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8화
4. 개발 조직을 구성하다(2)
태연은 본격적인 구인 구직을 시작했다. 여러 사이트에 공지하고, 또 최종학을 비롯 과거 인맥을 이용해 개발자들을 소개받았다.
본격적으로 이력서가 밀려오기 시작한 건 이틀 후.
인사팀에서 한 번에 수십 개의 이력서를 토스했다.
‘많네.’
그래도 놀랄 정도는 아니다. 지금까지 디렉팅을 하며 채용 검토 시 이 정도 분량의 메일은 충분히 경험해봤으니까.
하지만 그게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바로 다음 날 알게 되었다.
메일이 끝도 없이 밀려온 것이다.
‘역시 넥플이다. 지원 규모가 차원이 다르구나.’
인사팀에서 1차 분류를 한 게 이 정도였다.
우선은 각 조직의 장급을 뽑는 것이기에, 이력서를 검토해 보며 태연은 혀를 내둘렀다.
하나같이 학력과 경력이 대단했다.
심지어 해외 명문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한 이들도 있었다.
‘포켓몬 잘 만들던 사람이 왜 굳이 한국 게임 회사에 오려고 하는 거지?’
‘어? 이번 출시된 콘솔용 스파이더맨 게임에서 배경을 담당했다고? 이거 사기 아니야?!’
너무 화려해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시력을 의심하며, 태연은 면접 일정을 잡기 시작했다.
첫 면접자는 산타모니카 스튜디오 출신의 남성 애니메이터였다.
가장 최근 대표작은 그 유명한 액션 어드벤쳐 게임, 갓 오브 워였다.
태연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유니버스 스튜디오 프로듀서 유태연입니다.”
“애니메이터 제이슨 홍입니다. 홍민석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하얀 얼굴, 단정하고 깔끔한 차림의 캐주얼 수트. 온유한 인상의 미청년이었다.
태연은 제일 먼저 상태창을 확인했다.
[홍민석]
(애니메이터, 원화가, 3D 모델러, 연출가)
애니메이터 : 13/10(15)
3D 모델링 : 9/10(15)
원화 : 9/10
연출 : 11/10(15)
배경 : 8/10
이팩트 FX : 8/10
호감도 : 5/10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괴, 괴물이다!’
이 사람은 ‘진짜’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엄청난 스펙의 능력자다!
태연은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경력이 대단하신데…… 왜 한국 게임 회사로 오려고 하시는 거죠?”
그는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와이프가 한국에 오고 싶어 했어요. 아이들도 한국에서 키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아…….”
“사실 제 와이프도 게임 개발자예요. 원화가죠. 산타모니카 스튜디오에서 근무하다가 만나서 사귀게 된 건데 아무래도 미국 생활이 좀 어려웠나 봐요.”
그 말을 듣자 떠오르는 게 있었다.
황급히 이력서들을 뒤적거리던 태연이 몇 장을 뽑아 들며 말했다.
“이영애 씨 맞죠?”
“네. 같이 지원했어요.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해서요.”
상당히 가정적인 남자구나.
태연은 그가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연봉이었다.
‘연봉이 1억이 넘네. 나보다 많아.’
참고로 넥플에서 태연의 연봉은 8,000만 원 수준이었다. 무려 2,000만 원이 더 높은 것이다.
하지만 수백 개가 넘는 이력서들 중, 홍민석을 제일 먼저 면접하고자 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경력이 누구보다도 대단했기 때문에.
한마디로 아트 디렉터로서 적절한 사람인지 판단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일단 상태창은 합격. 문제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리더쉽 등인데…….’
전자가 좋아도 후자가 별로면 뽑을 생각이 없었다.
1억 이상이라는 연봉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에 AD 적임자라면 맞춰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오늘 면접자는 이 사람뿐이니까…… 하루 종일 곁에서 지켜보자.’
마음을 정한 태연이 빙긋 웃더니 물었다.
“혹시 이영애 씨, 지금 시간 되시나요?”
* * *
이름만큼이나 청순하고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안녕하세요. 원화가 이영애예요.”
얼굴만큼이나 하얀 롱치마. 그리고 그 위에 입은 가죽 자켓을 걸친 여인이었다. 코디가 묘하게 잘 어울렸다.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은 관리가 잘되어 있었고 입가에는 생글생글, 미소가 가득했다.
“두 분, 정말 잘 어울리세요.”
“고마워요. 피디님도 멋지세요.”
“감사합니다.
부부 성격이 참 비교된다.
이영애는 밝고 유쾌한 편이고 홍민석은 매우 무뚝뚝하다. 감정 표현이 거의 없었다.
그러한 성격은 백영훈과 함께한 ‘판테온 프로젝트’ 브레인스토밍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여러 신들과 그 추종자들이 거주하는 현대적인 느낌의 공중 도시라니, 아이디어가 매우 좋네요.”
“초기 단계라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무작정 리스트로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이를테면 그리스 신화 아르테미스 여신이 뷰티 사업을 기반으로 한 대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태연은 백영훈과 함께 구상 중인 내용들을 들려줬다. 이영애는 귀여운 리액션으로 회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줬고 메모장을 요청한 홍민석은 경청하며 빠르게 드로잉을 했다.
드로잉이 형체를 갖춰가니 태연, 백영훈, 그리고 이영애도 대화가 아닌 그의 그림에 시선을 집중했다.
“이런 느낌이면 어떻습니까?”
정말 짧은 순간에 완성된 그림은 탄성이 터져 나올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백영훈은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림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충격받은 모양이었다.
반면 이영애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펜과 종이를 뺏고 그림을 수정했다.
그리고 다시 들어 보여줬다.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이번에는 태연도 백영훈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태연은 멍하니 그녀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영애]
(원화가, 웹툰 작가)
애니메이터 : 7/10
3D 모델링 : 7/10
원화 : 14/10(15)
연출 : 12/10(15)
배경 : 11/10
이팩트 FX : 12/10(15)
호감도 : 5/10
‘부부가 나란히 괴물이야!’
그녀의 이력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칼아츠 졸업.]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캐릭터 디자이너.]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캐릭터 디자이너.]
이것이 산타모니카 스튜디오 이전 경력이었다.
추가로 미국 유명 사이트에서 일상물 웹툰을 연재, 인기리에 완결했던 적이 있었다.
‘성격도 마음에 들고…….’
아무리 자기 포장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오래 대화를 하다 보면 한두 번씩, 원래 성격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미국 게임 회사 출신 아니랄까 봐, 의견이나 의문을 제기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절대 기분 나쁘지 않았고, 합리적이었으며 백영훈과 태연의 말을 경청할 줄 알았다.
태연이 고민하니 부부의 표정도 덩달아 진지해진다.
중요한 순간이 찾아왔음을 직감한 것이다.
백영훈이 눈치를 보다 물었다.
“저…… 나가 있을까요?”
태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영훈이 회의실을 나서자 태연이 물었다.
“지금 진짜 큰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글쎄요. 그게 뭘까요?”
부드럽게 대답하는 이영애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담겨 있었다.
‘이건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결국 고민을 포기한 태연이 힘없이 물었다.
“아트 디렉터 누가 하실래요? 그냥 두 분이 상의해서 결정해 주세요.”
* * *
게임 개발 경력이 훨씬 많은 홍민석이 아트 디렉터가 되었다. 그녀의 부인 이영애는 원화 팀장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고마워요.”
부부의 호감도가 모두 2씩 올라 7이 되었다.
태연이 두 가지 부분에 신경을 써줬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억대 연봉.
태연은 세금을 제외하고 1억, 딱 떨어지게 받을 수 있도록 연봉을 제시했고 부부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두 번째. 본래 자신의 몫으로 할당된 주차장을 양보했고 추가적으로 어린 딸을 위해 사내 ‘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해줬다.
넥플 어린이집 시설 및 교육 수준은 언론과 정부에서도 인정한 대한민국 탑 클래스 수준이었다.
이러니 호감도가 오를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
“좋은 게임, 재미있게 만들어 보도록 하죠.”
거듭, 고마워하는 부부에게 태연은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대우해 주셨으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열심히 일할게요!”
부부 역시 각오를 보였다.
* * *
TF팀 멤버가 늘었다.
기획 및 시나리오 담당으로 백영훈.
아트 디렉터 홍민석.
원화 팀장 이영애.
그리고 프로듀서 유태연.
홍민석은 주로 경청하다가 아주 가끔씩, 묵직한 한 방을 던지는 타입이었고 이영애는 별거 아닌 이야기도 정말 좋게 반응해 줘서 말할 맛이 나게 만드는 여인이었다.
반응뿐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도 꾸준히 제시해 주니 TF팀에 활력이 돋았다.
넷이 함께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며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일 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아서 개발팀에 잘 녹아들 수 있는 분을 뽑고 싶어요. 혹시 적당한 사람 알고 있어요?”
이영애는 미안한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우리가 아는 사람들은 전부 한국말 못 하는 외국인들이라…….”
‘별수 없이 면접 보고 뽑아야겠군.’
추천 입사가 좋은 이유는 능력과 성격이 보증된 경력자들을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행운은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지옥의 면접 일정이 시작되겠군.’
* * *
태연은 오후 시간부터 예정되었던 면접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총 세 시간, 세 번의 면접.
녹초가 된 태연은 힘겹게 자리로 돌아와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힘들다.’
체력과 정신력이 모두 소진되어 버렸다.
함께 일할 사람을 파악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눈치를 보던 백영훈이 조심스레 말했다.
“PD님. 회의해야 하는데…….”
“…….”
태연은 좀비처럼 일어섰다.
3일 동안 총 열다섯 건의 면접을 진행했지만 마땅히 뽑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금요일 오전.
태연은 회사가 아닌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S대학교로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PD님! 강의 준비 잘 하셨어요?”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오는 조선아의 자태에 태연은 잠시 넋을 잃어버렸다.
격식을 차린 오피스룩,
따스하고 포근해 보이는 핑크색 터틀넥에 베이지색 정장 바지, 그리고 하얀색 코드.
화려하면서도 짙은 이목구비, 우윳빛 피부톤이 더욱 빛을 발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코디였다.
……라고 태연은 생각했다.
“저, 정말 잘 어울려요. 패션 센스가 대단하시네요!”
“그래요? 다행이에요. 사실 이런 차림은 평소에 잘 안 입는데…… 오랜만에 모교에 방문한다고 생각하니 차려입게 되더라고요.”
“다들 선아 씨만 볼 것 같네요. 너무 예쁘셔서…….”
진심이 잔뜩 묻어 있는 칭찬에 조선아는 무척 뿌듯해했다.
“강연 무사히 끝나면 제가 식사 대접해 드릴게요. 이 근처 맛집 제가 훤히 꿰고 있어요!”
선아는 훌륭한 조력자였다.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미술대학 학장이었는데 그녀는 유려한 말솜씨로 짧은 담소를 훌륭하게 이끌어줬다.
덕분에 태연은 첫인사 외에, 별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젊지만 훌륭하고, 깨어 있는 게임 프로듀서가 되어 있었다.
“오늘 특강,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엘리트 미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고등학교 출신 프로듀서의 강연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