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 그 누구도 잠들지 못하는 밤 (90/110)


90. 그 누구도 잠들지 못하는 밤
2022.12.10.



 
유민은 묻지도 않았는데 여러 번 반복해서 말했다.


“신혜수가 신정섭의 딸이라구요.”

한동안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은 채 서 있던 도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거짓말.”

“사실이에요.”

“거짓말.”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거짓말!”

“믿기 싫으시겠지만 사실이에요.”

“거짓말하지 마!”

이제 도영은 대기실이 떠나가라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네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사실이에요.”

유민은 구겨진 종이를 집어 펼쳤다. 도영의 앞에 보란 듯 다시 내밀었다.


“잘 보세요.”

유민이 가리킨 정섭의 가족관계에는 신혜수의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지금 일하는 곳이 적혀 있었다.

……한대 병원 외과.


“아니. 난 믿지 않아.”

도영은 종이는 치워버리고 다시 문으로 걸어갔다. 지금까지 헛소리를 들어준 자신을, 조유민과 애초에 말을 섞은 자신을 욕하며.

하지만 유민이 달려와 또다시 도영의 앞을 막아선다.


“저희 아버지가 조사하신 내용에 거짓은 없어요. 이건 제가 보증하죠.”

도영이 유민을 노려보았다. 눈에는 벌겋게 핏발이 서 있다.


“아니,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절대 믿지 않아. 그리고 너. 지금 내게 이러는 이유가 뭐지? 이제 난 너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내게 이걸 알려 네가 득 볼 것이 뭐지?”

“……싫어서요.”

“뭐?”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교수님을 가지는 게 싫어서요.”

“!”

“전 어차피 교수님과 이어질 순 없죠. 아버지가 최규택 후보자의 아들과 절 결혼시키실 거거든요. 그리고 저도 그러겠다 했어요.”

“그게 네 의지야? 최민우와 결혼하는 것?”

도영은 기억을 못 하겠지만 또 반복되는 상황이다. 유민은 하릴없이 웃고 말았다.


“교수님과의 결혼을 통해 아버지가 장관이 되는 것, 그게 제일 좋았을 텐데. 하지만 그건 이미 끝나버렸죠.”

“…….”

“그러니 이제 제가 뭘 더 할 수 있겠어요?”

“…….”

“최민우와의 결혼. 그리고.”

유민은 힘주어 말을 이었다.


“신혜수의 모든 걸 깨트려 버리는 것. 그게 제게 남은 전부겠네요.”

도영의 붉은 눈이 떨리는 걸 보며 유민은 작게 또 웃었다. 그러더니 갸웃한다.


“그런데 신혜수의 아버지가 신정섭이라는 게 그렇게 충격적인가요?”

이제는 도영의 온몸이 떨린다.


“그 사랑, 그렇게 절절하지는 않나 보네요. 이런 일로 흐트러질 거라면 애초부터 딱 그만큼의 사랑이었을 테니.”

“!”

“신혜수든, 교수님이든 누가 먼저 헤어지자고 할지 궁금하네요. 혜수의 마음은 얼마나 깊을까요? 이 사실을 알고도 교수님과 만날 수 있을까요?”

유민은 한쪽 입술을 비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교수님을 만나러 온 것에는 제 의지가 들어갔네요.”

그리고 반대쪽 입술도 들어 올렸다.


“비뚤어진 사랑이라고 해도 좋아요. 이게 제 방식이니까요.”

유민은 문으로 걸어 나가며 목 언저리를 만지작거렸다.


“참, 이 목걸이는 제가 가질게요. 이 정도는 파혼 선물로 가져도 되죠?”

“…….”

“저도 아버지 딸이 맞긴 한가 봐요. 그 자리에 그렇게 앉고 싶은 걸 보니.”

또 한 번 웃어 보인 유민은 또각또각 바닥을 밟아나갔다.
 

홀로 남은 도영은 간신히 두 발로 버티고 있었다.


‘저 말이 정말인가?’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유민이, 그 조유민이 한 말이기에 믿기 싫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유민이 남긴 종이가 조금 전 있던 일이 사실 임을 알려준다.

종이에 적힌 신정섭의 과거에 대한 내용은 제가 그 의사에 대해 조사했던, 수도병원까지의 행적과 너무 일치했다.


‘정말 이게 진실이란 말인가?’

후회가 된다. 왜 조유민에게 붙잡혀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까.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조유민과 만나기 전으로, 아니, 애초에 한주에 가기 전이면 더 좋겠다.

도영은 종이를 힘껏 구겼다.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힘을 주었다.

어느 순간, 팔에서 통증이 시작되었다.


“윽.”

위에서부터 시작된 통증은 살을 에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늘 겪던 것보다 훨씬 강한 통증에 도영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으윽.”

휴대폰이라도 꺼내야 한다 생각한 것도 잠시.

귀가 먹먹해지며 하얗던 시야는 순식간에 까맣게 멀어지고 말았다.
 

그 시각 승원의 집.

혜수는 제 방에서 짐을 챙기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강천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짐 전부는 아니지만 두 계절을 날 정도의 옷가지는 챙겨 가야 했다.

차곡차곡 담기는 옷을 보며 승원은 한숨을 쉬었다.


“혜수야, 꼭 이래야겠어?”

“응. 난 갈 거야.”

“혹시 나 때문이야?”

“…….”

“나 때문이라면 내가 나갈게. 네 눈에 띄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가지 마. 네가 그럴 필요 없잖아, 응?”

“…….”

“갑작스러운 마음 이해해. 내가 더 시간을 줬어야 했는데, 널 다그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하다.”

“그런 거 아니야, 오빠. 내가 가려는 건……. 주 교수님 때문이야.”

“…….”

“더는 교수님 얼굴을 못 보겠어. 보기만 해도 가슴이 너무 아프고 정신이 없어.”

정섭이 도영에게 남긴 아픔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웠다.

혜수 또한 그 무게를 고스란히 느꼈다. 심지어 도영을 볼 때마다 자꾸 자라났다.

죄책감으로 똘똘 뭉친 거대한 덩어리는 이제는 혜수를 움직이지도 못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니 갔다 올게.”

“언제 올 건데?”

“한 번 가면 못 온대. 강천 레지던트는 늘 부족하니까.”

“3년을 거기 있겠다고?”

“응.”

“그렇게까지 해야 해?”

“못 보겠는데 어떡해. 교수님 얼굴 보면 숨을 못 쉬겠어. 아무것도 못 하겠어.”

“…….”

그때, 승원의 벨이 울린다.


“네, 한승원입니다.”

전화를 받는 승원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진다.


“네, 네. 지금 어디세요?”

심각한 얼굴로 통화를 하던 승원이 전화를 끊고 혜수에게 다가갔다.


“혜수야.”

“어? 무슨 일인데?”

“도영이가 많이 아프대.”

“어? ……설마 또?”

“맞아, 팔. 그래서 네가 도와줬으면 좋겠대.”

“교수님이 전화하신 거야?”

“어머님이. 예전에 보던 거랑은 다르대. 많이 힘들어한대.”

“…….”

“갈 거야?”

“…….”

선뜻 그러겠다 하지 못하는 혜수를 보며 승원이 의아해한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도영의 집에 데려다 달라고 매달리던 혜수가 아닌가.


“왜 그래, 혜수야?”

“효과가 있을까?”

“무슨 뜻이야?”

“난 이제 교수님한테 아무것도 아니잖아. 연인도, 제자도.”

도영의 통증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모두 혜수에 대한 신뢰와 안정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했다. 도영과 헤어진 지금 그게 여전히 유효할까?


“그러니 소용없을지도 몰라.”

“……그래도 시도는 해보는 게 낫지 않아? 정말 많이 힘들어한대.”

고민하던 혜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갈게.”

승원과 혜수는 병원의 지하주차장으로 달려갔다.

기철의 비서들이 몰려있는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니 차 뒷좌석에 누워 있는 도영과 밖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은숙이 보인다.


“승원아, 혜수 양.”

“도영이 약은 먹었습니까?”

“콘솔박스에 있던 것 먹였어. 그런데 전혀 효과가 없어. 그래서 네게 전화를 한 거야. 혜수 양이 와줬으면 좋겠어서.”

“언제부터 이랬습니까?”

“나도 잘 모르겠어. 수술실 앞에서 같이 기다리다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렇게 되어 있었어.”

“수술실이요?”

“아직 소식 못 들었구나. 도영이 아버지 지금 수술 중이셔. 심근경색 때문에.”

“!”

“선거도 포기하기로 했고.”

“아…….”

“수술이 잘 끝난다 하더라도 어떤 후유증이 남을지 알 수도 없고. 당장 내일모레가 선거인데 어떻게 활동을 하겠니.”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듯한 눈을 한 은숙을 보며 승원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혜수는 도영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교수님, 저예요. 혜수.”

반응 없는 도영을 한참 부르고 흔들자 간신히 눈을 뜬다. 메마른 입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나온다.


“……신혜수.”

“네, 저 혜수예요. 저 왔어요.”

“왜 여기…….”

“아프시잖아요. 손 주실래요?”

하지만 도영은 손은 좌석 위에 붙어 꿈쩍도 하지 않는다. 혜수는 결국 직접 팔을 뻗어 그의 손을 가져와야 했다.


“제가 손 좀 잡을게요.”

혜수의 손을 덮고도 남은 커다란 손을 꽉 쥐었다. 늘 했던 것처럼 진심을 다해 손을 쓸고 제 온기를 나눠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오 분이 지나고 십 분이 지나도 경련이 멎을 생각을 않는다. 혜수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히려 더 심해진다.


‘어떡해, 정말 안 되잖아.’

혜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도영을 붙잡았다. 두 손이 더욱 빈틈없이 맞닿았다.


“왜요, 혜수 양? 잘 안돼요?”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혜수를 보며 은숙이 신음을 흘린다.


“어떡해, 어쩌면 좋아.”

“제가 조금만 더 해볼게요.”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나고. 여전히 근육의 떨림은 멈출 생각을 않는다. 고통스러워하는 도영의 신음이 점점 커져갈 뿐.


“교수님, 제발요. 제발.”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도영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창백한 몸에서는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셔츠도 좌석 시트도 물에 담근 것처럼 젖어버렸다.


“교수님, 교수님!”

그 옆에 달라붙은 혜수도 점차 이성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교수님, 제발요, 저 혜수예요, 네?”

결국 승원이 혜수를 잡아당겼다.


“혜수야, 나와 봐. 내가 좀 볼게.”

승원을 돌아보는 혜수의 얼굴에는 눈물이 가득이다.


“오빠…….”

“나와, 어서.”

혜수는 도영의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어찌나 세게 잡았던지 자신의 손도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지만 알아차릴 여유는 없었다.

한동안 도영을 살핀 승원은 도영을 일으켰다.


“어머니, 도영이 지금 응급실로 옮겨야겠습니다.”

“응급실?”

“네. 상태가 너무 안 좋습니다.”

“그건 안 돼. 도영이가 싫어할 거야.”

“그냥 둘 수는 없어요. 강한 통증만으로도 사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게다가 통증 자체가 자극이 되어 경련을 더 유발할 거구요.”

“!”

“진정제를 정맥 내로 투여해야겠습니다. 일단 통증을 기억하지 못하게 해야 해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는 계열의 약은 다른 약처럼 병동에서 쉽게 가져올 수가 없었다. 금고에 넣어 입출을 깐깐히 관리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구나.”

결국 도영은 응급실로 옮겨졌다.
 

한대 병원의 응급실.

승원에게 업힌 채로 들어오는 도영을 보며 응급실 의료진들은 기함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철의 응급 처치를 훌륭히 해낸 게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


“진짜 주 교수님이야?”

“주 교수님이 아프다고? 아까만 해도 괜찮아 보이셨는데?”

“어디가 아픈데요?”

다행히 도영의 어깨에 가운을 두른 터라 팔이 보이지는 않았다. 승원은 도영을 침대에 눕히고 커튼으로 사방을 둘러 한 명의 간호사만 들어오게 했다.


“제 앞으로 바로 입원시킵니다.”

“넵.”

“빨리 미다(midazolam:수면마취제의 일종)랑 포폴(propofol:수면마취제의 일종)도 갖다 주세요.”

“포폴이요?”

평범하지 않는 약을 찾는 승원에게 간호사가 되묻는다.


“네. 미다졸람과 프로포폴.”

“아, 네, 네.”

곧 간호사가 약을 가지고 왔다. 승원은 약을 재어 도영의 팔에 넣어주었다.

잠시 뒤, 팔의 떨림은 여전하지만 도영의 신음은 잦아들었다. 찌푸리고 있던 미간도 부드러워졌다.

이제 도영에게 통증은 존재하지만 도영은 인지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팔의 떨림 자체가 잦아들었다.

한시름 놓은 승원은 보호자 대기실로 나갔다.

혜수가 홀로 앉아 있다. 승원을 올려다보는 초점 없는 눈빛이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오빠, 교수님은 괜찮으셔?”

“미다랑 포폴 맞고 지금 자.”

“……응.”

승원이 문밖을 내다보았다. 바깥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이런, 시간이 너무 늦었네. 혜수 넌 집에 가. 내일 강천 가야 하잖아. 짐도 마저 싸야 하고.”

“…….”

“도영이 옆엔 내가 있을게. 어머니는 수술실 앞에 계셔야 하니까.”

망설이던 혜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은 자신이 도영의 그 무엇도 아니다. 옆에 있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까 제대로 경험하지 않았나. 쓸모없는 제 존재를.


“알았어. 갈게”

“내일 일곱 시 차랬지?”

“응.”

“터미널에 못 데려다줘서 미안해.”

“아니, 원래 택시 타고 갈 생각이었어.”

단칼에 대답하는 혜수를 보며 승원은 쓰게 웃었다.


“나 갈게.”

“조심해서 가.”

혜수가 돌아가고 승원은 다시 도영의 옆으로 갔다. 죽은 듯 자고 있는 도영의 곁에 앉았다. 여전히 작게 떨리는 팔을 가만 쓸어주었다.


“주도영, 네가 밉지만 아픈 건 더 싫어. 그러니 빨리 나아. 일어나서 차라리 나랑 싸워.”

 

 
모진 밤은 길기도 길었다.

병원에 남겨진 이들과 병원을 떠난 이, 그 누구도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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