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22화
15. 넥플 엔터테인먼트(1)
회사에 출근한 태연은 제일 먼저 홍민석과 이영애를 불러 자신이 겪었던 일을 들려줬다.
원래 표정이 다채로웠던 이영애는 물론, 홍민석의 포커 페이스에 금이 갔다.
이야기가 끝나자 홍민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PD님, 요 근래 들어 사고 많이 치고 돌아오는 거 아십니까?”
“제가요?”
“판테온 홍보 영상 출품 건도 그렇고 넥플 플러스 개발 총괄 건도 그렇고…….”
“그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서…… 아니, 생각해 보니까 저도 억울해요. 이번 일은 회장님께 완전 낚인 거라고요. 그렇게 판 다 깔아서 절대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 만들어 놓고 선택하라고 하시다니, 진짜 회장님 너무하죠?! 그쵸?”
변명하던 태연이 뜬금없이 흥분하자 이영애가 가늘게 뜬 눈으로 말했다.
“그래서, 그런 엄청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제일 먼저 털어놓으시는 이유가, 설마 제가 생각하는 그런 것 때문은 아니겠죠?”
“아마 맞을 거예요.”
“…….”
즉각적인 대답에 이영애가 할 말을 잃자 태연은 빙글 웃으며 말했다.
“이영애 팀장님, 축하드려요. 지금 이 순간 콘솔 VR RPG 게임 ‘디즈니 판타스틱 월드’ 아트 디렉터로 승급하셨어요.”
이영애는 그대로 책상에 무너져 버렸고 홍민석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태연도 웃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 * *
“TF팀을 굳이 두 개로 분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우리 측에 할당된 테마파크 구역을 게임에 등장하는 맵의 디자인을 차용해서 적용하면 되니까요.”
엄살을 떨던 이영애는 곧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전공 실력을 제대로 발휘했다.
그녀는 디즈니 파크 앤 리조트 사의 수석 디자이너, 에드먼드와 직원들이 정리한 아이디어 구상안을 기반으로, 콜라보레이션 구역 부분을 순식간에 디자인화했다.
“대기 줄 부분에 AR, VR 체험존을 만들 예정이라고 했는데, 혹시 우리가 그 체험존에 추가될 게임도 제작해야 하는 건가요?”
“그 부분은 나중에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게 될 것 같은데, 일단 엘렌 CEO와 간부들은 게임 쪽은 우리가 전담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 이 부분은 넘어가고, 아무튼, 제가 ‘디즈니 판타스틱 월드’ 컨셉 안을 듣고 이 부분을 활용하면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녀가 체크한 건 바로 파크의 중점이 되는 분.
다른 디즈니 파크들과 달리, 영웅 연합과 악당 제국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파크의 관문이 될 중앙 지역이었다.
“게임 컨셉이 디즈니 월드에 이상한 일이 발생해서 기존 원작 세계관이 틀어지는 걸 플레이어가 막으러 돌아다닌다는 컨셉이잖아요.”
“그렇죠.”
“a작품에서 b, c에서 d로 넘어갈 때 어떤 방식을 사용할 거에요?”
“아직 생각은 안 했는데, 디즈니와의 콜라보니 그곳에서 등장하는 차원 이동 관련 아이템을 변형해서 사용해 볼까, 생각했어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사용된 토끼굴이라든가, 아니면 거울이라든가…….”
“그러면 구역을 우리가 할당받는 의미가 없죠. 우리 측 투자자들도 그런 걸 원하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의 오리지널 시나리오, 세계관에서 파생된 장소가 나와야죠.”
“동감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시나리오가 필요한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거다 싶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요. 혹시 좋은 아이디어 없어요?”
그 말에 홍민석과 이영애가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이영애가 말했다.
“이런 건 어때요?”
“필기할 준비 다 됐어요. 말씀하세요!”
태연이 진짜 노트와 펜을 들고 눈을 빛내자 이영애가 작게 미소 짓더니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 이야기는 미국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림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소년의 놀랍고 아찔한 경험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 * *
흑인 소년 잭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힘든 일들을 많이 겪으며 자랐다.
잭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건 어머니가 월급을 모아 사준 낡은 스토리 북.
딱히 할 일이 없어 반복해서 읽고, 그림을 따라 그리다 보니 잭은 동화 작가의 꿈을 꾸게 되었다.
여러 일을 하며 홀로 잭을 키운 잭의 어머니는 어느 날, 과로가 겹쳐 쓰러지게 되고 그 소식에 잭은 눈물을 흘리며 누군가에게 기도한다. 어머니를 구해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울다 지쳐 잠든 잭은 누군가 말을 걸어오자 깨어난다.
어머니가 사준 낡은 스토리 북이 빛을 내며 공중에 떠 있었다.
스토리 북은 자신을 도와주면 어머니를 구해주겠다고 제안하고 잭은 이를 받아들인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병들어가고, 혼란이 닥쳐와 파멸의 위기를 맞게 된 이야기 속 세계.
잭은 그 원인을 찾아서 이야기 속 영웅들과 함께 힘을 합해 원인을 박멸하고 평화를 되찾아줘야 한다.
* * *
“어때요?”
“좋네요. 전 사실 SF 판타지 느낌으로 접근을 했었어요. 차원 관리 기관이 있고, 균열을 감지한 기관에서 요원을 투입한다든가…… 그것보다도 훨씬 낫네요. 역시 인기 웹툰 작가!”
태연의 칭찬에 이영애가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목차가 어디까지 존재하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죠? 출시한 게임이 반응이 좋으면 DLC로 계속 추가하면 되니까.”
“그렇죠! 그리고 콜라보레이션 구역 비주얼 컨셉은 이 목차 속의 세계로 잡으면 되겠네요. 오리지널 필드를 놓고, 이 장소가 ‘목차’라는 걸 알 수 있게 해주는 각 장의 상징적인 오브젝트를 배치하고 그것과 접속하거나 들어가면 각 장 퀘스트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본격적으로 뼈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태연은 이영애의 제안을 듣고 마구 떠오르기 시작한 아이디어를 마구 던졌고 이영애가 그것을 받아줬다. 홍민석은 사정없이 날아드는 이야기들을 묵묵히, 노트에 기록했다.
“판테온에서 쓰고 있는 제작 툴을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죠. 이건 콘솔이고 최우선 타겟층은 디즈니 매니아들이니 그래픽, 특히 노래가 들어가는 명장면 재현 부분에 대해서는 더 신경 써야 할 거예요.”
“순 개발비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시나요? 팀 규모는요?”
“그 부분은 더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지만…… 저는…….”
이미 바깥은 어두워졌지만 회의는 끝날 줄 모르고 이어졌다.
* * *
넥플이 공식 홈페이지와 잡 사이트에 띄운 구인 글들이 업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넥플 엔터테인먼트 콘솔 게임 개발자 모집.]
넥플 엔터테인먼트에서 해외 인기 IP를 사용한 콘솔 VR RPG 게임 개발에 함께 할 유능한 개발자를 모집합니다.
모집 부분 : 기획, 프로그램, 아트, 시나리오
전형 절차 : 서류심사 – 1차 실무자 면접 – 2차 실무자 면접(필요 시 진행) - 합격자 발표
제출 서류 : 이력서, 경력 기술서, 포트폴리오
접수 기간 : 채용 시 마감
논란이 일어난 부분은 두 가지.
넥플 엔터테인먼트는 또 언제 생긴 회사인가.
해외 인기 IP를 사용한 콘솔 VR RPG 게임이라니, 대체 그 게임 정체가 뭐냐.
채용 정보에는 IP 내용이 빠져 있었다. 사람들은 즉각 뉴스 기사를 검색했다.
그리고 딱 한 가지 사실만을 새로 알 수 있었다.
이 회사의 대표가 유태연 프로듀서라는 것.
-유니버스 스튜디오 판테온 만드는 곳임?
-그 스튜디오에서 VR RPG 게임을 콘솔용으로 제작한다고?
-뭔가 혼란스러운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정보 아는 사람 없음?
개발자들이 많이 모이는 ‘갈대나무 숲’ 어플 게임 게시판도 무척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자세한 정보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보안에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다.
-콘솔 VR RPG라, 끌리는데 지원해 봐야겠다.
-대체 어떤 프로젝트지? 그나저나 유태연 PD 굉장하네, 몬스터 이터에 판테온에…… 이제는 ‘프로젝트 D’까지?
-그 ‘D’가 대체 뭘까? 넥플 요 근래에 일본 유명 IP로 모바일 게임 만든 거 초대박 터져서 작업자들 최소 몇천만 원씩 인센 받았다던데…… 이력서 질러 봐?
무려 넥플이 새로운 계열사를 만들어 모집을 발표한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그 대표가 최근 유명세를 얻고 있는 유태연 프로듀서라니 개발자들이 관심을 쏟았다.
개발자 모집 공고문은 정확히 한 달에 모두 내려갔다.
-아씨, 떨어졌다. ㅠㅠ
-면접 봤어? 어떤 게임인지 들었어?
-아니, 끝까지 말 안 해주더라. 그런데 나 그 프로젝트 안에서 외국인 작업자들 돌아다니는 거 봤음.
-지금 시니어급 작업자들만 뽑고 있는 것 같던데, TF팀 구성 끝나서 공문 내린 듯. 나중에 채용 공고 발표되면 그때 정확한 정보도 알 수 있게 될 듯싶다.
-아쉽다. 다음 공문 올라오면 다시 한번 도전해 봐야지.
* * *
채용 공문을 한 달 만에 내린 것은 이미 인사팀 데이터베이스에 무수히 많은 개발자 정보가 있었고 그것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채용 공문 통해 뽑은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배수현
(동화 작가, 전 시나리오 기획자)
필력 : 13/10(15)
시스템 : 2/10
콘텐츠 : 3/10
레벨 : 3/10
시나리오 : 7/10
호감도 : 5/10
그녀는 어려서부터 동화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대학에 다니던 중 공모전에 당선되어 첫 작을 출판했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단다.
생활고 탓에 인맥을 이용, 게임 회사에서 시나리오 기획자 일을 했었지만 계속되는 야근과 무의미한 반복 작업에 지쳐 퇴사, 이후로는 신작을 준비하다가 또 생활고로 이번 넥플 엔터테인먼트 채용에 지원했다고 했다.
‘필력이 저 정도라면 굉장한 자질이 있다는 건데…… 정말 아깝군.’
능력이 있다고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배수현에게는 능력과 열정이 있었지만 운이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나이는 스물일곱 살, 대학은 이미 졸업했고 동화책은 세 작품 정도 출판했고…… 딱 좋군.’
태연은 작가로서의 경력을 인정, 연봉을 4,000만 원 정도로 책정해 줬다.
그리고 두 번째, 최종 면접 자리에서 시나리오 기획자 백영훈을 데리고 와서 말했다.
“당분간 백영훈 씨 일을 도우면서 시나리오 기획을 배우세요. 작가로서 필력은 수현 씨 보다는 떨어지지만 기획자로서는 한참 위에 있으니 배울 점이 많을 거예요.”
“네.”
“약속드릴게요. 무의미한 일은 절대 지시하지 않아요. 작가로서의 꿈도 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 도울게요. 그러니 저 믿고 일 열심히 하고 배워주세요. 아셨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2차 면접이 끝나려고 하자 그녀가 다급히 물었다.
“저, 그런데 대체 무슨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 거죠?”
그 말에 태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디즈니 판타스틱 월드라고 해요.”
“네?”
“메일 보내드릴 테니 확인해 보세요. 그러면 배수현 씨, 출근 때 뵐게요.”
그렇게 면접이 끝났다.
태연과 백영훈이 나가자 멍하니 홀로 앉아 있던 그녀가 중얼거렸다.
“세상에…… 프로젝트 ‘D’에서 ‘D’가 Disney를 뜻하는 거였어?”
그것은, 지금까지 채용된 모든 이들이 보인 반응과 비슷했다.
* * *
배수현은 3일 후 출근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PD님. 오늘부터 출근하게 되었어요.”
자리에 앉아 업무 준비를 하는 태연에게 그녀가 다가와 인사했다.
가지런히 정돈된 긴 생머리에 투명한 메이크업이 그녀의 청순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제가 보내드린 자료 확인해 보셨어요?”
“네. 3일 동안 열심히 공부했어요.”
“공부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즐길 수 있어야 해요. 오늘부터 백영훈 씨에게 열심히 일 배우시고 회사 분위기에도 적응해 보세요. 무리는 하지 말고요.”
“네!”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이고 돌아가는 그녀를 보고 태연이 피식 웃었다.
‘의도한 건 아닌데……어쩌다 보니 미모와 학력이 뛰어난 여성분들이 많이 들어오네.’
이틀 후에는 스토리보드 작가 두 명이 합류했다.
배수현을 포함해 세 명의 시나리오 작가진이 구성된 것이다.
일주일 후에는 카이스트 출신 40대 베테랑 프로그램 팀장이 출근했다.
그렇게 약칭, 프로젝트 D의 TF팀 구성이 완료됐다.
기획 총괄 및 디렉팅, 프로듀서인 유태연.
아트 디렉터 이영애.
시나리오 작가 한 명, 스토리보드 작가 두 명.
프로그램 팀장 한 명.
그렇게 총 여섯 명의 멤버였다.
태연은 그들을 회의실에 모아 놓고 말했다.
“채용할 때 일부러 프로젝트 D의 성향과 맞는 분들을 뽑았습니다. 제가 바라는 작업 분위기는 하나.”
태연은 강하게 말했다.
“우리 작업 끝날 때까지 열심히 덕질 해봅시다!”
“와아아아!”
“오늘부터 하루에 한 편씩, 오전 시간은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영화 상영회로 진행합니다. 모두 빠지지 말고 모여서 감상하고 수다를 떨어 보도록 합시다!”
“와아아아!”
“덕질이다!”
“한 달, 혹은 분기 별 한 번씩 디즈니랜드 투어 진행합니다! 모든 비용은 디즈니 본사와 넥플 측에서 협력해 주기로 했으니 여러분은 아무 걱정 없이 덕질 하면 됩니다!”
“우오오오오!”
“유태연! 유태연!”
열광의 도가니.
오죽하면 회의실 바깥에 있던 이들이 몰려와 유리창 너머에서 내부를 살펴볼 정도였다.
“자, 바로 상영회 준비합시다!”
꿈의 직장.
넥플 D스튜디오의 시작이었다.
* * *
프로젝트 D TF팀 정식 발족 후 일주일.
태연은 유진성 회장과 함께 뉴월드 그룹 본사 사옥으로 향했다.
그곳 회의실에 뉴월드 그룹의 차기 주인, 김종학 부회장을 비롯해 쟁쟁한 기업의 대표, 실무자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열한 시 정각.
“지금부터 디즈니 본사와 협력하여 작업했던 내용들에 대해 발표하겠습니다.”
태연은 국내 굴지 기업 대표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발표가 끝나고 오찬이 진행되었다.
명성이 자자한 특급 셰프가 직접 조리한 음식은 고급 음식을 별로 접해 보지 못했던 태연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줬다.
김종학 부회장은 태연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는 호감이 가득한 얼굴로 태연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게임 제작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시작하게 되었느냐를 시작으로 애인은 있느냐는 사적인 질문까지.
‘아무래도 나에게 관심이 많은 모양이네.’
40대 후반인 김종학 부회장은 대기업 후계자라는 위치에 맞지 않게 운동과 오타쿠적인 취미를 즐겨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부친인 김명종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섰기에 사실상 그룹 총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타 재벌 기업 후계자들과 달리 주도적으로 진행한 사업에 훌륭한 성과를 보이고 있지. 성격 좋다는 이야기도 많고.’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세상에 좋은 소리만 듣는 사업가는 없다. 당장, 태연을 아끼며 중히 쓰는 유진성 회장도 언론이나 게이머들로부터 무수히 많은 욕을 먹고 있지 않던가?
태연은 모든 선입견을 내려놓고 대화를 진행했다. 그가 컨텐츠 사업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니 대화가 꽤나 길어졌다.
하지만 그는 시간 여유가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비서가 다가와 무언가를 속삭이자 그가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모처럼 재미있는 대화였는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네요. 다음에 개인적으로 한 번 만나서 술이나 하죠. 술 좋아해요?”
“사주신다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그는 황금빛 명함을 한 장 건네준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 연락처에요. 조만간 연락할 테니까 외면하지 말아요. 알았죠?”
* * *
유진성 회장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태연이 황금 명함을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심통 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신기하냐? 나도 하나 주랴?”
그제야 태연은 유진성 회장의 표정을 살피곤 씨익 웃었다.
“설마 지금 질투하시는 거예요?”
“내가?”
“네. 회장님이요.”
“내가 왜 질투를 해야 하는데?”
“에이, 질투하시는 거 맞네. 제가 김종학 부회장님 관심받고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괜히 심통 나서 그러시는 거잖아요. 혹여라도 제가 그쪽으로 넘어가기라도 할까 봐.”
“이 녀석이…… 내가 그렇게 속 좁은 놈으로 보여? 나 그런 사람 아니다!”
“아니면 마시지,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태연은 능글맞게 웃으며 명함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조금 뜬금없기는 하네요. 대체 뉴월드 그룹이 무슨 이유 때문에 테마파크 사업을 시작하려는 걸까요? 국내에는 이미 강력한 라이벌이 두 곳이나 있는데. 심지어 부산에도 큰 거 하나 공사 중이라잖아요.”
“오프라인 유통 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김 부회장 나름의 해결 방안이라고 할 수 있지.”
유진성 회장의 표정이 한순간에 진지해졌다.
“오프라인 시장이 이커머스 시장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잖아. 고객 체류 시간을 붙잡기 위해서 내놓은 두 가지 해결 방안이 하나는 거대 쇼핑몰, 또 하나가 바로 테마파크 사업이야. 두 가지로 고객의 체류 시간을 붙잡으려는 거지.”
“아…….”
“이 사업 본격적으로 진행하면 당분간 다른 곳에 한눈팔 여력도 없을 거다. 그러니 괜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면 곱게 내려 둬.”
그 말에 태연이 다시 한번 웃고 말았다.
“저 다른 곳 안 갈 테니까 걱정하지 좀 마세요.”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다. 그냥 현실을 알려주려고 그러는 거야. 헛된 꿈 꾸고 있으면 정신 차리라고.”
“어련하시겠어요.”
“이 녀석이……!”
* * *
태연은 바로 스튜디오로 돌아와 업무를 진행했다.
‘조금만 관심을 떼면 바로 문제가 터지네.’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인력을 편성해 업무를 진행해도, 긴장감이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문제가 발생해 버린다.
이번에는 판테온의 클라이언트, 애니메이션 쪽에서 문제가 터졌다.
몬스터 이터의 경우 라이브 팀에서 잡아내지 못하고 지나쳤던 이슈를 넥플 QA팀이 발견해 보고를 올렸다.
자잘한 게 아니라 꽤나 중요한 이슈였다.
‘긴장감을 조여야겠어.’
태연은 넥플 엔터테인먼트, 넥플 플러스에 근무하는 모든 장급들을 불러 친절하게 말했다.
“앞으로 리딩은 제가 할 테니 여러분은 업무만 열심히 하세요. 여기까지 와서 관리자 노릇만 하려면 다른 곳으로 가버려요. 저 그런 사람 싫어해요.”
“…….”
친절하게 말했는데 어쩐 일인지 다들 벌벌 떨며 태연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터 팀.”
“네!”
“여러분이 발견 못 한 걸 본사 QA실이 발견해서 나한테 보고 올렸어요. 요즘 이런 일이 잦던데, 계속 이럴 거면 테스트 왜 해요?”
“죄송합니다!”
“런칭 얼마 안 남은 거 알죠? 잘 합시다.”
“알겠습니다!”
군대를 방불케 하는 우렁찬 대답이 터져 나온다.
태연은 그 정도로 문책을 끝낸 뒤 업무 사항 체크 및 지시를 진행했다.
요 근래에 일이 많아 스튜디오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일이 잦지만 본 업무에 소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자 누군가 회의실로 들어와 태연에게 급히 말한다.
“PD님. 지금 학생들 모여서 기다리고 있어요. 빨리 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조선아 대리였다.
태연은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
“정시네요. 회의 끝났으니 바로 가시죠.”
그렇게 태연이 나가자 남아 있던 개발자들이 혀를 내두르며 한마디씩 했다.
“정말 바쁘시네요. 그러면서 업무 체크나 시간 관리 철저한 거 보면 정말 신기해요.”
“저는 죽었다 깨나도 PD님처럼은 못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프로듀싱이나 디렉터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으려고요.”
“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