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18화 (18/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8화

11. 메인 이벤터(3)

둘째 날에는 더 많은 관객이 몰려왔다.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첫째 날 행사를 지켜봤던 이들이 충동을 참지 못하고 몰려온 것이다.

사실 행사장인 몬스터 이터 못지않게 큰 인기를 구사하는 게임들이 몇 개 더 있었다. 둘째 날부터는 이벤트 스테이지에서 이와 관련한 발표 및 타 회사의 신작 공개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태연이 준비한 판테온 프로젝트 일부 공개도 진행된다.

이른 아침부터 행사장은 발 디딜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북적대고 있었다.

행사장 또 다른 공간에는 기업 간 회의와 협약을 위한 장소가 존재했다. 이곳에 넥플은 물론, 국내 게임 업체의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강건 대표는 바로 이곳에 있었다.

외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대형 디스플레이에 혼돈의 라그나로크 영상을 재생시키고, 내부에는 시연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놓았다.

벌써 몇몇 기업 관계자들이 다녀갔지만 아직까지 큰 소득은 없었다.

그는 초조해졌다.

벌써 다른 부스에서는 이미 좋은 성과를 낸 것을 지켜봤기도 했고, 무엇보다 바로 근처에 있는 넥플 부스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온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 ‘판테온’에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외국 기업인들 중에는 이름만으로도 유저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할 수 있을 곳도 있었다.

‘제길. 내 게임이었는데…….’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태연이 잘나갈수록 배가 아프고 속이 뒤집어졌다. 어제 발표회장에서 메인 이벤터로 선 태연을 보고 얼마나 피가 끓어올랐던가.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해봐도 그럴 수가 없었다. 눈과 귀는 항상 넥플, 그리고 태연에게로 향했다. 어제도 정신을 차려 보니 이벤트 스테이지 객석 구석에 도착해 있었다.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계약을 따내야 하는데…….’

한참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근처를 지나던 동양인 기업가 일행이 강건 대표와 부스를 보고 멈칫하는 광경이 보였다.

저희들끼리 대화를 나누던 그들이 다가와 물었다.

“혹 강건 대표님 되십니까?”

“맞습니다. 제가 강건입니다.”

“맞군요! 저는 중국 상해에 위치한 넷폭스라는 회사의 퍼블리싱 팀장 박진웅입니다.”

‘넷폭스!’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넷폭스는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와 SNS로 시작해서 게임 업계까지 진출한 멀티 콘텐츠 기업이었다.

지금은 게임 개발과 퍼블리싱에 더 집중하고 있는데, 게임 업계 시총 순위는 6위. 그 정도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 최고 기업인 넥플보다 두 배는 큰 규모였다.

‘큰손이다!’

그들은 저희들끼리 또다시 뭔가를 논의했고 일부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넷폭스 퍼블리싱 팀장 박진웅이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다가왔다.

“전 한국인입니다. 어린 시절 강건 대표님이 개발한 게임을 즐겨 했었죠. 그래서 얼굴과 회사 이름 보고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넷폭스 퍼블리싱 팀장이시라면…… 굉장하시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제가 얼핏 듣기로 새로운 게임을 개발 중이라고 들었는데, 설명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들어오시지요. 시연도 해볼 수 있습니다.”

강건은 적극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그의 마음을 끌어당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노력이 빛을 본 모양이었다.

“이거 흥미롭군요. 매력적인 게임이에요.”

“제 개발 인생을 모두 걸고 제작 중입니다.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무언가 고심하던 박진웅 팀장은 모니터를 보며 눈빛을 빛냈다.

그리고 초조한 얼굴의 강건 대표를 바라보며 말했다.

“회사를 방문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당연하죠.”

“곧 연락드리고 방문 일정 잡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박진웅이 떠나고 강건은, 힘없이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넷폭스라니, 상상하지도 못했어.’

어차피 국내가 어려우면 중국을 비롯해 국외부터 시작해 역수입을 하는 방향으로 루트를 뚫어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넷폭스라는 거대 기업이 먼저 다가와 주다니, 드디어 사업운이 오려는 모양이다.

‘이 기회, 절대 놓치지 않는다.’

* * *

스테이지에 암전이 찾아왔다.

어수선하던 객석 분위기가 조용해진다.

무대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태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제보다 더 긴장되네.’

잠시 후, 익숙한 사운드와 함께 거대 디스플레이에서 게임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과거, 현대, 미래, 각종 신비와 판타지가 공존하는 독특한 도시!

얼핏 뉴욕 맨해튼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여러 부분에서 차이점이 뚜렷했다. 올림포스 신전과 고대 그리스를 연상시키는 구역도 존재했고 고대 동양을 연상케하는 구역도 있었다.

하늘에 거대한 나무가 있고, 그 주위에 희미한 마법진들이 펼쳐져 있는데 너머에 아득히 많은 별이 펼쳐져 있다.

사람들은 바쁘게, 혹은 한가롭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기계 요정들은 거리 곳곳을 감시하며 치안을 유지한다.

화면은 빠르게 도시 아래로 떨어져 또 다른 세계를 비춘다.

혼란스러운 인간 세상!

마계를 연상케 할 정도로 삭막한 장소에서는 피 터지는 마물 간의 전투가 펼쳐지고, 도시 한복판에 갑자기 게이트가 발생하더니 거대한 몬스터가 뛰쳐나와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카메라가 빠르게 멀어지더니 지구, 그리고 한참 위에 있는 거대한 나무로 이루어진 위성 도시를 동시에 잡는다.

빠르게 줌 아웃.

공중 도시 중앙에 커다란 나무 기둥 모양의 건물 내부를 잡는다.

기계 요정들, 그리고 여러 인종의 오퍼레이터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시스템을 조작한다. 그 뒤로 다양한 복색, 장비를 갖춘 이들이 마법진 위에 서서 출동 대기 중이다.

잠시 후, 한 오퍼레이터가 무언가를 다급히 외치고 조작판의 붉은 버튼을 누르면 여러 마법진들이 발동을 시작하며 전사들을 어디론가 전송시킨다,

지구.

괴물로 인한 재앙이 펼쳐지고 있는 장소에 도착한 전사들은 사람들을 구출하며 괴물과 맞서 싸운다.

누군가는 번개를 뿌리고 누군가는 붉은 창으로 적의 심장을 꿰뚫어버리며 또 누군가는 성스러운 검에서 빛을 뿜어내어 괴물을 제압한다.

결전의 순간!

극적 긴장감을 최고조로 고조시키던 음악이 임팩트 있게 끝을 맺고, 독특한 고문자가 화면 정중앙에 세겨진다.

[판테온(Pantheon)]

영상은 그렇게 끝을 맺는다.

스테이지에 조명이 켜진다.

“애니메이션 같았는데, 재미있을 것 같지?”

“응. 지구 위에 있던 공중 도시가 만신전인가 봐.”

“독특하네. 우리나라에서 만든 건 아닌 것 같고, 일본 수출작인가? 멋있네.”

이것은 판테온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 관람객들의 대화.

“와, 개쩐다. 본격적으로 작업 들어간 지 몇 달 안 됐다고 들었는데 인게임 영상을 저 정도까지 구현했다고?”

“모두 인게임은 아니야. 중간중간 셀 애니메이션이 아주 조금씩 섞여 있는 것 같긴 하더라. 그런데 일뽕 제대로 냈네. 진짜 쩐다.”

“저거 세계관 겁나 독특하네. 넥플에서 모처럼 기대작이 나오는 건가? 덕심을 자극하는구만!”

이건 개발자들, 그리고 업계 소문에 민감한 진성 게임 유저들의 대화.

내용은 모두 달랐지만 가지고 있는 감정은 대부분 같았다.

기대감!

기존 MMORPG라며 나오는 중세 판타지 풍 게임들과 확연히 느낌이 달랐다.

무엇보다도 카툰 렌더링을 적용한 고퀄리티의 캐주얼 게임이라는 점, 독특한 세계관이 유저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엇보다도 CG 처바른 시네마 사기 영상이 아니라 인 게임이잖아. 작업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해도 고퀄리티였어.”

“맞아. 게임 공개하려면 저런 식으로 해야지 믿고 기대를 가지든가 말든가 하지. 난 마음에 드네. 일단은 지켜보겠어.”

유저들은 판테온 첫 홍보 영상에 호평을 내렸다.

태연은 영상에 대한 반응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했다.

‘객석 반응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네티즌들은…….’

네티즌들도 생중계를 통해 이번 발표회를 접하고 있다. 태연은 게임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와 영상 생중계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네티즌 반응도 체크했다.

-방금 그게 넥플 판테온이지?

-인게임 영상이네. 영상미랑 세계관이 내 취향이다.

-제우스 번개에 게이볼그에 묠니르에. 마지막 성검은 연출만 봐서는 에크스칼리버 아님? ㅋㅋ

‘괜찮아.’

아니, 이 정도면 좋은 편이다.

태연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기다리기 무섭게 메시지가 쏟아졌다.

[홍민석 :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영애 : 우와! 생중계로 지켜보는 내내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반응은 좋은 것 같아요!]

[백영훈 : PD님! 으어어어……ㅠ ㅠ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 감동했어요! 우리 영상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정말 온갖 곳에서 연락이 왔다.

양 스튜디오의 직원들, 넥플 두 이사.

그리고.

[유진성 : 고생 많았어요. 이걸로 큰 일은 다 끝났죠? 페스티벌 마치면 며칠 좀 쉬도록 해요.]

넥플 회장까지!

‘이걸로 한숨 돌렸구나.’

이렇게 직접 연락을 준 걸 보면, 지금까지의 결과물, 그리고 내용물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다.

‘아직 끝난 건 아니지. 마지막까지 안심하지 말자.’

지금도 부스에서는 시연회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모두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고생하는데, 자신만 벌써 늘어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스테이지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고, 태연은 곧장 넥플 부스로 이동했다.

* * *

[넥플 화제의 신작, 판테온 첫 공개!]

[게임 페스티벌의 주인공은 넥플! 몬스터 이터 온라인과 판테온을 주목하다.]

게임 쇼가 끝나자마자 온갖 특집 기사들이 쏟아졌다. 심지어 포탈 사이트 메인에 기사와 현장 영상 등이 대대적으로 취급될 정도였다.

이번 게임 페스티벌에 국. 내외 관객들만 총 35만 명에 달했고, 수없이 많은 비즈니스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판테온이 업계 관계자들과 대중을 또 한 번 놀라게 만들었다.

[판테온, 일본 크라잉 소프트사와 퍼블리싱 계약 체결!]

[넥플 모처럼 만의 기대작! 과연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판테온의 영상이 공개된 직후, 해외 기업에서 퍼블리싱 계약 문의가 쏟아졌는데 그중 몬스터 이터 개발사인 크라잉 소프트와 현지 배급 계약이 이뤄졌다.

타키자와 사토시는 크라잉 소프트의 대표작, 몬스터 이터 시리즈의 개발 총괄이자 또한 대표였다.

현지화 협력 작업 등으로 태연에게 큰 믿음과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판테온 인게임 홍보 영상을 접한 뒤 주저 없이 퍼블리싱 계약을 제안했다.

이태영 사업 총괄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크라잉 소프트가 일본 내에서 가지고 있는 입지를 생각하면 이건 정말 대단한 쾌거라고 할 수 있어요. 유 PD가 다시 한번 큰일을 해냈어요!”

IP를 따낸 것도, 적극적인 협력을 받아낸 것도 굉장한데 심지어 수출까지 이뤄냈다.

이건 넥플의 힘이 아닌 유태연 프로듀서와 그 직원들의 업적이라 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 반응이 심상치 않으니 내부에서도 기대감이 끊고 있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다 말해요. 내가 적극 협조할 테니까.”

유난히 흥분한 듯한 이태영 이사의 반응을 태연은 충분히 이해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게임 회사라지만, 요 몇 년간 넥플은 자체 개발한 신작들이 시장에서 모두 흥행 실패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수익은 M&A, 그리고 손영상 개발 총괄이 현직으로 뛰고 있을 때 출시했던 넥플 초기작들이 책임지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넥플은 개발사가 아닌 퍼블리싱 회사라는 굴욕적인 이야기도 듣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에 그 굴욕을 벗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간부들이 기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저는 유니버스 스튜디오가 넥플의 새로운 개발 명가로 떠올랐으면 해요. 제 마음 잘 알죠?”

이태영 이사의 환한 미소에 태연은 속으로는 한숨을, 겉으로는…….

“물론이죠. 하하하…….”

환한 미소를 지었다.

‘딱 두 작품이다. 후딱 개발하고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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