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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5화 (5/147)

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5화

2. 프로젝트 판테온(2)

회사 집무실로 이동할 때까지 강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태연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집무실 의자에 앉고서야 애써 가라앉힌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너 솔직히 말해 봐. 누구에게 이직 제안 받고 그러는 거 맞지?”

“이직 제안 받고 이러는 게 아니에요.”

“그럼 뭔데?”

“투자 확정돼서 떠나려는 거죠. 제 게임 만들려고요.”

강건이 흠칫했다.

곧,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어디야?”

“대표님도 잘 아는 곳이에요.”

“넥플?”

“네.”

“규모는?”

태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것까지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네요.”

실소를 터뜨리던 그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그리고 벌떡 일어서더니 악귀 같은 얼굴로 소리쳤다.

“이 개새끼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고 있어? 응?!”

“지금 욕하셨어요?”

“욕이 안 나오게 생겼어? 회사랑 프로젝트가 애들 장난이야? 넌 책임감도 없어?”

‘책임감?’

그 말에 태연이 피식 웃으며 반박했다.

“대표님, 잊으신 것 같은데, 저 그냥 월급쟁이잖아요.”

부정할 수 없는 팩트 공격이 이어졌다.

“한계돌파 성공해서 인센이나 지분 같은 거 받은 적도 없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제 수입은 월급이 전부였죠. 드림소프트 시절도 마찬가지였어요. 기획팀장 자리에서 죽어라 디렉팅 업무 수행했고 게임도 성공시켰지만 얻은 건 월급뿐이었어요.”

태연은 확실히 말했다.

“십 년 동안 대표님 밑에서 여러 게임 성공시키고 얻은 건 월급 모아 만든 적금 통장뿐이네요.”

“…….”

“저도 사람인지라, 욕심이라는 게 있거든요. 직접 투자받고, 원하는 게임 만들어서 성공시키고 싶어요. 그래서 돈 많이 벌고 싶어요. 이게 그렇게 잘못됐어요?”

강건은 아무 말을 못 했다.

더 이상 뭐라고 말해봐야 자신만 추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프로듀서, 디렉팅 업무 인수인계는 두 달 전에 이미 해드렸으니 전 오늘까지만 일할게요. 퇴직금 빼먹지 말고 꼭 챙겨 주세요. 안 주시면 저 소송 걸 거예요.”

태연은 그렇게 통보하고 집무실을 떠나 버렸다.

강건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녀석이 퇴사해 버리면 판데모니움 프로젝트는…….”

* * *

태연은 자리에 돌아오자마자 라이브, 신규 개발팀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메일을 작성했다.

[안녕하세요. 유태연입니다.

그동안 여러분과 함께 좋은 게임을 개발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저는 오늘부로 맡았던 모든 업무를 내려놓고 블레스를 떠납니다.

여러분들의 미래에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메일을 전송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동안 분위기로 대충 짐작은 했는데…… 진짜 나가시는 거예요?”

“와, 아무리 언질은 해주실 줄 알았는데…….”

“너무 섭섭해요!”

개발팀 외에 총무팀 직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역시 다들 짐작은 하고 있었구나.’

비록 퇴사 언급을 하지 않았다지만 알게 모르게 떠날 준비를 착실히 해오고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서운해하는 직원들과 인사를 마친 뒤, 가방을 챙겨 스튜디오를 떠났다. 누군가 태연에게 다가와 말했다.

“PD님.”

태연에 의해 시나리오 기획자로 전직한 백영훈이었다. 그는 결연한 얼굴로 요청했다.

“저 데려가 주세요. 전 피디님과 일하고 싶은 거지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두 달 동안, 태연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사람이 바로 백영훈이었다.

가능성은 높지만 시나리오 기획자로서는 초보였기에 가르칠 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찾은 백영훈은 큰 흥미를 드러내며 태연의 가르침을 열심히 흡수했다.

자신을 향한 백영훈의 시선에서, 태연은 과거의 자기 자신을 봤다.

‘내가 정 대표님을 저런 눈으로 봤었는데…….’

동경의 대상, 그리고 스승을 보는 눈빛.

“좋아요. 제가 연락할 테니 기다려요.”

“감사합니다!”

밝아진 얼굴.

태연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회사 건물을 나섰다.

춥지만, 하늘은 맑았다.

태연은 쏟아지는 햇살에 한껏 미소 지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구나.”

* * *

‘휴식이 필요해.’

태연은 자신의 상태를 냉철히 파악했다. 그동안 쉴 틈 없이, 잠도 줄여가며 일만 했던 탓에 돈은 많이 쌓였지만 몸이 꽤나 축난 상태였다.

‘여행을 가자.’

항상 마음만 먹었던 것을 드디어 실행할 수 있게 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홀로 떠나는 여행!

국내, 해외 여행지를 살피며 고민을 하던 태연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일본 여행을 가자.’

도쿄.

그중에서도 특히 가보고 싶은 장소는 오타쿠들의 성지라는 아키하바라.

게임 개발자들 대다수가 그렇지만 태연 역시 남 못지않은 오타쿠 기질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애니와 게임을 통해 일본어를 수준급으로 터득했을 정도였다.

이틀 후, 태연은 나리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와!”

아키하바라 상점에 무수히 많은 게임 타이틀이 있었다.

“사자. 다 사버리자!”

그동안 왜 악착같이 돈을 벌었던가?

바로 이럴 때 쓰기 위함이다.

태연은 국내에 출시되지 않는 게임 타이틀도 망설임 없이 질렀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게임의 굿즈도 잔뜩 구매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지 양손에 커다란 쇼핑백이 여러 개 들려 있었고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다.

적잖은 돈과 시간을 소모했지만 태연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저녁 식사를 할까?”

눈에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가 규동을 주문해 먹었다.

“맛있어!”

왠지 부족하게 느껴져서 라멘과 교자 세트도 주문해서 또 먹었다. 그걸 다 먹고 나니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기분은 몹시 좋았다.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진작 이러고 살았어야 했는데.’

태연은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는 게임, 애니, 만화를 즐기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드림 소프트에 입사했고 방위산업체 신청을 통해 10대 후반, 20대 전체를 게임과 함께 보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벌써 30대였다.

‘정말 많은 걸 포기해 왔구나.’

남들 여자 친구 만들 때 여자 NPC를 만들었다. 남들 바캉스를 떠날 때 해안가 필드와 던전을 제작했다.

가장 좋은 시절을 오로지 게임 제작에만 몰입했다.

‘괜히 억울하네.’

이렇게 좋은 세상이 있었는데…… 그동안 누구 좋으라고 일만 했던 것일까? 겨우 하루 쉬었을 뿐인데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의욕, 에너지 등이 샘솟는다.

‘휴식도 개발의 일부야. 앞으로는 적당히 쉬면서 해야지.’

꿈만 같았던 4박 5일간의 여행 일정은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이제 일하자!’

현실로 돌아온 태연은 느슨해진 긴장감을 팽팽히 잡아당겼다.

* * *

태연은 넥플 법무팀의 도움을 받아 판테온 저작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는지, 강건이 전화로 따지기 시작했다.

-야! 너 이럴 수 있어? 판데모니움 타이틀과 설정을 쓰지 말라니, 지금 나 물 먹이려는 거야?

“판권 계약 해주신다고 해놓고 흐지부지 넘어가려고 하니 이렇게 되죠. 저 그때도 분명히 말했죠. 의리 생각해서 많이 안 받겠다고.”

-그, 그거야…… 해주려고 했지! 야, 지금 당장 튀어와. 그깟 계약, 해주면 될 거 아냐!

“아뇨. 그냥 그 타이틀 제가 쓰려고요. 판권 계약은 넥플 측이 해주기로 했어요. 각각 2억씩, 총 4억을 주시겠다고 하던데, 이만큼 줄 수 있으세요?”

-……!

강건은 아무 말도 못 했다.

판데모니움, 그리고 후속작 판테온.

유료 소설로 연재하긴 했지만 구매 수는 상당히 낮았고 인기도 없었다. 실망하긴 했지만 나중에 저작권 행사를 하기 위해 진행했던 출판이라 판매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이게 이런 식으로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지.’

사이다는 덤.

태연은 마지막으로 통보하고 끊었다.

“제 타이틀과 설정으로 게임 출시하시면 전화가 아니라 법으로 책임을 물을 겁니다.”

이것으로 블레스, 그리고 강건과의 연결고리는 완전히 끊어졌다.

‘이제부터 난 넥플의 게임 개발자야.’

태연은 묵혀 두었던 기획문서를 꺼내 보강 작업을 시작했다.

출근 날짜를 알려주니 손영상이 전화로 말했다.

-회장님이 유 피디를 일찍 만나고 싶어 하는데, 괜찮겠어요?

“네. 저는 어느 때라도 상관없습니다. 불러주시면 나가겠습니다.”

-그러면 내일 오전 시간에 넥플 본사에서 봅시다. 점심 같이하죠.

‘회장님 성격 급하시네.’

손영상은 통화 종료 전 말했다.

-내일 판권 계약할 테니까 준비해둬요.

“알겠습니다.”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내일 계약서에 사인하면 4억이 생기는구나.’

사실 돈은 큰 문제가 아니다.

넥플 회장.

시총 십 수조 원 가치를 지닌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게임 기업 회장과의 만남!

그 가치는 금전으로 따질 수 없다.

‘내일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다음 날, 태연은 출근 시간에 맞춰 판교, 넥플 본사로 이동했다.

판권 계약 싸인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장에 수억 대의 계약금이 입금되었다.

얼떨떨해하는 태연에게 손영상이 어깨를 툭 치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축하해요. 술 사요.”

“저야 뭐 이사님이 불러주시면 언제라도 튀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죠. 그런데 아무리 넥플이라도 수억을 이렇게…… 바로 꽂아주실 줄은 몰랐어요.”

“회장님이 유 피디 신경 좀 써달라고 당부하셨어요.”

“아…….”

태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회장님이 업무 보고를 받고 계시니 다른 곳에서 시간을 좀 보내고 있어야 해요. 제가 회사 안내해 줄게요.”

넥플 절대 권력자의 가이드라니, 심히 부담스러웠던 태연이 돌려서 거절했다.

“바쁘지 않으세요?”

“유 피디 접대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접대라니, 부담스럽게 왜 이러세요.”

“하하, 따라와요. 일단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나 한 잔 하실까요?”

넥플 카페테리아 규모는 블레스 개발실보다도 거대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헬스장, 사우나, 수영장, 테니스 장, 농구장, PC방, 약국, 안마기 수십 대가 비치되어 있는 수면실, 영화관, 실내 강당, 세미나실 등등.

심지어 모션 캡쳐, 사운드 스튜디오는 장비 규모가 여느 전문 업체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게임 개발, 여가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었다.

‘나가지 말고 건물 안에서 게임 개발만 하라는 건가?’

실내 테마파크를 방불케 하는 어린이집은 또 어떤가?

볼수록 기가 질릴 정도였다.

‘이러니 다들 입으로는 넥플 욕하면서 속으로는 입사하고 싶어 안달이지.’

심지어 직원 평균 연봉도 업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내가 이런 곳의 프로듀서라고?’

시총, 뉴스 기사, 소문 등의 수단으로만 접했을 때는 그리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둘러보고 나니 확실히 체감된다.

스타 개발자들이 모여 있는 대한민국 게임 업계의 공룡, 넥플의 다섯 번째 프로듀서가 되었다는 사실.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실패하면 난 끝장이야.’

지원 규모가 클수록, 프로듀서가 감당해야 할 짐의 무게도 늘어난다.

무려 백억 규모의 프로젝트였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 당연한 이야기지만, 넥플이 보여준 관심, 이상의 결과물로 보답해야 한다. 그래야 꿈을 향해 계속 달릴 수 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해.’

잠시 후, 손영상은 업무 보고가 끝났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태연은 긴장한 채 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마침내.

“반가워요.”

대면했다.

맨손으로 넥플 신화를 이룩한 거인을.

“안녕하십니까, 유태연입니다.”

태연은 존경을 담아, 최대한 정중히 인사했다. 검게 염색한 머리를 멋지게 빗어 넘긴 유진성이 호감을 담은 미소로 말했다.

“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여기 앉아요.”

태연은 떨리는 마음으로 소파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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