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13화 (13/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3화

8. 낭설

태연이 저자세로 나오니 더 이상 화낼 수가 없어진 프로듀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사실 PD님 찾아와서 이런 소리나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제 개발팀 중, 신경 쓰고 있는 몇몇이 전배 요청 했다는 사실 알고 나니 배신감이 좀 치밀어 올라서…….”

그렇게 그들이 자리를 떠나자 홀로 남겨진 태연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사람들을 모두 모아 주의를 당부했다.

“근무 환경에 만족해하고 있다니 프로듀서로서 정말 다행인데, 그 만족감은 부디 혼자만 안고 계셨으면 해요. 어디 가서 우리 스튜디오가 최고라느니, 유 PD가 제일 착하고 잘생겼다느니, 그런 것 좀 알리고 다니지 맙시다!”

“잘생겼다는 소리 안 했는데…….”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낭설을 퍼뜨렸나요?”

여기저기서 웃음과 농담이 터져 나왔다.

태연은 다시 한번 간절히 당부했다.

“불필요한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좋은 건 우리끼리만 알고 있으면 안 될까요? 저는 그러고 싶으니 제발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넥플 플러스에서도 똑같은 말을 반복한 뒤, 태연은 이후 벌어질 일을 걱정했다.

“더 이상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 * *

태연은 갈대나무 숲 어플을 비롯해 회사 뒷이야기를 하는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스튜디오들에 대한 소문을 모니터링했다.

입단속을 부탁했던 것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유니버스 스튜디오 분위기, 혹은 전환배치 가능 여부에 대해 묻는 질문글은 아직도 많았지만 이에 대한 직원들의 답변글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좋아. 이 분위기라면 금방 잊혀질 거야.’

그러나, 소문은 또 다른 소문을 부르는 법.

진짜 뒷소문은 이런 어플이나 사이트 같은 곳이 아닌, 구전을 통해 확산된다는 사실을 태연은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모 대학교 견학 문제로 일정을 맞춘 뒤, 커피 한 잔 하는 자리에서 조선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요?”

“PD님, 회장님이랑 혈연관계 같은 거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요즘 PD님 활약이 많잖아요. 그게 다 유진성 회장과 어떤 혈연관계가 있어서 행정 조직들이랑 두 이사가 뒤를 봐주는 거라고……. 뭐, 그런 이야기가 돌더라고요.”

기가 막힌 이야기였다.

멍해 있던 태연은 찡그린 얼굴로 반문했다.

“선아 씨, 설마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믿는 거 아니죠?”

“물론 전 안 믿죠. 그런데 주변에서 물어보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까 잠시 혼란스러워서…….”

“아니에요.”

태연은 단언했다.

“우리 부모님과 친척분들 모두 여수 토박이분들이고 거기서 살고 계세요. 전 서울에서 혼자 생활한 지 10년이 넘었고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자꾸 사실을 확인하듯이 물어오니까…….”

태연은 이 상황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드림 소프트 시절에도 그랬지.’

당시 제국의 검 기획팀장 겸 최연소 디렉터가 되며 회사 간부들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이들이 많았다.

실무 능력으로 소문을 잠재우긴 했지만 의심받는 시간이 꽤 길었기에 상당히 골치 아픈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 소문, 많이 퍼지고 있나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그거 말고 또 무슨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니까…….”

업무석에 돌아온 태연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고민에 빠졌다.

그때 한 무리의 직원들이 들어오더니 우르르 태연에게 몰려와 한마디씩 던졌다.

“카페테리아에서 엄청난 소문을 들었어요. 회장님이 PD님 외삼촌이시라면서요?”

“연봉이 2억이 이상이고 벤츠 E클래스 신형 타고 출퇴근한다고 그러던데…….”

“애인이 연예인이라고 하던데, 그러면 조선아 씨는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되는 건가요?”

워낙 거리감이 없다 보니 거리끼는 기색 없이 천연덕스럽게 사실 확인을 요청한다. 이영애는 방실방실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는 중이었다.

“대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은 어디서 시작되는 건지…… 다 낭설이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일들이나 해요.”

“저 벤츠 좀 태워주세요!”

“회장님께 그래픽 카드 최신형으로 교체해 달라고 말 좀 해주세요!”

“조선아 씨 좋은 분인데 버리시면 벌 받아요!”

개발자들은 끝까지 염장을 질러대며 자리로 돌아갔다.

태연이 한숨을 내쉬니 이영애가 다가와 자상한 음성으로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큰 집단에서 갑자기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한 번씩 겪게 되는 일이니까.”

“영애 팀장님도 경험 있어요?”

“물론이죠. 디즈니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캐릭터 수퍼 바이저 역할을 잠시 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별 소문이 다 돌더라고요.”

“디즈니에서도 그래요?”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남편도 그런 일 많이 겪었어요.”

“그렇군요.”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소문이다. 태연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도 가지고 있었다.

넥플은 회사 규모가 드림 소프트와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곳이기 때문이다.

드림 소프트 시절에서 CBT, OBT까지 큰 이상 없이 성공적으로 치러진 뒤에야 낭설과 안 좋은 시선이 사라졌다.

‘이거, 소문 규모와 생명력이 그만큼 커지는 게 아닌가 몰라.’

그 예상이 맞았다.

며칠 후, 갈대나무 숲 올라온 글에 스튜디오는 물론, 업계 전체가 왈칵 뒤집혔다.

* * *

-넥플 유태연 PD님의 해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넥플 모 프로젝트 팀에서 근무하는 개발자입니다. 넥플 사우님들은 얼마 전부터 떠돌기 시작한 소문들을 한 번씩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 도저히 묵과하고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이 몇 개 있어서 총대를 메고 공식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아파트 구입.

제가 알아보니 블레스 시절 PD님은 역 근처, 10평 남짓 오피스텔에서 생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넥플로 이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싼 아파트를 매매하셨다고 하더군요.

유진성 회장님이 회삿돈으로 수억의 돈을 지원했고 그 돈으로 매매했다는 게 내용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공금 횡령에 해당됩니다. 해명을 요구합니다.

2. 밀어주기.

요즘 넥플의 사회 환원 활동과 관련한 기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론도 긍정적이더군요. 그런데 유난히 유 PD님과 관련한 기사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에 대해 넥플 인재 관리 부서를 비롯해 여러 팀에서 유진성 회장과 유태연 PD가 어떤 관계가 있으니 눈치껏 밀어주기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견학, 외부 강의 부분에서 지금까지 많은 개발자분들이 나섰을 때는 조용하더니, 왜 유독 유태연 PD님에 대해서만 시끌벅적한지 모르겠네요. 이건 지금까지 헌신해 준 다른 개발자분들을 모독하고,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합니다.

3. 겸직 관련.

현재 유태연 피디님은 유니버스 스튜디오의 프로듀서이자 넥플 플러스 개발총괄로 근무하고 계시죠. 왜 뜬금없이 넥플 플러스 개발 총괄이 되셨는지,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유진성 회장의 유태연 프로듀서에 대한 편애, 밀어주기라는 말이 많습니다.

많은 개발자들이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기를 꿈꾸며, 오늘도 열심히 작은 모니터 앞에서 피눈물을 쏟아가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유태연 프로듀서님이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본인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닌 모종의 관계에 의한 것이라면 업계와 회사에 큰 실망을 하고 비빌 곳 없는 제 못난 처지에 좌절할 것 같습니다.

업계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반드시 해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

이 글은 큰 화제가 되었다.

심지어 인터넷 유명 게임 사이트에서도 큰 관심 속에 다뤄지고 있는 중이었다.

‘익명성에 숨어서 잘도 이런 짓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의문은 외부로 끄집어낼 필요 없이, 조용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공론화를 했다면 의도는 단 하나, 이 글을 올린 사람은 자신의 정리한 의문 사항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는 거다.

그리고 갑자기 뜨고 있는 유태연이라는 사람의 확실한 몰락을 바라고 있는 것일 거다.

제 세 가지 의문이 전부가 아니다.

댓글로 그동안 퍼진 모든 헛소문들이 정리되고 있었다. 저 중 한 가지만 걸려도 파멸이다.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하나만 걸려라, 뭐 이런 거지.’

문득, 조용한 분위기에 주위를 둘러봤다.

내색은 안 하지만, 직원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기껏 다져 놓은 팀워크가 불신, 의혹으로 붕괴되려는 게 보였다.

‘이렇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증거? 바란다면 얼마든지 보여주지.

이럴 때 유하게 대처하는 건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경한 자세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었다.

태연은 처음으로 갈대나무 숲 어플에 글을 올렸다.

-넥플 유태연입니다.

저기 밑에 사우님께서 저에게 수십 가지, 낭설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신 글을 보았습니다.

원한다면 반박 자료 얼마든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단, 총대를 메겠다고 하셨으니 그만한 각오를 보여주시죠. 신원을 밝히고 정식으로 수사 의뢰를 하시던가, 그 정도 담력이 없다면 사내 분쟁조정위원회에라도 안건을 제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저도 증명이 끝나면 바로 무고죄와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수 있으니까요.

하나만 걸려라, 아니면 말고?

전 용납하지 못하겠네요.

대체 왜 나에게만 이런 소문이 생기는지…….

사실 짐작 가는 일이 있지만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제발 부탁드리니 쫄린다고 숨지 마세요.

글도 지우지 마시고요. 이미 증거 자료는 모두 수집해 놓았고요. 어차피 지켜보고 있는 눈이 하나가 아니라 뒤로 물러날 수도 없겠지만요.

오늘 안으로 답변 오지 않으면 제가 움직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대로 어물쩍 넘어가는 거 용납 못 합니다.

태연의 게시글에 대한 반응이 무척 뜨거웠다.

-겁나 당당한데? 이 정도면 아무래도 낭설이 맞는 것 같은데……?

-맞는 말이네.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를 공론화해서 남 망가뜨리려고 작정했으면 그만한 각오도 보여줘야지. 지금까지 의문 제기 했던 놈들, 글 다 캡쳐해 뒀으니 신분 까고 수사 의뢰하든가 해라.

-누군지 몰라도 팝콘 각 제대로 터뜨렸네. 이기는 편 우리 편!

당연한 이야기지만, 태연은 글을 올린 장본인으로부터 어떤 피드백도 받을 수 없었다.

다음 날, 태연은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했고 반박문 작성을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