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공주와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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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공주와 하녀
20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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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클리닉의 이식센터. 도영은 제니퍼에게 밤사이 노아의 상태를 인계해 준 뒤 중환자실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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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빨리 귀국할 수 있겠어.’
노아의 상태는 애초에 도영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나아지고 있었다. 도영이 집도한 완벽했던 수술에다가 수술 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은 주도면밀한 관리의 합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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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을 바꿔야겠군.’
긴 복도를 지나 식당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던 도영은 혜수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휴대폰을 찾다가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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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놔두고 왔군.’
제니퍼가 오늘 저녁에 친구의 생일파티에 같이 가자며 들러붙는 것을 뿌리치다가 잊어버린 것이다. 도영은 혀를 차며 다시 중환자실로 향했다.
다시 도착한 중환자실. 도영은 중환자실 한편에 붙어 있는 직원 휴게실로 들어갔다가 눈에 보이는 장면에 멈춰 서고 말았다.
제니퍼가 컴퓨터 앞에 앉아 지퍼백에 담긴 아몬드를 오독오독 씹고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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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은 순식간에 제니퍼에게 달려가 지퍼백을 잡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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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지금 이게 무슨 짓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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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 왜 다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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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해. 뭐 하는 짓이냐고.”
서늘하다 못해 주위를 얼려버릴 것 같은 도영의 시선을 보며 제니퍼가 슬그머니 입에 넣던 아몬드를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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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냉장고에 있던데. 도영이 두고 간 거야? 나 배고파서 좀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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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도영이 이를 뿌득 가는 소리에 제니퍼가 예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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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좀 먹었다고 지금 화를 내는 거야? 그러지 마. 내가 다시 사줄게.”
그래도 가만히 있자 제니퍼가 도영에게 다가와 팔짱을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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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나랑 같이 쇼핑 갈래? 네가 원하는 걸로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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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손 치워. 경고하는데, 내 몸에 손대지 마.”
도영은 제니퍼를 세차게 뿌리치고는 치밀어 오르는 욕을 애써 삼키며 지퍼백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것을 다른 이들이 볼 수 있는 냉장고에 넣어둔 자신의 죄다 생각하며.
하지만 제니퍼의 기행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으니.
도영은 컴퓨터 앞에 놓아뒀던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 그사이 온 연락은 없나 살펴보았다.
그런데, 수신 전화 목록에 혜수의 이름이 있다. 심지어 통화 시간이 2분 정도로 표시되어 있다. 도영이 중환자실을 나갔던 사이 누군가 도영의 휴대폰을 집어 혜수와 통화를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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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이라는 건데. 설마 브라운이?’
도영은 제니퍼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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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혹시 내 휴대폰 만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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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까 전화가 오길래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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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남의 휴대폰에는 손대지 않는 것이 예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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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안. 계속 벨이 울리길래 밥 먹으러 갔다고 말해주려고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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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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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화 온 그 사람 누구야? 어린 여자 목소리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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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꺼.”
그렇게 돌아서려던 도영은 이어지는 말에 발을 멈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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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장난삼아 네 애인이라 그러니까 엄청 놀라던 눈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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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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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애인이라 그랬다고. 우리 달링 지금 밥 먹으러 갔다 그랬는데.”
순간 쾅, 하고 테이블을 내려치는 소리에 제니퍼는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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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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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장난도 정도껏 해.”
하지만 저를 무섭게 노려보는 도영을 보고도 제니퍼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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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 이건 정말로 단순한 위트일 뿐이야. 네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난 도저히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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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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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난 정말로 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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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똑똑히 알게 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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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소리야? 도영, 도영!”
제니퍼가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휴게실 문을 부서져라 닫고 나온 도영은 그 길로 바로 이식센터장의 방으로 찾아갔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센터장은 일찌감치 출근해 그날의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새벽같이 찾아온 도영을 보며 센터장이 눈을 크게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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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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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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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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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브라운. 그 여자와는 한시도 같이 있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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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응, 무슨 일인데? 제니퍼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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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세한 이유까지 알려드려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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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아니야. 자네가 원하는 대로 팀을 꾸려주기로 애초에 약속을 했으니. 그런데 이제 와서 바꾸자니 내 사정도 있고 해서…….”
제니퍼의 집안은 이 지역에서 손꼽히는 명문가다. 물론 도영이 실력을 보고 팀을 꾸리기는 했기에 애초에 제니퍼가 실력 없이 도영의 팀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영의 팀에 자신의 딸이 들어간 것을 알게 된 제니퍼의 집에서 얼마나 기뻐하며 이식센터에 투자를 약속했던가.
이 팀에만 들어가면 줄줄이 나올 논문이 여럿에다가 도영의 팀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커리어가 올라가니 다들 원했던 자리였다.
센터장은 제니퍼의 집에서 나올 투자금을 이용해 내년에 이식 센터의 수술실을 확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제니퍼를 팀에서 빼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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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 꼭 바꿔야겠나?”
난처한 표정으로 쩔쩔매는 센터장을 보며 도영은 다시 딱딱하게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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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약속드린 기한이 이제 이주 남았군요. 그 기간을 그 끔찍한 여자와 같이해야 한다면 내일부터는 저를 못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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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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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동안 끙끙대던 센터장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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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네. 제니퍼 브라운은 지금부터 주의 팀에서 빠지는 걸로 하지.”
그 말과 함께 센터장은 휴대폰을 들었다. 아마 제니퍼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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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도영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방을 나왔다. 그런 뒤에는 혜수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서울, 한대 병원 앞에 있는 커다란 횟집. 그곳에는 정년 퇴임을 앞둔 교수를 축하하기 위한 회식이 열리고 있었다.
도영에게 잘 잤냐 묻기 위해 안부 전화를 걸었던 혜수는 웬 이상한 사람과의 전화를 끊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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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전화를 왜 다른 사람이 받지?’
혜수가 아는 도영은 남이 제 전화를 받게 두는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그 통화 내용은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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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남자가 교수님더러 달링이라 그러지? 변태인가.’
낮고 허스키한 제니퍼의 목소리를 들은 혜수는 그녀가 남자인 줄로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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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이겠지, 뭐.’
도영과 친해진 어떤 간 큰 사람이 장난을 치는 것이겠거니 생각한 혜수는 휴대폰은 저리 치워버리고 오늘 회식에 온 목적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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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수, 오늘 넌 배를 채우러 온 게 아니야. 그 소문이 대체 뭔지 들으러 온 거란다. 여기저기 잘 껴서 들어보자.’
혜수는 그걸 위해 일부러 평소 앉던 재성의 근처 말고 인턴 세정과 지수 가까이에 앉았다. 열심히 음식을 먹는 척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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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라도 걸려라.’
그런데, 옆에 앉은 세정과 지수의 태도가 점점 나빠진다. 혜수에게 일을 몰아주어도 가만히 있으니 만만하게 보이는 것인지 한눈에 봐도 태도가 불량하다.
혜수에게만 수저를 주는 걸 쏙 빼놓더니 물수건도 전해주지 않는다. 나중에는 혜수의 젓가락을 팔꿈치로 쳐서 떨어트리기도 하고 물을 따르면서 일부러 엎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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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죄송해요, 선생님. 실수했어요.”
실수라고는 하지만 너무 빤히 보였는데. 혜수는 부글대는 속을 참으며 애써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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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박 선생. 앞으로는 조심해주세요.”
그와는 다르게 유민이 앉은 테이블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병원장의 딸인 유민에게 잘 보이려는 인턴들, 레지던트, 심지어 펠로우까지, 온갖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소문에서 피해자임이 명백한 유민을 토닥여주었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기 위해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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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선생님, 이거 맛있어요. 드셔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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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더 따라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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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건은 저 주세요. 제가 걸어드릴게요.”
그렇게 유민은 저를 시중들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아한 공주처럼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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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수확이 없이 회식은 막바지를 향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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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는 안 되는데.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머리를 팽팽 굴리던 중, 저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서 한 중년의 의사가 일어나더니 비틀대며 이쪽으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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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네 인턴이지! 인사 안 와? 인턴 점수 안 받고 싶냐? 내가 안 불러도 먼저 와서 따박따박 인사해야 할 거 아니야!”
혜수도 처음 보는 사람인 걸로 봐서 의국을 나간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회식이 아닌 정년 퇴임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이다 보니 퇴임 교수와 친분이 있는 외부 의사들도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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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것들은 정말, 어휴. 내가 이런 소리 하기 정말 싫어하는데 기본이 안 되어 있어, 기본이!”
그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폴폴 풍기고 있었다. 서로 눈치를 보던 인턴들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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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선생님.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인턴 이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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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턴 박세정입니다.”
그 인사에 순식간에 우쭐해진 남자는 한껏 거들먹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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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진작 이럴 것이지. 너네는 나 따라와.”
인턴들만 앉은 테이블에는 남자의 술주정을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남자는 인턴들을 데리고 제 자리로 갔다. 그러더니 왼쪽에는 지수를, 오른쪽에는 세정이를 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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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한 잔 따라봐라. 누구부터 따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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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가 한 잔 드릴게요, 선생님.”
지수가 억지로 웃으며 남자의 잔에 술을 채웠다. 남자는 단숨에 잔을 들어 술을 들이켰고 이번엔 세정의 앞에 잔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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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따라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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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네.”
그러나, 술 시중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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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네가 또 따라봐라.”
지수에게 또 술잔을 내밀던 남자는 시선을 내려 지수의 손을 뚫어지게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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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참 손이 곱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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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당황한 지수의 얼굴을 보며 느끼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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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턴은 할 만한가 봐? 우리 땐 말이야, 손에 소독제가 마를 날이 없었어. 아니면 따로 손을 관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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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에요.”
지수는 손을 가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남자가 지수의 손을 덥석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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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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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스킨 부드러운 것 좀 봐. 역시 어린 것들이 다르네. 너 그거 알아? 이런 피부는 자칫하다가는 켈로이드가 생긴다고. 관리 잘 해줘야 탱탱함을 유지하지. 내가 관리법 좀 알려줘?”
지수는 싫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옆에 앉은 세정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남자의 눈치만 보았다.
그들이 저항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 조금 전 남자가 말한 ‘인턴 점수’ 때문이었다.
각 과를 돌며 인턴 생활을 하는 인턴들은 마지막에 평가표를 받는다. 이 점수는 추후 의사 생활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의국을 나간 남자가 인턴 점수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겠냐마는, 점수가 달린 이상 인턴들은 이 의사에게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이 사람이 과장이나 다른 교수들과 친할 수도 있으니 밉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도 인턴들의 속마음을 잘 아는 눈치였다. 아예 작정하고 온 듯 애초에 자리도 구석지고 어두운 위치에 혼자 앉아 있던 것을 보면 상습범임이 분명하다.
지수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남자는 맥주잔을 하나 가져오더니 거기에 소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세정에게 쑥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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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넌 이제 이거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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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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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얼른 원샷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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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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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마시기 싫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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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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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때는 사발로 마셨어. 많이 봐준 거다. 얼른 쭉 들이켜,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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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선생님.”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던 세정이 소주로 찰랑이는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눈을 질끈 감고 입에 갖다 대려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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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뒤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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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선생님. 뵙고 싶었어요. 잘 계셨어요?”
남자가 홱 뒤를 돌아보았다. 두꺼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뒤에 선 사람을 알아보기 위해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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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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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1년 차 신혜수입니다! 전에 인사드렸었는데, 잊으셨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