 아트 디렉터, 이영애는 성태희의 표정이 유난히도 어두운 것을 발견했다.
오죽하면 남자 직원들조차도 다가설 엄두를 못 낼 정도였다.
‘무슨 일이 있나 보네.’
그때는 그렇게 넘겼다.
“요즘 태희 씨 이상하지?”
“음. 원래 생글생글 잘 웃고 본인 업무도 열심히, 의욕적으로 하던 사람이 뭔가 변했어.”
“뭐…… 여기저기서 공주 대우 해주니까 자기가 정말 뭐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
성태희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영애 역시 그것을 감지했다.
“성태희 씨한테 뭐라고 좀 해주세요. 요즘 집중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 같던데.”
이영애는 자신이 나설 때라고 생각했다.
성태희는 자리에 앉아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건 분명히…….’
베테랑으로서의 관록이 신호를 보낸다.
실연을 당한 여자의 얼굴!
조심스레 메신저를 보낸다.
[같이 커피 마실까요? 제가 스타X스 쏠게요!]
반응이 없다.
얼굴은 모니터를 향하고 있지만 실상은 모니터가 아닌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렸다는 뜻이다.
몇 번 메신저를 보내고서야 반응이 왔다.
두리번거리더니 자신을 확인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이영애 원화 팀장은 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태희는 죄를 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푹 숙인 채 이영애를 따라오고 있었다. 거대한 회사 사옥을 벗어나 꽤 떨어진 스타X스 커피숍에 도착하고, 음료 주문까지 마친 뒤에도 아무 말도 못 한다.
이영애는 음료를 권했다.
“마시면서 편하게 들어요.”
“네에…….”
성태희가 음료를 들이켠 것을 확인한 뒤에야.
“태희 씨, 혹시 차였어요?”
“……!”
기습적으로 찔러본다.
화들짝 놀라는 모습에 자신의 추측이 옮았음에 확인됐다.
“설마 그 대상이 피디님이에요?”
이젠 흡사 귀신이라도 보는 얼굴이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더듬거린다.
“어, 어떻게 알았어요?”
곧, 그녀 자신조차 몰랐던 버릇을 알게 됐다.
“태희 씨, 다른 남자 직원들을 대할 때 피디님 대할 때가 묘하게 다르다는 거 모르셨죠?”
“제, 제가요?”
“네. 태희 씨가요.”
“어떤…… 식으로요?”
“태희 씨가 기본적으로 착하고 상냥한 사람이긴 한데, 다른 남자 직원들은 무슨 말하는 고릴라 보듯 하거든요.”
“풋!”
예상치 못한 비유에 순간적으로 폭소가 터져 버렸다.
이영애는 진지한 얼굴로 검지를 치켜들었다.
“그런데 피디님 대할 때만큼은 봄바람에 꽃이 피는 듯한 표정을 하더라고요. 그것을 보며 직감했죠. 아! 성태희 씨가 우리 잘생기고 능력도 좋은 피디님에게 홀딱 반해 버렸구나!”
“호, 홀딱까지는 아니에요! 그냥. 그러니까…….”
우물쭈물하던 성태희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애써 변명한다.
“조금 마음에 있었던 것뿐이죠. 아주 조금…….”
이영애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한없이 자상한 그 모습에 성태희는 자신도 모르게 고민을 털어놨다.
왠지 그러고 싶어졌다.
“아하. 우리 피디님께 결혼하고 싶은 여자 친구가 생긴 모양이군요! 태희 씨는 그 말을 듣고 절망했고.”
“…….”
“충분히 이해해요. 사실 태희 씨뿐만 아니라 유태연 피디님 좋다는 사람이 굉장히 많거든요.”
“저, 정말요?”
“태희 씨가 좋아할 정도로 멋진 분이잖아요. 무게감 있게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일도 굉장히 잘하고, 카리스마 있고…….”
“…….”
“예쁜 태희 씨를 주위 남자들이 가만 놔두지 않는 것과 비슷해요. 음, 그런데 어떤 행운아가 우리 유 피디님의 마음을 가져갔을지, 정말 궁금해지네요. 태희 씨도 그렇죠?”
“네!”
성태희는 빨대를 손아귀로 으스러뜨리며 중얼거렸다.
“감히 선수를 치다니…….”
* * *
태연은 이영애와 대화를 하고 돌아온 성태희의 표정이 꽤나 밝아진 것을 확인했다.
‘적절한 타이밍에 나서 주셨군.’
사내 분위기에 민감한 태연은 일찌감치 성태희를 둘러싼 안 좋은 평판을 접하고 있었다. 나서기가 곤란해서 잠시 방법을 고민하는 동안 이영애가 해결하고 돌아온 것이다.
순간 이영애와 시선이 마주쳤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음을 담아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다. 이영애는 별것 아니라는 듯 우아한 미소를 띠며 자리에 앉는다.
성태희는 빠르게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태연은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성태희가 알게 모르게 스튜디오 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
많은 남자 직원들이 그녀의 기분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상책인데…….’
하지만 어쩌겠나?
사람 마음은 당사자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인데.
‘좋아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게임 마냥 매력 수치를 좀 낮춰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니…….’
더욱이 이런 건 자신이 참견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모두들 어른스럽게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럴 거라고 믿는 수밖에.’
* * *
[몬스터 이터 온라인 한국 서버 오픈!]
[MMORPG가 아닌 헌팅 액션 장르! 몬스터 이터란 과연 어떤 게임인가?]
마침내 몬스터 이터 온라인의 정식 서비스가 시작됐다.
30일 19,800원. 90일 47,500원.
정액 요금 외에 정량제 서비스가 존재하며, 모든 캐시 아이템은 게임 밸런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들이다.
결정적으로 한국 온라인 게임의 상징적 아이템은 ‘랜덤 박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서비스에 앞서, 태연은 모두에게 공지했다.
“이 시간 이후, 외부에 나가는 모든 리소스는 작은 것 하나라도 제 컨펌을 거친 이후에 진행하도록 하세요. 마케팅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태연이 한국 몬스터 이터 온라인의 총괄 프로듀서이기에 가능한 지시였다.
이 같은 지시를 내린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안정적인 서비스 가이드라인이 완성될 때까지는 내가 총괄해야지.’
많은 게임들이 의외로 게임 내부적인 문제보다는 외적인 일로 평판과 매출이 깎인다.
이를테면 홍보 문구에 특정 대상을 비하하는 문구, 혹은 그림을 집어넣는다거나 하는 식의.
가장 위험한 것은 정치 이슈를 끼워 넣는 일이다.
특정 정치인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밈을 은연중에 끼워 넣는다거나 하는 식의…….
그런 경우는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 매뉴얼도 수립해야 한다.
‘그건 총괄 프로듀서인 내가 해야 할 일이야.’
이후로, 한국 몬스터 이터 서비스 중 벌어지는 모든 이슈는 총괄인 자신의 책임이다.
‘적어도 내가 이 게임을 맡고 있는 동안만큼은 절대 아무 일이 없도록 만들어야지.’
자신들을 믿고 결제해 준 유저들의 쾌적한 플레이 환경을 위하여!
정식 오픈 첫날은 엄중한 분위기 속에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