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제일 큰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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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제일 큰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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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제일 큰 걸로
2022.08.10.
의외의 말에 은숙이 헉, 소리를 낸다.
“헉, 진짜? 네가 목걸이는 왜?”
“줄 사람이 있습니다.”
도영은 이 목걸이를 보자마자 누군가를 떠올렸다.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가운데에 놓인 다이아몬드 그 자체만으로도 영롱하게 빛을 내고 있다.
그 누군가는 다이아몬드처럼 혼자서도 밝은 빛을 내는 사람이니 이 디자인과 딱이다. 늘 좋은 향기가 나는 하얀 목에 이 목걸이를 걸어준다면 무척 잘 어울릴 것이다.
게다가 반지는 수술 중에 낄 수가 없으니 늘 착용하기에는 목걸이가 낫겠지.
“저는 이것으로 주문하겠습니다.”
뜻밖의 매출에 매니저가 웃으며 냉큼 다가온다.
“안목이 뛰어나세요, 교수님. 고르신 디자인은 이번 시즌 새로 나온 디자인입니다. 지금 전시되어 있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등급으로 해드릴까요?”
“등급?”
다이아몬드를 사본 적이 없는 도영은 보석에 등급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간단히 설명 드릴게요, 교수님. 등급은 여러 개가 있는데요.”
매니저는 등급에 대해 줄줄이 설명을 하려 하기 시작했고 도영은 그냥 말을 끊었다.
“제일 좋은 걸로.”
“네! 그럼 해당 등급으로 지금 1.4, 1.8, 2.2 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떤 걸로 해드릴까요?”
“제일 큰 걸로 해주십시오.”
사본 적은 없지만 크면 좋을 거란 생각은 든다.
“네, 교수님. 그 사이즈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선택하신 디자인은 주문 후 제작 디자인이라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 괜찮으세요?”
“네.”
도영은 순식간에 주문서를 써 내려갔다.
도영이 결제를 끝내자 은숙이 눈을 반짝이며 다가갔다. 그럼 이제 도영이가 내 것도 골라주겠지?
“도영아, 그럼 다시 골라봐.”
진열대를 휘휘 둘러보던 도영이 고개를 젓는다.
“모르겠습니다.”
은숙은 기가 막혔다.
“도영아! 아까는 잘 골라놓고 왜 나는 안 골라주니!”
“정말 모르겠는데 어떡합니까.”
“하아, 도영아, 제발. 잘 좀 봐봐. 알았지?”
“…….”
몇 번의 질문과 대답이 더 오가고 마침내 은숙은 목걸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1.3캐럿짜리의 화려한 꽃장식이 달린 다이아몬드 목걸이였다.
도영에게 물어봤자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에 결국 스스로 선택했다.
“그럼 전 이걸로 할게요. 이 디자인이면 젊은 사람들에게도 잘 어울리겠죠?”
“그럼요. 전 시즌 통틀어 베스트셀러입니다.”
“네, 준비해 주세요.”
“네, 사모님.”
대번에 커다란 거래를 두 건이나 성사시키게 된 매니저는 입을 귀에 걸었다. 특히 도영이 고른 목걸이는 은숙이 고른 것의 몇 배는 되는 가격이었다.
“제품 도착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모님, 교수님.”
“그래요, 나중에 봐요.”
도영과 은숙은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숍을 나왔다.
“아이, 부러워라. 이런 걸 받으시다니. 약혼녀분은 정말 좋으시겠어요.”
완벽한 교수님이 로맨틱하기까지 하다니 참으로 약혼녀가 부럽다, 멋지다, 꺅꺅거리는 환호성을 꼬리에 달고.
도영은 본가가 있는 성북동으로 은숙을 데려다주었다. 돌아가는 차 안, 은숙이 슬그머니 말을 꺼낸다.
“저, 도영아, 네가 산 목걸이 말이야.”
“네.”
“누굴 주려는 거니? 유민 양에게 주려는 건 아니지?”
유민에게 주려는 건 아닐 것이다. 도영은 유민이라는 이름을 듣기도 싫어했었고, 지금도 선거만 끝나면 파혼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지금 도영에게는 마음에 둔 사람이 생긴 것이다.
“누구야? 궁금하네.”
도영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좋아하는 사람 있습니다.”
“어머! 세상에! 정말?”
은숙은 도영의 입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
도영이 초등학생 때 같은 반 여자애가 좋다던 말은 몇 번 들어봤지만, 이것과 그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지 않나.
특히 사고 이후 도영은 사람들과 전혀 교류를 하지 않았고 일에만 매달려왔기에 더욱 그렇다. 도영이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은 대학교에 입학하며 생긴 친구 승원뿐이었는데.
“어떤 사람이야? 너무 궁금하다.”
“직접 보세요. 조만간 소개시켜드릴 테니.”
그 말과 함께 도영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그 여자를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떠오르나 보다.
“어머, 얘 좀 봐.”
드디어 아들에게 찾아온 사랑에 은숙도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도영은 대문 앞에 차를 세웠다. 그런데 차가 멈춰도 은숙이 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우물쭈물한다.
“왜 그러십니까?”
“그……. 도영아. 오랜만에 안에 들어가 볼래? 이번에 정원을 새로 단장했어. 연못에 잉어도 풀었고. 아버지도 집에 계시…….”
“아니요. 전 괜찮습니다.”
아버지란 단어가 나오자 대번에 거절의 대답이 나온다.
“……그래, 편한 대로 하렴.”
익숙한 반응이다. 틀어진 부자지간은 은숙이 사이에서 무슨 짓을 해도 회복되지 않았다. 은숙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차에서 내렸다.
“그럼 잠깐만 여기서 기다릴래?”
“알겠습니다.”
은숙이 집으로 들어가고, 도영도 차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여전하군.’
도영이 한대에서 병원 생활을 시작할 때쯤 아버지도 정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도영과 아버지의 사이는 틀어졌다.
무엇이 아버지를 변하게 했는지, 목표를 위해서는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게 되어버린 아버지를 도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잦은 다툼 끝에 결국 도영은 집을 나왔다. 이후로 성북동 본가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부모님을 봐야 할 일이 있으면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만남을 가졌다.
무감한 얼굴로 집을 쳐다보고 있으니 은숙이 다시 나온다. 은숙의 품에는 금색 보자기가 들려 있었다.
“그건 뭡니까?”
“인절미. 너 인절미 좋아하잖아. 아침에 직접 만들었어.”
어릴 적 도영은 은숙이 직접 만들어준 인절미를 참 좋아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을 끝내고 나서 엄마가 준비해 준 간식을 한 입에 쏙 넣고 씹으면 그것이 최고의 맛이었다. 당시 최고의 여배우로 바쁘게 연기 생활을 하던 중에도 은숙은 도영의 간식만은 직접 만들었다.
하지만 그 사고가 일어나고, 후유증으로 경련을 얻게 되면서부터 도영은 의도적으로 간식 섭취를 줄였다. 설탕이 들어간 음식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다.
지금 은숙은 도영이 완전히 나은 것으로 안다. 그러니 인절미를 준비해 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뭐하러 고생하십니까. 오래 서 있는 게 힘드실 텐데.”
“고생은. 네 입에 들어가는 게 무슨 고생이니. 그리고 앉아서 만들었어.”
또 발을 함부로 쓰면 어쩌냐는 잔소리가 들려올까 봐 은숙은 냉큼 대답했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 다 먹으면 또 해줄게. 말만 해.”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운전 조심하고.”
“네.”
도영의 차 꽁무니가 완전히 사라지고, 은숙은 부리나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 기철에게 도영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는 말을 전해줄 생각에 신이 났다.
‘세상에, 우리 도영이가 연애라니! 이게 웬일이야!’
그날 밤, 침대에 누운 도영은 오른팔을 들어 손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정상적인 팔이 된 것만 같군.’
사고 이후 도영은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아내야 했다. 진통제도 큰 소용이 없는 지옥 같은 시간을 무던히 견뎠다.
또 도영은 종종 사고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꿈을 꿨다. 그 끔찍한 꿈에서 깨고 나면 여지없이 팔은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혜수와 만난 이후로는 악몽이 씻은 듯 사라졌다. 경련의 발생 횟수 자체가 줄었으며 혜수가 손을 잡으면 경련이 멈춘다.
이 모든 것이 혜수만이 줄 수 있는 위로와 평안 덕이니 어찌 혜수가 어여쁘지 아니할까.
‘신혜수, 네가 내게 어떤 존재인지 넌 모르겠지.’
팔을 쳐다보던 도영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시야는 점점이 하얗게 물들어 갔다.
“교수님!”
하얀 배경 속에서 나타난 혜수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모든 걸 하얗게 만들어버리는 강한 빛 속에서도 눈에 띄는 사람, 낮에 산 다이아몬드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빛이 나는 나의 신혜수.
빛을 마주하여 바라보던 도영은 오래 지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한 체육관.
오늘은 프로 배구 결승전이 있는 날이다. 넓은 경기장은 관중들과 치어리더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곧 경기는 시작되었고 도영은 코트를 누비며 팀을 승리로 이끌고 있었다.
두 세트가 끝나고 감독과 선수들은 한 데 모였다. 감독은 가장 먼저 도영에게 다가가 듬직한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두 세트 모두 우리가 이겼다. 주도영, 정말 잘했다.”
“감사합니다.”
어린 도영은 씩 웃어 보였다. 코트를 삐져나오는 싱그러운 웃음에 관중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하면 돼. 그러면 이번 시즌 승리도 우리 것이다. 알겠지, 도영아?”
“걱정 마세요. 우승컵 꼭 안겨드릴 테니.”
도영이 자신만만하게 웃는다.
어찌 보면 저놈 재수 없다고 할 수 있을 말이었지만 모두들 픽 웃고 말았다. 도영은 그만큼의 실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감독은 도영의 머리를 장난스레 헝클어트렸다.
“짜식, 패기 있어서 좋아. 이런 말 하는 거 보면 영락없는 고등학생인데 코트 안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노련해. 네 재능은 타고났어, 임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허허, 이놈 말하는 것 좀 봐.”
한참 도영을 보며 웃던 감독은 남은 선수들도 한 명씩 다독여 주었다.
“너희들도 잘했다. 이번 세트도 이기자.”
“네!”
“지금처럼 작전대로만 하면 돼. 반드시 셧아웃 승리하자!”
“네!”
곧 세 번째 세트가 시작되었다.
“막아!”
“패스!”
“스파이크 날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어느 하나 득점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그렇게 양 팀 모두의 체력이 떨어져 갈 때쯤, 상대편 팀이 수비가 빈 곳을 노려 강한 스파이크를 날렸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공이 날아온다.
“내가 막아!”
도영은 몸을 던져 받아 냈고 상대편으로 넘어간 공은 바로 득점으로 연결되었다.
“역시, 주도영!”
“주도영 최고!”
관중들의 함성은 하늘을 찌를 듯 거세졌다.
“올해 MVP는 너겠는데? 데뷔하자마자 MVP냐?”
“짜식, 멋지다.”
도영은 동료 선수들의 박수를 받으며 제 포지션으로 돌아갔다. 이 기세를 몰아 도영의 팀은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고 전광판의 점수는 무섭게 올라갔다.
“내가 해!”
“넘겨!”
“받아!”
경기는 이번에도 도영의 팀에 유리하게 진행되었고 이제 승리를 위해 단 1점만을 남겨놓은 상황.
상대의 서브를 받을 준비를 하던 도영은 갑작스레 눈을 찌르듯 밝아진 불빛에 눈을 찡그렸다.
‘뭐야, 이건?’
경기 중에 누가 이런 불빛을 쏜단 말인가.
경기가 끝나면 단단히 한소리를 해야겠다 생각하며 찡그렸던 눈을 힘겹게 뜨던 도영은 비명을 내뱉고 말았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덤프트럭이 맹렬한 기세로 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이게 뭐야! 무슨 일……!”
급히 피하려고 했으나 덤프트럭의 속도가 너무 높았다. 평소의 뛰어난 운동신경도 지금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끼익, 쾅.
무시무시한 굉음이 울려 퍼지고 결국 도영은 덤프트럭에 깔리고 말았다.
푸른빛의 코트 바닥은 붉은 액체로 물들어 갔다.
‘아파. 아파…….’
눈앞이 깜빡깜빡, 전구의 수명이 다한 것처럼 점멸하더니 점점 까매진다.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도영은 꺾여버린 제 오른팔만을 쳐다보았다.
‘안 돼. 팔은 절대 다치면 안 되는데. 누가 좀 구해주세요. 너무 아파…….’
화면이 전환되었다. 온통 깜깜한 적막이었다가 지금은 눈이 부시도록 환하다.
‘여긴 어디?’
깜빡이며 시야를 넓혀보니 차가운 침대 위에 누워 있고 머리맡에는 환한 조명이 저를 비추고 있다. 수술 중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지 가죽 띠가 몸을 두르고 있다.
‘아, 수술실인가.’
서늘한 온도에 덜덜 떨고 있으니 수술 모자와 마스크를 쓴 한 남자가 다가와 도영에게 인사를 했다.
“환자분, 잘해드릴게요. 너무 걱정 마시고 한숨 푹 주무시고 일어나세요.”
집도의라는 남자의 얼굴을 가늠하려고 애썼으나 강한 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도영이 고정된 몸을 필사적으로 움직여 인사를 하려고 애썼다.
“걱정 마세요. 이제 마취할 겁니다. 가만히 있으세요.”
“네, 감사…….”
말만이라도 감사를 전하려던 그때, 도영을 내려다보던 의사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남자의 얼굴은 기괴하게 무너졌고 동공은 텅 사라졌으며 입가에는 온통 붉은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붉은 입술이 움직이며 섬찟하게 찢긴다.
“이런, 팔은 완전히 못 쓰게 되었는데 어쩌지요?”
“안 돼, 안 돼! 으, 으아아아악!”
도영은 힘껏 몸부림쳤지만, 침대에 고정된 몸은 움직이지를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