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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목숨의 값어치(2) (70/110)


70. 목숨의 값어치(2)
2022.10.01.



 
결국 집중치료실의 환자가 수술실로 옮겨졌다.

끝까지 소리를 지르던 7번 환자는 실은 당신은 그리 수술이 급한 상태가 아니라고, 안정을 취하고 있으면 별일 없다고 병억이 직접 나서서 설명했음에도 결국 자의 퇴원서를 쓰고 다른 병원으로 갔다.

소중한 몸을 이런 위험한 상태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말과 다시는 이 병원에 오지 않을 거라는 말, 너네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그리고 이 일은 이사장에게 바로 보고되었고 오래 지나지 않아 정치판에도 전해졌다.
 

수술실 17번 이식혈관 외과의 방.

예정에 없던 큰 수술을 준비하게 된 의료진들이 입을 댓 발씩 내민 채 투덜댄다.

초응급이라고 수술실을 빨리 준비하라고 닦달하더니 막상 수술실 안으로 들어오는 환자가 너무나도 멀쩡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수술 침대로 옮겨진 환자는 스스로 눈도 깜빡이고 숨도 쉬고 서늘한 공기에 어깨도 움츠릴 줄 안다. 모니터에 나타나는 환자의 활력 징후는 더더욱 응급이라 볼 수 없었다.


“혈압 92에 64? 완전 정상이구먼! 이게 무슨 응급이야?”

“내 말이. 무슨 수술 준비를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시키냐. 나 초응급이래서 화장실에서 끊고 뛰쳐나온 거 알아?”

“집도의 주 교수님이라 그래서 시킨 대로 하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이번에는 틀린 판단 같지?”

“응. 너무 멀쩡해.”

“짜증 나, 진짜.”

곧 도영이 손을 소독한 뒤 들어왔고 모두의 의심 속에서 수술은 시작되었다.
 

쉭쉭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배 안에 찬 피를 빨아들이는 소리였다. 지시를 내리는 도영의 목소리도 쉴 틈이 없다.


“석션.”

“거즈.”

“더 당겨.”

“타이.”

혜수도 그에 맞춰 도영을 도와주기 위해 노력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흐르는 피를 닦고 거치 기구를 이용해 도영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바이크릴 쓰리제로(vicryl 3-0:실 이름).”

“컷.”

“메쩬.”

“보비.”

“컷.”

장을 만져보던 도영이 필드에서 시선은 떼지 않은 채 소리를 쳤다.


“마취과 선생님, BP(혈압) 어떻습니까.”

“57에 28입니다. 5분 전부터 에피네프린까지 달고 있습니다!”

“장 색깔이 점점 나빠집니다. 에피네프린 더 증량하게 되면 제게 알려주십시오.”

“네, 교수님!”

실제로 환자의 배를 열었을 때, 의료진들은 눈을 의심했다.

칼로 찌른 뒤 안에서 휘젓기라도 한 것인지 커다란 혈관이 무려 다섯 개나 찢어져 있는 것이다.

물론 눈으로 셀 수 있는 것만 다섯 개였고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피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뱃속을 적신 피를 헹궈내기 위해 넣었던 투명한 물들은 피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붉게 물들어 되돌아 나왔다.

덕분에 그 붉은 액체를 빨아들이는 쉭쉭 소리가 끊이지를 않는다.

그런데, 또 다른 의미로 수술실이 소란해지기도 했으니. 환자의 상태가 위중한 만큼 사람들이 속닥대는 소리도 커져간다.


“이러다 오늘 테이블 데스 보는 거 아니야?”

“최근 본 환자들 중 제일 상태가 나빠.”

뒤에 서서 떠들어 대는 의료진들을 한 번 노려본 도영이 서늘하게 말한다.


“떠들 시간에 다음 순서를 서포트할 생각이나 하십시오.”

“크흠, 큼, 죄송합니다, 교수님.”

 

다행히 손상된 혈관을 하나씩 메우면서 환자의 상태도 점차 안정되어 갔다.


“마지막 혈관만 남았습니다, 마취과 선생님.”

“알겠습니다. 지금은 에피네프린 모두 중단했습니다.”

“네. 또 변화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하지만 이번에는 또다른 문제가 생겼으니. 바로 환자의 장이 자꾸 부풀어 오른다는 것.

지금까지 환자에게 쏟아부은 피와 수액이 10리터가 넘었다. 혈압과 심박동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수단이었지만, 환자의 원래 피를 두 번이나 바꾸고도 남을 수액 양은 장의 부종을 일으켰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장이 자꾸 도영의 시야와 손을 방해한다.


“신 선생, 잘 안 보이니 오른손 아래로 더 당겨.”

“넵!”

“아미네이비(army-navy:거치기구의 일종) 더 위로.”

“넵!”

도영은 장을 이리저리 밀어가며 찢어진 혈관을 꿰매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수술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모두 지쳐갈 때쯤, 필드 바깥에서 수술을 보조하는 이들이 또 의심의 눈초리를 하고는 불평을 한다.


“아이고, 다리야.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그러니까요. 이게 될까요? 벌써 적혈구만 14개가 들어갔어요.”

“아무리 주도영 교수님이라도 이 사람은 힘들 것 같지?”

“맞아요. 그냥 포기하는 게 낫겠는데요. 저 장 좀 봐요. 수술하고 나가도 못 살릴 텐데.”

“이러다 병원에 있는 피 다 쓰겠네. 오늘 LT(간 이식)도 두 개나 있는데. 그냥 대충하고 끝내면 안 되나. 어차피 죽을 사람인 것을.”

“쉿, 조용히 해요.”

작게 얘기한다고 했는데 들렸던 것인지 도영이 날카롭게 그들을 노려보았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예? 아니,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들을 보는 잠깐의 시간조차 아까웠기에 도영은 다시 손을 놀리며 말을 이었다. 무섭도록 서늘한 목소리였다.


“이 수술에 참여할 의사가 없는 사람은 당장 나가.”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바이크릴 포제로.”

실을 받아든 도영이 드디어 마지막 혈관을 꿰었다. 이 역시 쓸데없는 동선을 조금이라도 만들지 않는 우아하고 정확한 움직임이었다.


“컷.”

도영의 외침에 은빛 가위가 날렵하게 움직인다. 푸른색 실이 톡, 잘려나가고 도영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매서운 시선에 떠들던 이들이 눈을 슬쩍 내리깐다.


“난 이 사람 반드시 살려서 내보낼 거니까.”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확신에 가득 찬 말과 눈빛에 불평을 토로하던 사람들의 입이 딱 다물렸다.
 

마지막 매듭이 지어지고 새어 나오던 피가 드디어 멎었다.

도영은 미세하게 흐르던 출혈까지 다 잡아냈다. 뱃속을 깨끗이 세척해냈고 배액관도 거치했다. 이제 갈랐던 배를 봉합하기만 하면 모든 게 끝이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으니. 근육과 피부를 아무리 끌어당겨도 장이 아직 튀어나와 있으니 맞물리지가 않는다.

장을 다시 고르게 배치해 보기도 하고 가라앉을 수 있게 약을 써봐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닫아? 교수님은 방법이 있나?’

억지로 밀어 넣을 수는 없다. 강한 압력에 의해 괴사가 생길 테니까.


‘장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답답하다. 언제 가라앉을지도 모르는데 하루고 이틀이고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모두가 막막해하던 그때, 도영이 수납장을 향해 눈짓한다.


“저기서 1리터짜리 증류수 백을 하나 꺼내주십시오.”

“증류수요?”

증류수가 쓰일 상황이 아니었던지라 간호사가 되묻는다.


“네. 백으로 된 것. 생리 식염수 백도 괜찮습니다.”

“네.”

곧 간호사가 증류수 백을 준비해 줬다.

백을 받아든 도영은 가위로 입구를 자른 뒤 안에 있던 물을 전부 버렸다. 물이 다 비워진 빈 백을 반으로 갈라 펼친 뒤에는 둥그런 모양을 만들어나갔다.

숨 막히는 고요함 속에 싹둑싹둑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저걸로 뭘 하시려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교수님의 계획을 모르겠다. 배를 닫아야 하는 이 시점에 뜬금없이 수액 백은 왜 자르냔 말이다. 이런 건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저걸로 장이 부푼 걸 어떻게 해결해? 고작 비닐 백인데?’

혜수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백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도영의 눈매가 갸름해진다.


“궁금해?”

“네. 뭘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임시 복막을 만들어 줄 거다.”

“그 백으로요?”

“그래.”

그러고 보니 도영이 재단한 백의 모양은 열려 있는 상처 크기에 딱 맞다.


‘아!’

부족한 피부의 넓이만큼 백이 대신할 것이란 거다.

장이 부푼 것이 나아질 때까지 뱃속 수분의 증발을 차단할 수 있는 멸균된 막이 필요하고, 그것을 증류수 백으로 대신하기로 한 것이다.


‘우와.’

도영은 재단한 백을 환자의 복강 위로 가져가 실로 백과 피부를 한데 꿰매기 시작했다. 실 여러 가닥을 이용해 백과 피부 사이에 빈틈이 없게 꼼꼼히 꿰맸다.

오래 지나지 않아 환자의 배를 덮어주는 인공 막이 생겨났다. 투명한 막 덕에 내부의 장기가 고스란히 보인다. 생경한 모습이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투명했던 막에는 환자의 체온과 서늘한 수술실 공기의 차이로 뿌옇게 김이 서렸다.

그 모습이 또 놀라워 혜수는 그 광경을 눈에 단단히 새겼다.

혜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놀란 눈으로 저들끼리 속삭인다.


“세상에. 이런 건 처음 봐!”

“이런 방법도 있어?”

“정말 신기하다.”

마지막 실을 잘라낸 도영이 가위를 내려놓았다.


“수술 끝입니다. 진정 상태로 중환자실로 가겠습니다.”

뒤로 물러나며 피범벅이 된 장갑과 수술 가운을 벗어냈다.


“신 선생. 이 사람 이틀 뒤로 다시 수술 스케줄 잡아. 밖에서 이데마(edema:부종) 빼고 제대로 배 닫게.”

“넵.”

“환자가 배 상태를 보게 되면 충격받을 테니까 그때까지 진정제 계속 투여하고. 마찬가지 이유로 보호자에게도 미리 언질해 두도록.”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수술방에서의 마무리가 모두 끝났다.

모니터에 표시되는 활력 징후는 안정적이다. 환자의 얼굴색 또한 수술 전에 비해 훨씬 나아 보인다.


‘수술이 잘 되어서 정말 다행이야.’

초반 뱃속을 본 뒤에는 도영을 제외한 모두가, 심지어 혜수도 수술 중 사망을 예상했다.

하지만 환자는 무사히 살아서 수술실을 나갔다.

혜수가 유민에게 맞서지 않고 원래대로 7번 환자를 수술실에 넣었더라면, 그래서 제때 수술실에 못 들어갔더라면, 또 도영의 예리한 손과 복막을 비닐 백으로 대체하는 기지가 없었더라면 이런 결과는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혜수는 제 손을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 딱 달라붙는 장갑을 낀 덕에 곳곳에 팬 자국이 남은 손을.

하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정말 멋진 일이야.’

혜수는 자부심과 함께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꼈다. 저와 도영이 합심하여 만들어낸 기적 같은 수술 결과에 대해.
 

 
한대 병원의 원장실.

병억은 치솟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쾅쾅 책상을 내려치고 있었다.


“신혜수, 신혜수! 감히 내 딸을, 아니 나를 모욕해!”

유민은 그런 병억을 말리고 있었다.


“진정하세요, 아버지.”

“고작 1년 차 주제에. 고 계집이 너를, 나를 무시했어!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냔 말이다!”

계속 책상을 내려치는 병억을 유민이 달랜다.


“아버지, 너무 화내지 마세요. 오늘은 주 교수님이 직접 끼어드셔서 이렇게 된 거예요. 교수님이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걸 아니까 혜수가 일부러 나선 거예요. 평소라면 감히 그런 건방진 행동을 하진 못했을 거예요.”

“으아! 신혜수!”

외마디 고함과 함께 병억이 책상을 쾅, 또 주먹으로 내리쳤다.

몸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진동에도 유민은 익숙한 듯 가만히 있는다. 여전히 평온한 얼굴이다.


“아우, 열 받아. 아우, 짜증 나!”

씩씩대던 병억은 털썩 의자에 앉았다.


“더 이상 보고만 있으면 안 되겠어. 신혜수, 저 오만방자한 것을 당장 내 눈앞에서 치워야겠어!”

“네, 아버지.”

“선거는 곧이야. 그 전에 저 계집애 때문에 다 틀어지면 끝장이야! 당장 치워야 해.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을까.”

끙끙대던 병억이 유민을 쳐다본다.


“앞으로는 어찌할 셈이냐.”

“생각 중입니다.”

“흐음.”

딱딱, 책상을 두드리던 병억이 뭔가 생각이 난 듯 손을 딱 튕겼다.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유혹이라도 해보면 어떠냐. 술이라도 먹여서 호텔로 데려가던가.”

딸에게 서슴지 않고 몸으로 들이대라는 말을 하는 병억을 보며 유민의 입이 꾹 다물린다.


“난 반드시 장관이 돼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네 짝으로는 주도영이 최선이다. 사내새끼 다 똑같지, 뭐. 아무리 천하의 주도영이라도 그건 통할 게다. 안 그래?”

“…….”

유민이 눈을 내리깐 채 대답이 없자 병억이 책상만 두드린다. 초조하다는 것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안 되겠다. 신혜수 일은 나도 같이 알아보마. 더는 너에게만 맡겨둘 수가 없다.”

“…….”

잠깐의 정적 후, 유민이 다시 병억을 바라보자 병억이 반색을 한다.


“뭐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는 거냐?”

“아버지. 어떤 일을 하시던 주도영 교수님께는 해가 가지 않게 해주세요.”

“뭐라고?”

“주 교수님께는 아무런 영향이 가지 않게 해주세요. 충분히 그러실 수 있잖아요.”

“허! 기가 차서.”

장관이 될 수 있는 계획을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이 도영은 건드리지 말라?

병억은 서랍을 쿠당탕 열어 전자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허, 나 원 참, 소리를 칠 때마다 뿌연 연기도 같이 퍼져나갔다.


“이제 와서 네 마음이 진심이라고 말 하고 싶은 거냐?”

“…….”

유민이 또 입을 꾹 닫고 있자 병억은 고개를 휘저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유민이 넌 나가 봐.”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나도 몰라, 지금은. 생각해 봐야지.”

“정해지면 제게도 먼저 알려주세요.”

“…….”

“네?”

“알았다.”

병억은 귀찮은 듯 손을 내저었고 유민은 단정하게 허리를 굽혀 보인 다음 원장실을 나갔다.

혼자 남은 병억은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집어 던지고는 중얼거렸다.


“앞으로의 일은 유민이랑 상의를 하면 안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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