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21화 (21/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21화

14. 거인들이 그리는 미래

바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이미 실무자들을 통해 나눴던 이야기들을 양측의 대표들이 확인하며, 세부 의견을 조율하는 자리였다.

게임과 관계없는 사업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었기에 태연은 가만히 앉아 경청할 뿐이었다.

소득은 있었다.

유진성 회장의 노림수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

‘콜라보레이션이라…….’

지금까지 흘러나온 정보들을 종합해보니 대충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과천의 슈퍼랜드와 서울대공원 부지에 거대한 규모의 파크 리조트가 지어진다. 넥플은 디즈니와 협력하여 파크 내 일부 구간을 자사와 넥플이 협력하여 개발한 콘텐츠로 꾸미기로 한다.

‘여기까지는 알겠는데.’

문제는 이후의 내용이다.

콘텐츠 형태를 코믹스와 TV 애니메이션 형태로 제작하여 디즈니가 제공하는 스트리밍 브랜드에 오리지널 콘텐츠 시리즈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 부분은 사실상 디즈니 주도.’

디즈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넥플도 자체 영상 제작팀을 운영하고 있다.

넥플 크리에이티브.

게임 티저 영상을 비롯해 모든 시네마틱 영상을 전담 제작하는 부서였다. 바로 이곳이 코믹스와 TV 애니메이션 협업을 담당하게 된다.

‘문제는 게임인데…….’

디즈니는 게임 사업에서 손을 뗀 지 오래다. 물론 타 게임 회사에 IP를 제공하고, 그렇게 개발된 게임의 수익 일부를 여러 방식으로 나눠 갖는 형태의 사업은 계속하고 있지만 자체 제작은 오래전에 손을 뗐다.

‘디즈니는 게임을, 넥플은 미디어를…….’

이제야 두 거인이 그리고 있는 그림이 얼핏 보인다.

태연의 표정이 더욱 진지해진다.

‘아마도 내가 해야 할 진짜 일이라는 것은…….’

* * *

첫째 날 회의는 구두 합의 내용을 확인하거나 일부 수정하는 선에서 끝을 맺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유진성 회장이 물었다.

“뭘 해야 할지 알겠어?”

태연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저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냥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안 됩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태연의 솔직한 발언에 유진성 회장이 끌끌 웃었다.

“원래 손 이사에게 맡기려던 일이었는데, 한 달 전에 마음이 바뀌었어.”

“저녁 식사 때 말입니까?”

“그래, 본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피해 입을 각오하고 날 찾아왔었지? 다른 스튜디오, 자회사 직원들 생각해서.”

“…….”

“그때 생각했다. 아, 이놈 내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정말 괜찮은 놈이다. 이런 인재를 놓치다니, 강건 대표는 정말 어리석은 작자로구나. 하고 말이야.”

태연을 향한 유진성 회장의 미소에 따스함이 담겼다.

“원래는 손 이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어.”

“그럴 것 같았습니다.”

“이미 끝낸 이야기였는데, 그 친구가 얼마 전부터 다른 소리를 하더라고. 자기는 확실히 늙은 것 같다느니, 요즘 개발자들 실력이나 열정, 센스 같은 것들을 도저히 당해내지 못하겠다느니…….”

누굴 염두에 두고 한 말인지, 굳이 거론할 필요는 없으리라.

“너 입사하고 정말 많은 일을 겪었지? 이상한 소문에 휩싸이기도 했고, 넥플 플러스 설립하는데 엄청난 기여를 하기도 했고 게임쇼 나가서 모든 이목을 잡아 모았고 주가는 계속 오르고 기업 이미지도 좋아지고…….”

“운이 좋았습니다.”

“인사팀장이 그러던데, 네가 최종 면접관 노릇 제대로 해줘서 고급 인재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이제 너 없으면 면접이 안 될 정도라고 하더라.”

“그것도 어쩌다 보니…….”

“사업팀뿐 아니라 모든 행정부 장급들이 네 칭찬 많이 하더라. 넌 대체 정체가 뭐냐?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녀석이 벌써 권력의 중심에 섰어. 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거야?”

“권력의 중심이라니,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도와달라고 해서 최선을 다해 나섰을 뿐이고…….”

“혼내는 거 아니야. 칭찬하는 거야.”

태연은 머쓱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유진성 회장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손 이사도 많이 늙었어. 이제 한물간 옛날 개발자야. 이번 일 맡게 된다면 어떻게든 해내긴 하겠지만…… 사실 너무 무리한 주문이었지. 알고는 있었는데 내 꿈이라서 억지로 떠맡겼던 거였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고생해 달라는 의미로. 그 친구도 어쩔 수 없이 수락한 건데…… 네가 나타난 거야.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데 인성도 괜찮은 인재 말이야.”

태연의 내심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요즘 네 행보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무슨 소설 속 주인공 보는 거 같아. 너라면 어떤 일을 맡겨도 잘해낼 것 같아. 그래서 고심 끝에 이번 일을 맡겨보려는 거야.”

그렇게 신뢰해 준다니, 고맙고 황송한 일이긴 하지만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불과 한 시간 전.

-여기 있는 이 친구가 제가 일전에 말씀드린 그 친구입니다.

회의실에서, 유진성 회장은 모두에게 말했다.

-넥플에서 진행하게 되는 모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할 ‘넥플 엔터테인먼트’ 대표입니다.

폭탄선언이 따로 없었다.

얼마나 놀랐던가?

-인사라도 좀 하는 게 어떠냐?

아직도 심장이 터질 듯 뛴다.

“너 두 작품 끝내면 바로 퇴사해서 네 회사 차릴 예정이었지?”

“……!”

태연은 기습에 움찔했다.

“너 놓치면 분명히 후회할 것 같아서 판 깔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던져 본 거다.”

“…….”

“그래서, 어쩔 거야?”

유진성 회장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할 거야, 말 거야?”

* * *

사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나 다름없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아침 식사를 시작하기 전, 태연은 자신의 결정을 밝혔다. 유진성 회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미소 짓더니 말했다.

“빨리 아침 식사 끝내고 회의 준비나 같이 해보자고.”

오후 두 시.

다시 디즈니 본사에서 다시 회의가 진행되었다. 이번에도 엘렌 CEO가 회의에 참여했는데, 그는 처음으로 태연에게 질문했다.

“이건 꼭 당사자에게 듣고 싶었던 내용인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 개발사인 크라잉 소프트의 마음을 어떻게 돌려놓은 거죠?”

갑작스러운 질문이긴 했지만 태연은 애써 태연하게 답변을 내놓았다. 영어 실력이 그리 능숙하지 못한 관계로 디즈니사의 모든 간부들은 무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통역으로 내용을 이해했다.

태연의 이야기가 끝나자 엘렌이 감탄을 숨기지 못한 기색으로 말했다.

“굉장하군요. 정말 파격적이면서도 효율적인 협상 방식이에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죠?”

“저는 이전부터 타키자와 사토시 프로듀서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만든 게임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아, 한마디로 상대를 잘 알고 있었기에 확신을 갖고 수립했던 회심의 설득 전략이었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태연은 엘렌이 어떤 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지 파악했다.

‘구체적으로 게임 협업을 어떤 식으로 진행했는지 알고 싶어 하는 거야.’

그것을 확실히 알게 되면 유태연이라는 개발자의 성향 파악이 쉬워지고 정말 믿고 함께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인지 가늠해 볼 수 있게 된다.

굳이 숨길 만한 이야기도 아니고, 노하우를 알았다고 그것만 쏙 빼서 훔쳐가 써먹을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니 태연은 주저 없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엘렌뿐 아니라 모든 간부들이 집중해서 경청했다. 태연은 이야기를 끝맺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제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는 용병술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제 위에서 저를 컨트롤하려고 하는 순간, 저는 일 잘하는 개발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됩니다. 저는 제 위에 또 다른 개발자가 있으면 일 안 할 겁니다.”

대기업은 간섭이 심하다.

디즈니는 말할 것도 없다.

얼마나 심하면, IP를 구매해서 게임 만들어보려고 했던 회사들 중 대다수가 그들과 협업에 치를 떨며 다신 일을 같이 안 하겠다고 결심할 정도였다.

이것을 감안하고 던진 이야기였다.

내용에 담긴 뼈를 파악한 엘렌이 웃으며 말했다.

“참고하죠.”

* * *

디즈니 파크 앤 리조트사의 수석 디자이너에 의해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되었다.

시안, 작업 진행 과정 등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나름 변화를 주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도쿄 디즈니 씨 정도의 획기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중앙에 랜드 상징이랄 수 있는 신데렐라 성이 지어지고 메인 스트리트가 입구까지 뻗어나오는 것을 비롯해 큼직한 부분은 다른 랜드 구성과 동일했다.

‘이러면 굳이 한국 디즈니 랜드에 올 이유가 없지.’

10여 년의 세월 동안, 온갖 종류의 맵을 기획하며 구현했던 태연에게는 그들의 의도가 확실히 보였다.

가급적, 본래의 색을 유지하되, 그 안에서 변화를 주려는 의도다.

문제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 특히 투자자들에게는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이건 기획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야.’

다들 그리고 있는 그림이 다른데 그 내용조차 구체적이지 않다. 당연하다. 여기 있는 대부분은 전문가들이 아니니까.

이렇게 되면 실무 담당자들이 확실한 구상을 펼쳐 보여야 하는데 작업 진행 초기라 그런지 그들조차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게 보였다.

‘파크 디자인이라는 게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구나.’

태연은 롤 스크린에 비춰지는 파크 시안을 보며, 준비한 노트와 펜으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그 광경을 흘끔 살펴본 유진성 회장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가 준비한 건 여기까지예요. 혹시 의견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엘렌 CEO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태연에게 쏠렸다. 그들 역시 알고 있다. 태연이 파크 시안을 참고하며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는 것을.

태연은 자신에게 모인 관심을 눈치챘지만 외면하고 스케치에 전념했다.

빠르게 완성시킨 뒤에야 일어서서 프레젠테이션을 조작하는 엔지니어에게 그림과 전날 준비한 USB를 건넨 뒤 롤 스크린 앞에 섰다.

잠시 후, 태연이 스케치한 내용이 스크린에 떠올랐다.

어설프긴 하지만 형태와 의도가 확실히 드러난 그림.

“실제 파크는 아니지만 저는 게임 개발자로서 그동안 수없이 많은 맵을 기획했고 또 구현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제 의견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어설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태연은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그림을 봐주세요. 뭐가 보이시나요?”

“두 개의 커다란 원이 보이는군요.”

엘렌 CEO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몸을 앞으로 밀착한 채, 눈을 반짝이며 큰 관심과 흥미를 드러내고 있었다.

“글씨도 있죠? 뭐라고 적혀 있나요?”

“영웅 연합(hero union), 악당 제국(Villain Empire).”

“자고로, 모든 이야기는 선과 악의 대립에서 시작되어 끝을 맺는 법이죠. 제 컨셉은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캐릭터들이 양분되어 컨셉 맞게 영역을 구축하고 대립한다는 컨셉에서 시작됩니다. 당연히 이벤트도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진행되고 랜드마크도 두 개 이상이 생기는 거죠.”

태연은 노트북을 다루는 엔지니어에게 다음 자료를 띄워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태연이 전날 밤, 밤새워가며 작업해 놓은 프레젠테이션 문서가 비춰진다.

첫 번째 탭에서는 태연이 과거 만들었던 테마파크 형태의 맵 이미지 세 개, 그리고 디즈니의 선 성향 캐릭터와 건물 이미지 등이 추가되어 있었다.

“영웅 연합과 악당 제국은 각각 네 개, 혹은 다섯 개 컨셉의 테마 구역을 갖게 됩니다.”

하룻밤에 급히 완성한 구성이지만 10여 년, 수십 개 이상의 맵을 구현하며 쌓아 올린 기획력 덕분에 꽤나 퀄리티 있고, 그럴듯한 프레젠테이션이 되었다.

비주얼, 스토리, 설정 컨셉 등이 명확하고 심지어 이를 통해 다양한 테마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으니 모든 이들이 정신없이 설명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되면 빌런 퍼레이드, 영웅 퍼레이드의 느낌에 새로운 변화를 줄 수 있죠.”

“뭔가, 군대가 무력시위를 하는 느낌을 줄 수 있겠군요.”

“그렇죠. 퍼레이드에 대한 기대감도 키울 수 있고. 무엇보다 이렇게 되면 스토리와 설정이 부여되니 이를 활용한 다채로운 이벤트도 가능해집니다. 결정적으로…….”

태연은 씨익 웃었다.

“테마파크, 그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 속 무대로 만들 수 있게 되죠.”

“오, 그거 재미있는 아이디어에요. 시나리오를 구성해서 분기 단위로 끌고 가보자는 건가요?”

“우선은 테스트 배드로 시나리오 이벤트를 열어 분기별 업데이트…… 가 아니라 작업을 통해 꾸준히 선보이며 반응을 체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스크린으로 지켜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관람객이 직접 이야기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한다.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에요.”

이 외에도, 태연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여 큰 호응을 얻어냈다.

“이건 그냥 의견이자 질문인데, 아홉 개의 거대 구역 중 일부는 인스턴트 오브젝트 공간으로 구상하면 어떨까요?”

“정확한 설명이 듣고 싶군요.”

“이벤트 등의 용도에 따라 쉽게 변화를 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거죠. 전투 이벤트 때문에 허물어졌다가, 다른 용도의 공간으로 만들어져서 이용되기도 하고…….”

“아, 그 부분은…….”

회의가 예정 시간보다 길어졌다.

태연은 회사에서 기획 회의 하듯, 실행 가능 여부를 따져보지 않고 온갖 아이디어를 마구 집어던졌다.

파크 앤 리조트사의 전문 테마파크 디자이너들은 내용들을 모두 기록해 두며 즉석에서 대답 가능한 내용은 모두 대답해 줬다.

문제는 점점 불이 붙다 보니 지켜보는 입장에서 무척 흥미로운 주제가 계속 이어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회의가 계속 늦어졌고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우는 이들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회의는 계속 이어졌다.

“아무래도 오늘 안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군요. 따로 이야기를 해보고 다시 회의를 통해 정리해보는 게 어떨까요?”

결국 엘렌 CEO가 나서서야 회의가 겨우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건 간부들 입장이었고, 태연과 테마파크 디자이너들은 장소를 옮겨 아이디어 회의를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 * *

이틀 후, 파크 앤 리조트 수석 디자이너에 의해 두 번째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됐다.

전날까지 태연,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논의해 정리한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어트렉션 대기 시간 단축 및 지루함 해소 방안을 위해 기존에도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했지만 구축 단계부터 AR과 VR 기술을 활용한 플레잉 시스템을 구축해 둠으로써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아이디어는 적극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프레젠테이션과 달리, 발표 내용이 더 구체적이 되었다. 이렇게 되니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도 제시안을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첨단 영상, 게임 기술을 적극 활용한 플레잉 시스 도입. 그것을 위한 공간 및 기술 지원 확보와 참여형 이벤트를 위한 구상안 등,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그의 발표에 이어 태연의 발표도 이어졌다.

“어제 논의 중 제시된 게임 아이디어에 대해 간략하게 의견을 제시해 보려고 합니다. 장르는 콘솔용 VR RPG 게임입니다.”

시나리오는 간단하다.

애니메이션 세계에 다양한 재앙이 벌어지고, 주인공은 그것을 막기 위해 여러 세계를 모험한다.

“시나리오 중, 명장면을 재현해 VR을 통해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준비된 시나리오가 끝나고 콘텐츠는 계속 쌓여 있으니 유료 DLC 다운로드를 통해 추후 제공될 내용들을 계속 이어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이 제가 떠올린 콜라보레이션 게임의 골자입니다.”

태연은 준비한 영상, 이미지 자료를 사용해서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게임의 이미지를 공개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테마파크 아이디어 시안만큼이나 좋았다.

엘렌 CEO의 표정이 무척 밝았다.

“정말 기발하면서도 반가운 아이디어군요. 우리 기업이 추구하는 콘텐츠 제작 방향을 지키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통해 보다 멋진 체험을 선사할 수 있다니, 전 마음에 들어요.”

“저도 마음에 드는군요.”

반대 의견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태연의 간단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프레젠테이션, 그리고 아이디어가 성공적으로 먹혀든 것이다.

“한국에 귀국하면 즉각 TF팀을 구성해서 수석 디자이너 에드먼드 씨와 논의하며 유니크 엔진을 통해 파크 아이디어 시안을 3D 맵으로 구현해 보겠습니다. 게임은 지금 말씀드린 내용을 기반으로 기획안을 구성한 뒤 스토리보드를 제작하여 공유하고 필요한 지원 내용을 정식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깔끔하군요. 아주 좋아요.”

엘렌을 시작으로 회의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감탄을 아끼지 않고 박수를 쳤다.

태연은 무덤덤한 얼굴로 인사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 * *

다음 날, 태연은 파크 앤 리조트 직원들과 함께 애너하임 디즈니랜드를 방문했다. 일행 중에는 태연과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 시안을 구성한 수석 디자이너 에드먼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가이드를 자처하며 태연에게 디즈니랜드 곳곳을 소개했고, 추가로 운영 관리 및 진행, 이벤트 담당자들까지 소개해 주며 그들이 맡고 있는 업무를 알려줬다.

그 모든 내용을 둘러보고 파악하기까지, 이틀이라는 시간은 짧았지만 여유가 많지 않으니 아쉬움을 접어 두고 귀국 준비를 해야 했다.

“보고가 들어가면 총괄자인 뉴월드 김종학 부회장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이번에 했던 프레젠테이션을 몇 번 더 해야 할 거야. 준비 확실히 해둬.”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유진성 회장은 씨익 웃었다.

그리고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정말 잘했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활약해 줘서 고맙다.”

그 말에 비로소 태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미국 방문 일정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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