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3. 가족 (93/110)


93. 가족
2022.12.21.



 
시간은 빠르게 흘러 달이 바뀌었다.

일요일 낮, 혜수는 옷을 갈아입고 숙소 밖으로 나갔다.

하늘도 투명하게 파랗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딱 좋은 날씨였다. 게다가 오래간만에 당직이 아닌 주말이다.

하지만 마음은 더없이 불편하다. 다름 아닌 오늘 승원이 찾아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밤, 잠에 들려는데 벨 소리가 울렸다.

승원에게서 온 전화였다. 망설이던 혜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혜수야, 잘 지냈어?

“응. 웬일이야?”

-일은 무슨. 곧 네 생일이잖아.

“응.”

매년 혜수의 생일이면 승원은 어김없이 케이크와 선물을 준비해 작은 파티를 해주었다.


-축하해 주러 가고 싶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수는 답했다.


“아니. 나 요새 너무 바빠서. 누군가를 만날 여유가 없어.”

단호한 거절에 승원이 멋쩍게 웃는다.


-실은 이모가 네게 전해달라는 것도 있고 해서.

“뭔데?”

-너 생일인데 못 보러 간다고 미안하시대. 대신 미역국 좀 전해달라셔. 이모부는 선물을 사놓으셨대. 마침 내가 그날 오프라고 말을 해버려서.

“…….”

-정말 잠시만 시간을 내주면 되는데. 안 될까?

“……알았어.”

부모님은 승원이 제게 고백한 것을 모르신다. 이 상황에서 승원의 전달을 거부하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해 보일 터.

혜수는 결국 알겠다 대답했다.
 

병원 바깥에 조성된 산책로로 가니 벌써 도착한 승원이 웃으며 손을 흔든다.


“혜수야, 왔어?”

“일찍 왔네.”

“생각보다 차가 안 막혀서.”

“응.”

고개를 끄덕이는 혜수를 앉힌 승원은 이것저것 내밀었다.


“이건 선물. 이건 잡채랑 미역국이랑 밑반찬들.”

아빠 정섭이 샀다는 소설책을 전해준 승원은 반찬 통의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 보였다.

엄마 지영이 만든 각종 반찬과 국, 찰밥이 줄줄이 꺼내진다. 혜수가 좋아하는 지영의 음식 냄새가 물씬 풍긴다.


“혜수 점심 먹었어?”

“아니.”

“나도 아직. 지금 좀 먹을래?”

“아니, 난 괜찮…….”

도리질을 치며 난 됐으니 오빠는 그만 가, 라고 말하려는 순간. 꼬르르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승원이 배를 붙잡고 민망한 듯 웃는다.


“아침을 굶었더니.”

“…….”

배가 고프기는 할 것이다. 이 시간에 여기 도착하려면 새벽부터 움직였을 것이니.

그러고 보니 지영의 잡채는 승원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아까부터 승원은 잡채를 보며 군침을 삼키고 있는 게 눈에 훤히 보인다.

결국 혜수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하나씩 승원에게 건네주었다.


“그냥 오빠도 같이 먹고 가.”

“그래도 돼?”

“응.”

“고마워. 잘 먹을게.”

“내가 한 것도 아닌데, 뭐.”

식사시간은 조용했다. 그릇과 수저가 부딪히는 소리만 간간이 날 뿐.

예전에는 둘이 밥을 먹을 때는 조잘조잘 떠드는 소리가 빌 틈이 없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말을 하는 게 이상해 보인다. 과장 좀 더해 음식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식사 시간이 끝나갈 즈음, 승원이 묻는다.


“강천 생활은 어때?”

“비슷해. 숙소, 병원, 숙소, 병원 왔다 갔다 하면 시간은 금방 가.”

“서울에 오고 싶진 않아?”

“별로.”

“궁금한 건 없고?”

“……응.”

실은 궁금한 게 있기는 하다. 바로 도영의 이야기.

도영은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소송은 어떻게 되고 있고 도영의 아버지는 어떻게 되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궁금하다.

하지만 그걸 승원에게 물어볼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승원은 그런 혜수의 속을 빤히 아나 보다.


“요새 도영이는.”

도영의 이름이 불리자 혜수의 손이 허공에 멈춘다.


“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아서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도영과 승원은 요즘 통화를 가끔 하기는 한다. 죄다 환자 이야기라 그렇지.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닫고 환자 이야기만 나눴다.


“도영이 아버님은 아직 안 깨어나셨어.”

“여전히 스투퍼(stupor:혼미함)야?”

“알고 있었어?”

“재성 선생님이 말해줬어.”

“요즘은 아주 조금 나아졌어. 가끔 드라우지(drowsy:기면) 정도는 된대.”

“아직 그 상태면 후유증은 남겠지?”

“높은 확률로.”

“……소송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좋지 않아. 도영이가 대응을 하지 않고 있어.”

“!”

“그 환자 쪽에서는 부장검사까지 나서서 난리라는데 도영이는 전혀 대응을 안 해.”

“이유가 뭔데? 아니, 그 환자 다리 못 쓰게 됐다는 거, 진짜야?”

도영의 이야기가 나오자 말문이 트이는 혜수를 보고 승원이 희미하게 웃는다.


“장애를 가지게 된 건 맞대. 인과관계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

“그리고 도영이가 대응을 하지 않는 이유는…….”

순간 승원이 말을 삼킨다. 혜수의 눈이 둥그렇게 커진다.


“뭔데?”

“아니야. 아무것도. 나도 잘 몰라.”

도영의 아버지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는 그냥 삼켰다.

이렇게 된 마당에 도영을 배려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혜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다.

혜수까지 얽혔던 사건이다. 그걸 도영의 아버지가 주도했다는 이야기는 알리지 않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요즘 도영이가 나랑 전혀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해서 모르겠어.”

“……응.”

도영의 이야기를 끝으로 대화는 다시 끊겼다.

어색하기 그지없던 식사가 모두 끝나고, 일어서려는 혜수에게 승원이 등 뒤에 놔뒀던 것을 꺼낸다.


“나 또 사 온 것 있어.”

“뭔데?”

“짠. 너 이거 좋아하잖아.”

혜수가 평소 좋아하던 빵집의 케이크였다.


“언제 샀어. 여기 주말엔 문 닫잖아.”

“금요일 밤에. 마침 오프라 나갈 수 있었어. 생일 축하해.”

“……고마워.”

그냥 케이크를 가져가려는 혜수의 손을 저지한 승원은 초를 꽂고 불을 붙여주었다.


“너 생일 케이크에 초 꽂고 소원 비는 것 좋아하잖아. 올해도 해야지.”

“…….”

“뭐든 괜찮으니 나 신경 쓰지 말고 하던 대로 해.”

“…….”

“응?”

한동안 촛불을 쳐다보던 혜수는 뭔가를 빈 듯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런 뒤엔 후, 바람을 불어 불을 껐다.

승원이 짝짝, 박수를 친다.


“지금 케이크 먹을래?”

“아니.”

“그럼 다시 싸줄게. 가져가서 먹어.”

케이크를 상자에 넣어주며 승원이 묻는다.


“뭐 빌었는지 물어봐도 돼?”

“…….”

“알려주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돼.”

손을 만지작거리던 혜수가 희미하게 말한다.


“……해달라고 빌었어.”

“응? 뭐라고?”

“……오빠랑 내가 사이좋던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어.”

“!”

“오빠가 내 다정한 사촌 오빠로 남아달라고 했어.”

혜수가 고개를 들어 승원의 눈을 곧게 바라보았다. 갈색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가능해?”

승원은 슬프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미안.”

“……우리가 가족이 될 수 없는 거면 친구라도 해. 그것도 안 돼?”

“미안. 난 내 마음을 속이는 것 더는 못하겠어.”

“오빠.”

“넌 내게 처음부터 여자였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앞으로도 그럴 거고.”

승원의 눈에 혜수의 얼굴이 또렷하게 맺힌다. 그 눈을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린다. 혜수는 벌떡 일어났다.


“오늘 와 줘서 고마워. 나 그만 들어갈게.”

돌아서는 혜수를 승원이 붙잡는다.


“혜수야. 네 마음까진 강요하지 않을게. 물론 강요할 자격도 안 되는 것 알아.”

“…….”

“그냥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만 해줘. 네가 눈치채지 못하게 할게. 그렇게 조용히 있을게.”

진심이 담긴 목소리가 애절하게 울렸다.


“그것만 허락해 줘.”

혜수는 다시 승원을 돌아보았다. 간절함이 가득 담긴 두 눈을 아프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마. 나 모르는 데서 누가 그러는 거, 난 싫어.”

“혜수야…….”

“…….”

“혜수야.”

혜수는 다가오는 승원을 힘껏 밀어냈다. 커다란 몸은 손쉽게 뒤로 밀렸다.


“오빠, 이제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혜수야.”

“나 좀 이해해 줘, 나도 너무 힘들어서 그래. 응?”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마음이 너무나 다르다. 앞으로도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일 테니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잘 가.”

혜수는 다시 몸을 돌려 산책길을 뛰다시피 하여 내려갔다. 등 뒤로 승원의 부름과 시선이 끈질기게 달라붙었지만 모른 체했다.

그대로 숙소로 들어간 혜수는 지영이 싸준 반찬과 케이크를 냉장고에 정리했다.

텅 비어 있던 냉장고가 순식간에 꽉 찼지만 마음은 더욱 답답하고 공허하다.

혜수는 침대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하아.’

슬픔과 미련이 가득한 눈의 승원이 자꾸 떠오른다.

오늘 승원을 괜히 만났다는 후회만 든다. 엄마의 미역국이든 뭐든 그냥 바쁘다고 하고 만나지 말걸.


‘일이 자꾸 왜 이렇게 되어버리는 거야.’

순간.


“아야.”

아랫배가 또 아프다. 속이 꽉 막힌 느낌이다.


‘또 체했나.’

이유는 쉽게 짐작이 간다. 승원과의 불편한 식사와 대화가 원인이겠지.

그래도 자꾸 체하는 게 이상하긴 하다. 계속 이러면 재성의 말대로 검사라도 해봐야겠다 생각하며 혜수는 소화제를 한 알 꺼내 삼켰다.
 

그 시각. 외과 의국 도영의 방.

언제부터인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잠을 이루지 못해 신경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도영은 그래도 습관적으로 논문을 넘기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주도영입니다.”

-교수님, CS(흉부외과) 3년 차입니다. 주기철 환자분 오늘 시행하신 랩(lab:피검사 결과) 나와서 연락드렸습니다. 노티 드릴까요?

“아니. 지금 내가 내려가지.”

도영은 바로 방을 나와 빠른 걸음으로 외과중환자실로 갔다. 도영이 본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다가가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레지던트는 보고 있던 태블릿을 건넸다.


“좋아졌던 크레아티닌(creatinine)이 다시 올라갑니다. 산증도 지속되고요.”

도영은 기철의 검사 결과를 찌푸린 눈으로 훑어보았다.

심장을 해결해뒀더니 이젠 신장이 문제다.

심장이 멈췄던 기간 동안 혈압에 예민한 기관인 신장이 좋지 않은 영향을 받아버렸다.

이 상태가 지속되다가는 투석도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이다. 며칠 전 회의 때는 최악의 경우 신장 이식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오갔다.


“일단 투석은 좀 더 지켜보지.”

“네. 저희 교수님도 그건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하십니다.”

“그래. 신장 내과 교수님께는 내가 따로 연락하지.”

“네, 알겠습니다.”

레지던트가 돌아가고 도영은 기철의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신장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 퉁퉁 부어버린 기철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몸에 꽂혀 있는 각종 관으로는 약을 투여하는 펌프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다. 관을 꽂은 구멍을 덮어 놓은 거즈에는 체액이 스며 나와 누렇게 적셔져 있었다.

도영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 그만 일어나시죠.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아무리 불러봐도 묵묵부답이다. 벌써 몇 주 째 반복되는 상황에 이젠 더 지칠 것도 없다.


 
한동안 기철을 내려다보던 도영은 무거운 다리를 일으켰다. 간호사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 기철의 침대를 떠났다.

그 순간, 기철의 검지가 작게 위아래로 움직거린다. 침대를 등지고 걸어가는 도영을 부르려는 건지 입술도 달싹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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