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 과거와의 만남 (1) (96/110)


96. 과거와의 만남 (1)
2022.12.31.


연차를 낸 도영은 차를 몰고 서울의 중심부로 향했다.

차의 내비게이션에 찍힌 목적지는 다나 빌딩. 오늘 그곳에서 도영은 찾을 사람이 있다.

사전에 알아본 바로는 다나 빌딩에는 금융 분야의 대기업 본사가 입점해 있었다.

일부러 연차까지 쓰고 주말이 아닌 평일에 간 이유는 건물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때 그를 만나고 싶어서다.

차는 곧 빌딩에 도착했다. 도영은 주차장에 차를 댄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올라갔다.

예상대로 평일의 로비는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했다. 도영은 로비 한 편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하나 주문해 자리를 잡고 앉았다.

푹 눌러쓴 가발과 선글라스 너머로 경비원을 찾았다.

다나 빌딩의 경비원인 혜수의 아버지, 신정섭을.

햇빛도 들지 않는 실내에서 희한한 헤어 스타일에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있자니 사람들이 자꾸 힐끔댄다.

하지만 정작 도영은 남의 시선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정섭을 찾기 바빴으니까.


 


‘어디 있지? 누구야.’

건물이 큰 만큼 경비원이 여러 명이다.

경비실 안에 앉아 있는 사람만 둘, 로비를 돌아다니며 화분에 물을 주는 사람이 하나,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빗질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다.


‘저 중에 누구지?’

매의 눈으로 정섭을 찾았지만 이렇게 멀리서 봐서는 모르겠다. 게다가 경비원들 모두 빌딩의 로고가 그려진 캡 모자를 쓰고 있으니 더더욱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은 흐르고 그 사이 점심시간이 되었다.

경비원 넷 중 두 명이 경비실을 나온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려는지 지갑을 주섬주섬 챙긴다.

둘 중 키가 큰 경비원이 먼저 입을 연다.


“오늘은 콩나물국밥 어때? 어제 술을 마셨더니 국물이 당기네.”

그러자 작은 체구의 남자가 대답을 한다.


“좋죠. 뒤 타임 형님들 것도 시켜 놓을까요? 나중에 오시면 바로 드실 수 있게.”

“센스하고는, 그러자. 그 둘은 콩나물국밥이라 하면 사족을 못 쓰지.”

이렇게 있으면 아무런 소득도 없겠다는 생각에 도영도 커피잔을 반납했다. 그렇게 그들을 따라나섰다.

다나 빌딩의 뒤로 돌아가면 번쩍한 빌딩과는 다르게 허름한 국밥 골목이 있었다. 그중 단골집이 있는 듯 경비원 둘은 익숙하게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특히 낡은 식당은 노부부 둘이서만 단출하게 운영하는 곳이었다. 남편은 주방에서 불을 만지고 아내는 서빙과 계산을 한다.

작은 체구의 경비원이 넉살 좋게 손을 흔든다.


“어머니, 여기 콩나물국밥 두 그릇 말아주세요.”

“조금만 기다려.”

“예에.”

도영도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이것저것 주문을 했다.

둘씩 돌아가며 식사를 하는 모양이니 운이 좋으면 한 시간, 그게 아니라면 두 시간 정도만 여기에 있으면 되겠다.

곧 경비원들 앞에 국밥이 나왔고 그들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본격적인 점심시간이 되면서 테이블도 조금씩 채워져 갔다.


“여기 김치 좀 더 주세요.”

“계산이요.”

“화장실이 어딥니까?”

“콩나물국밥 한 그릇이요.”

그런데, 부부 둘이서 그 모든 걸 응대하기엔 벅찬가 보다. 다른 직원이 없으니 손님의 요청이 몇 개만 쌓여도 밀리기 시작한다.


“금방 해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고작 식당의 삼 분의 일을 채운 손님들이 전부이지만 이것만으로도 가게는 벅차게 굴러갔다.


“아, 좀, 빨리 갖다 줘요. 김치 달랬더니 배추 뽑으러 갔나?”

“아이고, 미안해요. 금방 갖다 드릴게.”

부부가 정신없이 움직이던 그때, 식자재 마트의 트럭이 가게 앞에 서더니 문을 활짝 연다.


“사장님, 배달 왔어요.”

그렇지 않아도 바쁜 와중에 주문한 물품까지 오다니. 아내의 넋은 반쯤 나갔다.


“아이고, 왜 벌써 왔어.”

“세 군데나 오늘 임시 휴업을 하지 뭐예요. 어쩔 수 없이 좀 빨리 왔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 너무 바쁜데.”

“그럼 어떡해요? 다시 가지고 가요?”

“아니, 아니. 금방 해줄게, 기다려 봐. 응?”

“지금 돼요?”

“어, 어, 응. 저기 커피 한 잔 뽑아 마시고 있어.”

“빨리해줘요. 다음 집에서는 어서 오라고 난리야.”

“알겠어, 금방 할게, 응? 커피 마셔, 커피.”

못마땅하게 아내를 쳐다보던 배달기사가 공짜 커피를 하나 뽑아 의자에 앉았다.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아내는 일단 밀린 서빙을 했다. 하지만 워낙에 걸음이 느려 그 또한 한참이 걸린다.

그런 뒤에는 드디어 트럭에 가 배달된 식료품과 장부를 대조를 하기 시작했다.


“콩나물이 3킬로에 계란이 두 판이고 김치는 생김치로…….”

그 사이 식사를 마친 한 중년의 배 나온 남자가 일어나 카운터로 다가간다. 하지만 카운터는 비어 있다.

남자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쯧, 크게 혀를 찼다. 마치 누군가 들으라는 듯.

그런 뒤에는 일 분 정도를 더 기다렸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더는 못 참겠나 보다. 목을 가다듬더니 트럭 앞에 서서 물건을 챙기고 있는 아내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이봐요! 계산 안 해줍니까?”

“아이고, 손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 거참. 이러다 점심시간 다 지나가겠네! 직원 좀 뽑으라 그래도 어째 맨날 그대로야?”

“죄송해요, 사람을 더 뽑으면 남는 게 없어가지고.”

“그럼 장사를 접던가! 제대로 하지도 못할 거면서 뭐 하러 장사를 해?”

“죄송합니다, 금방 해드릴게요.”

“에잉, 쯧.”

그렇게 일 분여가 또 흐르고. 남자의 혀를 차는 소리가 점점 커져갈 때였다.

경비원들 중 한 명이 국밥을 후루룩 들이켜 그릇을 비우더니 벌떡 일어난다. 곧 교대를 할 형님들 것도 미리 시켜 놓자던 작은 체구의 남자다.

뜨거운 국밥이 식지도 않았는데 들이켜는 걸 본 다른 경비원이 놀라 그를 쳐다본다.


“왜 그래? 뭘 그렇게 급히 먹어?”

“제가 여기 좀 도와드리려고요.”

“신 씨가?”

“예. 형님은 천천히 드세요. 전 다 먹었어요.”

물로 입을 헹군 신 씨라는 경비원은 자연스럽게 카운터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섰다.

그 장면을 보고 배 나온 남자가 눈을 키운다.


“어? 웬 오지랖인가 했더니. 우리 빌딩 경비였어?”

“절 아십니까?”

“나 몰라? 기획팀 과장인데.”

아무래도 배 나온 남자는 다나 빌딩에서 근무를 하는 모양이다.


“그러십니까? 몰라뵈었습니다.”

“날 어떻게 몰라? 오갈 때마다 인사하더니 대충하던 거였어?”

“아유,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가지고. 식사는 맛있게 잘하셨어요?”

경비원은 웃으며 다시 말을 걸었다. 하지만 과장은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는지 오만상을 찌푸린다.


“됐고. 계산.”

“예, 저 주십시오.”

과장은 두 손을 펴고 있는 경비원을 흘긋 노려보더니 카드를 그에게 집어 던졌다. 누가 봐도 일부러 그렇게 한 행동이었다.

카드는 경비원에게 맞은 뒤 튕겨 나와 다시 과장의 발치에 떨어졌다.


“어이쿠.”

“아이 씨. 그거 하나 제대로 못 받아?”

“죄송합니다. 다시 주시면 금방 결제해 드리겠습니다.”

두 손을 공손히 내밀었다. 그런데, 과장은 멀뚱히 서 있기만 한다.


“카드 주시면…….”

“나더러 주우라고?”

“네?”

“경비가 잘못해서 떨어진 건데 내가 왜 주워?”

“아.”

그렇게 아주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경비원이 미소 지으며 카운터를 나왔다.


“그럼요, 제가 주워야죠.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긴 카운터를 돌아 나온 경비원은 허리를 굽혀 과장의 발밑에 떨어진 카드를 주웠다. 후후, 먼지를 털어내고 소매로 카드를 닦는다. 그런 뒤에는 다시 카운터로 들어가 결제를 했다.


“콩나물국밥 한 그릇 6500원 결제해 드리겠습니다.”

버튼을 누르자 카드 단말기에서 띠릭 소리와 함께 영수증이 나온다. 경비원은 카드와 영수증을 같이 과장에게 건넸다.


“여기 카드 있습니다.”

과장은 카드를 휙 잡아채더니 영수증은 구겨서 다시 경비에게 던졌다.


“시키는 일이나 제대로 할 것이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하여간 지금 경비들은 다 쓸모없는 인간들이야.”

퉁명스레 쏘아붙인 뒤에는 식당을 나갔다.

허리를 숙이고 있던 경비원은 남자가 사라지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손님을 응대한다.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계산해 드릴게요.”

이후로도 경비원은 이곳의 종업원인 마냥 자연스럽게 카운터를 보았다. 기분이 상했을 법도 한데 우렁차게 어서 오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인사를 한다.

도영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저 사람이 내가 찾는 사람은 아니겠지.’

아무리 증오하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저런 취급을, 억지스러운 지배를 받는 것을 보는 건 유쾌하지 않다. 특히 그가 혜수의 아버지라 생각하면 더 미묘한 기분이다.


‘저 사람은 아니었으면.’

순간 도영은 놀랐다. 어느새 저 경비원이 정섭이 아니길 바라는 저를 깨달아서다.

그토록 복수하고 싶던 상대가 지금은 저런 험한 꼴을 당한 사람이 아니길 바랐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아귀가 맞지 않는 일이다.

결제를 끝낸 경비원은 쉬지 않고 밖에 세워진 트럭으로 갔다. 여전히 장부와 물품을 대조하고 있는 아내에게 다가가 장부를 대신 집어 든다.


“어머니, 저 주세요. 제가 할게요.”

“매번 미안해서 어떡해.”

“뭘요, 제가 빠르잖아요. 금방 해드릴게요. 어머님은 서빙 맡아주세요.”

“고마워, 정말.”

경비원은 장부와 물품을 대조한 뒤 수레에 식자재를 싣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그런데, 꼼꼼하기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완벽주의자 도영이 보기에도 경비원의 일 처리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배달된 식료품이 정확한지 이중, 삼중으로 확인을 하고 식당에 남아 있는 재고까지 파악을 해 체크를 해둔다. 뭘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확인에 또 확인을 한다.

그 모습을 본 배달 기사가 핀잔을 한다.


“아니, 한 번 봤으면 됐지 뭘 또 체크해요?”

경비원은 허허, 여전히 사람 좋게 웃었다.


“습관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어떤 일로 번질지 모르잖아요.”

그 말을 하는 경비원의 목소리는 전과 다르게 무거웠다.


“식료품 배달에 생길 일이 뭐가 그리 크다고요.”

“그렇기는 하지만……. 나중에 틀려서 수정하는 것보다 이게 낫더라구요.”

“나 참.”

“금방 할게요. 죄송한데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경비원은 다시 눈과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워낙에 빠른 속도라 다른 사람들이 한 번 확인하는 정도다.

도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원래 계획은 뒤에 식사를 하는 경비원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여기에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 신 씨라는 사람의 이름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도영은 카운터로 다가갔다.

마침 식료품 트럭을 배웅한 경비원이 물건을 수레에 담고 안으로 들어온다. 계산을 하려는 도영을 보고는 잽싸게 카운터에 가 선다.


“결제해 드릴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경비원이 카드를 받기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


“!”

도영은 깜짝 놀랐다. 그의 얼굴이 낯이 익었기에.


‘이 사람은?’

곧 도영은 기억 속에서 그를 찾아냈다.

이 사람은 전에 응급실에서 수호의 다리를 고치고 데려온 목격자였다. 다리에 부목을 댄 솜씨가 범상치 않았던 사람. 혹시 의료인이냐고 물어봤던 사람.


‘그렇다면.’

급히 눈을 내려 가슴에 박힌 명찰을 보았다. 그곳엔 아니길 바랐던 그 이름.

‘신정섭’ 세 글자가 또박또박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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