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 의료 사고 (76/110)


76. 의료 사고
202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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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혜수는 인터넷에 접속해 기사를 보았다.

도영과 기철의 이름은 늘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 있었고 정치 뉴스뿐만 아니라 사회 뉴스 코너에도 하루에도 수십 건의 관련 기사가 올라왔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도영과 기철에 대한 여론은 더욱 악화되어 간다는 것. 가뭄에 콩 나듯 보이던 응원 댓글도 이제는 전혀 보이지를 않는다.

[살인마 의사. 의사 면허 박탈해야 해.]

[진료 거부 의사는 자격 없지. 당장 교수직에서 물러나!]

[너 부모면 그렇게 진료할 거냐?]

[다리 못 쓰게 된 사람 너무 불쌍해. 의사 잘못 만나서 인생 망쳤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병원 사람들은 경악에 빠졌다.

무려 도영에게, 한 치의 실수도 용납 않는 신의 손이라 불리던 주도영에게 생긴 의료 사고니까.

심지어 그 주제가 진료 거부라니. 그 결과는 환자의 장애라니.

혜수는 다른 의미로 더 경악했다. 헛소문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빨리 퍼질 수 있다니,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커질 수 있다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도영이 괜찮을지 걱정이다.

아무리 떳떳하다 해도 한 번 소문이 이렇게 나버리면 소문의 주인공이 받은 상처를 회복하기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 이미 겪어 본 혜수니 더 잘 안다.

하필 오늘 응급 신장 이식이 연달아 있어 도영을 찾아갈 시간이 없다. 대신 혜수는 틈이 나면 도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교수님, 식사는 하셨어요?

-교수님,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헛소문이잖아요.

-교수님, 뉴스 보지 마세요, 네?
 

한숨 속에서 병동 일을 마친 혜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Rrrrr, Rrrrr.

때마침 전화가 울린다. 도영인가 했으나 가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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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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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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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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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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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숙소에 가려고. 오늘 일은 이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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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이잉. 나 또 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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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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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게 너네 병원 사람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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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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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네 병원이랑 뭐 있나 봐. 신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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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남자는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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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먹었어. 나한텐 하나도 안 중요한 거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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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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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라는 건 기억나. 3년 차? 4년 차? 수술한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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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쪽인가 보네. 그런데 이번엔 곱게 나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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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가 줄 순……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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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우리 병원 사람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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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무래도 좀……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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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은아, 난 늘 느끼지만 넌 당연한 말을 안 당연하게 포장하는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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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좀 그렇지? 이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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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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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번엔 내가 진짜 나가야지, 뭐. 엄마가 연 끊는다고 난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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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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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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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어떤 집안 사람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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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쪽은 아니고 사업가래. 유통업을 크게 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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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선볼 정도면 보통 크게 하는 게 아닌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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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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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부모님은 네 결혼을 포기하실 생각이 없나 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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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나 미치겠어. 으허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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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나가는 거 이번엔 말 한마디라도 하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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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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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라도 물어보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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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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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또 그리 시무룩해 해. 힘 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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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도 없는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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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금수저 중의 금수저인 가은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해마다 바뀌는 스포츠카와 플래티넘 카드가 어찌 그리 좋아 보였는지.

하지만 이젠 부럽지 않다. 그 모든 것을 누리는 가은의 인생은 여전히 부모에 의해 좌우되고 있으니. 도영과 유민의 약혼을 보면 더욱 그렇지 않나.

그걸 아는 가은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사업도 하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부모의 밑에서 나오는 게 쉽지 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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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혜수 너랑 통화하면 기분이 좋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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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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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는 것만도 고맙지잉. 내가 후기 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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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많이 기대한다. 언제든지 전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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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빠잉!

어느새 쾌활해진 목소리의 가은이가 전화를 끊었다. 딴 이야기를 하다 보니 혜수의 기분도 좀 나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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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은이 도움이 될 때가 있네.’

문득 가은과 선볼 남자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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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보는 사람이 누굴까? 가은이 상대하려면 보통으로는 안 될 텐데.’

그사이 2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구름다리를 향하는데 또 벨 소리가 울렸다.

끊자마자 전화가 오는 걸로 봐서 또 가은인가 보다. 분명 할 말이 남았다며 전화한 것이겠지. 늘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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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이그, 한 번에 말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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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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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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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말 못 해서 미안하군.

이번에는 가은이 아니라 여태 기다렸던 도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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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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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전화를 기다린 건가? 날 기다린 건 아닌 것 같고. 섭섭한데.

예상보다 아무렇지 않은 도영의 목소리를 들으니 들쑥날쑥하던 마음이 이제야 잠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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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지금 어디세요? 괜찮으세요?”

노력하여 밝은 목소리를 냈다. 상황이 이러니 저라도 좋은 기운을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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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이제 도너(donor:공여자) 방에 가봐야 해. 그런데 왜 이렇게 목소리가 좋지 않아.

오히려 도영이 혜수를 걱정한다. 밝은 척했지만 도영은 다르다 느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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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제가 안 좋을 게 뭐 있어요. 일하느라 바빠서 그래요. 전 신경 쓰지 마시구요.”

주위를 두리번거린 혜수는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도영과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이상한 소문이 퍼지게 되면 정말 큰일이다. 선거의 판도가 손 쓸 수 없이 악화될 것이다.

복도 한 편에 위치한 회의실의 문을 슬쩍 밀어보니 끼익 소리와 함께 빈 내부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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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었다!’

혜수는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저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누군가가 뒤를 밟는 것을 알아채지는 못했다.

회의실 안에 들어간 혜수는 문에 기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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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혹시…… 기사 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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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기사를 찾아보는 편이 아니라. 시간도 없었고.

도영은 제가 관심 있는 분야나 꼭 알아야 하는 일이 아니면 관심을 아예 끄고 살았다. 그것이 정치판이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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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그럼 계속 보지 마세요. 안 보시는 게 좋아요.”

입에 담기에도 험한 말들이 가득이라 차라리 도영이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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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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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보면 안 돼요.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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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다니까.

도영이 낮게 웃는다. 그 웃음소리에 혜수의 심장이 한층 더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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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신경 쓰지 마. 선거 때문에 누군가 일부러 흘린 거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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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구나. 그때 그 환자가 야당 국회의원의 친척이랬지.

그런 사람과 도영이 직접 부딪혔으니 기철을 선거에서 패하게 하기 위해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기사화시켰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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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자의 퇴원서를 받았어. 그러니 근거 없는 소문에는 신경 쓰지 마. 난 아무렇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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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겠어요. 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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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착하지.

아이를 어르는 듯한 말과 말투에 혜수는 작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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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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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직요. 교수님은요? 식사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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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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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챙겨 드셔야지요! 이럴 때일수록 잘 챙겨드셔야 한다구요. 배가 든든해야 스트레스도 덜 받잖아요. 수술도 남았는데 굶으시면 어떡해요?”

도영이 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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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잔소리만 느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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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라니요. 이건 잔소리가 아니라……!”

퍽!

순간 혜수는 뒤에서 강하게 내리치는 힘에 앞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넘어짐과 동시에 휴대폰이 앞쪽으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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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뭐가 떨어졌나?”

아픈 무릎을 비비며 뒤를 돌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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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에는 죽일 듯 저를 노려보고 있는 이경애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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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 언니?”

일어선 혜수를 어깨로 밀치고 간 경애는 앞에 떨어져 있던 혜수의 휴대폰을 잡아 올렸다. 화면에는 지금껏 통화하던 상대의 이름이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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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경애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나왔다. 액정이 바스러진 화면에는 ‘주도영 교수님’이라는 글자가 보였기 때문에.

몇 번 깜빡인 휴대폰은 제대로 충격을 받았는지 곧 까맣게 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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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봐라? 주도영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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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휴대폰 주세요!”

혜수는 경애에게 달려들어 그 손에서 휴대폰을 다시 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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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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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밥을 그리 챙기나 했더니. 주도영 교수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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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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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신혜수. 네가 뭔데 남의 약혼자 밥을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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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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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렇게 현장에서 걸렸는데. 너 꼬리치고 다니는 거 아직도 못 고쳤니? 얘들아! 유민아! 이리 좀 와 봐! 빨리!”

경애가 목청을 높여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근처에 있었던 듯 곧 유민과 다른 레지던트들이 줄줄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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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좀 봐. 여기서 뭐하고 있었는 줄 알아? 주 교수님이랑 전화를 하고 있더라!”

유민이 앞으로 나서며 경애를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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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언니. 레지던트가 교수랑 전화를 하는데 뭐라 그러면 어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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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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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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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그런 내용이면 내가 이러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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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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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이 순둥아! 신혜수가 어떤 애인지 아직 몰라? 통화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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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슨 내용이길래…….”

유민이 손을 들어 입을 턱, 가렸다. 마치 커다란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말을 잇지 못하는 유민을 경애가 나서 제 등 뒤로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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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넌 뒤로 빠져 있어. 언니가 알아서 할 테니.”

경애가 팔짱을 단단하게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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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아직도 분위기 파악 안 돼? 지금 주 교수님 때문에 어떤 난리가 났는지 몰라?”

의아하다. 교수님의 의료 사고 건이 여기서 왜 튀어나온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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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게. 내가 똑똑히 알려줄 테니 잘 들어.”

영문을 모르겠다는 혜수를 보며 경애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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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 교수님 의료 사고 때문에 난린 거 알지? 덕분에 주기철 후보자의 지지율도 떨어지고 있지. 그럼 어떡해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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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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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아무것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겠지. 고작 하는 거라곤 스트레스 받지 말라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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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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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구원 투수가 여기에 있단 말이야.”

경애가 유민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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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주 교수님이 유민이랑 결혼을 하는 것. 그게 유일한 방법이야.”

유민이 천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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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지율이 40프로 후반까지 떨어졌지. 이대로 가다가는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다고. 지금 주기철 후보자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의료계 인사들의 표를 모으면 대략 5퍼센트. 만약 유민이랑 결혼을 하게 되어 그 사람들의 표를 얻게 되면 50프로가 넘어. 즉, 당선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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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답 없는 혜수를 보며 경애는 더욱 크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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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니? 이제 네 처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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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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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라고. 갖고 있는 거라고는 그 나불대는 입뿐인 주제에. 근데 대체 뭘 믿고 이렇게 나대는 거야?”

경애가 검지로 혜수의 어깨를 콕콕 찔렀다. 우악스러운 힘에 어깨가 흔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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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입이 있으면 말 좀 해 봐. 어?”

혜수는 힘껏 경애의 손을 쳐냈다. 속은 할퀸 자국으로 상처투성이지만 힘껏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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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인지 알려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거 하나는 참 감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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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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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러니 제 인생에 그만 관심 좀 꺼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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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기가 차다는 듯 보고 있는 경애에게 혜수는 쐐기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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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언니가 왜 이렇게 나서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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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신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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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인 조유민 선생님이면 또 몰라도.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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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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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단이 어디 안 갔네. 아님, 뭐 다른 일의 복수라도 하는 건가? 아, 설마 그 껌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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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 이 되바라진 게! 할 짓이 없어서 남의 약혼자나 꼬시는 주제에!”

솥뚜껑 같은 경애의 손이 번쩍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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