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7화
4. 개발 조직을 구성하다(1)
내용은 간단했다.
바로 오늘, 건대 게임 스쿨이라는 곳에서 견학이 예정되어 있는데 30분 정도, 학생들에게 강의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원래 모 스튜디오 디렉터의 담당 일정이었지만 정말 피치 못할 사정 탓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출근한 사람에게 이런 일을 부탁하다니…….’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런 일은 경험 많은 디렉터, 혹은 프로듀서의 몫으로 돌아가게 마련인데 그게 가능한 이들은 어떻게든 이런 일을 안 하려고 한다.
귀찮고 심력 소모도 상당하니까.
과거 몇 번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 태연도 잘 알았다.
‘곤란하겠네.’
태연은 혀를 차며 답장을 보냈다.
[일단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네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리고 잠시 후, 한 여인이 헐레벌떡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피디님, 조선아 대리예요.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
태연은 할 말을 잃었다.
태연 인생에서 난생처음 보는 굉장한 미녀!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던 태연은 헛기침을 터뜨린 뒤 진지하게 물었다.
“제가 뭘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한 달에 한두 번씩 게임 업계 입사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내 견학 행사를 하고 있어요.”
요 근래에 게임 관련 학과, 혹은 아카데미 같은 곳이 무척 많아졌다. 넥플은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 회사니만큼 견학 요청을 무수히 많이 받는다.
그동안 내부 프로듀서, 디렉터들이 돌아가며 강의를 맡아왔다.
“강의 잘 못 하거나, 평이 좋지 않았던 분들을 제외하다 보니 몇 분 남지 않아서…….”
“저는 어떻게 알고 입사 당일 바로 요청을 하신 거예요?”
“최종학 피디님이 적극 추천하셨어요. 개발 경력, 실력이 엄청나고 강의 같은 것도 정말 잘하시는 피디님이시라고…….”
“그랬군요. 하하…….”
“최 피디님 스승이라고 하시던데, 그게 정말이세요?”
“네? 제가요?”
“네. 최 피디님이 직접 그러시던데요. 걸음마도 제대로 못 하던 병아리 시절, 자신을 업어 키워준 고마운 분이라며…….”
태연을 향한 그녀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렸다.
‘이 녀석이 한마디 상의도 없이 감히 이런 착한 짓을……!’
벌로 치맥을 배 터져 죽을 때까지 먹여야겠구나!
태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앞으로 이런 행사 있으면 저에게 알려 주세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제가 진행해 볼 테니까요.”
인재 관리 담당 부서 조선아 대리의 눈빛에 감동의 물결이 차올랐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조선아의 안내에 따라 회의실로 이동했다. 그 안에 예비 게임 개발자 수십 명이 반짝이는 눈으로 앉아 있었다.
먼저 조선아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오늘 강연해 주실 분은 유태연 피디님입니다. 제국의 검, 한계돌파를 디렉팅하셨고 지금은 넥플 유니버스 스튜디오에서 신작 개발을 총괄하고 계십니다.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맞이해 주세요.”
그녀가 태연에게 마이크를 넘기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주어진 시간은 30분.
‘좋은 인재가 보이면 선점해 버리자!’
설마 이렇게 많은 학생들 중 좋은 인재 한 명이 없을까?
“안녕하세요. 프로듀서 유태연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태연은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했다.
* * *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주제는 ‘신입 기획자의 업계 진입과 적응’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가장 궁금해할 내용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프레젠테이션 그런 거 안 할 겁니다. 괜히 공부하는 분위기 만들고 싶지 않거든요. 문답 형식으로 진행할 테니 궁금한 거, 그냥 속 시원히 물어보세요. 제가 다 대답해 드릴 테니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다. 태연이 놀란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군요. 그러면…… 저기 잘생긴 남학생.”
안경 낀 청년이 들뜬 얼굴로 일어서려 하자 태연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저는 잘생긴 남학생을 지목했는데 왜 학생이 일어서요?”
와 웃음이 터졌다.
어쩔 줄 몰라 하는 학생에게 태연이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뭐가 궁금하시죠?”
“에, 저, 저는 원화가 지망생 이재문이라고 합니다. 정말 아무거나 물어봐도 괜찮은가요?”
“물론이죠. 여러분 궁금증 풀어 드리려고 만든 자리니까요.”
“네. 그러면…….”
강연 시작부터 날아온 질문은 신인 게임 개발자들의 처우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공채 합격자들과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궁금합니다. 이게 미래에도 영향을 끼치는지도 궁금합니다.”
태연은 대답 전에 질문 학생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전공인 원화 파트의 능력치는 4.
‘그리 높지는 않네. 아직 학생이니 뭐…….’
그런데 독특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애니메이션 능력치가 준수했다.
능력치는 6.
‘원화를 할 줄 아는 애니메이터라, 재미있는 조합이네.’
첫 발표자의 얼굴과 이름을 확실히 기억해 둔 태연은 답변을 시작했다.
“초봉 차이가 확실히 있죠.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공채 신입은 초봉이 3,000만 원 중반 선에서 시작된다고 들었어요. 그게 아니라 추천 입사자들 같은 경우라면 2,000만 원 중후반 정도? 저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아…….”
태연의 솔직함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선아 대리마저도.
태연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참고로 전 고졸이에요. 공채 지원에서 탈락했죠. 혹시 공채 지원 준비 중이신 분?”
모두가 손을 들었다.
“고졸, 혹은 전문대 출신이신 분?”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학생들이 해당됐다.
“내려도 좋아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거 하나에요. 전 공채에서 떨어졌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넥플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이 되었어요. 결국 살아남아서 원하는 걸 이루는 사람은 출발이 좋았던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정치질에 열성인 사람도 아니고요.”
사실 이건 일부는 거짓말이다.
회사 수장 학벌, 혈연, 인맥을 제대로 탄 이들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그런 걸 굳이 꼬집을 필요는 없었다.
학생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고자 만든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만의 게임을 만들고 싶죠?”
“네!”
우렁찬 대답.
“모두 프로듀서, 혹은 디렉터가 되고 싶죠?”
“네!”
“그러면 일단 자기 분야에 통달하세요. 그리고 기획, 프로그램, 아트 모든 직군에 대한 안목과 이해도를 최대한 기르세요. 이게 스펙 빠방한 사람들과 경쟁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에요.”
다시 조용해졌다.
학생들은 태연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질문한 학생은 원화 말고 또 잘하는 게 있어요? 혹은 관심이 있거나.”
머뭇거리던 학생이 입을 열었다.
“전 애니메이션을 독학한 적이 있어요.”
“언제요?”
“고등학교 시절부터요. 그때는 디즈니, 픽사 같은 회사에 입사하는 게 꿈이라 손 그림 그리면서 3D 애니메이션도 같이 공부했었어요.”
‘그래서 준수한 애니메이션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었군.’
학원에서 전문적으로 배운 원화보다 능력치가 높았다면 그쪽에 적성이 더 있다는 소리가 된다. 그런데 굳이 원화 쪽을 선택한 이유가 뭐였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게임을 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공부하던 중에 이런 소리를 들었어요. 프로젝트가 엎어지거나 해서 정리 해고를 시작하면 아트 직군 중에서는 3D 모델러와 애니메이터가 1순위 해고 대상이라고. 그래서 원화를 택했어요. 그런데 이게 일리 있는 말인가요?”
태연은 쓰게 웃었다.
마냥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에는 자신도 보고 들은 게 있으니까.
그래도 적절히 순화할 필요는 있었다.
“과거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조금 달라요. 신규 개발이라면 프로젝트 자체가 엎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라이브라면 멀쩡히 서비스 중인 게임이 갑자기 망할 리가 없으니 뜬금없이 해고되는 경우는 많이 없죠.”
태연은 준비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꿀꺽 목 넘김 소리가 들릴 정도로 내부는 고요했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애니메이터라서, 3D 모델러라서, 기획자라서 감축당했다. 반면 프로그래머라서 살아남았고 오히려 더 대우받는다. 요즘 그런 거 없어요.”
태연은 명확히 말했다.
“축구 경기를 생각해 보세요. 팀에 확실히 이바지하는 사람은 남기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방출하거나 다른 팀으로 보내잖아요. 맞죠?”
“네!”
“게임 스튜디오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학생이 두 가지 특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서 담당자에게 어필해 봐요. 멀티 플레이어는 귀한 인력이거든요.”
덧붙여. 태연은 회사가 생각하는 신입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들려줬다.
“입사해서 실수하면 어쩌지? 활약하지 못하면 어쩌나, 이런 쓸데없는 걱정 같은 거 하지 마세요.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우리 경력자들 눈에 신입들은 다 똑같은 병아리로 보여요.”
이건 사실이었다.
다만, 스펙 좋은 사람들이 배우기도 빨리 배우고 응용력도 좋더라. 라는 말은 굳이 담지 않았다. 개인차가 있고 혼자만의 판단일 수도 있으니까.
태연은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
“적어도 1, 2년 차까지는 전력이 아니라 훈육, 투자 대상으로 보니까 걱정 말고 열심히 실수하며 깨우치세요. 자, 다음 질문자?”
강연 시간 30분이 끝났다.
태연에게는 길었지만 다른 이들은 체감이 달랐던 모양이었다.
“앵콜!”
“너무 짧아요! 조금 더 해주세요!”
“회사 구경 안 해도 돼요!”
학생들의 뜨거운 요청이 이어지자 조선아 대리가 난감한 듯 속삭였다.
“강연장에서 앵콜이라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학생들이 원하는 걸 해줘야죠. 질문 몇 개만 더 받고 끝낼게요.”
이후 태연은 질문 몇 개를 받았고, 강의는 아쉬움과 환호 속에 끝을 맺었다.
태연은 강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오늘 참여한 학생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좀 보내주시겠어요?”
“네?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이제 막 신규 개발을 시작한 터라 TO가 많이 남거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돌아가자마자 보내겠습니다!”
좋은 학원은 많은 합격자를 배출한 곳이다.
그런 점에서 넥플 신규 프로젝트 합격자라면, 학원 홍보 및 강사 이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뻐하는 강사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태연은 한 학생을 흘끔 확인한 뒤 강의실을 나섰다.
‘다른 곳에서 채가기 전에 데려와야겠어.’
태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태연의 첫 강의가 꽤나 화제가 된 모양이었다. 인재 관리부서뿐 아니라 태연 개인 메일로 강의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S대학교 게임 아카데미입니다. 유태연 PD님께 특강을 부탁드리고자 메일을…….]
[강남 G스쿨입니다. 이번에 유태연 PD님께…….]
‘이건 선아 씨에게 토스하는 게 좋겠어.’
최종학이 말하길, 그녀의 주 업무가 바로 외부 견학 및 강의 요청 관리라고 했다.
조선아에게 섭외 메일을 모두 전달한 뒤 건대 게임 스쿨에서 보내온 학생 이력서 내역을 살폈다.
‘여기 있다.’
태연이 점찍어 둔 인재는 두 명.
[최예지]
게임 개발자 지망생(3D 모델러)
애니메이터 : 5/10
3D 모델링 : 7/10(15)
원화 : 5/10
연출 : 6/10
배경 : 5/10
이팩트 FX : 5/10
호감도 : 6/10
전공인 모델링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박식함을 갖추고 있다.
이런 인재는 로또나 마찬가지였다. 상태창 보고 관심이 가서 지켜봤는데 강의 태도 무척 좋았고 눈빛도 순수했다.
‘이런 인재는 무조건 데려와야지. 그리고 이 친구도.’
[이재문]
게임 개발자 지망생(원화가)
애니메이터 : 6/10(15)
3D 모델링 : 2/10
원화 : 4/10
연출 : 3/10
배경 : 4/10
이팩트 FX : 3/10
호감도 : 8/10
강연 첫 발표자였던 원화가 지망생 이재문.
원화보다 애니메이터에 더 재능이 있던 학생이었다.
‘키울 가치가 있는 사람은 미리 챙겨둬야지.’
아직은 어린 두 인재가 훌륭히 성장해서 함께 일할 모습을 기대하며, 태연은 빙긋 웃었다.
* * *
태연은 조선아 대리의 제안으로 바깥에서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이번 강의 반응이 매우 좋았어요. 회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오는 후기 글도 칭찬 일색이에요. PD님 덕분에 우리 팀도 면을 세울 수 있었어요.”
“그거 다행이네요.”
“저 팀장님에게 칭찬도 받았어요. 정말 고마워서 사드리는 거니까 마음껏 드세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매우 아름다운 미녀와 단둘이 식사를 하게 되니 음식을 퍼 넣어도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떨리는 마음은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서야 조금 안정이 됐다.
“피디님은 어떤 게임을 만드시는 거예요?”
무엇보다도 게임!
직접 개발하게 될 게임 이야기를 하게 되니 저절로 입이 풀렸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아, 미안해요. 너무 제 이야기만 한 것 같네요. 늦으면 혼나는 거 아니에요?”
“업무 이야기 했다고 하면 되죠. 실제로 부탁드리고 싶은 것도 있고요.”
“부탁이요?”
“네. 토스해 주신 메일 검토해 봤는데 그 중 S대학교 미술대학 쪽에서 온 요청 메일도 있더라고요.”
“네. 그랬죠.”
“강의, 해주실 수 있으세요?”
태연은 고개를 갸웃하다 물었다.
“혹시 S대학 출신이세요?”
그녀가 민망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은 했지만 학력이 굉장했다.
태연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니 그녀가 다급히 변명했다.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에요. 사실 S, K, Y 등의 명문대에서 이전부터 강의 요청을 했었어요. 그런데 적임자가 없어서…… 손영상 이사님이나 최종학 PD님이 말씀도 참 잘하시고, 적임자라고 생각돼서 부탁드려도 질색을 하셨어요.”
“그렇군요.”
“그런 명문대에서 강의를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회사 입장에서도 참 좋을 텐데…… 적임자가 없어서 고심하던 차에 PD님 능력을 확인해서 부탁드리는 거예요.”
“그러시겠죠.”
“아이참! 진짜라니까요! 모교라서 부탁드리는 게 아니에요!”
“아무렴, 선아 씨가 사적인 감정으로 회사와 저를 이용하실 리가 없죠.”
“그렇죠! 저 그런 여자 아니에요.”
“…….”
“그런데 왜 그렇게 음흉하게 웃으시는 거죠? 진짜 아니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