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4화
9. 오해를 풀다
-넥플 유태연입니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아파트 구매 관련 의혹.
저는 넥플과 두 개의 프로젝트를 계약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 프로젝트는 제가 10년 전부터 홀로 진행해왔던 제 드림 프로젝트입니다.
판권 확보를 위해 이북 출판을 했고, 계약금으로 받은 돈, 그리고 10여 년간 모은 돈과 대출금을 더해 구입한 게 지금 거주 중인 아파트입니다.
판권 계약서와 부동산 계약서, 통장 내역 공개합니다.
2. 밀어주기에 대한 의혹.
제가 인재관리부서가 협력하여 견학, 외부 초청 강의 행사 등을 거의 도맡아 했던 건 사우님들이라면 모두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회사 공식 홈페이지에 지금까지 제 강의 내용을 모두 모아 무수정본을 올렸으니 한 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다른 개발자들에 대해서는 조용했으면서 왜 나만 좋은 기사가 많이 나오느냐, 불공정한 밀어주기 아니냐.
제가 뭐라고 대답해야 속이 시원하실는지 모르겠네요.
저런 강의에서 요구되는 스펙이 프로듀서나 디렉터로서 성공시킨 게임이 최소 하나 이상이고, 10년 이상 업계에 근무했으며 지금도 개발 실무자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스펙에 부합한 분들은 각자 일로 바쁘셔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고 가장 젊은 제가 나서게 되었던 겁니다. 입사한 이후 벌써 견학 및 외부 초청 강연에 응한 것만 열 건 이상이네요.
기존에 응하셨던 분들은 많아야 한두 번, 그것도 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30분 강연이 전부였습니다.
홈페이지 게시판 들어와서 강의 후기, 평가 글을 한 번 쭉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무슨 수를 써야 그 학생들에게 좋은 평가를 유도할 수 있을까요?
3. 겸직 관련 의문.
제가 유니버스 스튜디오 프로듀서 외에, 넥플 플러스 개발 총괄직을 겸하고 있는지 궁금하시다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몬스터 이터 외에, 크라잉 소프트 IP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계약을 따낸 사람이 바로 저거든요.
타키자와 사토시 프로듀서는 자신들 게임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현직 개발 프로듀서 겸 디렉터와의 협연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김명욱 대표님의 요청으로 제가 나섰고, 다행히 결과가 좋았네요.
제 이해도에 대해 궁금하실까 봐 게임 계정 스샷 올리겠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작성한 몬스터 이터 시리즈 역 기획본 인증샷도 보여드리죠.
계약 확정 당일 타키자와 프로듀서님과 함께, 하라는 계약 이야기는 안 하고 몬스터 레이드만 열심히 했던 정황샷도 올려드립니다.
또 어떤 증거가 필요하신가요?
제가 벤츠 타고 다닌다는 소문도 있던데 저 차 없습니다. 여자 연예인 애인도 없습니다. 요즘 저와 묘한 소문이 있는 조 모 대리님은 그냥 좋은 동료지, 사귀는 사이도 아닙니다.
그냥 생각해 보세요.
세상 다 가진 그런 멋진 분이 저처럼 가진 것 아무것도 없고 볼품없는 겜돌이에게 마음을 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전 제 주제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것까지 밝히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게임 하고, 일하고 쉬는 날에도 역 기획으로 시간 때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잘도 애인을 사귈 수나 있었겠습니다.ㅠㅠ
애인은 고사하고 여자 사람 친구나 동생도 없습니다. 누나도 없고…….
친구라곤 저보다 커버린 제 제자이자 친동생 같은 놈인 최종학 프로듀서가 유일합니다.
또 어떤 오해가 있죠?
그냥 회사 홈페이지에 오해 문답 전용 페이지를 만들어서 운영할까요?
의문 사항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시죠.
아무튼 저는 제 할 일 다 했습니다.
어제 해명 요청글 올리셨던 분, 결국 피드백 안 주셨던데 저 출근 체크하고 수사 요청 의뢰 진행했습니다.
울고불고 사정해도 안 봐줍니다.
그분 말고 갈대나무 숲 어플, 그리고 게임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소문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글 올리고 다니셨던 분들도 모두 증거 자료 모아서 고발했습니다.
경찰서에서 봅시다.
누가 엄한 사람 범죄자 만들고 피 말려 죽이려 든 건지, 꼬라지는 꼭 보고 싶거든요.
태연의 해명글은 넷상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추가 의혹이 제기되지 않도록 적절한 증거 자료들을 모두 제시했고 심지어 자신의 외부 활동에 대한 모든 자료를 공식 홈페이지에 업로드했다.
더욱이 무수정본 강연 동영상에서 드러난 강의 내용과 학생들의 호응은 마치 영화 무편집본을 보는 듯했다.
심지어 이틀 후, 타키자와 프로듀서와 몬스터 이터 원 개발팀이 동영상을 통해 태연의 증언이 모두 맞는 말이고, 자신들은 넥플이 아니라 태연 개인에 반해 함께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을 밝혀 또 한 번 화제가 되었다.
이로써 태연에 대한 의문은 깔끔하게 해결된 셈.
……이지만.
“저기, 유 PD님. 친구 좀 만들고 그러세요.”
“왜 여자 친구가 없어요? 희한하네. 그거 멀쩡한 남자라면 다 자연히 갖게 되는 거 아닌가요?”
“일도 좋고 게임도 좋지만 사회 활동도 좀 하고 그러세요. 친구도 좀 만드시고…… 아, 진짜 해명글 보면서 안쓰러워서 혼났네.”
잃은 것도 있었다.
바로 남자로서의 자존감!
회사 건물에서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잊지 않고 한마디씩을 건네는 통에 태연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해명 글에서 제대로 언급된 조선아의 경우.
“꼭 그런 식으로 저를 언급하셔야 속이 시원했어요? 주위에서 언제 사귈 거냐고 난리잖아요!”
“…….”
“저를 밀당하는 불여우로 만들어서 속이 시원하세요?”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제대로 화를 냈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니 그녀의 화가 풀릴 때까지 굽신거려야 했다.
마침내 화가 어느 정도 풀렸던지,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태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PD님은 정말 스스로를 가진 것 없고 볼품없는 겜돌이라고 생각하세요?”
“네? 네. 그야 뭐…….”
“넥플 간부들이 가장 기대하고 주목하는 프로듀서고 넥플 플러스 개발총괄도 겸직하시는 분이 볼품없으면 저 같은 사람은 뭐 어떻게 되는 거죠?”
“…….”
착각이었다.
‘화가 풀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새로운 트집거리를 잡으려고 숨을 골랐을 뿐이었다니!
“구매하신 아파트 매매가가 대충 십 몇억 하는 것 같던데, 서른한 살에 누구 도움도 받지 않고 그 정도 재산이라면 충분히 많이 가진 거 아닌가요? 진짜 가진 게 없는 불쌍한 업계인들에 대한 기만행위 아니에요?”
“…….”
“가진 거 없는 겜돌이 PD님. 뭐라고 해명 좀 해보세요.”
태연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계를 확인한 그녀는 혀를 차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사람 만나면서 급 따지는 여자 아니에요.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렇게 홀로 남겨진 태연은 비로소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내가 철없는 귀족녀 취급을 해서 화가 났던 거였구나. 본심이 아니었는데……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다.’
모름지기, 모솔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 * *
조사 결과가 금방 드러났다.
넥플 모 스튜디오의 기획팀장이 범인이었다.
“나이는 마흔한 살, 경력은 이십 년 차. 나이 헛먹었네.”
진술에 따르면, 나이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 풋내기가 갑자기 프로듀서라며 입사하고, 여기저기 부각되기 시작하자 질투를 참지 못해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또한 가장 아끼는 여자 시스템 기획자 한 명이 자신을 뒷담화하며 유태연 PD가 대단한 사람이라며 칭찬하고, 유니버스 스튜디오로 전환배치 요청을 몇 번이나 진행했다는 사실을 알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PD님을 질투해서 앞뒤 분간을 못 했습니다. 한 번 봐주시면 평생 은인으로 생각하고 절대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굽신대는 모습이 안쓰럽긴 했지만 이미 공표한 것이 있었으니 태연은 명예훼손, 무고죄 혐의로 고발을 진행했다.
추가적으로, 넥플뿐 아니라 태연을 타 사이트에서 험담하고,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진실인 것처럼, 혹은 살을 덧붙여 퍼뜨렸던 이들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고소가 진행됐다.
-우리 원화 파트 막내 새끼도 걸렸다. 이 새끼 이번 일을 계기로 과거 사이트에서 싸질렀던 글 모두 공개됐는데 완전 개쓰레기였음. 강퇴 결정됨.
-헛소리하고 다니는 종자들 이번에 제대로 탈탈 털렸네. 속 시원하다!
-나랑 친하지는 않았지만 착하고 일 잘한다는 평가 자자했던 프로그래머 한 명도 딱 걸림. 다들 충격받음.
범위가 워낙 넓었고 태연이 독하게 마음을 먹고 대규모 고소를 진행한 탓에 여파가 상당했다.
꼭 이렇게 일을 키울 필요가 있었냐는 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태연의 행동을 지지했다.
더불어 이번 일이 언론 매체에 대대적으로 퍼지며 온갖 의혹을 정면 돌파로 해결한 유태연에 대해 관심이 모였다.
[단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게임 개발자, 위기를 정면 돌파로 극복하다.]
[특집, 오늘의 게임 개발자. 무패의 프로듀서 유태연.]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니 태연이 받는 부담감도 커졌다.
이게 이 정도로 회자될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태연이 모르는 게 있었다.
대한민국 게임 업계에 대한 관심은 과거와 다르다는 사실.
대형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들의 경우, 하루 평균 방문자가 수십만에 달하며, 게임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유튜버, 스트리머들만 수천 명이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이미 이 사건을 알고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이번 일을 통해 새로 조명된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대표적으로 태연의 경력.
참여한 모든 게임이 흥행에 성공한 사실은 호사가들뿐 아니라 같은 업계인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디렉팅을 맡았던 제국의 검과 한계돌파는 흥행뿐 아니라 유저 평가에서도 평균 점수가 매우 높았고 지금도 일 평균 동시 접속자 수를 각각 수만 명을 무난히 유지 중이었다.
그렇게 되니 갑자기 블레스를 퇴사하고 넥플로 이직한 이유. 그리고 이직해서 해낸 일과 개발 중인 게임에 대해 포커스가 맞춰지게 됐다.
몬스터 이터 프로젝트 매니저.
그리고 판테온과 판데모니움 프로젝트의 디렉터 겸 프로듀서. 그리고 원작자!
타키자와 프로듀서는 자신이 태연을 위해 한국에 찍어 보낸 영상, 그리고 몇 번의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던 적이 있었다.
-유태연 프로듀서는 몬스터 이터 글로벌 버전 개발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단순한 현지화 팀 매니저가 아니다. 우리 개발팀의 일원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전적으로 그를 신뢰한다.
대체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걸까?
그가 만든다는 두 프로젝트는 어떤 게임이 될 것이며, 어떤 식으로 연결이 된다는 걸까?
하나를 까보면 또 다른 엄청난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니, 결국 개발 중인 게임에 대해서까지 관심이 크게 집중되었다.
판권 확보를 위해 출판했다던 이북 소설의 수요도 급증했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어버린 경우!
태연은 얼떨떨해졌지만 최종학은 올 것이 왔을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형이 지금까지 해낸 게 얼만데…… 진작 스타가 됐어야 했지. 올 게 왔을 뿐이라고 봐.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