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올바른 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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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올바른 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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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올바른 행실
2022.09.24.
여전히 도영만 생각하면 울컥울컥 뭔가가 치솟는다.
‘으아아악! ……후. 진정해, 진정해.’
꾹꾹 마음을 다스리며 일하던 중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네, 외과 1년 차 신혜수입니다.”
“선생님, 조금 전 보신 7번 환자 수술 동의서 받아주세요.”
“네, 바로 갈게요.”
혜수는 응급실로 내려갔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환자가 없다.
“7번 베드 환자 어딨어요?”
“아, 선생님, 빨리 오셨네요. 어쩌죠. 방금 엑스레이실 갔거든요. 마침 순서가 되어가지고.”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네.”
“NPO(수술 전 금식 시간)도 다 됐고 수술 전 준비도 다 됐으니 엑스레이만 찍고 오면 수술 들어가면 되겠네요.”
“네, 선생님.”
환자의 차트를 열려는 혜수에게 간호사가 속삭였다.
“그리고 이 7번 환자 VIP래요.”
“VIP요?”
“국회의원 김종수가 직접 전화 왔대요.”
“김종수 의원?”
김종수라면 야당, 그러니까 도영의 아버지 주기철과 반대쪽 인사다. 야당 내에서도 호전적인 성미로 유명한 사람으로 종종 격한 발언과 몸짓이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친척이라나 뭐라나. 그리고 저분도 국회에서 한자리 하는 분인가 봐요.”
“그런가요.”
“어쨌든 잘 부탁한대요. 뭐 어차피 오늘 당직 교수님이 주도영 교수님이니 예후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만.”
“그렇긴 하죠.”
“그냥 이런저런 지체 없이 빨리 좀 봐달라는 뜻인 것 같아요.”
“…….”
그런 부탁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어차피 주 교수님은 환자의 치료가 조금이라도 지체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데, 라고 생각하며 혜수는 환자의 차트를 살폈다.
7번 환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응급실 문이 활짝 열렸다. 구조대들이 한 환자의 카트를 끌고 급히 들어온다.
“연락드렸던 스텝 운드(stab wound:자상) 환자입니다!”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였던지 카트 옆에는 여러 명의 의료진이 붙어 있었다.
환자는 곧장 7번 베드의 맞은편에 있는 집중치료실로 옮겨졌다. 칼에 찔린 환자였기에 바로 2년 차인 유민에게 연락이 갔다.
잠시 뒤 응급실로 내려온 유민은 여러 가지 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혈액 타이핑 바로 나가주시고 A라인(지속적동맥압측정관), C라인(중심정맥관) 바로 넣을게요.”
그 사이, 혜수의 환자도 엑스레이를 찍고 돌아와 혜수는 7번 베드로 갔다. 뚱한 표정의 환자가 또 왜 왔냐는 듯 쳐다본다.
“환자분, 곧 수술 들어가실 거예요. 수술 동의서 작성 부탁드려요. 다리 혈전 제거 수술은 2년 전에도 하신 적 있지요?”
“했죠. 그런데 하면 뭐 합니까? 이렇게 또 재발하는걸. 에이, 쯧.”
환자는 시종일관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수술을 했음에도 재발을 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음이 말투와 태도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번엔 제대로 하려나 몰라, 쯧.”
혜수는 상냥하게 말을 이었다.
“환자분, 이 질환은 완치되는 병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재발할 수…….”
“하, 젊은 선생. 내가 모르는 줄 알아요? 의사들 면피용으로 재발한다는 말 툭하면 덧붙이는 거잖소! 나도 그런 말은 백 번도 할 수 있어!”
혜수는 애써 웃었다.
“집도 교수님은 아까 진찰하셨던 주도영 교수님이시고 예정 수술 시간은 두 시간 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다른 수는 없었는지 환자는 툴툴대면서도 서명을 하기는 했다.
“그럼 조금 있다 수술실에서 뵐게요.”
“흥!”
7번 베드에서 나온 혜수는 칼에 찔렸다던 환자가 들어간 집중치료실을 지나쳤다.
그런데 우연히 쳐다본 환자의 얼굴이 이상하리만치 하얗게 질려 있다.
‘얼굴색이 왜 저래?’
묘한 위화감에 혜수는 아예 발을 멈추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서는 유민이 환자를 흔들고 있었다.
“환자분, 환자분.”
환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몇 번 더 말을 걸어도 손만 까닥인다.
“흠, 멘탈은 있는데 기력이 없으시네. 보호자는 아직이에요?”
“네, 못 찾았어요. 술집에서 싸우다가 오신 건데 지갑이랑 휴대폰이 없어서 연락이 안 돼요.”
“칼에 찔린 거랬죠?”
“네. 경찰 말로는 옆자리 손님이랑 시비가 붙었고 집기를 던지면서 다투다가 상대방이 가져온 칼에 찔렸다고 해요. 복부를 여러 번.”
“네, 알겠어요.”
말을 붙이기는 포기한 유민은 환자의 배를 꾹꾹 눌러보았다.
“윽.”
통증이 심한지 환자는 손이 닿을 때마다 신음을 흘렸다. 환자를 이리저리 살펴본 유민은 손을 뗐다.
“지금 위치를 봐서는 횡행결장에 손상이 예상되네요. 초음파와 CT 찍어보고 결과에 따라 수술을 할게요. NPO(수술 전 금식 시간)는요?”
간호사가 시계를 흘긋 보았다.
“술집에서 술 마신 게 마지막이니까 네 시간 남았어요.”
“그럼 어차피 그때까지 기다려야겠네요. 그동안 필요한 검사를 하면 되겠어요.”
“네, 선생님.”
“일단 보호자 최대한 연락 좀 닿게 해주세요. 그래야 수술을 들어가든 말든 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피검사 결과 나오면 노티 주시고요.”
“네, 선생님.”
응급처치를 마친 유민은 그대로 응급실을 나가려 했다. 환자와 유민을 번갈아 보던 혜수는 생각 끝에 유민을 쫓아가 붙잡았다.
“저, 선생님.”
유민이 뜻밖이란 표정으로 쳐다본다.
“응? 신 선생? 나 부른 거야?”
“제 생각에는 지금 들어가야 합니다.”
“뭘 말하는 거야?”
“집중치료실 환자요. 선생님이 방금 보셨던 남자 환자.”
“아, 저 환자? 그런데 어딜 들어간다고?”
“수술실이요. 기다리지 말고 지금 바로 들어가야 해요.”
“…….”
순간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한 유민의 눈매가 바짝 굳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2년 차인 자신이 어떻게 하겠다 오더를 내린 상태인데 고작 1년 차인 혜수가 끼어들었다.
게다가 자신이 내렸던 오더와 정반대의 의견을 내고 있다. 제까짓 게 감히.
유민은 다시 눈을 휘었다.
“혜수야, 잘 못 들었어. 다시 말해줄래?”
“우연히 말씀 나누는 것 들었어요. 칼에 찔린 환자라고.”
“응, 맞아. 그러니까 초음파 해야지. 그러고 나서는 CT 찍고. 복부 손상의 경우엔 그렇게 평가하는 거잖아.”
“하지만 환자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여요.”
“음? 뭐가 안 좋다는 거야? BP(혈압)도 100에 65면 괜찮고 하트 레이트(heart rate:심박수)도 92. 괜찮은데?”
“정상 범위이기는 한데 조금씩 흐트러져 있어서요. 또 피부색도 찜찜해요.”
“피부색이 왜?”
“너무 하얘 보여요.”
“원래 하얀 사람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좀 다른데요. 하얀 피부랑은 느낌이 달라요.”
“느낌이라고?”
“……네.”
그 대답에 유민이 고개를 틀어 혜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조금 더 날카로워진 말투였다.
“그래서. 신 선생이 지금 하고 싶은 말은 뭐야? 그 느낌을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FAST(외상환자에게서 하는 응급 초음파)만 하고 수술실 들어가야 합니다.”
“CT 없이 바로 들어가자는 거야?”
“네.”
“글쎄. 내가 보기에는 CT도 안 찍고 급하게 들어갈 이유가 없는데. 찍어보고 그때 문제 있으면 수술 들어가면 되잖아.”
“하지만 그때까지 못 기다릴 거예요.”
“대체 왜 못 기다린다는 거야? 환자는 괜찮아.”
“괜찮지 않아요, 선생님. 산소포화도 그래프가 너무 들쭉날쭉해요. 젊은 환자가 이렇게 변동을 크게 보이는 게 이상해요.”
실제로 환자의 검지에 끼워놓은 산소포화도 측정기의 그래프는 환자가 숨을 내쉴 때마다 큰 물결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또 체격 좋은 남자치고는 혈압이 낮은 편이라서요.”
“신 선생. 누가 그걸 몰라? 내가 그런 것도 감안 안 했을까 봐? 그리고 환자 좀 봐. 선생 눈에는 출혈이 보여?”
유민이 저 멀리 베드에 누워 있는 환자의 배를 가리켰다. 깨끗한 환자의 배를.
“하지만 선생님, 겉은 깨끗하기는 하지만 내부에 보이지 않는 출혈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아. 신 선생. 그런 짐작은 누구나 할 수 있어.”
혜수와 유민이 팽팽히 대치하던 그때, 간호사가 피검사 결과가 나왔다며 결과지를 갖다 주었다. 결과를 본 유민이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이 사람 헤모글로빈(hemoglobin:빈혈 수치) 얼만지 알아?”
“얼마인데요?”
유민이 혜수에게 보란 듯 결과지를 내밀었고 혜수는 결과지를 읽었다.
“12.1이네요.”
“그래. 지극히 정상이네. 남자치고는 낮은 범위에 있기는 하지만 정상이지. 그런데도 내부 출혈이라고?”
“하지만 선생님, 헤모글로빈 수치는 반응을 늦게 하기 때문에 즉각적인 출혈을 나타내지는 못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신 선생! 그건 나도 알아. 그걸 모르는 사람이 이곳에 있을까?”
유민이 날카롭게 소리친 뒤 머리를 쓸어올렸다. 아무도 듣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너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건방지구나. 감히.”
혜수와의 대화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멀리 있던 간호사들도 하나둘 모여든다.
“신 선생님 왜 저래? 1년 차가 2년 차한테 대드는 거야? 게다가 상대가 조유민 선생님이네? 뭐 잘못 먹었나?”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도 괜찮아 보이는데 뭘 믿고 저러는 거야.”
그들이 보기에도 지금 상황은 1년 차의 2년 차에 대한 하극상이었다.
유민은 허리에 손을 얹었다.
“신 선생. 지금 선생의 말은 조금씩 다 수상하다는 것뿐인 걸 알아? 그리고 뭐? 느낌? 그건 정확한 진단이 아니잖아. 의학적인 판단이 아니라고.”
“…….”
“나는 지금 그 진단을 위해서 CT를 찍자는 거야.”
“선생님 말씀처럼 출혈을 강하게 나타내는 징후는 없어요. 하지만 조금씩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내부 출혈을 확실히 배제하지 못하니 지금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CT를 찍지 말자? 선생의 그 느낌만 믿고?”
“물론 얼굴색은 느낌이지만 바이탈 수치는 실제로 의심스러운 것들이…….”
유민은 혜수의 말을 끊었다.
“게다가 이 사람 수술 지금 들어가려면 NPO(수술 전 금식 시간) 못 지켜. 네 시간 남았거든. 또 이 사람 무명남(인적 사항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 임시로 넣어놓는 이름)이야. 보호자가 없다고, 지금.”
“…….”
“CT를 찍었을 때의 이득은? NPO를 지키지 않았을 때의 위험은? 그걸 다 무시하고 수술을 들어가자는 거야?”
“무시하는 게 아니에요, 선생님.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니 거기에 맞춰 치료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하, 한숨을 내쉰 유민은 팔짱을 단단하게 꼈다.
“좋아. 그럼 지금 들어간다고 쳐. 검사 없이 수술 들어가는 것. 선생이 다 책임질 수 있어? 보호자 동의도 받지 못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재깍 없자 유민이 혜수를 밀어내고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환자의 차트를 켠 뒤 혜수가 보란 듯 초음파와 CT 오더를 입력한다.
“없나 보네. 그렇지?”
“…….”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특히 병원에서는 더더욱 행실을 조심해야 하지.”
‘행실’이라는 단어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마치 다른 것을 지칭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 환자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 선생은 할 일 다 했으면 올라가.”
“……하지만, 선생님.”
“하지만 뭐? 할 말이 더 남았어?”
“…….”
유민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출혈을 강하게 나타내지 않았고 모든 게 애매했다.
혈압도 조금 낮고 심박 수도 조금 빠르다. 헤모글로빈 수치도 조금 낮다. 피부색도 조금 이상했을 뿐이다.
게다가 이대로 금식도 지키지 않고, CT도 찍지 않고 들어갔다가 정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엔 일이 커진다.
모호한 상황에서 제대로 검사도 하지 않고, 환자 본인이나 보호자의 동의도 받지 않고 수술을 들어간 것에 대해 누군가 나중에 반드시 걸고 넘어질 것이다.
보호자든, 경찰이든, 검찰이든.
“할 말 끝났으면 올라가.”
유민은 손을 밖으로 내저었다. 그래도 혜수는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넘길 문제가 아니야. 저 사람 확실히 이상해.’
환자를 어떻게 하면 수술실에 넣을 수 있을까 생각만 하고 있을 뿐.
고집스럽게 서 있는 혜수를 보며 유민이 하, 소리를 낸다.
“그래, 그럼 신 선생은 거기 그렇게 서 있어. 밤새도록.”
CT 오더를 입력한 유민은 전화기를 들더니 CT실에 전화까지 했다.
“안녕하세요, 외과 2년 차 조유민입니다. CT 순서 조정 부탁드리려고요.”
CT실에서 긍정의 대답을 했는지 유민이 예쁘게 웃는다.
“네, 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올려보낼게요.”
전화를 끊은 유민이 혜수를 올려다보았다.
“일은 이렇게 잘 진행되고 있어. 그러니 이만 가는 게 어때? 보아하니 책임을 질 생각은 없는 것 같…….”
유민이 급히 말을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한다.
“오셨어요, 아버지, 교수님.”
뒤돌아보니 도영의 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유민의 아버지 병원장 조병억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