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 목숨의 값어치 (1) (69/110)


69. 목숨의 값어치 (1)
2022.09.28.



 


“무슨 말이지? 신 선생이 뭘 책임져야 한다는 거야.”

도영이 대화의 마지막 부분을 들었나 보다. 유민은 즉각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교수님. 오더에 관해 혜수가 모르는 게 있어서 제가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싱긋 웃어 보인 유민은 병억에게 다가가 살갑게 말을 붙였다.


“아버지는 어쩐 일이세요?”

“여기 환자 중에 내가 봐줘야 할 사람이 있대서 내려온 참이다. 마침 주 교수 환자라더군.”

병억처럼 병원 최고의 위치에 있는 내과 교수가 직접 응급실에 내려와 환자를 볼 일은 보통 없다. 그렇다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병억이 보러 온 환자는 아마 혜수의 환자인 7번 베드 환자일 것이다. 국회의원의 친척이라는, 국회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그 환자.


“그 환자는 7번 베드에 있습니다.”

도영도 VIP의 소식을 들었는지 대답한다. 역시, 그 사람이 맞았다.


“신 선생, 7번 환자 수술 동의서는 다 받았나?”

“네, 교수님.”

“마취과 연락 오면 수술실에 바로 올리도록 해.”

“…….”

혜수가 입을 딱 다물고 그냥 서 있기만 하자 유민이 혜수와 도영의 사이에 끼어들며 옷깃을 살짝 끌어당겼다.


“교수님, 새로 온 환자는 집중치료실에 있습니다. 상태가 좋지 않으니 빨리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 보러 가지.”

병억에게 짧게 고개를 숙여 보인 도영은 유민과 집중치료실로 걸어갔다.

응급실 중앙에 선남선녀 둘이 나란히 걸어가니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의 시선이 절로 모인다.

병억 또한 그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흐흐, 소리를 내어 한참을 웃고는 팔자걸음으로 7번 환자에게 다가갔다.


“아이고, 선생님.”

“누구시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한대 병원의 병원장 조병억입니다. 불편하신 건 없으십니까?”

병억은 허리를 땅에 닿을 듯 숙이고 남자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그때 혜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네, 외과 1년 차 신혜수입니다.”

-마취과예요. 혈전 환자 지금 수술실로 올리세요. 11번 방입니다.

“아…….”

지금 7번 환자를 수술실에 넣으란다. 보통 한 과에 주어지는 응급 수술실은 한 개. 그러니 7번 환자가 수술실에 들어가 버리면 집중치료실 환자의 치료는 그만큼 늦어진다.

혜수는 다시 한번 집중치료실 환자의 모니터와 검사 수치를 떠올렸다.


‘아니야. 내 판단이 맞아. 저 사람, 네 시간 절대 못 버텨.

반드시 집중치료실 환자를 먼저 수술실에 넣어야 한다.


-왜요? 왜 말을 하다 말아요?

“저, 선생님. 5분 안에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그러자 마취과 의사가 타박을 한다.


-아, 뭡니까. 병원장님 전화까지 와서 순서 바꿨더니. DC(취소를 일컬음)예요?

“그게 아니에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전화를 끊은 혜수는 도영을 향해 뛰어갔다. 다급한 발소리에 도영이 뒤를 돌아본다.


“신 선생?”

“교수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무슨?”

“집중치료실 환자 관련해서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달라붙는 혜수를 보고 유민이 인상을 쓴다. 평소의 유민답지 않은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신 선생! 정말 이럴 거야?”

혜수는 유민을 지나쳐 도영에게 더 가까이 갔다. 주먹을 꽉 쥐고는 또박또박 말했다.


“저는 집중치료실 환자분이 지금 수술실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호사들이 입을 떡 벌린다.

신 선생님 무슨 배짱이지? 주도영 교수님 앞에서까지 이러다니! 틀린 판단이면 사달이 날 텐데!


“지금이라. 이유는?”

“혈압, 심박수, 산소포화도 그래프의 모양, 피부색, 헤모글로빈 수치를 모두 고려했습니다.”

“조 선생이 나한테 노티 했을 때는 그런 말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분 바이탈(vital sign:활력징후) 기록한 것 어딨지?”

도영이 유민에게 손을 까닥이자 유민이 태블릿을 켜 도영에게 건넸다.


“교수님, 말씀드리지 않은 이유는 모두 정상 범위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도 정상이구요.”

방금 측정한 환자의 혈압은 99에 63이었다. 심박수는 이전보다 조금 더 늘어 90 후반대였지만, 그래도 정상 범위이다. 환자가 느끼는 통증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수치이다.


“특별하지 않아 말씀 안 드렸습니다.”

“음.”

도영이 한동안 모니터를 관찰하다가 다시 유민에게 물었다.


“조 선생의 계획은 뭐야.”

“FAST(외상환자에게서 하는 응급 초음파) 시행 후 CT 촬영할 예정입니다. NPO가 풀리면 검사 결과에 따라 수술을 할 것입니다. 그사이 수술 동의서도 받구요.”

이번에는 도영이 혜수를 쳐다본다.


“신 선생의 계획은?”

“FAST 시행 후 바로 수술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식, 동의서와 상관없이요.”

묵묵히 둘의 말을 듣던 도영은 다시 한번 태블릿을 들어 검사 결과와 모니터의 숫자들을 살폈다.

초조히 시간이 흐르고, 혜수가 꽉 쥔 주먹에 어느새 땀이 맺혔다. 바싹 마른 입술이 뻑뻑했다.

혜수는 도영의 입만 쳐다보았다.


‘제발, 제발요.’

지금은 제가 도영의 연인인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도영이 무작정 제 손을 들어줄 사람이 아님을 아니까. 도영은 환자의 상태만으로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때, 언제 온 건지 병억이 끼어든다.


“주 교수, 주 교수! 내 보기에는 2년 차 조유민 선생의 말이 교과서적으로도 맞…….”

병억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영이 답했다.


“원장님. 이 환자의 담당 교수는 저입니다.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그, 그래.”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모두가 도영의 입만 쳐다보는 가운데 마침내 도영이 유민을 부른다.


“조 선생.”

“네, 교수님.”

“지금 바로 마취과에 연락해. 7번 환자 들어갈 방 다른 환자 쓰겠다고.”

병억이 입을 떡 벌린다. 간호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설마 신혜수 선생님이 맞고 조유민 선생님이 틀렸다는 건가? 1년 차가 2년 차를 이겼어? 심지어 그 2년 차는 조유민 선생님인데?

간호사들의 시선이 유민과 혜수, 그리고 오물을 씹은 표정으로 서 있는 병억을 왔다 갔다 했다.

굳은 표정의 유민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이분 인적 사항이 아직 확인이 안 됐습니다, 교수님.”

“무연고자로 처리하고 일단 진행해. 바이탈 흔들리는 복부 자상 환자, 수술명 진단적 개복술. 금식 시간은 지키지 못했다고 하고. 마취과에는 FMS(다량의 수액, 혈액을 한 번에 주입할 수 있는 장치)도 준비하라 그래.”

“…….”

유민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서 있기만 하자 도영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뭐해? 내 말 안 들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수술 어시스트는.”

말을 잠깐 멈춘 도영은 혜수를 쳐다보았다.


“신혜수, 네가 들어와. 네가 진단한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직접 확인하라는 의미에서다. 그리고 그동안 콜은 조 선생이 받는다. 지금 신혜수에게 배정된 7번 베드 환자도 이제부턴 선생이 보도록.”

“네, 교수님.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유민.”

도영이 다시 유민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 속에 네가 얼마나 한심한지 아느냐, 라는 말이 숨어 있는 것처럼 느껴져 유민은 가까스로 대답했다.


“네, 교수님.”

“감을 좀 더 키우는 게 좋겠군.”

“네?”

도영은 검지로 제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교과서만 외우지 말란 뜻이지. 결과 속에 숨겨진 것을 보는 것을 연습해.”

“……네. 명심하겠습니다.”

최악의 패배다. 유민은 떨리는 몸을 억누르며 대답했고 병억은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을 급히 커튼 뒤로 숨겼다.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문제는 7번 베드의 환자였다. 이 소란을 고스란히 다 들은, VIP라는 그 환자.


“잠깐만요! 지금 저 방 안에 있는 환자가 나 대신 수술을 들어간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만?”

도영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자 환자가 더 크게 소리를 친다.


“뭐요? 그렇습니다만? 그렇습니다마아안?”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쪽 내 담당 교수잖소?”

“맞습니다.”

“내 수술은? 내 수술 순서잖아!”

“환자분, 응급 수술의 순서는 응급의 정도에 따라 결정하는 겁니다.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먼저 왔는데! 저기 저 사람은 여기 온 지 30분도 안 지났고, 나는 세 시간이 넘어가!”

침대를 쾅쾅 내리치는 환자에게는 이제 존댓말을 할 이성도 남아 있지 않아 보였다.

7번 침대로 조금 더 가까이 간 도영은 인내를 가지고 다시 설명해주었다.


“응급실에서의 순서는 애초에 중요하지 않습니다. 환자분보다 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이 온다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지금 이 환자보다 더 숨이 넘어가는 사람이 도착한다면, 순서는 또 바뀝니다. 물론 이 사람보다 급한 경우는 드물겠지만.”

“지금 내 다리에 혈전이 쌓였잖아! 내가 응급이라고! 이러다 다리 못 쓰게 되면 책임질 거야?”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환자분보다는 저 집중치료실에 있는 분이 더 우선입니다. 이럴 시간에 누워서 안정을 취하는 게 더 건강에 도움이 될 겁니다.”

“하! 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모릅니다.”

“내 이름 대면 대한민국에 나 모르는 사람 없어! 너 이렇게 하는 거 분명히 후회할 거야!”

협박이 섞인 으름장에도 도영은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픽, 바람 빠진 소리를 내고는 성큼 환자에게 다가갔다.

순식간에 침대에 커다란 그늘이 생겼다. 도영이 만드는 분노가 섞인 위압감이 그늘 위로 드리운다. 움찔, 환자가 몸을 뒤로 슬쩍 물린다.


“뭐, 뭐야!”

도영은 환자에게 더 다가가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췄다.


“글쎄, 난 저 환자를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데.”

“!”

도영은 다시 허리를 세웠다.


“수술대 위에서는 그 사람이 누구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공평합니다. 당신이 무얼 하는 사람인지, 돈을 얼마나 버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뭐라!”

소리는 치는데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간다. 마지막에는 고개를 돌려 서늘한 시선을 슬그머니 피해 버렸다.

때마침 초음파 기계가 도착했다. 도영은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려 집중치료실로 들어갔다.

졸지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환자가 고함을 친다.


“어디 가!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도영이 대꾸 없이 초음파만 보자 더욱 소리를 지른다.


“웃기지 마! 죽음이 공평하다고? 공평하지 않다는 걸 내가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고! 어?”

도영은 차분히 초음파를 볼 뿐이었다.


 


“으으! 내가 너 진짜 가만 안 둬!”

씩씩대던 환자는 난처한 얼굴로 서 있는 병억을 홱 쳐다보았다.


“병원장! 지금 저놈을 그냥 둘 겁니까? 저 새파랗게 어린놈이 날 무시했다고!”

“어, 저, 환자분 고정하세요. 이렇게 화를 내시면 몸에 좋지 않…….”

“내가 이렇게 그냥 있으면 더 몸에 안 좋을 겁니다! 분명히 나와 관련해서 전화를 받았을 텐데 날 이렇게 대접해요?”

“……알겠습니다. 제가 다시 주 교수를 설득해 볼 테니 일단 누우세요. 이렇게 움직이시면 혈전이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에잇!”

짧게 욕설을 내뱉은 환자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한숨을 푸후후, 내쉰 병억은 도영에게 다가갔다.


‘내 팔자야.’

당연히 병억도 VIP의 수술을 먼저 넣고 싶었다. 국회와 연줄이 있으니 당연히 잘 보여야 하는 데다가 이사장도 직접 전화가 왔었다. 조금의 지체도 없이 진행하라고.


‘그런데 주도영 저놈 고집이 보통이냔 말이지.’

더군다나 고작 1년 차의 의견을 받아 정해진 수술 순서다. 유민의 의견은 무시한 채.

그리고 그 1년 차는 눈엣가시인 신혜수다.

담당 교수가 도영만 아니라면 병억은 벌써 신혜수를 호되게 혼냈을 거다. 감히 뚜렷한 이유도 없이 수술 순서를 바꾸려 하냐고. 그것도 VIP의 순서를.

그럼 제 주제를 안 신혜수는 구석 어딘가에 찌그러져 울겠지.


‘아우, 수틀리면 파혼하겠다 날뛸까 봐 세게 나가지도 못하겠고.’

어찌 도영을 설득할까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벨 소리가 울린다. 이사장이었다.


‘젠장.’

“크흠, 큼, 큼. 아이고오, 이사장님.”

 

집중치료실 환자의 초음파를 본 도영은 이 환자를 즉시 수술실로 옮기라 명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환자는 죽습니다. 서두르세요.”

“네!”

모두가 환자를 옮기느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병억이 머뭇머뭇 다가온다.


“주 교수.”

“무슨 일이십니까.”

“7번 베드 환자부터 수술실에 넣지.”

도영의 짙은 눈썹이 꿈틀한다.


“그 이야기는 끝난 걸로 압니다만.”

“이사장님이 방금 전화가 왔어. 지체하지 말고 빨리 넣으라 하시네.”

그 말을 들은 7번 환자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미소가 가득 퍼졌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거 봐라, 내가 누군지 이제 알겠느냐, 라는 말을 하고 싶은가 보다.

하지만 다음으로 들려오는 도영의 말에 입을 떡 벌린다.


“제 환자의 수술 순서는 제가 결정합니다. 전혀 관련 없는 타과 교수님께서 나설 일이 아닙니다.”

“주 교수!”

“7번 환자는 최악의 경우가 되면 다리만 못 쓰게 되겠지만, 집중치료실 환자는 당장 수술실을 들어가지 않으면 오늘 테이블 데스(table death:수술 중 사망)를 보게 될 겁니다.”

“…….”

도영은 검지로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고 있는 7번 환자를 다시 가리켰다.


“물론 저 환자도 제가 수술을 한다면 두 다리로 걸어서 병원을 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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