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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6화 (6/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6화

3. 첫 공식 업무는 강연!

“실무에서 손을 뗀 지는 오래지만 아직도 게임은 재미있게 즐기고 있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게임이 바로 무협 RPG인 제국의 검이에요. 그거 유 피디가 디렉팅했죠?”

“그렇습니다.”

“제가 왜 제국의 검을 재미있게 했는지 알아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학생 시절부터 무협 소설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예상치 못했던 답변에 태연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조금 이르긴 하지만 점심 식사나 하러 가죠. 여기보다는 그곳에서 더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네요.”

대화 장소가 자취방이라고 해도 편할 것 같지는 않은데.

태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일어섰다.

일식집.

평상시 엄두도 내지 못했던 고급 요리가 펼쳐져 있었다.

눈치만 보고 있는 태연에게 유진성 회장이 웃으며 말했다.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식사해요.”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점심 식사가 끝났다.

카페로 자리를 옮긴 후로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지만 끝나고 나니 기억에 남는 건 한 가지 질문뿐이었다.

-두 프로젝트를 통해 얻고 싶은 건 뭐죠?

그 질문에 대해 태연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사람입니다.’

게임 개발자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재산은 바로 사람이다.

좋은 게임은 좋은 사람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법. 그리고 힘들게 좋은 게임을 만들어도 그것을 즐겨 줄 사람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니까 나는 돈과 명예가 아닌, ‘내 사람’을 얻기 위해 게임을 만들겠다.

‘……라는 개소리였지.’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나오는 대로 지껄인 헛소리였다.

‘대박 치고 나가서 투자받아 회사 창업하고 싶습니다!’

라는 말을 대놓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결국 넥플도 거쳐 가는 곳일 뿐이지만 최고 상사들 앞에서는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마지막 회사처럼 굴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유진성 회장은 좋게 반응했다.

‘사람 중요하죠. 저는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손영상 이사, 이 친구밖에 없어요. 반면 이 친구는 인덕이 좋아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많은데 저는 그게 정말 부러워요.’

그 말을 듣고 나니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친구가 없구나.’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일에 몰두하고 지냈기에 친구는커녕, 애인도 사귀어 본 적이 없었다.

‘종학이는 동생이지, 친구가 아니잖아.’

심지어 예쁘고 착한 여자 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돈도 많고 친한 지인도 많고 여자 친구까지…… 그놈이 진정한 위너였네.’

이제야 깨달았다.

그 말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 아니었음을.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솔직한 심정이었던 것이다.

타인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게임을 만들었는데 정작 자신이 외롭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돈? 명예?

강건 대표를 보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충분히 가졌지만, 그럼에도 더 많은 것을 갈구하다가 스스로 목을 조이고 있다.

이대로 가면 파국이다.

태연의 눈에는 뻔히 보였다.

문제는 그의 무모한 짓을 막아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태연은 마음먹었다.

이제부터 개발자를 뽑을 때 최고가 아닌 최선을 선택하기로.

개발력이 좋아 봐야 인성이 엉망이고, 팀과 동화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아무 의미 없다. 그래서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뿐이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뽑자.’

판데모니움 개발팀에서 그런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시나리오 기획자 백영훈.

잠재력 좋고, 열정 가득하며 사람이 참 순수하다.

태연이 퇴사할 때, 끝까지 따라 나와서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요청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저녁 식사나 같이 하자고 해볼까?’

태연은 조심스레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곧장 날아온 답변에 미소 지었다.

* * *

“PD님!”

백영훈이 카페에 등장했다.

반가운 얼굴로 자리에 앉는 그에게 태연이 웃으며 물었다.

“잘 지냈죠? 머리가 좀 많이 길었네요.”

“네? 아, 요즘 야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그는 순한 미소를 지었다. 태연은 음료를 대신 주문해 준 뒤 말을 계속했다.

“프로젝트 근황은 어때요?”

“대표님이 디렉팅 잡으신 거 알고 계시죠? 그 후에…….”

가장 큰 변화는 야근의 시작.

강건은 모두를 회의실에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분간 비상근무 체제로 돌입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 봅시다.

그리고 ‘재미없는’ 근무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시나리오 퀘스트를 수정했어요. 기존 작업물이 마음에 안 드신다나 봐요.”

“저런…….”

“지금 난리 났어요. 그리스 신화, 북유럽신화, 아일랜드 신화…… 무슨 신화 온라인도 아니고…….”

태연은 크게 웃었다.

불만은 계속 이어졌다.

“공감 가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나. 나름 노력은 하고 있는데 서브 시나리오까지 세세하게 간섭하셔서 입맛 맞추기 정말 어려워요.”

“힘드시겠네요.”

“전 양반이죠. 갑자기 지역 특산물 컨텐츠 만들고 시장 경제 형성해서 무역 거래 할 수 있도록 컨텐츠를 만들라고 하지 않나, 플레이어 캐릭터만 성장시키는 건 재미없으니 주인공이 퀘스트로 동료를 얻을 수 있도록 해서 똑같이 성장시킬 수 있도록 하자고…….”

“모바일 수집형 RPG 컨텐츠로군요.”

“심지어 등급도 있어요. 1성부터 6성까지. 태생 4성도 있고…… 아무튼 모바일에 들어가는 컨텐츠는 물론 과금 모델까지 그대로 욱여넣으려고 하니 미칠 지경이에요. 잘 나가는 건 다 때려 넣을 생각인 것 같아요.”

“힘들겠네요.”

“지금 여러 사람들이 탈주 각 재고 있어요. 그리고 다들 그러더라고요. PD님 있을 때가 좋았다고. 아무튼 그런 상황이에요.”

백영훈의 표정이 매우 어두웠다.

불만은 많아도 1년 이상 붙잡아 온 프로젝트였기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잘 만들어지던 게임이 실시간으로 망가지는 과정을 지켜보려니 속이 쓰려 미치겠더라고요.”

“괜히 제가 미안하네요.”

“PD님이 가장 큰 피해자신데 미안해하실 게 뭐 있나요. 아, 게임 제목이랑 설정 다 바꿨어요. 제목은 혼돈의 라그나로크.”

“풉!”

태연은 입에 머금던 커피를 뿜어 버렸다. 아차 싶은 감정이 들었지만 제목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하자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

“그게 그렇게 웃기세요?”

태연이 눈물까지 흘리니 백영훈이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을 웃고, 여러 차례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안정을 되찾은 태연이 말했다.

“왜 신화 이야기가 잔뜩 나왔는지 알겠네요. 이미 만든 설정 최대한 살려보려고 그랬군요.”

“아니, 그냥 대표님 취향이라는 의견이 대세예요. 그건 그렇고 PD님 이야기 좀 해주세요.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셨어요?”

태연은 그제야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대한 솔직하게.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렇게 된 거죠.”

“우와. 대단하세요! 역시 PD님! 그 무시무시한 넥플에 투자를 받아 내다니…….”

태연을 향한 시선에 경외심이 가득했다. 태연은 어색해하며 얼버무렸다.

“운이 좋았던 거죠. 아무튼 일은 한 달 후에 시작할 예정이에요.”

“혹시 다른 사람들 뽑으셨어요?”

“아니요.”

“그러면 제가 첫 직원인가요?”

“그런 셈이죠.”

무언가 고심하던 백영훈이 결심한 듯 말했다.

“저 회사 관두고 바로 TF 합류할게요!”

“뭘 그렇게 서둘러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조용히 근무하다가 월급 받고 그만둬요.”

“아니요. 그깟 월급 때문에 소중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백영훈은 몹시 단호했다.

“대표님이랑 판테온 프로젝트 구상하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의지가 확고하니 더 이상 만류할 수도 없었다.

태연은 빙긋 웃었다.

“그러면 그렇게 해요.”

* * *

태연은 백영훈과 함께 TF를 진행하며, 사적으로는 이사를 준비했다.

‘언제까지 이런 꼬질꼬질한 오피스텔에서 살 수는 없어. 돈도 있으니 아파트로 이사 가자!’

최근, 넥플에서 받은 저작권료를 포함, 10여 년 일하며 꾸준히 모아둔 돈이 6억이었다. 여기에 대출을 끼면 매매도 충분히 가능했다.

가진 짐도 얼마 없고, 이사할 집은 예전부터 마음에 담아두던 곳이 있으니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신속하게 매매 계약서 작성을 마친 뒤, 봉투를 품고 나온 태연은 오피스텔이 아닌 이사할 아파트 단지를 찾아갔다.

깔끔하고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들!

비싼 아파트 아니랄까 봐 조경과 커뮤니티 시설도 매우 뛰어나다.

‘차는 필요 없지. 바로 코앞이 회사니까.’

사실 거주지 마련에 가진 모든 돈을 털었기에 더 여유자금이 많지 않았다.

당분간은 최대한 검소하게 살며 열심히 일해야 할 형편이었다.

이사 예정일은 보름 후!

‘좋은 집과 직장을 마련했으니 이제 예쁜 여자 친구만 있으면 되는데…… 이게 참 어렵네.’

누군가에게 소개라도 받아볼까?

태연은 피식 웃으며 넥플로 이동했다.

오늘부터 회의실 하나를 빌려 스튜디오가 마련될 때까지 TF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 * *

수많은 대한민국 MMORPG는 세계관과 메인 시나리오의 기반을 ‘세력전’에 둔다.

세계관은 무조건 태초에 선과 악의 주신이 다퉈야 하고, 그러다 패망한 악이 복수를 위해 세상에 자신의 추종자를 은밀히 뿌려야 한다.

왕국과 왕국, 혹은 종족 간의 갈등이 날이 갈수록 커져야 하고 이것이 대륙을 휩쓰는 거대한 전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사항들이 이미 ‘공식’처럼 굳어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간단하다.

히트작 수준을 넘어 MMORPG의 교과서처럼 굳어진 게임이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장르를 즐기는 수많은 게이머와 기획자들이 그 게임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그것이 콘텐츠 확장 및 구성에 용이하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보자면 판테온과 판데모니움 프로젝트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세력전을 기반으로 시나리오가 전개된다는 것. 조금 다른 점이라면 선한 세력, 악한 세력의 대립이 주된 내용이 아니라는 것.

두 게임 모두 내부 갈등을 우선적으로 다룬다.

“신화 원전을 소스로 쓰는 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그게 주가 되면 안 돼요. 우리만의 오리지널 설정과 시나리오가 존재해야 하고, 그 안에서 적절히 버무려 져야 해요.”

“타입문 페이트 시리즈처럼 말이죠?”

“바로 그거죠.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즐기고 있는 컨텐츠라 좋은 예로 들고 싶네요.”

백영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필기했다.

태연 역시 화이트보드에 무언가를 열심히 기록해 가며 말을 계속했다.

“고증 내용이 자극적이지 않고 트렌디하지 않으면 과감하게 바꿔 보도록 하죠.”

“비주얼 컨셉은 과거, 현대, 미래가 복합된 공중 도시 형태로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현대에 더 가까우면 좋겠어요.”

“땅은 이그드라실이 기반, 도시 운영 체계는 신들이 힘을 합해 만든 절대 중립 시스템 데우스 엑스 마키나 뭐 이런 식으로요? 그거 흥미롭네요.”

“토르와 아르테미스가 몰래 바람을 피워 낳은 딸을 주연급 인물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러니까 이건 예시에 불과한 건데, 이런 복잡한 치정 관계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이해관계 탓에 대립하거나 힘을 합치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회의는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버려지는 것도, 써먹으면 재미있을 것 같은 것도 꽤나 많이 나왔다.

이러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게 과연 재미있을까?

태연과 백영훈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게임의 뼈대를 보완했다. 태연이 기존에 작업해 놓은 것도 있지만 더 좋은 게 나오면 버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규모나 구현 가능 여부는 지금 생각할 필요 없어요. 정말 재미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달려 볼 생각이니까요.”

“든든하네요. 그래서 말인데 사냥, 퀘스트 보상 외에 도시에서 다양한 일자리를 얻어서 그걸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보는 건 어때요? 밤 되면 야근 수당도 받고…… 이거 경제 시스템 엄청 신경 써야 하는 건데 구현되면 재미있을 거예요!”

회의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 * *

한 달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났다.

새 아파트에서 출근한 태연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무려 백 명이 자리 잡고 앉아서 작업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공간이었다.

넥플 유니버스 스튜디오!

“오늘부터 시작이다.”

작업 세팅이 완료된 자리에 앉은 태연은 제일 먼저 이메일을 검토했다.

여러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인사팀에서 도착한 환영 및 안내 관련 메시지.

각종 문서 및 결제 양식 등등.

차근차근 메일을 살펴보던 태연은 ‘인재관리부서’에서 날아온 메일을 보고 멈칫했다.

[-안녕하십니까, 유태연 피디님. 인재 관리 담당 부서 조선아 대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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