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23화
15. 넥플 엔터테인먼트(2)
태연은 틈만 나면 모든 개발 작업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연구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태연은 또 한 가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근래에 만들어진 3D 애니메이션 대부분은 캐릭터, 맵 리소스를 모두 만들어 놓고 촬영을 진행하지?”
물론 레이아웃 촬영 단계에서 픽업된 구도를 제외한 부분은 형태만 대충 갖춰 놓는 선 정도로 마무리한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설계는 모두 해놓고 작업을 진행한다.
‘이건 콜라보레이션이고 수익도 나누기로 했으니 리소스 받아서 사용해도 문제없는 거잖아.’
이번 게임에 오리지널 리소스도 상당히 추가될 예정이긴 하지만 결국 그조차도 판권을 디즈니와 공유하도록 되어 있다.
애초 그런 계약이었다.
“바로 요청을 해보자.”
미국 출장 때, 태연은 엘렌 CEO를 비롯해 회의에 참석했던 모든 계열사 간부, 실무자들의 개인 연락처가 적혀 있는 명함들을 받았다.
서둘러 자리로 돌아온 태연은 프로젝트 D의 아트 디렉터, 이영애의 도움을 받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실무 담당자와 통화를 시도했다.
며칠 후, 긍정적인 답신을 받았고 태연과 이영애는 환호성을 터뜨렸다.
* * *
캐릭터 3D 모델링, 애니메이션, 맵, 특수 효과 등등.
본래 디즈니는 자신들이 작업해 놓은 리소스를 어지간해서는 외부 업체와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이번 작업은 양 사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협업이었다.
“그러면 아트팀은 채용 진행해서 작업 시작해도 되겠죠? 아트 웍도 픽업되었으니까.”
“그렇게 하시죠.”
그래서 아트 작업자 채용 공고가 올라갔다.
그리고 그 시기에 기사가 터졌다.
과천 슈퍼 랜드, 서울대공원 부지를 뉴 월드 컨소시엄이 인수하여 새로운 형태의 테마파크로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이 컨소시엄에 넥플이 참여하고, 유태연이 대표로 있는 넥플 엔터테인먼트에서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는데 프로젝트 D가 바로 그중 하나라는 사실도 공개되었다.
이는 큰 이슈가 되었다.
-D가 그 D였어? 0_0;;;
-디즈니랜드라니,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생기는구나! ㅠㅠ
-이번에 아트 팀 채용공고 올라왔기에 냉큼 지원했는데…… 이번에도 떨어지면 땅을 치며 통곡할 것 같다. 꼭 합격되기를…….
대한민국 모든 포탈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계속 차지하고, 시간마다 새로운 내용을 담은 기사들이 계속 업데이트되었다.
게임 언론지, 게임 블로거와 유튜버 등, 업계 정보를 실시간으로 다루는 이들은 이 내용을 집중 취재했다.
[프로젝트 D, 그 베일이 마침내 벗겨지다!]
[디즈니와 넥플의 합작 프로젝트!]
[판테온, 몬스터 이터에 이은 콘솔용 VR RPG 프로젝트 D. 그 정체를 파헤치다!]
넥플은 쏟아지는 문의에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 * *
짧은 시간에 이처럼 많은 주목을 받은 개발자도 없었다. 이제 태연이 이끄는 모든 개발팀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태연의 개발자들은 모이기만 하면 요 근래 겪고 있는 변화에 대해 수군거렸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우리 스튜디오 TO 없냐고, 자기 입사 추천해 주면 안 되겠냐며 계속 문의해오고 있어요.”
“정작 스튜디오 내부는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 외부에서 아주 난리네요. 아는 게임 기자가 계속 인터뷰 한 번만 해달라고 부탁하는데 아주 난감해 죽겠어요.”
태연과 넥플 본사 측에서 열심히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긴 하지만 그 정도로는 언론사, 그리고 이번 이슈에 관심을 보이는 수많은 이들의 니즈를 채워줄 수는 없었다.
단순히 게임 개발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뉴월드 그룹을 비롯, 정부에서도 사활을 걸고 있는 관광 사업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론은 태연이 유진성 회장과 함께 디즈니 본사를 방문해 몇 차례 회의를 진행했고, 국내에 돌아와 컨소시엄 업체들과 회동을 가졌다는 사실도 파악했다.
어떤 내용이 논의 중인지.
넥플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의 정체성이 정확히 무엇인지.
태연이 이번 테마파크 사업에 어느 정도까지 관여하게 되는지.
언론은 지금 단계에서 밝힐 수 없는 중요한 정보들을 요구했다.
* * *
태연은 자신이 품고 있는 정보들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면서도 최대한 말을 아꼈다.
모든 내용이 알려질 순간이 오긴 하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터뜨릴 내용은 아니었다.
내가 이 거대한 사업의 주체라도 된 양,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날뛰기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개발자로서 인생도 끝나는 순간이다.
태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엄하게 통제했다. 이렇게 되니 태연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프로젝트 D 아트팀 TO가 모두 채워지고, 채용공고가 일제히 내려가자 업계인들의 관심도 줄어들었다.
태연은 비로소 개발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8월.
몬스터 이터 1차 클로즈 베타 테스트가 시작됐다.
* * *
몬스터 이터 1차 CBT에 응모한 사람은 무려 40만 명, 그중에 추첨으로 뽑힌 1만 명의 유저 만이 남들보다 일찍 국내 버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8월 1일 오전 10시.
서버가 열리자마자 수천 명의 유저가 일제히 밀려들어 왔다.
오늘을 위해 빽빽한 일정의 교육을 이수하고, 몬스터 이터 운영 준비를 마친 수십 명의 정예 운영자들이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기획, 아트, 프로그램 팀도 게임에 접속해서 실제로 유저들과 플레이하며 분위기를 체크했다.
태연 역시 오늘만큼은 다른 업무를 모두 제쳐 두고 몬스터 이터 서비스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철저히 테스트를 했고, 한국 출시 이전 몇 년 전부터 글로벌 서비스가 진행 중이었지만 자잘한 버그 이슈는 수시로 보고되었다.
그래도 패치, 점검을 감행해야 할 만큼 커다란 이슈는 아직까지 없었다.
오후 열 시에 첫 테스트 일정이 종료되었다.
서버를 내린 뒤, 보고된 이슈를 태연이 직접 정리해서 협조가 필요한 부분은 타키자와 사토시 이메일로 넘기고, 내부 처리가 가능한 부분은 각 팀에 분배해 작업을 진행하도록 했다.
“그래 한참 늦은 시각이었지만 전 직원이 남아 마무리 작업에 몰입하고 있었다. 내일 오전 10시에 무사히 서비스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김명욱 넥플 플러스 대표가 다가와 밝은 얼굴로 말했다.
“이 정도면 첫날 테스트는 성공적이라고 봐도 되겠죠?”
“네, 자잘한 문제가 있긴 했지만 플레이에 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고 점검도 없었으니…… 정말 잘 된 거죠.”
“제가 직접 홈페이지와 커뮤니티 사이트 반응을 체크 중인데 CBT 테스터들도 대부분 만족하고 있는 것 같네요.”
반응이 좋긴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CBT가 잘 마무리된다고 해도 막상 정식 서비스 때 결제 수익이 좋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기 때문이었다.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내 유저들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 파악해서 마케팅 전략을 짜는 것도 중요했다.
이건 넥플 플러스 대표인 김명욱의 업무였다. 그는 사업과 마케팅에 대해서라면 태연보다 몇 수는 위에 있는 엘리트 출신이었지만 게임의 어떤 부분을, 어떤 식으로 대중에 어필할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이 부분은 PM인 태연과 논의할 필요가 있었다.
자정.
모든 직원들이 퇴근한 이후에도 태연은 김명욱 대표는 끊임없이 회의를 이어갔다.
* * *
몬스터 이터는 엄청난 인기를 반증하듯, 온갖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터졌고, 지금도 터지고 있는 게임이었다.
태연은 이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한국 서비스에서 잡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타키자와 사토시는 종종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태연을 지칭할 때 ‘디렉터’ 혹은 ‘프로듀서’로 지칭하곤 했는데 이는 태연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현지화 런칭 조건으로 걸었던, 디렉터로서의 역할을 태연이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버전 번역 퀄리티는 크라잉 소프트 로컬라이징 팀에서 감탄을 할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타 국가에서 런칭, 서비스 했을 때 발생한 모든 문제점들을 따로 리스트로 만들어 한국 서비스 때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근래에, 글로버 버전은 불법 이동 프로그램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태연이 내부 개발팀과 논의해서 이에 대한 대응 반응을 제시, 깔끔히 해결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이런 노력이 CBT를 통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테스터들이 알아주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번역 퀄리티는 흠잡을 게 하나도 없다. 눈 부릅뜨고 모든 텍스트, 한글 리소스를 확인해 봤는데 지적할 게 없었다. 거슬리는 오역도 전무함.
-난 다른 것보다 운영이 마음에 든다. 이건 정식 서비스 이후로도 쭉 지켜봐야 알 일이지만 뭔가 문제점을 발견해서 건의하면 대답도 잘 해주고 패치 반영도 세세하게 잘 해줘서 만족 중. 제발 끝까지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칭찬만 가득한 건 아니다.
-아직도 최적화가 좀 덜된 것 같은데? ‘영광의 숲’ 광폭의 베히모스에서 발견되었던 프레임 드랍 여기도 똑같이 있음.
-몬스터 이터 온라인은 처음인데 게임 명성에 비해 메인 스토리가 조금 아쉽네요. 전 게임을 할 때 우선순위로 두는 게 스토리라서 아무리 유명하고 재미있다고 해도 스토리가 빈약하면 아예 쳐다도 안 보는데…… 흠.
-일본 게임 특성인지, 인 게임 영상에서 캐릭터 연기 하는 거 보고 있으면 중2병 걸린 애들 같아서 오그라들어요. 감정 연기 할 때도 공감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네요.
-아직도 부족한 최적화! 최적화 좀 어떻게 해봐라!!!
비평거리도 매우 많았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최적화와 메인 시나리오!
크라잉 소프트 개발팀이 작업 기간을 넉넉히 잡고 대대적으로 작업해야 할 문제였지만 쉽지 않다.
신규 개발과 버그 개선만으로도 일정이 빡빡했기 때문. 태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손가락 빨며 지켜보기만 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무엇보다도 그런 무기력한 태도는 태연의 성격과도 맞지 않았다.
‘최적화 작업 일부를 우리 개발팀과 분담해서 작업해 보자고 제안할까? 메인 시나리오에서 일부, 개연성이 떨어지고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수정안을 제시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태연은 타키자와 프로듀서와 논의할 내용을 정리하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사이가 가까워졌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게 제안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사안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도가 지나쳤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 일단 제안이라도 해보자.’
비록 2년 한정이라지만, 자신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담당하고 있는 게임이 아닌가?
이름과 게임 개발자로서 경력이 걸려 있는 이상, 어중간하게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태연은 즉각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몇 번 신호음이 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태연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안하고 싶은 게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