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16화 (16/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6화

11. 메인 이벤터(1)

“그런 이유로, 우리는 오늘부터 개최를 한 달 앞둔 게임 페스티벌 빌드 버전 작업에 돌입합니다.”

태연의 공지에 대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참고로, 총 열 대의 전용 PC가 세팅될 예정인데 2박 3일 동안 운영팀 여러분들이 모두 투입되어서 가이드 역할을 해주셔야 합니다. 프로그램 팀장님, 기획팀장님은 시스템 대기 해주세요.”

아트팀 누군가가 손을 치켜들었다.

“우리는 뭐하죠?”

“그냥 즐기시면 됩니다. 여러분은 특별히 하실 게 없어요.”

“아싸!”

“우우우!”

희비가 엇갈렸다.

태연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교대 근무로 들어갈 거예요. 수고의 대가, 라고 말하기에는 뭐하지만 여러분들 모두 마음 편하게 이번 이벤트를 즐길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니 조금만 고생 부탁드립니다.”

“네!”

“페스티벌 종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게임 페스티벌 시연회 준비를 위한 비상근무가 시작되었다.

* * *

회의실에 넥플 플러스 기획팀장, 아트디렉터, 프로그램 팀장이 모여 앉았다. 롤 스크린에 타키자와 사토시를 비롯한 몬스터 이터 온라인 개발팀이 비춰져 있었다.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다.

태연은 리스트를 확인하며 일본어로 말했다.

“몬스터 이터 온라인 개발팀 여러분들 여행 비용은 넥플 측에서 부담하기로 했으니 적어도 이번 주까지는 넘어오실 분들 인원 뽑아서 알려주세요. 그래야 미리미리 비행기, 호텔 예약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이벤트 때, 글로벌 신규 업데이트 버전에 대해 짤막하게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으면 하는데, 타키자와 프로듀서가 그 부분 좀 맡아 주세요. 자료만 넘겨주시면 그 이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무려 두 시간에 걸친 화상 회의가 끝나고, 이번에는 내부 회의가 시작되었다.

“크라잉 소프트 측에서 원화, 영상 소스 넘겨주면 국내용 홍보 자료 멋지게 꾸며보도록 하죠. AD님이 솜씨 좀 발휘해 주세요. 저도 적극 지원해 드릴 테니까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시연용 빌드 범위에 대해서 말인데요. 저는 초보용, 기존 유저용으로 나누어서 진행해 볼까 생각을 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회의는 점심 시간이 끝나고, 오후 세 시까지 계속 이어졌다.

오후 세 시 반, 유니버스 스튜디오에 돌아온 태연은 바로 장급 회의를 소집했다.

“한 달 후에 게임 페스티벌 개최되는 거 아시죠?”

“네!”

“이미 전날에 메일로 안내를 드렸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 판테온 개발팀도 이번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시연회는 당연히 어림도 없는 소리지만, 지금까지 작업해 놓은 아트, 기획 자료 등을 어떻게든 활용해서 신작 발표회 때 다뤄질 영상물을 제작해야 한다.

태연은 홍민석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넥플 최강 홍민석 AD님! 저는 AD님이라면 비록 만들어 놓은 게 얼마 없더라도 있는 걸 잘 활용해서 관람객들을 졸도시킬 수 있을 만큼 멋진 영상 만들어 주실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맞죠?”

장난 섞인 태연의 말에 홍민석은 예의,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냥 사표 쓸 테니 수리 부탁드립니다.”

와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 * *

만들어진 게 정말 많지 않았다. 몇 개 블록 정도에 해당되는 작은 맵 한 구역, 테스트용으로 제작한 플레이어 캐릭터 하나, 몬스터 세 종.

그나마도 필요한 애니메이션이 전부 작업되지 않은 미완성 본이었다.

“여기서 그래픽 소스를 새로 더 만드는 건 무리일 듯싶으니 과거 연습용으로 작업했던 것을 조금 다듬어서 엔진에 얹어 봐야겠군요.”

그렇게 보게 된 홍민석의 개인 포트폴리오 폴더에는 눈부실 정도로 빛나는 작업물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태연의 눈이 반짝거렸다.

“우와, 그냥 새로 만들 필요도 없겠네요. 이거 만들면 되겠어요.”

“퀄리티가 부족합니다. 그리고 판테온 아트웍 컨셉과 부합하는 것도 얼마 없습니다.”

홍민석의 바로 전작은 게임 상을 휩쓴 리얼 액션의 극치였지만, 그 이전에는 외주, 혹은 회사 프로젝트로 캐주얼 진행 경험이 많았다.

타 프로젝트에 투입된 작업물은 쓸 수 없지만, 그가 연습용으로 만들고 써먹지 않은 것들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그 부인인 이영애의 개인 폴더에도 그런 작업물이 꽤나 많았다.

“부끄럽네요. 오래전에 연습용으로 그냥 만들어 본 것들이라…….”

이영애는 단순한 원화가가 아니었다.

그녀는 아트 작업에 대해 욕심이 많은 여자였다. 웹툰뿐 아니라 3D 모델링, 애니메이션, 라이팅, 이펙터 등, 폭넓은 분야를 공부했고 직접 실습하며 실력을 쌓아온 경험이 있었다.

태연이 홍민석, 이영애 부부를 채용할 때 누구를 AD로 뽑아야 할지 몰라 망설였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홍민석은 담담하게 말했다.

“작업이 미진한 부분은 카메라 연출로 어떻게든 속여 보도록 하죠.”

* * *

아시아 최대 규모의 게임 페스티벌 참가!

쉽게 경험하기 힘든 놀라운 이벤트에 유니버스, 넥플 플러스 직원들 모두 어딘가 들뜬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건 일반 직원들에 한한 이야기였다.

장급들은 다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직급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욱 그랬다.

태연은 능력 있는 자들을 가만 놔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불필요한 야근이나 주말 출근 따위는 지시하지 않았지만 그게 아니라도 한계까지 쥐어짜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건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었다.

일에 전념하던 와중, 태연은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다.

[강건 대표, 신작 혼돈의 라그나로크로 게임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블레스의 페스티벌 참전 소식.

단순한 게임 홍보에 의의를 둔 결정이 아니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떻게든 계약을 따내려고 하는 건가?’

게임 페스티벌은 관객 외에, 비즈니스 목적으로 수많은 기업 관계자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실제로 여기서 크고 작은 계약이 많이 이뤄졌다.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게임 회사들의 목표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런 행사라면 평상시보다 훨씬 쉽게 여러 기업 관계자들과 접촉할 수 있으니 게임 런칭을 염두에 둔 개발사에게는 기회의 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냥 콱 망해 버렸으면 좋겠네.’

작게나마, 부스를 준비해 시연회 자리도 마련할 예정이라니, 태연은 그 자리에서 서버 다운을 비롯한 온갖 버그가 터져 강건 대표가 개망신을 당하기를, 그런 기적과도 같은 일이 발생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 * *

행사 일주일 전.

몬스터 이터 온라인 시연용 빌드 버전이 완성되었다.

넥플 플러스가 크라잉 소프트와 협력해 테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태연은 프로그램 팀장과 함께 행사 부스를 방문했다.

넥플이 이번 행사의 스폰서니만큼 가장 규모가 큰 부스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 올해 서비스가 예정되어 있는 몬스터 이터 온라인, 그리고 모바일 신작 몇 개가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시연을 위해 새 빌드 클라이언트를 설치 후, 작동을 확인한다. 이와 같은 작업을 열 대의 PC를 대상으로 진행해야 했기에 저녁이 되고서야 모든 작업이 끝났다.

그리고 비로소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다른 부스는 아직도 부산스러웠다.

홍보 및 서포팅을 위해 계약된 미모의 여성들이 개발자들에게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도 보였고 화려한 부스에서 거대 영상으로 게임 테스트를 진행하는 광경도 보였다.

‘다들 정신없구나.’

태연의 경우, 급한 일은 모두 마무리된 상황이라 프로그램 팀장과 함께 여유 있게 다른 부스 구경했다. 그러다 마주치게 되었다.

작은 부스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강건 대표와 익숙한 얼굴의 개발자들을.

프로그램 팀장이 넌지시 물었다.

“저 사람이 강건 대표죠?”

“네.”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지금 PD님이 저 사람하고 마주쳐봐야 별로 좋은 일 없을 것 같은데.”

태연은 그 말에 수긍하며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분란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았다.

떠나기 전 태연은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다.

홍보용 디스플레이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그래픽, 캐릭터들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태연은 그 모습을 잠시 눈에 담다가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그리고 며칠 지나고…….

“지금부터 입장을 시작하겠습니다.

마침내 아시아 최대 규모의 게임 행사가 시작되었다.

* * *

회장에 입장한 사람들은 곧장 어디론가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몬스터 이터 온라인이다!”

“우와! 벌써 대기 줄이 이렇게……!”

“제길, 입장 시작하자마자 달렸는데!”

넥플 부스, 몬스터 이터 온라인 시연회장이었다.

벌써부터 많은 이들이 있었는데 조금 늦게 도착한 이들은 수십 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에 좌절했다. 그래도 냉큼 대기 줄에 섰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지금도 봐, 줄이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잖아.”

몬스터 이터 온라인의 인기는 상상할 초월할 정도였다. 고인물 유저들조차도 이런 인기는 짐작하지 못했던지, 부스보다는 대기 줄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드디어 우리다!”

“가자!”

한참을 기다린 끝에 비로소 시연을 할 수 있게 된 이들은 세팅된 PC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이거 VR 기능도 추가되는 거야?”

“뭐야, 이런 이야기는 없었잖아!”

뒤통수를 세게 후드려 맞았지만 아프기보다는 기쁨이 가득하다.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이들에게 단복을 입은 운영자들이 웃는 얼굴로 다가가 서포팅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가족님. 몬스터 이터 온라인 플레이 해보셨어요?”

“네. 일본 버전이지만…….”

“그러시구나. 어떤 것부터 해야 할지 모르시겠죠? 제가 도와드릴게요!”

오늘을 위해 무려 이틀간의 특별 교육을 받았던 운영자들은 긴장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마침내 시연을 시작하게 된 한국판 예비 유저들은 정신없이 플레이에 빠져들었다.

태연은 부스 한편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태연이 중심을 잡아주며 지휘하고 있었기에 부스가 혼란을 겪지 않고 안정적으로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때 태연의 곁에 있던 누군가가 일본어로 말했다.

“기존 유저들이 많이 보이는데 플레이할 때 표정은 새 게임을 하는 것 같아서 재미있네요.”

“아무래도 한국어 음성과 텍스트로 플레이를 하는 거니까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태연에게 선물받은 야구모자, 그리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그는 타지카와 사토시 프로듀서였다. 미리 도착해서 유저 반응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시연회 빌드 버전 제작을 위해 크라잉 소프트 개발팀이 크게 도움을 줬다. 글로벌 버전 패치 공개 일정을 조금 당겨 신규 맵과 새로운 직업을 플레이해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시연회용이기에 모든 콘텐츠를 즐길 수 없도록 작업이 되어 있었지만 기존 유저들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

그리고 또 하나.

“VR 버전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 같네요.”

“모험과 치열한 레이드 현장을 VR을 통해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유저들에게는 큰 행복일 겁니다.”

“사실 고민이 많았는데…… 시연회 반응을 보니 적극 도입을 고려해 봐야겠어요.”

사실 이번 VR 패치는 태연의 의견으로 시연회 빌드 버전 한정 체험용이었다.

애초 몬스터 이터라는 콘텐츠는 세계적인 AAA급 게임으로 유명했고, 당연히 그래픽 질감과 퀄리티 또한 최고 수준이었다.

물론 온라인 게임이고, 최적화를 고려해 기존 콘솔 시리즈보다 많이 다운그레이드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현존 MMORPG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었다.

이런 그래픽을, 그리고 잘 만든 전투 시스템을 최신화 된 VR 기술로 감상할 수 있다면 어떨까?

태연은 타키자와 사토시에게 시연 한정 버전 제작을 강하게 요청했고, 결과적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 선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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