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너 교수님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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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너 교수님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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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너 교수님 좋아해?
2022.06.15.
놀라운 것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경애에게 환자들이 대부분 넘어간 덕에 중환자실에는 이제 단 두 명의 환자가 남았다.
그런데 그들의 주치의 이름에는 무려 주도영이 적혀 있는 게 아닌가.
‘교수님이 왜 주치의를?’
이번에는 혜수가 도영에게 어찌 된 일인지 물어야 했다.
‘어디 계시지?’
그러나 도영은 회의실의 문 앞에 서서 통화 중이다. 누군가와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한참을 기다려 보아도 전화는 끊어질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과장 상훈이 들어왔고 결국 도영에게 어떻게 된 거냐 물어보지도 못한 채 브리핑은 시작되어 버렸다.
각 분과의 발표가 이어졌고 잠시 뒤, 이식혈관 외과의 발표 순서가 되었다. 위 연차부터 발표를 해왔기에 먼저 3년 차 재성이 일어서서 발표를 했다.
2년 차 유민의 발표도 끝나고, 늘 하던 대로 혜수가 일어서려 할 때.
도영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 중앙에 장신의 남자가 우뚝 섰다.
“SICU(외과중환자실) 2번 김순녀 님, KT(kidney transplantation:신장이식) POD(post operative day:수술 후 경과 날짜) 15일째…….”
도영 특유의 힘 있는, 무심한 저음이 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헉, 대박.”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두리번거리며 무슨 일인지 찾는 의국원들 덕에 회의실이 술렁였다.
그럴 만도 했다. 상태가 좋지 않고 중요한 환자일 때엔 담당 교수들이 주치의의 발표 뒤에 코멘트를 가끔 붙일 때도 있기는 했다.
그런데 도영이 마치 주치의가 된 것마냥 처음부터 끝까지 줄줄 읊어대니 모두 놀랄 수밖에.
레지던트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혜수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냐고, 주도영 교수님이 왜 직접 발표를 하시는 거냐고. 어지간히 궁금했는지 눈으로 질문을 쏴댄다.
‘나도 몰라요. 진짜 몰라요.’
혜수는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도영의 발표는 그렇게 계속되었다.
브리핑이 끝나고 레지던트들이 혜수에게 몰려왔다.
“무슨 일이야? 주 교수님이 왜 주치의를 해?”
재성은 어지간히 궁금한 듯했다. 도영과의 수술이 곧 시작인데 수술실에 내려가 준비를 하지도 않고 이렇게 혜수를 붙잡고 있는 것을 보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말씀을 안 해주셔서.”
“그래도 다행이네. 아픈데 환자 수가 줄었잖아. 몸이라도 좀 편해지겠네.”
그건 그렇다. 목발을 짚으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중환자실 오가기였는데 도영이 가져갔으니.
잠자코 재성과 혜수의 대화를 듣던 유민이 생긋 웃는다.
“SICU 환자만 가져가셨네. 환자가 그렇게 안 좋아? 1년 차한테 못 맡길 만큼 나쁜 상태인가?”
유민의 말에 재성이 냉큼 맞장구를 친다.
“앗! 그건가 보다. 교수님이 널 못 미더워하시나 보네!”
‘진짜 그런 건가?’
혜수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그런 혜수를 보고 유민은 또 미소 지었다.
절뚝거리며 병동을 돌아다닌 지 10일째, 드디어 스프린트를 푸는 날이 왔다.
혜수는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게다가 오늘은 가은이 혜수의 병문안을 오기로 했다. 물론 병문안을 가장한 수다 떨기가 목적이다. 덕분에 아침부터 혜수는 기분 좋게 병동을 오갔다.
점심시간, 혜수는 카페로 내려갔다.
“신혜수! 여기야!”
“가은아!”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블라우스와 스팽글이 요란한 청바지, 붉은 머리에 다섯 개의 피어싱까지. 역시나 가은이는 오늘도 번쩍번쩍하다.
가은은 목발을 짚고 나타난 혜수를 보며 깔깔 박장대소를 했다.
“진짜 다쳤네?”
“그럼 가짜겠니.”
“여기 앉으세요, 환자분.”
“네에, 고맙습니다.”
“뭐 마실래? 환자분을 위해 내가 사 올게.”
“난 그럼 모카 프라푸치노.”
“알았어.”
잠시 뒤 가은이 쟁반에 음료와 케이크를 담아왔다.
“여기.”
“고마워.”
달콤한 음료를 쭉 들이켜는데 가은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낮춘다.
“근데 나 저기 줄 서 있다가 이상한 이야기 들었다?”
“무슨 이야기?”
“주도영? 그 사람 내가 전에 선보려다가 네가 대신 나간 사람 맞지?”
“응. 맞아. 우리 교수님.”
“그래. 네가 첫날에 보고 기겁해서 전화했었잖아.”
“응. 근데 교수님이 왜?”
“그 사람 약혼한다는데?”
“야, 약혼?”
혜수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야, 쉿.”
“아, 미안.”
“사람들이 수군대던데.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고. 레지던트랑 약혼한대.”
혜수의 눈이 커다래졌다.
“레지던트 누구?”
“그건 모르겠고. 병원장 딸이래.”
“……조유민 선생님인가.”
“뭐? 누구라고?”
“우리 위 연차 선배인데. 조유민 선생님이라고. 아빠가 병원장이거든.”
“참 나, 나랑 선 본지 아니, 너랑 선 본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약혼이래?”
“…….”
“이렇게 서두르는 거 보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하던 가은이 손가락을 튕겼다.
“아, 시장 선거 때문인가?”
“시장 선거?”
“응. 올해 하잖아.”
정치가 집안에서 자란 가은이다보니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기는 하다. 대번에 선거 이야기가 나오는 것 보면.
“…….”
“야, 신혜수. 넌 얼굴이 왜 그래. 얼굴 좀 펴.”
“어? 어.”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나 보다. 혜수는 내가 왜 그랬지 생각하며 살짝 웃었다.
“김가은, 넌 어떻게 지냈어?”
그런데, 가은이와 대화를 좀 해볼라치면 주위 사람들의 대화들이 귀를 후빈다. 사방이 온통 도영의 이야기였다.
“주 교수님 누구랑 결혼하나 했더니. 레지던트랑 결혼할 줄이야.”
“그냥 레지던트가 아니지. 병원장 딸이래잖아. 그 선생님 집안이 장난 아니라던데. 그 집 사위 되면 앞으로는 탄탄대로지, 뭐.”
“주 교수님이 뭐가 아쉬워서 여자 집안을 따져? 아빠가 이미 차기 서울 시장 99퍼센트에 더 나가면 대통령도 될 수 있다던데.”
“아니야. 여자 집도 장난 아니래. 의료계에서는 아주 꽉 잡고 있다던데.”
“부럽다. 끼리끼리라더니. 금수저끼리 만나네.”
“근데 이거 아직 지라시 수준이야. 진짜인지는 몰라.”
“소문이 그냥 날 리가 있니. 뭔가 조짐이 있으니 난 거겠지.”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혜수가 멍하니 있으니 가은이 또 혜수를 툭 친다.
“야. 너 자꾸 왜 그래?”
“어? 아니야, 아무것도.”
“흐음.”
가은이 눈을 샐쭉하게 뜬다.
“왜, 너네 교수님 약혼한다니까 기분이 이상해?”
“뭐어?”
저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갔다. 도영의 소문을 열심히 나르던 직원들이 일제히 혜수를 쳐다본다. 소리가 너무 컸던 탓이다.
“죄, 죄송합니다.”
붉어진 얼굴로 꾸벅거리는 혜수를 보며 가은이 또 묻는다.
“너 혹시 너네 교수님 좋아해?”
“!”
이번에도 비명이 목 끝까지 튀어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아니야?”
“어. 절대로.”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이렇게 정색을 해.”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왜 그러는데?”
“…….”
혜수는 대답을 쥐어짰다.
“그냥. 우리 의국 선배가 약혼한다니까. 난 남자친구도 없는데. 부러워서 그런 거지.”
“흐응, 그래? 그럼 내가 소개팅 시켜줄까?”
“됐어. 바빠. 부럽긴 한데 만날 시간은 없단다.”
“쯧쯧. 이 꽃다운 나이에 차암 불쌍하도다.”
둘은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었다.
“이제 가 봐야겠다. 우리 언제 또 보지?”
“어휴, 김가은. 네 사업이 너무 바빠서 그런 거 아니야.”
“히히. 전화하자.”
“조심해서 가.”
가은이와 헤어진 혜수는 카페를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동으로 올라가는데 머릿속에 계속 도영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도영의 약혼 이야기를 들은 것뿐인데 왜 이리 기분이 이상한지.
‘그것도 상대가…….’
그러고 보니 도영과 유민 사이에 예전부터 무언가 있었던 것 같다.
경애가 도영과 붙어 있는 혜수를 보며 ‘언니가 너 때문에 속상해한다’라고 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는 유민의 일방적인 마음인 줄로만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이 같이 있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누구도 서로에 대한 티를 낸 적이 없었다.
‘왜 하필 조유민 선생님…….’
도영과 유민을 나란히 놓고 잘 어울리는지 가늠해 보던 혜수는 화들짝 놀랐다.
‘자꾸 그 커플 생각하는 이유가 뭐야? 게다가 소문이라며? 정신 차려!’
오후에는 승원에게 가 스프린트를 제거했다. 스프린트를 떼어내는,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에도 혜수는 기뻐하지 못했다.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혜수는 주먹으로 가슴을 퍽퍽 쳤다.
‘오늘 당직이라 그런가?’
병동에 앉아 차트를 보고 있는데 벨소리가 울린다. 응급실이겠거니 하고 휴대폰을 봤는데 의외로 발신지는 수술실이었다.
“네, 외과 1년 차 신혜수입니다.”
-선생님. 여기 수술실 7번 방이에요.
‘7번?’
7번 방은 흉부외과의 방으로 평소라면 혜수에게는 연락 올 일이 없다.
1년 차인 혜수는 응급실과 병동을 주로 오갔기에 수술실에서 연락 올 일이 없었다. 수술 어시스트는 보통 2년 차와 3년 차의 일이니까. 게다가 그곳이 흉부외과라면 더더욱 관련이 없다.
“무슨 일이에요?”
-지금 7번 방으로 손 닦고 들어오시래요.
“제가요? 저 외과 1년 차인데요.”
-네. 지금 여기 주도영 교수님 계세요.
“아.”
오늘 외과 당직 교수가 도영이기는 하다.
“응급 수술이에요?”
-네. CS(흉부외과) 응급 수술인데 주 교수님이 지금 같이 들어와 계세요.
“무슨 수술이에요?”
-대동맥 박리요.
그런데, 간호사와 통화하는 중에도 휴대폰 너머가 소란스럽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여러 사람이 동시에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주변의 눈치를 보는 건지 간호사가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아무튼 빨리요. 빨리 좀 들어오시래요.
“알겠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
전화를 끊고 수술실로 가는데 암만 생각해도 상황이 희한하다.
‘흉부외과가 메인인 대동맥 박리인데 왜 주 교수님이 들어가 계시는 거지?’
한대 병원에서는 흉부외과와 이식혈관외과 두 곳에서 대동맥 박리 수술을 한다. 횡격막 상부에 있는, 흉곽 내의 대동맥 박리는 흉부외과에서 수술을 해왔고 횡격막 하부, 즉 복부에 생긴 대동맥 박리는 도영이 맡아왔다.
‘하지만 이미 흉부외과에서 시작한 수술이라면 흉곽 내에 생긴 박리라는 뜻인데.’
그런데 이제 와서 도영이 끼어들 일이 무엇일까.
더군다나 흉부외과와 도영 사이엔 환자를 배정하는 데 있어 알력 다툼이 있어 왔다. 횡격막 위아래로 집도하는 과를 나누기는 했지만 애매한 경우들도 꽤 있었다. 실적이 모자라는 흉부외과에서는 도영의 환자를 뺏기 위해 기를 썼다.
게다가 도영은 아무리 어려운 수술이라도 뛰어난 결과를 내놓으니 더욱 꼴 보기 싫어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혜수는 뛰다시피 하여 수술실로 내려갔다.
단숨에 손을 씻고 7번 방 앞에 섰다. 수술실 문이 열리면서 싸늘한 냉기가 덮쳐온다.
‘으, 추워.’
심장을 멈추고 하는 수술이라 내부는 다른 수술실보다 훨씬 낮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수술실 한 편에 세워진 커다란 체외순환 기계에는 쉴 새 없이 달칵거리는 소리가 났다. 붉은 액체가 환자의 몸에서 빠져나와 다시 들어가는 장면은 이곳이 흉부외과 수술실임을 여실히 알려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저 왔습니다.”
수술실 안으로 한 발 들어가자마자 뒷덜미가 쭈뼛해졌다. 낮은 온도도 온도인데 수술실 전반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특히 계상과 도영 사이에는 알 수 없는 날 선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수술 가운을 갖춰 입은 혜수는 도영의 옆으로 다가가 섰다. 계상의 눈초리가 혜수를 위아래로 훑는다.
‘아까 인사를 못 들었나?’
혜수는 다시 고개를 꾸벅였다.
“안녕하세요. 외과 1년 차 신혜수입니다.”
혜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계상이 소리쳤다. 목소리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다.
“1년 차? 지금 1년 차를 부른 건가, 주 교수?”
“무슨 문제라도?”
“뭐? 문제? 문제에에? 우리 과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어떻게 1년 차를 불러? 지금 GS 환자 아니라고 이러는 거지?”
“…….”
계상이 또 소리를 질렀다.
“주 교수! 왜 대답이 없어?”