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되게 좋은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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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되게 좋은 교수님
2022.06.22.
혜수도 수술 가운을 벗고 도영의 옆으로 다가갔다.
“벤트(vent:수술을 위해 막은 혈관 위아래로 피를 통하게 해둔 임시 인공 혈관) 제거하는 것은 본 적이 있나?”
“네. 인턴 때 CS(흉부외과)를 돌며 본 적이 있습니다.”
“벤트 제거 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최대한 공기를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 엠볼리즘(embolism:색전증)을 조심해야 하지.”
이후로도 도영은 혜수에게 조금 전 자신이 한 과정에 대해 하나씩 짚으며 설명해 주었다.
“다른 질문 있나?”
“아니요. 없습니다.”
늘 그랬듯 완벽한 설명이었기에 더 궁금한 것은 없었다.
“그럼 가 봐.”
“넵, 수고하셨습니다.”
도영과 헤어지고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교수 휴게실의 문이 열린다.
어기적거리며 걸어 나오는 사람은 흉부외과 교수 김계상. 7번 수술실에서 호출 전화를 받고 막 나오는 참인 것 같았다.
혜수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 계상을 지나갔다. 세 걸음쯤 갔을까.
“어이.”
저를 부르는 듯한 소리에 혜수는 뒤를 돌아보았다. 계상이 우뚝 선 채 저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 말씀이세요?”
“그래. 너. 너 이리 와 봐.”
흉부외과에서의 일은 모두 끝났는데 저를 왜 부르는 건지. 혜수는 의아해하며 계상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계상이 허리에 손을 틱 얹더니 대뜸 언성을 높인다.
“인사 왜 안 해?”
“네?”
“못 들은 척은. 사람이 지나가면 인사를 해야 할 거 아냐. 하여간 GS(일반 외과) 것들은 예의를 단체로 어디다 팔아먹었나.”
그렇지 않아도 붉은 얼굴을 더욱 붉히며 씩씩댄다.
‘아.’
혜수는 퍼뜩 고개를 다시 숙였다.
‘이럴 때는 그냥 숙여주는 게 나아.’
지금 이 사람은 아까 수술실 안에서 있었던 일로 앙심을 품고 있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 것이다. 상대해 봤자 일만 복잡해질 것이다.
“죄송합니다. 인사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고개를 숙이기는 했는데…….”
“야! 지금 내 눈이 잘못됐다는 거야?”
“그것이 아니라.”
“닥쳐! 고작 1년 차 주제에 감히 교수를 무시해?”
계상의 목소리가 끝 모르게 높아진다. 이제는 수술실 복도가 쩌렁쩌렁 울릴 지경이다.
“아, 주도영한테 보고 배운 건가? 교수부터 그 꼴이니 레지던트가 이 모양이지!”
“…….”
“어디서 제대로 배워먹지도 못한 게 나타나서 수술실 물을 흐리는지. 쯧.”
흥분한 계상은 삿대질까지 하며 말을 쏟아냈다. 도영에 대한 비난의 강도 또한 점점 세져갔다.
“야, 너도 정신 똑바로 차려. 주도영 같은 인간이 되지 않게 조심하란 말이야.”
“…….”
“나 원 참 더러워서. 부모 잘 만나서 호강하는 주제에 쥐 죽은 듯 지낼 것이지, 설치는 꼴 좀 보라지.”
“…….”
“주기철 믿고 지금 걔가 이렇게 설치는 거라고! 알아?”
“…….”
“제까짓 게 집안의 힘이 없었으면 어떻게 벌써 임용을 받아! 병원 꼴이 말이 아니야. 저런 쓰레기들을 걸러내지는 못할망정…….”
‘너무 심하잖아?’
도저히 그냥은 못 들어 주겠다.
혜수는 부들거리는 주먹을 꽉 쥐고 입을 열었다. 지금 말대꾸를 하면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교수님.”
혜수의 부름에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던 계상은 말을 멈췄다.
“방금 말씀은 너무하신 것 같습니다.”
“뭐, 뭐?”
“주도영 교수님은 누구보다 열심히 환자를 보시는 분입니다. 배경과 상관없이.”
“뭐라?”
“연구도 저희 의국에서 가장 많이 하고 계십니다. 아시다시피 수술 건수도 가장 많으시고 결과 또한 누구보다 좋습니다.”
누구보다, 라는 말에 계상의 눈썹이 저 끝 위로 치켜 올라갔다. 혜수가 딱히 누군가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찔리는 바가 있어서다.
“그러니 집안 배경으로 임용을 받았다고 하신 말씀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이, 이게!”
계상이 숨을 크게 들이쉬어 가슴을 부풀렸다.
“감히. 누구한테 지적질이야! 이걸 그냥 확!”
계상의 두꺼운 손이 하늘로 치켜 올라 간다. 곧 닥칠 아픔이 예상되어 혜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맞겠어.’
순간, 혜수의 몸이 뒤로 밀림과 동시에 커다란 인영이 앞에 생겼다.
주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계상의 고함도, 무지막지한 손바닥도 어딘가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고요하다.
‘어?’
눈을 슬쩍 떠보니 앞에는 커다란 벽처럼 서 있는 단단한 등이 보인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도영이 계상의 손을 굳게 붙들고 서 있었다.
“주도영!”
계상은 이를 벅벅 갈았다.
“관계없는 사람은 빠져! 나는 지금 저 선생과 마저 할 이야기가 있으니!”
도영의 뒤에 있는 혜수를 삿대질하며 씨근덕댄다.
“신혜수 선생은 저희 의국의 레지던트입니다.”
“그런데?”
“충분히 관련 있으니 저에게 말씀하시지요. 혼내실 게 있다면 제가 직접 혼내겠습니다. 교수님은 수술만으로도 힘드실 텐데. 그만 쉬셔야지요.”
묘하게 기분 나쁜 말에 계상의 화는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뭐? 이것들이 지금 나를 뭘로 보고!”
계상은 삿대질하던 나머지 손도 치켜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휘두르기도 전에 도영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윽!”
“그리고. 정말 관계가 없는 것이 맞습니까? 대화 내용을 듣자 하니 저와 관련 있는 것 같던데.”
“으윽.”
계상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도영에게 잡힌 팔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손을 털어내려 몇 번 힘을 주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얗고 매끈한 손일뿐인데 왜 이렇게 악력이 강한지.
“으, 읏…….”
계상의 신음 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아닙니까?”
“으…….”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아픔도 아픔이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도영의 시선이 너무 무서웠다. 어느새 소름이 돋은 뒷덜미가 쭈뼛하다.
“으, 으윽…… 이거 놔!”
계상은 온 힘을 다해 도영에게 붙잡힌 손을 뿌리치고는 뒤로 물러났다. 아픈 양 팔을 주무르며 희미하게 말했다.
“가, 감히! 내가 너. 두, 두고 볼 거야.”
그러더니 몸을 돌려 7번 방을 향해 재게 걸어간다. 마지막에는 뛰다시피 해서 사라져 버리고, 곧 복도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고요해졌다.
“신 선생. 괜찮아?”
“네, 네. 괜찮습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을 더듬는 혜수를 보고 도영이 미간을 살풋 찡그렸다.
“굳이 상대할 필요가 뭐 있어. 무시해, 저런 건.”
“하지만. 말도 되지 않는 말을 지어서 하시니까요.”
“하.”
머리를 한 번 쓸어올린 도영은 무심하게 말했다.
“말도 되지 않으면, 뭐. 선생이 무슨 상관이야.”
“예에? 왜 상관이 없어요? 우리 교수님 이야기인데?”
혜수의 대답에 도영의 눈이 조금 커다래졌다.
“교수님이 얼마나 애쓰시는지 알아요. 매일 연구실에 계시다가 늦게 가시는 것도. 환자들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하시는 것도 알아요.”
그동안 혜수가 봐 온 도영은 의사로서 무척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 왜 이곳에 오기 전에는 도영의 존재를 몰랐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을 만큼.
도영이 여태껏 만들어낸 뛰어난 결과에는 타고난 머리와 센스가 좋은 것도 물론 있겠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도영은 그만큼 피나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자기 관리가 엄격했고, 일분일초를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수술도, 논문도 결과들이 좋은 거. 그냥 운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만큼 노력하신 건데. 그만큼 힘들게 지내오신 건데.”
도영의 눈이 더욱 커진다.
“저런 말을 들으실 순 없어요. 무, 물론 저희한테는 조금, 아니, 아주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혜수는 우물쭈물 말을 삼켰다. 호기롭게 말을 시작은 했는데 결론을 어떻게 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뭐라고 교수님을 칭찬하고 있는, 아니, 평가하고 있는 건지. 날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게다가 점점 더 치켜 올라가는 도영의 눈썹을 보고 있으니 머릿속은 물감을 부은 것처럼 하얘져 버렸다.
“아, 아무튼. 교수님은 저한테 되게 좋은 교수님이시거든요? 그러니 김계상 교수님의 막말은 더 이상은 못 참겠어서. 그래서 그랬어요……. 제가 너무 무례했나요?”
“…….”
대답 없이 혜수를 물끄러미 보던 도영이 하, 헛웃음을 짓는다.
그 표정이 너무나도 미묘해 기분이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떡해! 화가 나신 건가?’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미루어 보아 화를 내는 것이라 판단했다.
‘나 너무 막 나갔나 봐. 그냥 알겠다 대답하고 말 것을.’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왜 저런 말을 했을까 후회했다. 어디 적당한 곳이 있다면 땅굴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크큭, 하는 소리가 들린다.
‘웬 웃음소리?’
번쩍 고개를 들어보니 도영이 혜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늘 매섭게 날이 서 있던 눈매는 바짝 접혀 있다.
‘어?’
곧 도영이 시원하게 웃기 시작한다.
“아하하하.”
처음 보는 도영의 모습에 당황하여 입만 벙긋거리고 있는데 도영은 계속해서 웃기만 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소리가 상쾌하기 그지없다.
‘왜, 왜……?’
난데없는 웃음에 올려다보고만 있는데 도영이 오른손을 들었다. 곧 혜수의 이마에 커다란 그늘이 생겼고 도영의 손은 혜수의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런 평가는 처음인데.”
그러더니 혜수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기 시작한다.
부드러운 손짓이었다. 쓰다듬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착각할 만큼 포근했고 근사한 느낌이었다. 평소 승원이 혜수의 머리카락을 헝클이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
‘아…….’
가능하다면 조금 더 이렇게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따뜻하고 다정한 도영의 손길은 마치 혜수가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동안 그 손짓에 취해 있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혜수를 줄곧 응시하던 눈매가 갑자기 모서리부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손만큼이나 매끄럽게 빛나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어?’
도영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혜수에게서 급히 손을 거둬들였다.
“교수님? 왜 그러세요?”
“그, 급한 볼일이 생긴 걸 잊었어. 먼저 가지.”
“아, 네. 그럼 안녕히…….”
도영은 혜수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몸을 휙 돌렸다. 수술실 복도를 달리다시피 하여 걸어 나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다음 날 오후. 혜수는 재성과 함께 도영이 사는 동네를 걷고 있었다.
“이야, 혜수야. 여기 시설 장난 아니다, 그치?”
재성이 주위를 둘러보며 연신 감탄을 한다.
“그러네요.”
도영의 집은 서울에서도 고급 빌라들이 모여있는 부촌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하철의 출구부터 심상치 않다 생각했는데 빌라 단지까지 이어지는 길은 더욱 심상치 않았다. 커다란 대리석들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고 사이사이에 설치된 조명들이 화려하다.
“야, 따라와 줘서 정말 고마워.”
몇 시간 전, 의국.
회의실에 갔는데 재성이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고 있는 게 아닌가.
“선생님, 왜 그러세요?”
“이거 주 교수님한테 싸인 받아야 하는데. 오늘까지 꼭.”
“받으면 되잖아요?”
“교수님 병가 내셨어.”
“병가요?”
“어. 내일까지. 어제 과장님한테 말하고 갑자기 집에 가셨다는데.”
“어디가 아프신데요?”
“그건 나도 모르지.”
혜수는 어제 마지막으로 도영을 봤을 때를 떠올렸다. 일그러진 눈매, 붉어진 얼굴, 그리고…… 황급히 거두던 오른손.
‘설마!’
어제 도영이 사라진 이유를 알아차렸다. 도영은 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갑자기 왜?’
수술실 복도에서 있었던 계상과의 다툼이 기억난다. 그때 분명 도영은 오른손으로도 계상의 팔을 잡았다. 그것도 꽤 세게.
‘그럼 나 때문인 거야? 김계상 교수님한테서 날 막느라 손을 쓰셔서?’
도영의 통증에 일조했다는 죄책감을 느낀 혜수는 재성을 따라나섰다. 물론 재성은 두 손을 번쩍 들고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